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열정(熱情)의 진가(眞價)

오갑록 2012. 8. 15. 11:37

영광 ......

■  열정(熱情)의 진가(眞價)

 

 

런던 2012년 올림픽의 열기가 아직 생생하다.

 

이 기간 중에도 세계신기록, 올림픽신기록은 풍성했다. 자마이카 우사인 볼트의 100m 단거리 기록은 9.63초 (OR, 9.58(WR)), 남자 장대높이뛰기는 프랑스의 르노 라빌레니가 5.97m(OR), 여자 마라톤은 에디오피아의 티키 겔라나 2:23:07초(OR), 남자 수영 100m 평영은 남아프리카의 반더 버그가 58.83초(OR), 남자 수영 1500m에서는 중국의 양순이 14:31.02초(WR), 남자 양궁 70m에서는 우리나라 임동현이 699점(WR), ……. 축구를 비롯한 각종 구기 경기장이며, 레슬링, 복싱, 유도 등의 격투기나 체조 등의 경기장도 기록경기 못지않게 선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시합을 하고 관중과 시청자는 열광적인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우승한 국가의 선수나 국민들은 영광으로 여기고 서로의 기쁨을 나누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과 영광의 단편을 보게 되는 듯 하다. 눈탱이 밤탱이 되듯 부어 올랐어도, 팔다리의 골절에도 우승자는 웃고 패자는 울고는 한다. 체조선수 양학선은 도마에서 3바퀴 도는 1080도 회전으로 우리나라 체조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안겼다.

 

단지, 백분의 일초 차이로 메달을 놓치는 기록경기의 선수, 공 한 골 차이로 메달을 놓친 선수, 곤봉 한 번 놓치는 실수로 메달권을 벗어난 리듬체조 선수, 발차기 한 방에, 업어치기 한 번에, 바람결에 날려 엇나간 화살 한 발에 희비가 갈리고 개인적으로는 생애의 씻기지 않는 한으로까지 남기도 한다.

 

타고난 우수한 체격과 체력, 재능의 선수들이겠지만, 각 자는 누구나 수년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하며 기량을 연마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왜 그렇게 들 열심으로 해야만 할까? 삶의 전부인양 있는 힘을 다 하여 다툼에 임한다.

 

이러한 의문을 품고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TV 화면 속 시합 화면들은 삶의 어리석은 장면, 우리들의 우상(偶像)을 보는 듯 하기도 하며, 열정(熱情)을 다 하는 우리들 삶의 진가(眞價)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생각토록 한다.

 

손연재 선수는 18세의 리듬체조 최연소 나이로 결승까지 진출했다. 후프, 공, 곤봉, 리본 등의 수구(手具)를 이용하여 사방 12m의 경기장에서 반주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신체 율동을 표현하는 경기다. 그 중 리본 경기를 시청하며 문득 떠 오른 생각이다. 발꿈치를 한껏 치켜 올리고 나긋나긋한 몸매에서 펼쳐진 가녀린 팔을 돌려가며, 일정한 파동을 이루며 흐르는 리듬체조 리본의 궤적들을 보며,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며 무엇에 그 가치가 있을까?를 생각하여 본다. 격투기의 날렵하게 치고 빠지는 모습들에서 왜 우리는 이런 모습들을 보며 흥분해야만 하는지를 의문으로 점 찍어 보기도 한다. 0.01초 단축을 위해서 밤낮없이 체력을 단련해야만 했을 그들의 우람한 체격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노라고 누구나, 언제나, 단정할 수 있을지를 의심하여 본다.

 

6개 대륙, 204개 국가가 참석한 2012년 30회 런던 올림픽을 보면서 현재가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인가를 실감나게 한다.  나라별로는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어려움들이 있겠으나, 20세기 초 세계대전의 총체적인 어두운 그림자는 그려볼 수 없다. 총칼을 앞세운 전쟁을 벗어나, 평화의 장으로서 상징적인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싸우고 다툰다는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무엇을 위한 다툼일까? 전쟁이건, 운동 시합이건 간에 명분을 앞세운 허상을 위하여 끝없이 질주하는 우리들 삶의 본능이려니 하는 생각도 든다. 명분을 높이 들고 발꿈치를 치켜 올려 가며 있는 힘을 다해 닿아 보려고 버둥대는 모습일 것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더 오래, 더 많이 ……”를 외치며 살아 가는, 우리들 삶의 한결 같이 여전한 구호들인 셈이다. 삶에의 영원함이니 무궁함은 잊혀지고, 진실이니 진리 따위는 감춰진 채, 허구를 향한 목표달성을 위하여 열정만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성취 성공을 향한 영광의 그늘이란 어디 운동경기에서 만이 그러할까?

 

한 모금이라도 더 빨아서 몸무게 불리려는 갓난애 때의 본능에서 시작하여, 한 등수라도 더 석차를 올려보려고 했던 중등학교 학생시절도 있다. 진학과 취업, 승진이며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때로는 연구.개발,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 영광의 목표, 깃발을 올리곤 하는 것이 우리들 일상의 모습들이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영토를 확장하려하던 시대적 참상도 힘을 쥔 자들이 잘 못 설정한 열정의 결과물일 수 있다.

 

그 영광의 목표는 무엇일까?

 

리본의 궤적처럼, 한 골의 의미처럼, 뒤집기나, 0.01초의 의미처럼 그 가치를 따지기가 애매하곤 하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더 오래, 더 많이 ……” 오르고, 달려가고, 승진하고, 살고, 벌어도, 결국은 영광을 매달려고 하던 리본경기의 리본 궤적처럼 “순간을 흘러가는 허상들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삶의 과정을 열정적으로 장식하여, 건강과 애정을 기르고, 열심으로 일하여 우리의 의식주를 풍족하게 하여, 삶의 본능을 충실하게 한다는데 의미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한 열정의 과정을 통해서만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진리나, 삶의 본질과는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닐까? 진실된 올바른 삶의 가치기준이 정해진 바는 없겠지만 한번쯤 궁금해 볼만 하지 않은가?

 

물론, 이러한 열정 가운데는 종교적인 믿음도 아주 중요할 것이다.

할렐루야를 되뇌며 찬송과 기도로 주님의 영광에 열광하는 기독교의 일부 광신도, 삭발에 도포 걸치고 목탁 치며 염불하는 스님의 모습, 복장이며 행태, 그들의 고유 의식으로부터 때로는 생소하다거나 거부감까지도 느끼게 된다.

 

이교도의 눈에 비친 특정 종교인의 행사는 리본의 궤적만큼 무의미할 지 몰라도, 당사자들로서는 열정적 믿음의 과정은 운동경기나, 사회적 성공을 향한 열정 못지않게 클 것이리라고 여겨진다. 도량에 전념하며 기도나 참선에 열심인 그들의 외모 모습 자체만으로도 영원을 향한 현존의 가치며, 진리를 향한 현존의 가치가 어디에 있음인지를 먹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한 줄기 햇살처럼 스치게 된다. 자신의 잘못과 죄 있음을 뉘우치고 용서 받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비는 그들의 용기와, 믿음에 대한 열정을 나는 존경한다.

 

믿음에 대한 열정만으로도 그 과정은 우리 삶을 풍만하게 할 것이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성공을 향한 열정이, 사랑을 향한 열정이, 뭇 목표 달성을 향한 열정이, 모두 그러하듯 말이다.

 

러셀이 제시했던 행복의 요소 중에도, 우리 삶에서 열정이 차지하는 몫이 크다는 것을 알게 한다.

     . 건강, 열의, 서로에 대한 애정, 일, 균형감을 갖게 하는 비개인적 흥미, 생활을 위한 노력, 그리고 결과

       를 받아들이는 쉬운 체념   (Health, Zest, Affection, Work, Impersonal interest, Effort, Resignation)

                                                                                                   (Bertrand Russell : 1872~1970)

 

무엇을 위한 열정인지, 그 열정의 결과가 어떠한 지 보다는 열정의 시간을 보내는 과정 자체가 행복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된다. 믿음, 승리, 성공, 부, 명예, 건강, 사랑 …… 그것이 무엇이던 목표를 향한 열정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리본 궤적의 본질이 아름답기에 우리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아름답다고 설정한 목표를 향하여 그 열정을 다한 선수들을 보며 행복해 한다고도 생각하여 본다. 때와 장소가 현재와 이 곳에서, 우리사회가 정한 목표를 향한 열정인 셈이다. 과거나 미래, 별나라의 관념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조시대라면 리본체조 선수의 복장이나 행태는 "미친x"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K팝에 열중하는 중등학교 교실에서 춘향가 판소리를 틀어 댄다면 좋아하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미지의 세계, 개나 소까지도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요소라고 여기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믿음, 승리, 성공, 부, 명예, 건강, 사랑"도 "리본 궤적"의 본질과  다를 바 없을 지도 모른다. 열정(熱情)의 진가(眞價)가 과연 무엇인지를 곰곰 생각하여 본다면 말이다.

 

 

   2012.8.15.(수)

   오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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