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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정

오갑록 2012. 8. 5. 15:34

열정 ......

■  뜨거운 열정

           인생의 라스트 신(The last scene)        

 

 

□   인생의 라스트 신

 

무더운 한 여름이다.

8월의 첫 주 시가지는 한산하기만 하다. 하지만 여름휴가를 떠나는 차량의 행렬로 꼬리를 잇는 88올림픽대로 강원도 방향 상행선의 열기는 더하다. 한낮 기온 예보가 35도를 넘는 날이 수일째 지속되고, 차량의 외부온도 지침은 39도를 넘나들고 있다.

 

한 겨울 추운 날과 봄날의 따스함이 언제였나 싶다. 지금의 느낌은 무덥다, 덥다, 찐다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온통 지배하고 있다. 힘들고 지겹고 어렵게 여겨진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이 더위는 도대체 어디가 불편한 것인가? 낼숨 들숨이 갑갑하고 살갗의 불편함을 의미하는 것인가? 육체가 힘든다고 하는 말은 이러한 부류의 크고 작은 고통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일까?

 

북극의 극한 추위, 적도지역 열사의 극한 더위 따위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극한의 상황들일 수도 있다. 날씨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의 극한상황은 대체로 그 범주 내에서 형성된다. 생체의 좋고 싫음이 갈리는 극한의 상황이며, 어디에서 적응하며 살아 왔는지에 따라 그 취향이 갈리기도 한다. 그리고 현실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더울 때면 추위가, 추울 때면 더위가 그려지기도 한다.

 

물질계의 다양하고 큰 범주를 떠올린다면 얼마나 작은 곳(범주)에서 우리가 호들갑 떨고 있는 지를 알게 한다. 쇳덩이 바윗덩이가 녹아 들며 붉게 빛나는 것이 별들의 세계라는 것, 그것이 밤하늘을 반짝이는 우주라는 것을 잊으며 살아 간다. 불과 몇 십 도에 호들갑 떠는 우리의 세상에서 수 천, 수 만 도를 넘나드는 다른 세상을 염두에 둘 수가 없는 것이 당연 하고, 급여생활 수 십년에 어렵사리 마련한 수십 평짜리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대견해 하는 우리의 실정에서, 빛의 속도로 수십 억년을 달려야 하는 먼 거리의 그만큼이나 큰 세계가 있음을 염두에 둘 리가 없는 것이 우리 일상의 삶이다.

 

작은 온도 차이에 좋아하기도 하고, 작은 일들에 목숨 내 건 다툼을 마다하지 않기도 하는 것이 우리 일상의 삶이다. 때로는 무지하고 가련한 모습으로 자신이 비춰지는 까닭이다.

 

오늘 자 매일경제(2012.8.3.)를 들추다가,  “인생의 라스트 신”이라는 제목의 “매경춘추” 칼럼에 눈길이 멎는다. “많은 영화감독은 라스트 신을 생각하며 영화를 만든다”라며, 글을 시작한 필자는 뉴욕에서 자기의 레스토랑을 갖고픈 바람을 자기 인생의 라스트 신으로서 한 때는 주저 없이 내어 걸었지만, 그 희망을 이룬 후 세월이 지나 생각하니, 단지 새로운 시작이었을 뿐이었다는 경험을 피력하고 있다.

 

신성일과 윤정희의 기차역 이별장면, “에이드리안!”을 외치며 포옹하던 록키(Rocky)에서처럼, 영화는 라스트 신은 있지만 다음의 스토리는 없다고 하며,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서 라스트 신이란 없으며 그것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라스트 신이 “영화에서는 낭만이겠지만, 현실에서는 실존”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 해의 여름은 더웠었지 ……”

인생의 라스트 신의 제목으로 올려 놓고 생각 해 볼만 하지 않을까?

 

뜨겁게 달구던 화끈한 날씨나, 런던 올림픽의 경쟁적인 방송열기 만큼이나 중년을 넘기고 이제 노년기로 향하는 나의 마음도 달구어져 있음을 새삼스레 느껴 본다. 인생을 살아오며 한 해씩 쌓아 온 연륜이 새삼스레 어떤 뜨거움으로 다가옴은 무슨 연유일까?

 

도대체 무엇이 뜨거움으로 느껴오는 것일까? 러브 스토리 속의 달궈진 격정어린 열정도 아니고, 사업의 성공을 향한 열망도 아니다. 전투나 시합과 같은 승리를 향한 투쟁도 아니며, 학문이니 탐구, 근력 쓰는 노동의 담금질도 아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애국애족을 앞세운 피 끓는 염원이나, 영원과 영혼을 향한 종교적 정진도 아니다.

 

비록 나의 생활이 뜨뜻미지근 하고 싱겁기 짝이 없어 내세울 바는 없었던 일상이었지만, 무엇이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삶의 열정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흩어지곤 한다. 여름 휴가를 맞아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니, 한 여름더위와 함께 찾아 든 예기치 못했던 큰 얼굴의 전혀 새로운 모습이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그것은 피 끓는 열정으로 살아 온 삶의 애환에서 경험된 아픈 기억은 아니다. 자랑스럽고 뿌듯한 보람의 산물들도 아니다. 지금, 뜨거움으로 나에게 다가 온 큰 얼굴의 본질은 대체 무엇일까? 그래서 그 얼굴에 대응 시킬만한 질문들을 나열하여 본다.

.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

. 삶의 가치는 그 기준을 어디에 해야 바른 것일까?

  우리 일상에서의 최선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막연한 답을 스스로 깨우치는 과정에서,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치미는 불꽃인지도 모르겠다. 그 근원은 사랑, 명예나 영광, 만족이나 욕망이라는 어감과는 괴리가 있다. 수치니 부끄러움, 불만이니 괴로움, 아픔이나 고통에서 시작되는 흥분은 물론 아니다.

 

현대사회가 복잡하고 급박하여 어지러운 세상이라고는 하나, 어느 모로 보나 부족하고 여린 내가 지낸 삶이 그 속을 무난하게 잘 헤쳐 나와 대견하다는 자부심이며, 약한 마음을 다독이려는 선한 마음의 소리가 항상 머물고 있음을 알기에 그 아름다움에 흐뭇해 하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때때로 따뜻함을 넘어 뜨거움으로 달아 오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자기분석을 하여 본다.

 

그와 함께 남에 대한 배려나 나눔과 도움에 인색했던 스스로의 모습에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악한 생각, 악한 짓, 자신의 나쁜 모습을 쉽사리 떨쳐 버리려고 하며, 뉘우치고 반성하는데 게으른 데서 오는 그릇된 감정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괴감도 올려 본다.

 

35도를 넘는 혹염이 지속되는 중복더위라고는 하지만, 단지 몇도 더 높다는 진정한 의미가 열역학적 에너지 개념만을 상정하여 본다면 좁쌀 아저씨의 속 좁은 내 마음 씀씀이만도 훨씬 못하리라는 생각을 하여 본다. 나에게는 열정으로 다가오는 이 불덩이도 결국은 멋적은 일상의 자투리에 불과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2012. 8. 5.(일)

   오갑록

 

 

뜨겁다거나 덥다고 하는 것은 열(熱)에서 시작된다. 일반적인 물질계에서의 물리적 현상의 열을 말하지만, 우리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열이나,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열 또한 그 중 극히 부분적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무엇 못지않게 우선한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열은 더위도 그렇고, 추위도 그러하며, 아픔이나 괴로움, 감격하여도 그러하다. 그러한 열을 어떻게 느끼며 받아 들일 것인지, 이를 어떻게 다스리며 살아가야 할지는 우리 인간의 덕목과도 밀접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성공과 영광을 쫓아 육체를 단련해 가며 열을 다스린다. 나름대로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고 열정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수행자라면 진리를 향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자신의 열정을 다하고 있음을 문헌 등을 통해서 엿보곤 한다. 영광을 향하던 진리를 향하던 간에, 건강한 사회인 이라면 누구나 몸과 마음을 통해 나름대로의 뜨거운 열정을 쏟아가며 살아간다고 할 것이다.

 

 

□ 진리를 찾는 수행자

 

육신을 자제하는 것도 착한 일이고

말을 자제하는 것도 착한 일이다.

생각을 자제하는 것도 착한 일이고

모든 것을 다 자제하는 것 또한 착한 일이다.

모든 것을 자제하는 수행자는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리라.

 

손을 삼가고 발을 삼가고

말을 지극히 삼가고

안으로 기뻐하는 마음이 안정되고

홀로 넉넉할 줄 아는 사람을 수행자라 부르니라.

 

혀를 조심하고, 신중하게 말하고

잘난 체 하지 않고,

인생의 목적과 진리를 제대로 밝히는

수행자의 설법은 감미롭다.

(법구경, 25장 수행자 편 중에서)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그 주인을 따르듯이

 

선한 일은 서둘러 행하고

악한 일에는 마음을 멀리하라

선한 일을 하는 데 게으르면

그의 마음은 벌써 악을 즐기고 있다

 

내가 악행을 하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내가 선행을 하면 스스로 깨끗해진다

그러니 깨끗하고 더러움은 내게 달린 것

아무도 나를 깨끗하게 해줄 수 없다

 

육체의 욕망과 같은 불길은 없고

도박에서 졌다 할지라도

증오와 같은 불운은 없다

한때의 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몸과 같은 괴로움은 없고

마음의 고요보다 더한 평화는 없다

 

강한 욕망보다 위험한 불이 없고

증오만한 죄악은 없네

육체만한 괴로움이 없고

평화(열반)보다 높은 행복은 없네

 

건강은 가장 큰 이익이고

만족은 가장 큰 재산이다

믿고 의지함은 가장 귀한 친구

대자유(열반)는 최고의 평화이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성냄을 이기라

착한 일로 악을 이기라

베푸는 일로써 인색함을 이기라

진실로써 거짓을 이기라

 

진실을 말하라 성내지 말라

가진 것이 적더라도

누가 와서 원하거든 선뜻 내어주라

이 세 가지 덕으로 그대는 신들 곁으로 간다

(법구경(법정), 중에서)

 

 

□   성철 스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말은 8세기 중엽 당(唐)나라 청원(靑原) 선사도 사용했던 말로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나오는 선화(禪話)이다. 이를 인용하여 보면,

 

내가 30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

그런데 후에 훌륭한 스승을 만나 깨침에 들고 보니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이제 정말 깨침을 이루고 보니

전과 같이 산은 그대로 산이었고 물은 그대로 물이었다.

; 산시산 수시수(山是山水是水)

 

1981년 1월 20일, 조계사 대웅전에서는 조계종 제7대 종정 추대식이 베풀어졌다. 그런데 막상 종정으로 추대된 성철(性徹) 스님은 참석하지 않은 채 그 시간 가야산 해인사 경내의 조그만 암자에 머물면서, 다음과 같은 법어만을 보내와 대중에 낭독하게 한 것이다.

 

圓覺이 普照하니 寂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萬物은 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는 眞理가 따로 없으니

아아 時會大衆은 알겠느냐 …

山은 山이요 물은 물이로다

 

우리 대중의 기억에 남는 성철 스님의 라스트 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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