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
■ 신뢰와 의심
. 신뢰에서 시작된 작은 만족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과 함께 생활하면서, 느끼며 깨닫는 것이 하나 또 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여 잘 먹고 잘 자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것도 중요 하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무엇 못지않게 잘 사는 방편임을 종종 느끼곤 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서로" 간에는 여러 가지 부류를 상정하여 볼 수 있다.
노인을 구심점으로 볼 때, 우선 가족을 들 수 있고, 그 가족 중에는 자식을 비롯한 혈육이 있는가 하면, 며느리, 사위처럼 성씨 다른 가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친인척이며 알며 지내는 몇몇 이웃들이 있게 된다.
건강한 사회라면, 가족이나 친인척 그리고 이웃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내 삶의 동행인들로서 반려자들이기도 하다. 그것은 건강한 사회,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건강한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혈육이라 할지라도 "나와 너"라는 사이가 상존하는 이해 관계자들이기도 하다.
사랑도, 마음도, 재산도 무엇이던 아낌없이 다 주고픈 마음이 있을 때, 정신적으로 왕성하고 건강한 시기에는 가족에 대한"너"와의 관계에는 신뢰만이 존재한다. 이 시기에는 받을 때 보다 무엇인가를 건네주면서 갖는 만족감이 오히려 더 큰 시기이기도 하다.
"너"라는 이해관계자이기는 하지만, 조건 없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뿐 아니라, 그 이웃에게도 같은 이치가 작동하게 된다. 믿음과 신뢰로서 "너"에게 주는 마음이나 물건 속에는 "나"가 잘 먹고 잘사는 것만큼이나 만족과 행복감을 안겨 준다.
양 볼을 벌씸벌씸 거리며 빨아대는 젖먹이를 보며 느끼는 만족감, 어린 것에게 형상이며 글자처럼 한 가지씩 조그만 지식을 심어 주며 경험하던 작은 기쁨,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 입히며 좋아라 느끼던 감정들은 모두가 줄 수 있어서 기뻤고, 주면서 기뻤던 감정들이다.
"너"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신뢰에 대한 의심이란 한 점도 없었던 순간들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비록 사소하고 작은 일들 이었지만, "너"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둔 "나"의 행복감들 이었다.
. 의심의 시작
당신은 스스로를 도둑이라고 느껴 본 적이 없는가?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생각을 느낀 순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신뢰와 믿음은 건강에서 시작된다고 한다면, "나"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사회 구성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눈에도 삶이 고달파 뵈시던 부모님 몰래 공부나 일은 게을리하고 딴짓 일삼던 어린 "나" 스스로가 부끄럽게 여기던 순간이 잦았었다. 급여는 매월 또박또박 받아 챙기면서, 근무시간에 노닥질 거리 찾아 눈 돌리던 회사생활 초년생 때, 그 때를 돌이켜 보아도 "나"는 월급 도둑질 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거야 하며,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친구 만나 먹고 마신 대금을 접대비처리 한 적이 없었다고 어떻게 자신하겠는가? 어찌, 큰 돈 빼먹은 것만 도둑이라고 할 것인가?
턱없이 큰 남의 재물을 탐한다거나, 아름다움에 홀려 여인을 보며 수시로 탐하던 엉큼한 생각들은 도둑 심보가 아니라고 어떻게 자신하겠는가? 그렇기에 "나" 스스로를 들여다 보면 "너"만 도둑이라고 삿대질할 자격이 없음을 이내 인식하게 된다.
물론, "너" 또한 크게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효도 타령하는 기성세대들 두고, 자기네들 좋아 낳았지 "나" 위해 낳았느냐고 푸념 하던 철없는 청소년 넋두리가 새삼스럽게 기억 난다. 종업원과 국민들 위한다는 아름다운 명분 일삼는 기업가나 정치인에게도 비슷한 이치를 적용하며 넘겨 짚을만하다. 일꾼 부려 기업이윤 극대화나 꾀하는 기업인이 있고, 조직과 국가를 내세우며 서민을 짜내던 어두운 역사도 많기만 하다.
일련의 이러한 사례들은 '나" 자신을 의심하고, 그에 대응하는 "너"를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 착각, 착시 현상일 수도 있다. 도둑이기 앞서 "나"는 충분히 선량했고, 도둑이기 앞서 "너"또한 기업과 조직과 국가를 위해 충분히 근심하고 노력하던 기업인이었고, 군주였고, 정치인이었음을 "나"도 알고 "너"도 안다.
의심의 시작은 도둑을 양산한다. 의심의 시작은"나도 너도" 도둑이 될 수 있다. 의심은 검은 장갑, 검은 마스크에 벙거지 모자 쓴 도둑, 칼 들고 총 든 강도의 도구들 보다 더 험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의심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신뢰와 믿음이 모자랄 때,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할 때, 그 시작이 있지 않을까? 결국, 몸과 마음이 쇠약하여 가는 늙음의 여정에서는 의심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 세상은 모두 도둑일까?
부모님의 정만 그 동안 쪽 빨아버린 "나"는 도둑일까?
회사에 기여한 바 적은 채, 급여만 똑 따 먹은 '나"는 도둑일까?
한 없는 믿음과 신뢰를 주었던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나"는 도둑일까?
누구 말처럼, 재미보다 애 놓은 "너"도,
이익만 챙기려 한 기업의"너"도
이용하고 부려만 먹은 국가의 "너'도 ……
"나도 너도"모두가 도둑일까?
. 차라리 아름다운 의심의 그림자
따라 다니는 그림자는 검고 음침하고 무서운 것만은 아니다. 언제나 한가지 색이지만 어찌 보느냐에 따라 나름의 멋은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여 보자. 움직이는 그림자, 그럴싸한 굴곡을 그리는 그림자, 단순하지만 안정을 주고, 때로는 받침이 되어 주기도 하는 늘어진 그림자는 아름다운 것이리라. 꼭 촛불 켜고 양손으로 그림자 지워 염소를 만들고 그럴싸한 형상을 만들어내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석양의 그림자 늘어지듯, 나이 들고 늙어지면 의심 늘어지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러면 나이 든 한 때의 지극하고 당연한 현상으로서 이해만 된다면, 삶의 동반자로서 힘들다거나, 어렵고, 밉다거나 야속하게 여겨지지 않을 터인데 ……
늙어감의 당연한 순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너"는 도둑이라고 고함치는 노인의 외마디 소리에 우선 기함해 버리는 '나" 스스로가 창피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나"는 얼마나 깊이 있게 고민해 보았던가? 그 분, 노인이 처한 현실의 번뇌들 ……
내일일지도 모를 미래의 어느 불안함에 관하여 ……
그 분의 가치관에 합당한 미래, 장례와 선영의 제사에 관하여 ……
나의 처신이 그 분에게 항상 믿음가게 했었을까?
"너"의 입장에서 "나"는 충분하게 의심 갈만 하지 않았을까?
서로 다른 가치관, 세대 차이를 어찌 할 수는 없지만, 의심의 당연함을 인정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 의심의 서슬 퍼런 "너"의 눈과 마음은 "나"를 도둑으로 몰기 충분하지 않았을까?
나이 들며 녹아 내리는 뇌 용량은 기억력을 감퇴 시키고, 감퇴된 기억력은 의심으로 감싸여 자기와 함께하는 삶의 동반자들을 세월과 함께 하나씩 차례로 도둑으로 몰아간다. 남에게로 시작해서, 가까운 가족, 그리고 아들까지 …… 결국은 자신 스스로에게까지 가는 것이 순리일까?
누구누구가 쌈지 돈 훔쳐갔다는 말에 기절할 듯하던 오래 전의 그 큰 놀랬던 마음은, 낡고 헌 옷가지 훔쳐갔다는 말에 미움 가기도 하더니만, 누군가 자기 이불 돌라갔다는 말에 마음만 아파 왔다. 생각하노라면 이제는 차라리 안타깝기만 하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는 것이 순서라면, 오래 산다는 것이 꼭 의미 있고 잘하는 것일까?
나이 든 왕회장님 늦도록 주식 지분 놓지 않으시며, 아들네들 의심에 찬 역정 흘리실 제, 그 재벌가 자손들은 얼마나 마음 편하지 않을는지 ……,
욕심부릴만한 아무런 거리낌 없을 것 같은 지금 나의 입장이 차라리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이란, 아주 작은 일을 두고 불편해 하는 것이리라. 의심의 그림자라고는 하지만, 얼마나 작고 소박한 것들인가? 누군가 돌라 간 것이 과연, 쌈지 돈과, 헌 옷가지, 그리고 헌 이불만 일까? 내가 그로부터 훔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월과, 사랑과, 인생 ……
의심의 시작이 야속하기 보다 차라리 부끄럽기도 하고, 삶의 허무함을 일깨워 주고, "나"의 앞날을 미리 경험하게 하는 듯하여 고마움을 가져 보기도 한다.
2013.4.9.
오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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