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
■ 우스운
□ 한번쯤, 우습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나요?
참되고 착실한 사람이나 태도를 두고 “진지하다”고 한다. 그 반대로 진지하지 못하고 장난기나 농기가 있는 행동을 “농판스럽다”고 하는데, 이는 뉴앙스가 좀 다른 듯 하지만 “우습다”와 닮은 데가 있다. 싱겁거나 실없는 상태를 우리는 “우습다”고 한다. 우스운 것을 인터넷에서는 “ㅇㅅㅇ”라고도 표기된다고 한다.
꼬집어 가며 눈 여겨 보노라면 우스운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무심코 지나치곤 하는 것들이 적지않다. 일상에서의 아주 흔한 일들이기도 하다. 우리의 생활 양식이나 사고방식을 무심코 정당화 한 결과 들 인지도 모른다. 언어나 관습에 따른 우상(偶像)일 수도 있고, 사물이며 사안을 바라보는 식견이 부족한 데서 기인하는 우상일 수도 있다. 딱히 편견이나 착각은 아니라 하더라도, 개개인이나 조직과 사회의 윤리관이며 가치관이 일률적일 수는 없다.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십상이다. 나와 나의 가족, 나의 조직 내가 속한 사회를 중심으로 판단하게 된다.
한가지 쉬운 예를 들어 생각하여 보자. “평화와 자유”를 부르짖지만, 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짓눌리고 억압 받는 약자들의 자기주장임을 인식하게 된다. 힘있는 강한 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시대나 지역, 빈부나 유무식, 종교, 성격, 체격, 성별 따위에 따라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 개인이나 그 사회의 가치관이며 윤리관이 달라지는 것이다.
. 진지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먼저 짚어보자.
인간은 동물이다. 때문에, 먹고 싸며 건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여느 생명체처럼 항상 진지한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종족을 유지, 번식 시키고자 하는 본능 또한 진지하다고 본다.
그래서, 어린아이 젖 빠는 모습만큼, 씨 뿌리고 거두는 농부의 모습이나, 배를 채우기 위해 수렵하는 모습들도 우리에게 항상 진지한 모습으로 다가오곤 한다. 오줌 똥을 누고, 땀 흘리며 숨 쉬는 배설의 기본동작도 진지한 것이고, 아픈 곳을 고치려고 애쓰는 모습도 그러하다. 사랑을 하고, 자식을 거두는 일들 또한 그러하다. 한 생명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기본 동작들은 대부분 진지하게 보인다.
그래서 원만한 삶을 위해서 맡은 일에 열심으로 궁리하고 일하는 모습들도 진지하게 보여지는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것들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공장의 생산활동, 사무실의 행정업무를 비롯해서, 총 들고 선 군인, 까운 입은 연구원, 연주 중인 음악인, 경기 중인 선수 …… 모두가 우리 인간의 기본 본능을 충족하기 위한 벌이의 수단으로서 행동 되는 것들 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하는 모습이 진지하고 존경 받을만 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훔치고, 빼앗고, 속이는 행동들도 삶을 위해 어찌할 수 없는 행동이라면 때로는 긍정적이고 진지한 것은 아닐까? 먹고 살기 위해 동물을 살육하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의 낚시나 그물과 같이 온갖 방법을 써가며 물고기를 유혹하고 속여가며 고기잡이하는 것도 보통 사람이라면 나쁜 행동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인간관계에서도 때로는 그 연장선에서 판단될 수도 있다.
. 우스운 짓이란 어떤 행위일까?
앞에서 생각해 본, 인간 삶의 기본을 충족하는 데서 벗어난 것들은 우스운 짓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 대중들은 그것이 존경 받을 만한 일이라 했더라도, 근본을 따져본다면 우스꽝스레 생각될 여지가 있는 일들이 우리의 현대생활 주변에는 적지않다.
나의 입사 초년생 시절, 정례적인 회의석상에서 말단에 자리하며 물끄러미 바라보던 회의장 기억 가운데 생각나는 순간을 하나의 그림처럼 들춰내어 그 예로 들어본다.
건전한 기업활동은 건강한 사회의 발전을 위해 존경 받을 일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기업경영 과정을 찬찬히 뜯어보면 과분한 의지, 의욕들이 때로는 멋 적고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십 개의 사업장과 계열회사를 운영하려면 정기적인 모임이 불가피하다. 그 자리에서 오너로 통칭되는 기업주는 열심으로 사업상황을 챙긴다. 그리고 장단기 운영방향을 제시한다. 때로는 자잘한 것이라 여겨지는 것까지도 세심한 간섭을 하게 된다. 푼돈까지도 챙기기도 한다. 언행 중에는 시장 통 장사치의 치졸한 면면이 눈에 띄기도 하고, 때로는 약한 놈 등치는 일까지도 서슴없이 지시한다. 지시 하는 자와 받는 자가 모두 진지하다. 그러나 말단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신입사원 눈에는 그 회의장 정경이 우습게만 비춰졌다.
물론 회사라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집단만 그러하지는 않다. 국내의 정치 현황이나, 국가와 국가간에 이뤄지는 국제정치 판에서도 입만 벌리면 사기치고 제 옳다고 소리치는 장면들은 흔한 일이다. 자기 지역, 자기 정당, 자기 국가, 자기 종족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우스운 장면임에 분명하다. 자기가 속한 집단의 생명과 권익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지만 몇몇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부질없는 아집을 채우기 위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해 당사국은 목숨이 걸린 처절한 다툼일지 모르지만 제3자의 눈에는 우습게 비춰질 수도 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커다란 일 말고도, 상거래 행위, 종교, 교육, 의료, 학문, 예술, 스포츠 …… 어느 업종이던 주변에는 얼마던지 우스운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역과 사회, 시대를 달리하며 본다면 그러한 웃기는 사례는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종교를 떠 올려 보자, 종교마다 종교의식은 서로 다른 특질을 갖는다. 자기가 속한 종교의식은 숭고하게 받아들여 지지만, 이교도의 종교의식은 때로는 우습게 여겨진다. 시대를 달리한 종교, 지역을 달리한 종교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 모습이 우스웠기에, 코흘리개 어릴 적 무심코 흉내 내어 보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나무간셈보셈~~, 메루치메루치메루치 요단강 건너가만나리~~”
예술이나 스포츠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조시대 양반님들이 현대예술이며, 스포츠를 관람한다고 생각하여 보자. 웃기는 일들로 받아들여 지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의료의 경우도 다를 바 없을 듯 하다. 업으로서 종사하는 의술인, 생명을 건져야만 하는 환자나 그 가족 들이야 진지하겠지만, 행위 자체로 보면 인간 삶의 기본에서 벗어나는 분야가 많다는 생각을 해 본다. 턱을 깎아 내고 코를 높이고 눈꺼풀을 손질하는 것만 웃기는 것이 아니고, 자연인으로서의 생명 이상으로 연장하려고 하는 과도한 생명연장 의술도 눈에 거슬리고 우습게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발달한 의료기술이 생명을 우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머물기도 한다.
전문화된 분야마다 시술하는 행위 또한 예사롭지는 않다. 제 기능을 못하여 고장 난 부위, 썩고 상한 장기, 숨구멍을 비롯하여 똥 오줌 코 땀과 같은 배설 구멍들도 전문화 되고 있다. 그 구멍이며 각각의 장기 마다 독특한 장비들이 쓰이고 있다. 고장난 **구멍을 찾아 매일 같이 뒤적이며 수선해야 하는 어려운 직업기도 하다.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여, 때로는 다른 학문은 하찮게 까지 여기는 이도 경험한다. 의술행위 자체는 진지한 만큼이나, 무뢰한의 눈으로 보면 장난감 집합체 같다는 인상을 갖게도 한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나머지의 평생도 썩은 이빨 뒤지며 턱 벌리고 대롱대롱 매달려 가며 매일을 보내야 하는 치과 의사 일상이 존경 받는 사회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진지함과 우스움 사이에서 헤매게 된다. 하기야 어느 직업이건 그러한 모순점은 상존 한다. 남들 앞에 웃음을 만들어야 하는 개그맨, 웃고 울고 성냄을 거짓으로 지어내야 하는 배우, 경우에 따라서는 상을 당하고 까지도 남들 앞에 서서 노래 부르는 가수, 때리고 맞는 격투기 선수 등도 다를 바는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남 보다 편하게 더 벌어서 생색 낼 수 있는 직업으로 그 일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세상임을 부정하지는 못하지만, 진지한 일과 우스운 일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 지를 한번쯤 가늠해 봄도 가치 있는 일일 듯 하다.
같은 섹스 행위라고 해도 자손을 얻기 위한 부부행위와 향락을 쫓는 불륜의 행위 사이를 비교한다면, 어느 편이 종족 번식 본능에 순응하는 지에 따라 진지한 일과 우스운 일이 갈려질 거라고 생각된다. 돈을 모으고, 건강을 유지하고, 명예를 쌓는데도 분수를 넘어 과하게 되면 그 행위 자체는 우습게 되는 것이다. “저 죽으면 세상을 다 지고 가나 ……” 하며, 가난뱅이는 부자의 허세가 우습고, “쥐뿔도 없는 주제에 ……” 하면서 가난을 바라보는 부자의 눈에는 모자라보이는 그들의 행태가 눈에 거슬리고 우습게 여겨 질 것이다.
병들고 쇠약한 노인을 바라보는 젊은이의 시각은 노인이 살아 온 시간의 차이만큼이나 그 삶의 진지함에 있어 인식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삶을 정리하고 대충대충 마감하려는 자세가 옳다고 젊은이는 여길지 모르지만, 얼마남지 않은 생을 하루라도 일년처럼 알차게 보내고픈 것이 노인의 기대치 일 수 있다. 그래서 세대차이에서 야기되는 우스움이 서로간에 발생되는 것이다. “젊은 것이 웃기지도 않게 스리 …… 다 늙은 주제에 웃겨서 ……”
그렇다면 적정한 선, 조화로움이 머무는 선은 과연 어디쯤일까? 그 답이란 그 시대, 그 사회의 가치관이 머무는 곳일 뿐, 시대와 사회를 초월한 정답이란 아마도 없으리라는 추측을 하여 본다. 극과 극이 상치한다는 의미이다. 살아간다는 것 모두가 진지하다고 할 수도 있는가 하면, 삶 전부가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삶의 무상함을 말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2012. 3. 9. (금)
오갑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