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
■ 님의 침묵
충남 홍성이 자랑 하는 "만해 한용운"의 시집 중에서 몇 편을 다시 훑어 본다.
글 가운데, 그의 님에 대한 사랑과 영원, 믿음이 흠뻑 묻어 난다.
* 만해 한용운 (卍海 韓龍雲, 1879 ~1944)
충청남도 홍성(洪城) 출생.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감. 1905년 인제 백담사(百潭寺)에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됨. 1918년 월간지 “유심(惟心)”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음.
□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 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잎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 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 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人權)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將軍)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激憤)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化)하는 찰나(刹那)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 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까지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비밀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것읍니까
나는 당신에게 대하야 비밀을 지키랴고 하얐읍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얐읍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으로 들어갔읍니다
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으로 들어갔읍니다
나의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거쳐서 당신의 촉각으로 들어갔읍니다
그 밖의 비밀은 한 쪼각 붉은 마음이 되야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읍니다
그러고 마즈막 비밀은 하나 있읍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 없는 매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읍니다
□ 이별은 미의 창조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임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따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 이별
아아 사람은 약한 것이다. 여린 것이다. 간사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진정 사랑의 이별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으로 사랑을 바꾸는 임과 임에게야 무슨 이별이 있으랴
이별의 눈물을 물거품의 꽃이요 도금한 금방울이다.
칼로 벤 이별의 키스가 어디 있느냐
생명의 꽃으로 빚은 이별의 두견주가 어디에 있느냐
이별의 눈물은 저주의 마니주요 거짓 수정이다.
사랑의 이별은 이별의 반면에 반드시 이별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있는 것이다.
혹은 직접의 사랑은 아닐 지라도 간접의 사랑이라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별하는 애인보다 지기를 더 사랑하는 것이다.
만일 애인을 자기의 생명보다 더 사랑한다면 무궁을 회전하는
시간의 수레바퀴에 이끼가 끼도록 사랑의 이별은 없는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참 보다도 참인 임의 사랑엔 죽음 보다도
이별이 훨씬 위대하다.
죽음이 한 방울의 찬 이슬이라면
이별은 일천 줄기의 꽃이다.
죽음이 밝은 별이라면 이별은 거룩한 태양이다.
생명보다 사랑하는 애인을 사랑하기 위하여는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위하여는 괴롭게 사는 것이 죽음보다도 더 큰 희생이다.
이별은 사랑을 위하여 죽지 못하는 가장 큰 고통이요 보은이다.
애인은 이별보다. 애인을 더 슬퍼하는 까닭이다.
사랑은 붉은 촛불이나 푸른 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먼 마음을 서로 비치는 무형에도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애인을 죽음에서 잊지 못하고
이별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애인을 위하여는 이별의 원한을 죽음의
유쾌로 갚지 못하고 슬픔의 고통으로 참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차마 죽지 못하고 차마 이별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곧이 없다.
진정한 사랑은 애인의 포옹만 사랑할 뿐 아니라
애인의 이별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때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간단이 없어서 이별은
애인의 육이요 사랑은 무궁이다
아아 진정한 애인을 사랑 함에는 죽음은 칼을 주는 것이요
이별은 꽃을 주는 것이다.
아아 이별의 눈물은 진이요, 선이요, 미다.
아아 이별의 눈물은 석가요, 모세요, 잔다르크다.
□ 어느 것이 참이냐
엷은 사(紗)의 장막이 적은 바람에 휘둘려서 처녀의 꿈을 휩싸듯이,
자취도 없는 당신의 사랑은 나의 청춘을 휘감습니다.
발딱거리는 어린 피는 고요하고 맑은 천국의 음악에 춤을 추고
헐떡이는 적은 영(靈)은 소리없이 떨어지는 천화(天花)의 그늘에 잠이 듭니다.
가는 봄비가 드린 버들에 둘려서 푸른 연기가 되듯이,
끝도 없는 당신의 정(情)실이 나의 잠을 얽습니다.
바람을 따라가려는 짧은 꿈은 이불 안에서 몸부림치고,
강 건너 사람을 부르는 바쁜 잠꼬대는 목 안에서 그네를 뜁니다.
비낀 달빛이 이슬에 젖은 꽃 수풀을 싸라기처럼 부시듯이 당신의 떠난 한(恨)은
드는 칼이 되어서, 나의 애를 도막도막 끊어놓았습니다.
문밖의 시냇물은 물결을 보태려고, 나의 눈물을 받으면서 흐르지 않습니다.
봄 동산의 미친 바람은 꽃 떨어트리는 힘을 더하려고,
나의 한숨을 기다리고 섰습니다.
□ 추야몽 (秋夜夢)
가을밤 빗소리에 놀라 깨니 꿈이로다
오셨던 님 간 곳 없고 등잔불만 흐리구나
그 꿈을 또 꾸라 한들 잠 못 이루어 하노라
야속타 그 빗소리 공연히 꿈을 깨워
님의 손길 어디 가고 이불 귀만 잡았는가
베개 위에 눈물흔적 씻어 무삼하리오
꿈이어든 깨지말자 백번이나 별렀건만
꿈깨자 님보내니 허망할손 맹세로다
이 후는...
꿈은 깰지라도 잡은 손은 안놓으리
님의 발자취에 놀라 깨어 내다보니
달 그림자 기운 뜰에 오동잎이 떨어졌다
바람아 어디 가 못 불어 님 없는 집에 부느냐
□ 사랑
봄 물 보다 깊으리라.
가을 산 보다 높으리라.
달 보다 빛나리라.
돌 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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