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
■ 나에게 남은 것들
"사실"은 실제로 발생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들을 말한다.
"진실"은 거짓이 없고 바르고 참됨을 말한다.
지금껏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여 인식한 것들은 모두 "사실"이다.
그러한 나의 경험들은 사물(事物). 사안(事案). 사고(思考)로 나뉜다.
즉, 실물과 함께했던 모든 일들과 생각들이 합쳐져서,
나에게는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지금,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일까?
경력과 경륜으로서 우선되는 나이, 육십 년
그 나이에 걸 맞는, 흰머리와 적당히 넉넉한 주름
사실과 진실을 구분 짓고 스스로에게 적당한 냄새로서 맡을 수 있는, 세상 보는 안목
정(情).부(富).생(生)으로 연계된 날 선 욕심들은 벗어내며, 허욕 허영 허망 탓으로 돌릴 줄 아는, 지혜
......
우선 생각나는 명목들이다.
몇 줌에 불과한 자질구레한 물건들과
글로 써 보면 몇 줄도 넘기기 어려울 것만 같은, 초라한 이력,
그리고 중고물건 재활용 가치만도 못하게 쇠퇴한, 체력여건 정도가 남은 모습이다.
그렇다고, 후세의 번창이니 가문의 영광 따위도 내세우지 못하니
……
누군가에게 비쳐진,
내가 처한 "사실"은 초라하다고 폄하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여 본다.
나의 삶에서 가치를 따지고자 할 때,
"진실"은 무엇일까?
거대하고, 번창하고, 화려함에 그 진실이 있을까?
지난 일요일 오후
무심코 바라본, 앞 베란다 구석의
잡동사니 물품들을 보며 그 "진실"의 해답을 얻어 보려 했다.
결산기의 기업회계 결산내용처럼,
나에 관한 BSPL이라도 작성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여기저기 쓰고, 자르고 남은 나무 토막들
수석이나 해 볼 량으로 남겨 둔, 가는 모래, 굵은 모래, 크고 작은 돌
나뒹구는 연장들, 드라이버, 펀치, 망치, 톱, 가위, 칼, 송곳 ……
쓸모 찾아 기다리는, 철사도막, 나사, 헌 병, 깡통 조각 ……
어디 그 뿐인가?
전기. 전자용품 뭉치며, 구두 뒷굽 굽갈이 용품 뭉치
페인트 칠 용구며, 헌 자전거 수리용품 ……
헌 옷과 헌 구두짝들만 넘쳐나는 것은 아닌 듯 하였다.
결국, 내 눈 앞에 보이는 것 들은 "사실"이고,
그들이 남에게는 모두 쓸모 없는 것이라는 것은 "진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나의 명목으로서 남은 것들일 것이다.
물품이나 육체와 정신, 자질구레한 생각들까지도
내가 남긴 결산 내용에 담을만한 것들일까?
그래서
항상 나보다는 더 크다고 여기던
기억에 남는 어느 회장님을 떠 올려가며 비교하여 본다.
얼마 전 타계하신 왕 회장님은, 전주 이씨 왕가 후손이셨다.
비록, 후궁으로 이어진 소생이라 그 가문에서 생색내지는 못하시는 듯 하였지만,
자수성가하여 기업을 일구어 국내에서 재계 서열에 들고,
서민으로서 올려다보는 그 자산규모도 방대하였다.
시내 중심의 고층사옥, 3백만평, 7십만평, 2십만평 하며 도처에 산재하던
부동산의 규모는 나 자신의 모습을 더 초라하게 하곤 했다.
그러나, 이는 그 분에 관한 과거의 "사실"일 뿐,
현재에 속하는 "사실"은,
지금은 그 부지의 어느 한 모퉁이에 유택을 자리하신 것이 전부이다.
그 분 생존 당시에 챙기고 아끼던 모든 것들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부와 명예, 건강과 가족, 기업과 국가 ……
한 때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던 대통령이나, 역사 속의 제왕들도
당대의 치적이나 명성이 이어지는 이름에 차이는 있으나
지나간 과거의 사실일 뿐,
현재, 지금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그 어느 누구라도
어느 것 하나 다름이 없음은 "사실"이 아닐까?
베란다 구석에 쳐 박힌 잡동사니를 바라보고 있던 순간의 "나",
나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사실"과 "진실"의 의미를 새삼스레 더듬어 본다.
2013.03.06.
오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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