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소망

오갑록 2012. 1. 9. 18:34

소중한 ......

■  네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냐?

 

 

      섣달 12월의 추운 한 겨울 밤, 밤 길 어둠 속을 뚫고 들려 오는 낮 모르는 행인들 간에 서로 나누던 질문 한 개가 앞서 가던 나의 뇌리를 벗어 날 줄 모르고 맴 돈다. “네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냐?”

 

. 언제?

우리의 삶은 순간의 시간들로서 이어지며 하루 한달 한해가 쌓여 생애로 이어진다. 이 삶의 가운데에서 중요한 것을 어느 한 가지로 국한시켜 답하기란 무리이다. 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시시때때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더욱 어려워 진다.

 

갈증 나는 순간은 물 한 방울이 중할 것이요, 죽음을 앞둔 자라면 영생을 말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어릴 적의 달콤한 군것질 거리에서 시작하여, 가족이나 벗으로, 그리고 사랑, 재물, 성공과 영광으로 성장하고 갈라지기도 할 것이다. 결국 소중한 것이란 때에 따라  변화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학문적 위업이며, 자산축적의 기업가적 가치 기준을 생각 할 수도 있고, 기술 기능 체능 예능을 바탕으로 하여 중요도를 따져 볼 수도 있다. 때로는 형이상학적 기준을 내세운 종교적 철학적 중요성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이건 간에 중요한 것들이란, “언제?”라는 시간적 제약을 벗어나서는 생각 할 수는 없다. 어제 중요했던 것이 오늘과 내일까지도 항상 중요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옳은 판단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에게 소중한 것을 가리기에 앞서, 그것의 기준 시점이 언제일지를 가늠하여 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 어제, 오늘, 내일

  . 작년, 금년, 내년

  . 유아기, 성장기, 청년기, 장년기, 노후

  . 생애, 후세

 

. 소망

자신의 욕심에 차기에는 아직 채워지지 아니한 뭇 욕망하는 것들을 채우기 바라는 것들이 많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그렇다. 소망, 희망, 갈망, 욕망이라는 따위의 이름으로 우리들이 바라고 기대하는 것들이다.

 

일상에서 헛된 욕망을 내려 놓고 안식과 쉼을 권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충고가 우리의 마음 깊은 곳까지 와 닿지는 못한다. 입 발린 수식어에 그치곤 한다. 소망이라는 너울을 쓰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으로 둔갑하여 스스로의 정신을 사로잡는 것이다. 그것이 부질없고 헛된 것임을 인정할 때 즈음이면 많은 시간,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인정하게 되곤 한다. 중요하다고 여기며 소망하는 많은 것들이 시간의 함수 속에 녹아 들어 무색투명 하게 될 때, 그러한 때의 경험은 누구나 가져 보는 일이 아닐까? 그들이 비록 사소한 바람 정도였다고 할 지라도 ……

 

시간과 시간의 경계면들을 벗어나면서 느끼게 되는 것들이다. 오늘과, 내일, 올해와 내년, 성장기와, 장년기를 넘나드는 경계면에서의 생각들이 그러하다. 소망하는 것들의 변화는 가치관이라는 관념의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다. 때로는 노후에 기운이 쇠잔해 지고 난 후나, 생명이 다해 갈 즈음에야 과한 욕심이었음을 인정하기도 한다.

 

모두에게 희망을 갖고 살아갈 것을 권장한다. 희망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힘쓰고 노력하며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에 넘는 부질없는 욕심을 채우려는 과도한 희망은 오히려 개인을 망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나 그 적당한 수준을 알아채기란 여간해서 쉬운 것만은 아니다. 끝없는 자기수양과 일련의 수련을 거쳐서 얻게 되는 획득 물 일 지도 모른다.

 

. 만족과 욕망 사이의 경계면

계면(界面)의 특성을 생각하여 보자. 대다수 물질의 반응은 계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물질이동과 열의 이동도 물질의 계면을 통하여 개시된다. 그렇기에 계면은 내면 보다 많은 다양성이 상존한다. 촉매는 활성화 된 계면의 반응성을 이용하는 것이며, 생명의 시작도 계면에서부터 개시된다. 알을 싸고 있는 계면이 깨어져야 새 생명이 개시된다. 수정은 정자가 난자 벽을 녹이며 들어가면서 시작될 것이고, 병아리 부화는 알의 껍질이라는 계면을 부수고 나올 때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

 

그러한 계면(界面)은 물질세계에만 존재할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정신세계에서도 그와 유사한 성질의 계면을 상정하여 보고 싶다. 만족과 불만족 사이의 부족한 만큼을 빼고 난 계면을 생각하여 보자. 그 경계면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세계를 활성화 시키는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만족을 넘어선 풍족이나, 모자람이 있는 불만에서는 갖지 못하는 정신적 풍요가 머무는 지점이 될 수 있다. 무엇인지를 욕망한다는 것은 아직 만족에 다다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소망, 갈망, 희망의 의미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랑, 건강, 아름다움, 덕, 진실, 성공, 부, 명예, 영광, 영생, …… 우리들 삶의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소망하는 것들의 명목들이다. 모두가 중요한 것들로서 꼽힐 수 있는 것들이다. 어느 것 한가지라도 모자란다고 자책한다면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행복과 불행은 과부족의 경계면을 어느 곳에 두고 판단하는 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 온다.

 

자신은 모자라게 여길지라도 누군가는 그 만큼을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건강이나 수명의 예를 보자. 듣지 못한다거나, 걷지 못한다고 한탄도 하지만, 차라리 그들만큼만 되었어도 하는 부러움을 갖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도 있다. 목숨의 연명도 다를 바 없다. 사랑하는 유족이라면, 상을 당하고 나면 조금만 더 살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망자 나이의 적고 많음에 그 아쉬움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진, 선, 미, 사랑, 부나 명예 …… 어느 항목이던 간에 만족에 달하는 계면(界面)의 절대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

 

만족을 이루는 계면(界面)은 소위 말하는 행복이 활성화되는 지점이기는 하지만, 그 지점은 스스로 정하고 만든 점이기도 하다. 그 빈부의 부호는 모든 것이, 또한 항상 한 편으로만 치우칠 수도 있다. 넘치거나 모자람을 느끼는 가운데에서는 계면(界面)에서의 만족감을 따르지는 못할 것이다. 비록 넘쳐 날지라도, 현상유지나 수성에의 새로운 부담은 다른 형태의 불안으로 다가오게 된다.

 

무엇인가를 소망함에 앞서서, 만족함을 우선해야 하고, 그 소중함을 따짐에 앞서 시간이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찌 달라질 수 있는지도 유념해야 한다. 조직과 사회의 목적에 따라 미화된 획일적 가치관에 자신의 것을 잊은 채 따라  나설 필요 또한 없다고 본다. 특히 사랑, 충성, 명예 따위의 덕목들이 그리 물들기 쉽다고 본다.  “종족의 우상(偶像, idol),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으로 표현되는 착각이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서 사리 판단을 따지려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새해를 맞으면 의례 갖는 희망과 소망이라고는 하지만, 만족의 경계면은 과연 어느 선쯤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만족을 찾으려는 지혜도 필요하다. 무조건 더 크고 더 높고 더 훌륭한 단면만 쫓으려는 행태가 아름답다거나, 행복하리라는 관념이 항상 옳으리라는 단순 함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의미 있음을 말하고 싶다.

 

     2012. 1. 9.(월)

     오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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