◆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무엇이 부끄러운가?

오갑록 2013. 11. 23. 12:31

부끄러움 ......

■ 무엇이 부끄러운가?

 

     여주에서 분당까지 전철공사가 한창이다. 탄천을 가로지르는 지하구간도 겨울철 갈수기를 틈 타, 흙 파기 공사가 바쁘다.

 

물길을 돌리고서, 수십 미터 깊이로 파낸 흙더미는 덤프트럭으로 십여 미터 높이로 탄천 둔치를 따라 길게 쌓아 올려지고 있다. 그 흙더미의 시작 부분은 하상 윗부분의 흙이고, 뒤로 갈수록 차츰 더 깊은 곳에서 파낸 아래부분의 흙이 쌓이게 된다.

 

하천바닥도 깊이 파 내려가면 질척대는 질흙은 아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검정 색을 띈 사질토지만, 깊이 내려 갈수록 더 흰빛을 띈 갈색토사가 나온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 시간이면 날마다 더 길게 쌓여져 가는 흙더미를 유심히 바라보며 걷는다. 쌓여지는 흙의 색이 하루가 다르게 회백색에 가까운 토사들로 쌓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천 아래의 암반 층이 어느 정도 깊이에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흐르는 개천의 유기물 침적이 흙의 색을 검게 물들인 탓일 것이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두고 침적된 검정 물감들일까를 짚어 본다.

 

지형변화에 따라 물길도 요동 쳐 오기는 했겠지만, 수 천년, 수 만년 간의 침적된 내용물들 일 것이다. 그 세월의 경륜은 지하 깊을수록 더 오래된 것일 수 있음을 추측해 본다. 그 장구한 세월의 역사를 잠시 짐작해 보고 싶어진다.

 

긴 세월을 지나, 바깥 세상에 나오게 된 그 흙더미를 바라보면서, 그 흙이 부끄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야무진 헛된 망상이라는 핀잔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의 표현이 바로, 부끄러움, 수줍음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감정표현의 부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 동질성과 균질성

 

세상에 나와 처음 바깥을 보는 시선이라면, 처음 보는 타자의 세상은 모두가 생소할 것이며, 나와 다른 이질적 세상으로 여겨져 자신과의 동질감을 상실하게 되기 쉽다. 바로 이 때, 우리는 두려움 섞인 수줍고 부끄러운 감정이 들게 되는 것이라는 추정을 하여 본다.

 

그리고, 육체나 마음이 고르지 못하고 평평치 못하여 요철처럼 울퉁불퉁한 곳이라면, 균질성이나 균일성이 떨어져, 그러한 곳이야말로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쉽게 깃 든다고 주장하고 싶다.

 

못나서 못생겨서, 또는 갖가지 능력이 모자라는 경우도 균질성의 결함이라던가, 보통과 평균보다는 못하다는 데서 오는 부끄러움일 것이다. 그 능력의 부족이란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이다. 재력, 체력, 학력, 이력 따위도 있지만 진(眞).선(善).미(美)의 수준이 스스로의 생각보다 미달할 경우에도 수줍고 부끄러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수줍음을 자아내는 여기서의 모자람, 부족함이란 우리에게는 무엇일까? 자신이 생각하는 동질성이나 균질성의 균열과 상실에서 오는 자괴감이라는 생각을 하여 본다. 결국 스스로 가치관의 눈높이를 달리하면 자기의 수준은 그만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입지 또한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 속의 악한들, 정치판의 일부 철면피들, 강도며 살생, 훔치거나 거짓을 행하고서도 오히려 떳떳해 하고, 수줍거나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는 자들이 일상의 주변에 넘쳐 나는 이유라고 본다. 이들의 판단도 동질성, 균질성을 이끌어낸 현재, 이 지역, 이 사회 에서 엮어낸 가치관의 결과일 뿐, 어느 누가 진리에 더 가깝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고 그 진리가 역사가나 종교가가 엮어낸 결과물 일 수도 없을 것이다.

 

지하 깊은 곳에서 파 낸 흙더미를 보고 부끄러워함이 이상한 것처럼,

속 옷 깊은 곳의 속 살이 왜 부끄러워야만 하는가?

그 곳을 흐르는 피와 살과 뼈까지도 부끄러운 것들일까?

못나고 더러운 것이 왜 부끄러워야만 하며,

훔치고, 때리고, 죽이는 것을 왜 부끄러워야만 하는가?

믿음이 없다고, 거짓이라고 왜 부끄러워야만 되는가?

 

한편으로 생각하면 부끄러움의 대다수가 시대와 장소, 사회가 빚어낸 가치관이라고 불리는 허상에 빗대어 갖게 되는 감정에 불과 할 수도 있다. 소 돼지 잡아 먹는 살생이나, 비오는 날 지렁이 밟아 놓고, 죄스럽다거나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누가 정상이라고 하겠는가?  를 중심에 두고 그어놓은 가치관에 미흡할 경우에 갖게 되는 사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 부끄러움일 것이다.

 

그러나,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그만큼 더 따스하고 평온하며, 우리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데 수월하게 되고, 그 가운데 더 많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조선시대 한 선비의 글귀를 다시 음미한다.

 

. 脩恥贈學者

       有恥可恥。無恥亦可恥。有恥者。必無恥。無恥者。

   必有恥。故恥無恥。則能有恥。恥有恥。則能無恥。……

 

. 부끄러움을 닦는 법

                                               息山 李萬敷(1664~1732)

       부끄러움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있다.

       때문에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

  

2013.11.23.(토)

오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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