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
■ 하늘을 보다
하늘을 본다고 함은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가자미처럼 눈이 위를 향해 붙어 있으니까 그냥 하늘을 보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서 하늘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비를 기다리는, 가뭄 중의 농부
비 올 까봐 걱정하는, 소풍 전날의 어린이
방사능 낙진 뿌릴까 봐, 핵 공포증의 소심한 시민
사모하던 낭군의 목소리라도 들릴세라, 서방 잃은 아낙
날 벼락이라도 칠까 봐, 부정한 마음 가누지 못해 두려움으로 떠는 자
신이 하늘에 있다고 믿으며, 하늘의 님을 받들어 모시는 수 많은 종교인들 또한, 팍팍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 그리고 영생의 구원을 바라며 하늘을 본다. 그것이 허상이던, 상상이던, 꿈 속이던,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어느 때, 자신을 이끌어 줄 손길이 내려 오기를 그들은 갈망할 것이다. 날개 옷을 돌려 받아 입고서 하늘로 올라가버린 선녀를 기다리는 나무꾼처럼, 하늘에서 강림하여 함께 하는 날을 고대할 것이다.
하늘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라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있기를 바라는 그 무엇인가는 제각기 다를 것이다. 비나 먼지처럼 실물도 있을 터이고, 더러는 영혼이며 신령이 있노라고 믿기도 한다.
아무것 없는 텅 빈 것을 공간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없다고는 하지만 현대과학은 우리의 우주 공간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대기 중에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나 수증기가 있고 질소 산소 수소 오존과 같은 분자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파동으로 이루어진 전자파로 대기권 모두가 꽉 차 있다. 태양광, 별빛, 달빛도 파동을 가진 전자파이고, 우주공간에 떠 돈다는 짧은 파장의 방사선이나, 방송용 단파며 중파 따위도 파동을 가진 전자파이다. 핸드폰 통화도 전자파를 수신하는 것이고 보면 나의 귓전에는 무수한 전자파로 꽉 차 있는 것이다.
막대자석은 항상 남북을 가리킨다. 지구의 남북 극점의 일정한 방향으로 자기장이 형성된 때문이다. 대기권 공간은 자기장으로 꽉 차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구를 돌고 있는 달을 따라 바닷물은 매일 같이 밀물과 썰물로 바뀌고 있다. 지구와 달 사이에는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어떤 끈으로 이어져 끌어 당기는 힘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중력이라고 하며, 이 공간에는 그러한 중력이 작용되고 있다.
이 우주 공간에는 과연 자기력, 중력, 전자파 이러한 것들만이 차 있을까?
어항의 물처럼 우주공간도 특정한 매질인지 어떤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아직까지 과학계는 이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지만 일부는 근거가 희박하지만 이를 의심하는 학자도 있다. 현대과학이 발달 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안다는 것 보다 밝히지 못한 수수께끼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원자를 이루는 작은 세상도, 우주 넘어 있을 커다란 세상도 알 수가 없다. 빅뱅 이론으로 우주 탄생의 시간을 계산했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 시간의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할 수가 없다.
원자세계의 물질도 무엇인지 모를 뿐 더러, 공간도 무엇인지 모르고, 시간도 무엇인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가시광선의 파장범위의 파동과, 몇몇 계측기를 통해 인식하는 것 만큼만 알 뿐이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나머지는 칠흑 같이 캄캄한 암흑의 세상이다.
때문에 영혼이나 신의 힘이 하늘에 닿으리라고 믿음을 전하는 자에게 현대과학의 합리주의가 적용 될 수 없다. 그래서 힘의 원리가 작용된다. 말 많고 목소리 큰 자(者), 조직과 힘이 큰 자(者), 역사가 긴 자(者)가 우세하다. 그렇기에 시대마다, 지역마다, 사회계층마다 그 믿음은 우리 앞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각기 자기의 믿음이야말로 진실이며 진리라고 주장한다. 때로는 종교분쟁이라는 이름으로 그 힘의 크기를 재기도 한다.
4천오백년 전 멤피스 고대 유적지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테베스의 고대 신전 모습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위용이 대단하다. 시간을 되돌려서, 왕성하던 그 시대에 내가 서 있었다면 그들의 신전에 나도 고개 숙였을 것이다. 3천년 전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바빌론의 고대유적이나 2천년 전 요르단 페트라의 웅장한 고대 유적도 같은 생각을 들게 한다.
신라시대의 불국사나, 이조시대의 향교들도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지역정신이 무엇인지 생각 들게 한다.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았다면 종교나 신에 대한 관념 또한 같았을 것이다. 이는 지금도 다를 바 없다. 아프리카 토속민, 아랍의 이슬람 국가, 유대교의 이스라엘, 기독교의 유럽 국가 …… 어느 나라이던 대다수의 보통 국민들은 그 지역에서의 왕성 하는 믿음을 따르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진리며 진실이라는 주장은 믿음의 힘이 미치는 범주가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류문화가 안고 있는 실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잘못된 정신경향을 철학 용어로 우상(偶像)이라고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러한 우상을 네 가지의 착각으로서 구분하고 있다. 인간 중심, 관습 중심 언어 중심, 개인 중심으로 착각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류문화에서의 종교관도 관습과 언어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러한 우상의 단편일 수도 있다.
하늘은 그저 텅 빈 공간일 뿐일까?
저 하늘에는 신이 존재하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좋음(Good)과 옳음(Right)이라는 기준의 잣대에 따라 선과 악을 구분 짓고, 그에 상응하는 복과 벌이 신으로부터 내려올까?
“종족의 우상(인간)”이나 “동굴의 우상(관습)”이라는 지적처럼, 편협 된 자기중심에 따르는 우상에 지나지 않을까? 이 시대를 살아 가는 우리로서는 알기 힘든, 더 크고 먼 이야기들이 공간에 시간과 함께 어울려 머물고 있을 듯 하다. 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치는 바람결에 함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1.4.7.(목)
오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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