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쪽배

오갑록 2012. 7. 7. 18:52

아름다움 ......

■ 쪽배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살아 온지 얼마지 않은 듯 한데, 회갑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가족들 앞에 이렇게 앉게 되니,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합니다. 살아오며 만족했던 만큼이나 욕심껏 못다한 아쉬움 들 또한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처럼 모인 우리 가족 모임에서 나 자신과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나의 인생항로에서 내가 타고 왔던 조각배는 과연 어떠했는지를 되새겨 봅니다. 동화 속에서 보았음직한 조각배 그림들을 먼저 떠 올려 봅니다. 가랑잎 쪽배나, 종이배에 올라 탄 개미 떼의 모습이 우선 그려집니다. 우리네들 사람의 삶의 모습도 어찌 보면 그와 흡사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인생살이를 세월이며 세상을 타고 흐르는 작은 조각배 위의 작은 생명체에 비유하여 봅니다. 과거가 아닌 오늘,  미래가 아닌 현재를 타고 흐르며, 지금 우리가 소속된 한국이라는  이 사회를 살아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기본단위는 나를 포함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가족은 다시 혈연과 지연으로 연계되고, 친인척이나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더 크게는 종족으로 구분되는 국가나 민족 단위로까지 확대 되곤 합니다. 나를 싣고 있는 조각배를 띄우고 있는 물줄기와도 같은 것이 사회입니다.

 

오씨 성을 가진 부모님의 자식으로서, 다섯 남매의 장남이라는 가족 단위에 처음 올라 탄 것입니다. 다시 나 자신도 결혼하여 새로운 가정의 가장으로서 입지가 변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형제며 자녀 또한 각각의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탄 쪽배의 구성원은 살아 온 지금까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 변화되어 온 것입니다. 

 

이처럼, 가족은 공동운명체인 듯 하면서도 한정된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조직으로 분화되고 거듭나기를 반복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 혈족, 친족, 동족이라고 하는 씨족으로 갈라지고, 생활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교류가 시작됩니다. 고향, 학교, 직장, 종교, 국가 등의 연고를 구성하는 큰 틀의 사회가 구성됩니다.

 

오늘 나 자신의 60년 회갑을 기념하는 자리를 찾으며 다시금 생각하여 봅니다.

 

나는 선친들이 겪은 어려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기억들은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눈으로 보고 들으며 체험한 것들 이겠지요? 부모님이 이끌던 뱃전의, 그 때, 그 시절 모습은 사회 전체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긴 했습니다. 전쟁과 가난으로 얼룩진 사회의 그늘 아래, 남들보다도 더 힘든 여건 속에서 생활했던 그 분들의 어려움을 쉽게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 앞의 세대들이 비바람 불고 파도가 거센 험난한 물길이었다면, 내가 성장하고 생활했던 동안은 따스하고 잔잔한 그림 같이 좋았던 아름다운 물길이었을 것입니다.

 

그 선친들의 어려웠던 생활여건에 비한다면, 나 자신은 여러 가지가 모두 풍요로운 여건에서 좋은 시간들을 즐겼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난 60여년 사이는 어려웠던 국내사회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점차 안정되고, 경제도 성장하여 왔던 시기를 맞이한 행운도 있었겠지만,  못 배우고, 못나고, 주먹에 쥔 것 한푼 없었다고 자처하시며, 그 어려움을 이기고 자식들 키우기에 헌신했던 어머님과 아버님의 고마움이 컸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성장했던 우리 다섯 남매 형제들이 어찌 보면 풍족하지 못한 가정환경이나, 스스로의 부족한 구석들을 각자가 잘  이겨내고, 누구 못지않게 진실되고 성실하였음에 감사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별로 잘난 곳 없는 나를 믿고 잘 따라 준 부인에게도 뜻 있는 이 자리에서 새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고, 선하고 착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밝은 생활을 하는 딸들에게도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출가해서 가정을 꾸린 맏딸네 집, 제우네도 열심으로 생활하는 모습이 항상 대견스럽고 고맙게 여깁니다. 막내를 오씨네 집으로 시집 보내고서, 예나 지금이나 걱정하시고 뒷바라지 해 주신 홍성 가족들께도 고마움과 함께, 나 자신의 부족함에 한편으로는 부끄럽게 여기곤 합니다.

 

지난 60년간 내가 생활했던 세월이 짧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크고 화려하게 성공한 이들의 눈으로는 내가 속한 가정과 사회가 비록 작고, 보잘것없이 초라한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몸 담고 타고 온 가정, 나의 작은 조각배를 항상 만족했고 행복했다고 여깁니다. 그것은 지난날과 먼 내일을 크게 보려고 했고, 큰 세상에 견주어 보려고 하는 어리석은 식견의 덕분이었다고 여기고 싶습니다.

 

우주나이 137억년, 우리에게 보이는 그 우주의 크기는 빛의 속도로 460억년을 가야 하는 크기며,

그 가운데는 천억개 은하와, 각각의 은하에는 천억개 별이 있다고 현대과학은 전하고 있습니다.

지구 나이도 46억년, 인류조상 200만년 호모에릭투스, 현대인 20만년 호모사피언스,  우리나라의 먼 조상은 4만년전 충주의 석회동굴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내가 동복 오씨 29세 손이니, 그 시조는 겨우 600여년 전쯤의 조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긴 세월에 비하면 내가 살았다고 하는 60년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짧은 것인지 새삼스럽고, 서울이나 한국이라는 지역 또한 먼 세상의 크기에 비해 아주 미미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만듭니다.

 

내가 탄 "가족"이라는 이름의 이 쪽배도, 가랑잎 종이배 위의 개미새끼만도 훨씬 못한 존재에 불과 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때문에, 나의 조상이나 고향이 초라하다거나, 나의 가족이며 나의 행색이 초라하다거나, 나의 사회적 지위가 초라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큰 군함이나 호화 유람선에 승선한 부류나, 내가 탔던 쪽배의 자랑거리 없는 면면들이나 무슨 차이가 있으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아무리 돈 많고 훌륭한 유명인사라고 할지라도, 지금 이 시대를 같이 하고, 사회의 흐름을 같이 타고, 같이 한정된 기간을 타고 흐르는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같은 물을 타고 같이 짧은 시간을 흐르는 같은 배의 운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벗어나 영원을 바라고 영원을 향하는 종교적 활동은 생각이 다른 것인지는 모릅니다.

 

좋은 승용차나 버스 기차를 싫도록 타면서도, 보잘것없는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썰매며, 수레타기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즐비한 고기며 생선 먹거리를 마다하고 뒷골목 꽁보리밥을 찾아 다니는 부유한 식도락가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만족한다는 것, 삶의 질을 느끼는 것은 각자의 마음에서 짓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내가 탄 허름한 쪽배에 몸을 담고 살아 온 60년간이 복된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만이 그리 여길 뿐 입니다. 같이 타고 왔던 승객들, 나의 가족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리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함께한 가족이라는 이름의 인연의 얼굴들을 만족해 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행복했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누구보다 소중하고 자랑스런, 나의 삶에서 같은 배를 승선했던 얼굴들입니다. 나를 낳고 길러 주셔서 고맙고, 부실한 남편을 잘 따라 주셔서 고맙고, 형제, 딸, 사위, 손자손녀 라는 이름으로 크고 작은 기쁨을 함께 해줘서 고마웠습니다.

 

19세기 영국 철학자, 버트랜드 러셀이 말했던 행복과 불행의 요소들을 생각하여 봅니다.

 

러셀은 행복의 요소로 건강, 열정, 애정, 일, 흥미, 노력, 쉬운 체념 등을 꼽았습니다. 부나 명예, 잘난 것, 오래 사는 것 따위를을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나 명예를 쫓다 보면 닥치곤 하는 경쟁, 권태, 피로, 질투, 피해망상, 죄의식, 염세적 인생관 따위를 불행의 요소로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으며, 자신이 스스로 마음에서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유행에 뒤지고, 값 없고 헤지고 탈색되긴 했더라도, 내가 편하고 좋아서 신고 입던 헌 옷 헌 구두짝에 애정이 가는 이유와도 같습니다. 내 가족이 잘 나고 훌륭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나는 내가 탄 배, 가족과 고향, 내가 속했던 사회 모두를 사랑했고, 여기에 함께 탔던 여러분을 좋아하고 사랑했습니다. 부모님, 형제들, 처자식, 사위 그리고 손자손녀, 홍성의 가족,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스스로를 사랑했습니다.

 

어려운 자리를 찾아주신 사돈 어른과 조카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모처럼 맞은 뜻 깊은 이 자리를 빌어 그 사이 못다했던 감사의 뜻을 전해드립니다. 부끄럽게만 여기고 아껴만 두었던 사랑의 뜻을 전합니다.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했던 지난 60년이 나로서는 더 없이 행복했었습니다.

 

아울러 여러분 께도 행복을 기원 드립니다. 러셀의 조언처럼, 열정, 애정, 일, 흥미를 가지고 노력하며 열심으로 사십시요. 그러나 자기 분수에 넘치는 부나 명예를 찾다가 경쟁, 권태, 피로, 질투 따위를 느낄 때는 아낌없이 체념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세요. 모두들 행복 하세요.

 

감사합니다.

 

2012. 6. 23. (토)

오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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