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십니까?

오갑록 2013. 10. 30. 17:42

좋은 ......

■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십니까?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십니까? 당신에게 그리 묻는 나는, 과연 무엇을 사랑했을까?

 

하늘과 영혼에 연계된 형이상학적인 사랑이 그 무엇보다 우선할지는 모르지만, 각자의 가치관과 생각에 따라 주장이 전혀 다르게 되니, 별도의 다른 주제로서 남기기로 하고, 세속적인 사랑에 대하여 만 생각하여 보기로 한다.

 

사랑은 인간의 욕망을 향한 목표와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대상은 자연, 인간, 사회로 크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진.선.미(眞.善.美)라는 항목으로 나누며 무엇인가를 사랑한다고 말하곤 한다. 각각에 대하여 생각 나는 대로 한 번 나열하여 보자.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자연의 모든 것들을 자연의 대상으로 꼽을 수 있다. 땅, 하늘, 별, 물, 바람, 빛, 돌, 풀, 나무, 산, 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동식물 따위가 있을 것이다.

 

인간의 구심점은 항상 이다. 때문에 뭐니 뭐니 해도 인간관계에서는 자기사랑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이 생명체의 본능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리고 종족 보존 본능에 따라 자식사랑이 이어진다. 씨를 받아 대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동식물의 중요한 생체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이성을 빼고서는 이룰 수 없게 된다. 이성간의 사랑도 결국은 종족 유지 본능에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구도는 궁극적으로는 자기사랑의 본능에 충실하려는 과정으로 여길 수도 있다. 를 보살펴 줄 부모형제, 처자식을 사랑하는 것이요, 를 먹여 주고, 키워 주고, 자라게 한 이웃과 동료와, 고향과 국가를 사랑하자는 것이다. 그 곳에서 나의 후손, 나의 종속이 퍼져 나아가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사회로서의 종교활동이며 학문과 예술도 를 보호하는데 유익한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는 과정인 것이다. 돈이며 재물을 탐한다거나 사랑한다는 것도 자기에게 충실한다는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결국 사랑의 주체는 항상 자신이고, 를 위하여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찌질이도 못난 를 사랑하는 것이고, 를 있게 하여 준 가족과 이웃과 나라와 사회, 자연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따스한 햇빛과 시원한 실바람, 그 바람 결에 하늘대는 들풀의 가녀린 춤사위가 사랑스러운 것이고, 허름한 먹거리, 옷가지, 가재 도구들이 로서는 그냥 사랑스러운 것이다.

 

   ☞ 나의 블로그 글 ; 사랑의 관점

 

생각 난 김에 사랑의 주제들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어느 시인의 시 주제를 통해서 만지작거려 본다. 이성에 대한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 고향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고향 사투리에 대한 사랑까지도 ……

 

2013. 10. 30. (수)

오갑록

 

 

 

 

 봄날은 간다

                                        김용택

 

 진달래...

 

 염병한다 시방, 부끄럽지도 않냐

 다 큰 것이 살을 다 내놓고

 훤헌 대낮에 낮잠을 자다니

 연분홍 살빛으로 뒤척이는 저 산골짜기

 어지러워라 환장허겠다 시방.

 

 찔레꽃...

 

 내가 미쳤지

 처음으로 사내 욕심이 났니라

 사내 손목울 잡아끌고 초저녁

 이슬 달린 풋보리잎을 파랗게 쓰러뜨렸니라

 둥근 달을 보았느니라

 달빛 아래 그놈의 찔레꽃, 그 흰빛 때문이었니라

 

 산나리...

 

 인자 부끄럴 것이 없니라

 쓴내 단내 다 맛보았다

 그러나 때로 사내의 따뜻한 살내가 그리워

 산나리처럼 이렇게 새빨간 입술도 칠하고

 손톱도 청소해서 붉은 매니큐어도 칠했니라

 말 마라 그 세월 덧없다

 

 서리...

 

 꽃도 잎도 다 졌니라

 실가지 끝마다 하얗게 서리꽃은 피었다마는

 내 몸은 시방 시리고 춥다 겁나게 춥다

 내 생에 봄날은 다 갔니라

 

 

 

  사랑하는 너에게

 

                                  김용택

네가 잠 못 이루고 이쪽으로 돌아누울 때

나도 네 쪽으로 돌아눕는 줄 알거라.

 

우리 언젠가 싸워

내게 보이던 고운 뺨의 반짝이던 눈물

 

우리 헛되이 버릴 수 없음에

이리 그리워 애가 탄다.

 

잠들지 말거라 깨어 있거라

먼데서 소쩍새가 우는구나.

 

우리 깨어 있는 동안

사월에는 진달래도 피고

오월에는 산철쭉도 피었잖니.

 

우리 사이 가로막은 이 어둠

잠들지 말고 바라보자.

 

, 보이잖니

파란 하늘 화사한 햇살 아래

 

바람 살랑이는 저 푸른 논밭

화사한 풀꽃들에 나비 날지 않니.

(아, 너는 오랜만에 맨발이구나)

 

이제 머지않아 이 얇아져가는꿉꿉한 어둠 밀려가고

허물 벗어 빛나는 아침이 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화창한 봄날 날잡아 대청소를 하고

그때는 우리 땅에 우리가 지은 농사

 

쌀값도 우리가 정하고

없는 살림살이라도

 

오손도손 단란하게 살며

밖으로도 떳떳하고 당당하자꾸나.

 

그날이 올 때까지 잠들지 말고

어둔 밤 깨어 있자꾸나, 어둠을 물리치며

 

싸우자꾸나, 아침이 올 때까지

손 내밀면 고운 두 뺨 만져질 때까지

 

그리하여 다리 쭉 뻗고 곤히 잠들 때까지.

네가 뒤척이는 이 밤

 

나라고 어찌 눕는 꼴로 잠들겠느냐.

 

 

 

  사람들은 왜 모를까

 

                                          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벗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선운사 동백꽃

                                              김용택

 

여자에게서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산울림

 

                                    김용택

아부지, 왜 이리 무덤까지가 멀다요.

 

오늘도 나는 아버지 무덤에 닿지 못하고

해 진 풀잎들과 나무들 사이를 헤매며 길 찾지 못합니다.

 

아부지, 죽음에서 삶까지 길이 왜 이리 멀다요.

 

야 이놈아

없는 세상의 길을 찾지 말고 논을 찾아라 논을.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눈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있던 집

 

 

여자네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그대 거침없는 사랑

 

                                         김용택

아무도 막지 못할

새벽처럼

거침없이 달려오는

그대 앞에서

나는

꼼짝못하는

한떨기 들꽃으로 피어납니다

 

몰라요 몰라

나는 몰라요

 

캄캄하게

꽃 핍니다

 

 

 

  그랬다지요

 

                                       김용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밤이슬

                                        김용택

 

나는 몰라라우

인자 나는 몰라라우

 

하얀, 하이얀 어깨에 달빛이 미끄러지고

서늘한 밤바람 하 줄기 젖은 이마를 지난다

 

저 멀리 풀잎에 이슬들이 반짝이는데

언제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오는지 자욱한 풀벌레, 풀벌레 울음

소리

 

, 저기 저 산 달빛에 젖어

밤새가 우네

 

 달을 안고 앉아 산을 보는 사람아

살에 붙은 풀잎을 떼어내는 여인의 등에

얼굴을 묻네 

 

 

 

  마당은 삐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김용택

환장허겄네 환장허겄어

, 농사는 우리가 쎄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덜이 편히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며루 땜시 농사 망치는 줄 모르고

나락도 베기 전에 풍년이라고 입맛 다시며

장구 치고 북 치며

 

풍년잔치는 저그덜이 먼저 지랄이니

우리는 글먼 뭐여

신작로 내어놓응게 문뎅이가 먼저 지나간다고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혀서 원

, 저 지랄들 헝게 될 일도 안된다고

올 농사도 진즉 떡 쪄먹고 시루 엎었어

 

,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이사 바로 혀서

풍년만 들면 뭣헐 거여

안되면 안되어 걱정

잘되면 잘되어 걱정

풍년 괴민이 더 큰 괴민이여

 

뭣 벼불고 뭣 벼불면 뭣만 남는당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뙤놈이 따먹는 격이여

, 그렇잖혀도 환장헐 일은 수두룩허고

헐 일은 태산 겉고 말여

 

생각허면 생각헐수록

이갈리고 치떠리능게 전라도 논두렁이라고

 

말이 났응게 말이지만 말여

, 머시기냐 동학 때나 시방이나

우리가 달라진 게 뭐여

 

두 눈 시퍼렇게 뜬 눈 앞에서

생사람 잡아 논두렁에 눕혀놓고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똥 뀌고 성내며

사람 환장혀 죽겄는지 모르고

 

곪은 데는 딴 데다 두고 딴소리 허면서

내거 헐 소리 사돈들이 혓잖여

 

, 시방 저그덜이 누구 땜시 호강 호강 허간디

호강에 날라리들이 났당게

 

못된 송아지 엉뎅이에 뿔 돋고

시원찮은 귀신이 생사람 잡는다는 말이 맞는개비여

 

사람이 살면은 몇백 년을 사는 것도 아니겄고

사람덜이 그러능게 아녀

뭐니 뭐니 혀도 말여 사람은

심성이 고와야 허고

밥 아깐지 알아야 혀

 

시방 이 밥이 그냥 밥이간디

우리덜 피땀이여 피땀

밥이 나라라고 나라

 

자고로 말여 제 땅 돌보지 않는 놈들허고

제 식구 미워하는 놈들

성헌 것 못 봤응게

 

, 툭 터놓고 말혀서

쌀금이 왜 이렇게 똥금인지 우린 모르간디

우리라고 뭐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창사도 없는 줄 알어

 

지그덜이사 뱃속이 따땃헝게

뱃속 편헌 소리들 허고 있는디

그 속 모르간디

 

그러고 말이시

, 없는 집안 제사 돌아오듯 허는

그놈의 잔치는 왜 그리도 많혀

 

땡큐땡큐 하이하이 혀봐야

저근 저그고 우린 우리여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 덕에

뭣 나발들 엥간이 불며

실속없이 남의 다리 긁지 말고

가려운 우리 다리나 착실히 긁어야 혀

 

그저 코쟁이야, 왜놈이야 허면

사족들을 못 쓴당게

사람들이 말여 쓸개가 있어야 혀 쓸개

 

, 생각들 혀보드라고

여직 땅 갈라진 채로 이 지랄들이니

남 보기도 부끄럽고 챙피혀서 말여

긍게 언제까장 이 지랄발광헐 거여 긍게

 

긍게 북한이 외국이여

꺼떡하면 4천만 동포, 동포 허는디

 

, 그러고 말이시

우리가 어디 한두 번 농사 망쳐봤어

쩍 허면 입맛 다시는 소리고

딱 하면 매맞는 소리

철부덕 허면 똥 떨어지는 소리여

 

, 제미럴 헛배 부를 소리들 작작 허라고

, 제미럴 우리는 뭐 흙 파먹고 농사 짓간디

 

고름이 피 안되고 살 안되게

짤 것은 짜내야 혀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겠더라고

새 세상에 새 칠로 말허겄는디 말여

그 속 들여다보이는

선거고 나발이고

 

, 말이 났응게 진짜 말허겄는디

선거만 허면 질이여

, 뭐여 그러면 민주냐고

민주가 뭣인지 잘 모르지만 말여

 

제미럴, 가다오다 죽고

총맞아 매맞아 죽고

엎어져 뒤집혀 죽고

곧 죽어도 말여

 

우린 넓디넓은 평야여

두고두고 보자닝게 군대식으로 혀도 너무들 허는디

우리는 말여 옛적부텀

만백성 뱃속 채워주고

 

마당은 삐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치고

논두렁은 비뚤어쳤어도

농사는 빤듯이 짓는

전라도 농군들이랑게

고부 들판에 농군들이여

 

참 오래 살랑게

벼라별 험헌 꼴들 다 겪고

 

지금은 이렇게 사람 모양도 아닝 것맹이로

늙고 병들었어도

다 우리들 덕에 이만큼이라도

모다덜 사는지 알아야혀

 

아뭇소리 안허고 있응게 다 죽은 줄 알지만 말여

아직도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이여

농군

 

 

 

  섬진강 12

 

                                       김용택

세상은 별것이 아니구나.

우리가 이 땅에 나서 이 땅에 사는 것은

누구누구 때문이 아니구나.

 

새벽잠에 깨어

논바닥 길바닥에 깔린

서리 낀 지푸라기들을 밟으며

 

아버님의 마을까지 가는 동안

마을마다

몇 등씩 불빛이 살아 있고

새벽 닭이 우는구나.

 

우리가 여기 나서 여기 사는 것

무엇무엇 때문도 아니구나.

 

시절이 바뀔 때마다

큰소리 떵떵 치던

면장도 지서장도 중대장도 교장도 조합장도 평통위원도

별것이 아니구나.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동경도 서울도 또 어디도

시도 철학도 길가에 개똥이구나.

 

아버님의 마을에 닿고

아버님은 새벽에 일어나

수수빗자루를 만들고

 

어머님은 헌 옷가지들을 깁더라.

두런두런 오손도손 깁더라.

 

아버님의 흙빛 얼굴로,

어머님의 소나무 껍질 같은 손으로

 

빛나는 새벽을 다듬드라.

그대들의 눈빛, 손길로 아침이 오고

우리들은 살아갈 뿐,

 

우리가 이 땅에 나서 이 땅에 사는 것

누구누구 무엇무엇 때문이 아니구나.

 

비질 한번으로 쓸려나갈

온갖 가지가지 구호와

토착화되지 않는

이 땅의 민주주의도,

 

우리들의 어설픈 사랑도 증오도

한낱 검불이구나.

 

빗자루를 만들고 남은 검불이구나.

나는 헐은 토방에 서서

아버님 어머님 속으로 부를 뿐

 

말문이 열리지 않는구나.

목이 메이는구나.

 

 

 

  섬진강 17

 

                                       . 김용택

추석에 내려왔다

추수 끝내고 서울 가는 아우야

 

동구 단풍 물든 정자나무 아래

-차비나 혀라

-있어요 어머니

 

철 지난 옷 속에서

꼬깃꼬깃 몇 푼 쥐여주는

소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 손길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텅빈 들길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우야

 

서울길 삼등열차

동구 정자나무잎 바람에 날리는

쓸쓸한 고향 마을

 

어머니 모습 스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어머니 어머니 부를 아우야

 

찬 서리 내린 겨울 아침

손에 쩍쩍 달라붙는 철근을 일으키며

공사판 모닥불 가에 몸 돌리며 앉아 불을 쬐니

팔리지 않고 서 있던 앞산 붉은 감들이

 

눈에 선하다고

불길 속에 선하다고

 

고향 마을 떠나올 때

어여 가 어여 가 어머니 손길이랑

 

눈에 선하다고

 

강 건너 콩동이랑

들판 나락 가마니랑

누가 다 져날랐는지요 아버님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불효자식 올림이라고

 

너는 편지를 쓸 것이다

'◆ 관심과 의문......眞 > . 한 때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이 부끄러운가?  (0) 2013.11.23
운명과 풀빵의 닮은 점  (0) 2013.11.04
반성  (0) 2013.09.26
거울  (0) 2013.09.15
삶의 흔적  (0) 2013.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