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유산

오갑록 2010. 5. 14. 15:23

소중한 ......

 

■ 나는 무엇을 남기는가?

 

 

      누구에게나 아끼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물건일 수도 있고 사람인 경우도 있다. 개중에는 느낌이나 생각, 명예나 평판, 사상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아끼는 것이 무엇일까? 어렵게 구한 여린 잎새 몇 잎에 불과한 동양란 화분이 우선 생각나는 이도 있을 터이고, 분재 한 그루나 정원 앞에 제대로 잘 자란 조선솔 한 그루를 떠 올려 보는 이도 있을 게다. 보석 서책 임야 가옥처럼 누구나 생각들만한 속된 것도 있겠지만 효행 충성 믿음의 마음으로 부모 조국 신()을 우선 내세우는 그럴싸한 경우도 있으리라. 득도의 길, 영생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도 고이 간직 할만 하리라.

 

이처럼 저마다 아끼는 중요한 것들이 따로 있다. 그것들은 어린 때와 성인이 되어 같을 수 없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같을 수 없다. 남녀가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다. 때와 장소 처지마다 변덕이 심한 때문이다.

 

사금파리 조각 노리개며 헌 종이로 접은 딱지 짝과 유리구슬이 중할 때가 있었는가 하면, 한 두알 남은 달콤한 군것질거리일 때도 있었다. 알록달록 몽당연필 위에 숨듯 기어드는 지우개의 끝이 아까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자라 키 크고 체중이 나갈수록, 배워가며 무엇인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에 대한 생각은 달라진다. 성인이 된 후에도 나이 들어 갈수록, 사회적 입지가 제법 높아져 가장이 되고, 직장의 상사가 되고, 업계의 수장이 되어도 아끼고 중요한 것은 설악산의 사계절 풍광만큼이나 색이 달라지기 십상이다. 같은 산이라고는 하지만 때로는 흰색으로, 때로는 짙은 녹색으로, 그리고 때로는 타는듯한 붉은 색으로 뒤바뀌곤 한다.

 

새 운동화나 테니스 채에서 골프 채나 새 자동차로 아끼던 그 마음은 변심을 거듭한다. 그런 변덕은 아끼던 사람에도 다를 바 없다. 생각만으로도 피 끓듯 애타는 사랑, 처 자식이라고 언제까지나 장담할 수 있겠는가? 부모형제 처 자식이라고 순서가 정해진 것만도 아니며, 소중하게 여기던 벗이며 이웃도 잊기를 거듭하곤 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아끼는 것을 꼽아 본들, 조금 지난 훗날이면, 눈 녹듯 사그라질지도 모를 불안정한 마음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지난날에도 그래 왔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굳이 따져 본다면, 아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 할 때 자기 스스로를 그 우선에서 열외로 두고, 그 다음으로 아끼는 것을 꼽고 말하곤 한다. 내 몸과 정신이 머물고 있는자신을 얼마나 아껴 왔던가는 따져 볼 필요조차 없다.

 

아침 눈 뜨면 챙기기 시작해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요모조모 살피고 다듬는다. 날개 달린 새들이 짬만 나면 부리로 자기 깃털 다듬듯 본능에 가까운 행태이다. 입술 매무새, 눈언저리 잔주름, 속눈썹 윗눈썹, 귀밑머리 한 올, 손끝 발끝까지 어느 한곳 소홀함이 없다. 움츠리고 보듬어 안고 감춰오던 앞가슴, 언제나 부끄러움으로 가득했던 아랫도리도 소중한 육신이다.

 

목적이니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무심코 갖게 되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은 가시에 찔려도, 스치듯 베인 작은 상처에도 아픔을 느끼게 되고 마음 쓰여 정신이 혼탁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병원신세라도 져야 할 만큼 중병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래서라고 하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은 무의식 중에 가장 소중한 순서로서 자리매김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 소중한 몸에 대해 최근 들어 가까이서 보며 느낀 점 한가지 예를 들어 본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막내 딸은 어느 사이 구십이 다 된 노모가 계시는 고향 땅의 친정을 다녀서 올라 올 적마다 마음이 메어지곤 한다. 홍성 어머니는 기력이 쇠잔하여 병석에 누운 지 두 해도 더 되었다. 평소 그리도 깔끔하던 성격이었지만 이제는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 할 수 없어 식구들에게 의지해야만 할 처지니 자기 몸을 제대로 추스를 형편이 못 된다. 얼굴이니 몸은 그 행색이 꾀죄죄해지고 노취라는 냄새도 피할 수가 없다.

 

여느 여인들처럼 일생을 소중하게 갈고 다듬어 왔을 고운 얼굴, 소시적 발랄하고 생기 띈 모습이란 꿈만 같다. 움직이는 미이라처럼, 못 먹고 마르고 틀어져 피골이 상접했다는 말을 눈으로 보는 것 같다. 메말라 주름진데다 힘없어 주저앉는 바람에 얼굴은 피 멍까지 들어 보기에도 애처롭다. 윤기 나던 머리는 회색이 되고 그마저도 짧게 쳐서 엉성하고 덥수룩한 볼품 없는 털로 변해버렸다. 스스로 닦고 고이 다듬었을 한 때의 고왔던 육신의 모습은 어느 한 곳 흔적이 없다.

 

그러한 행색만큼이나 못된 것이 한가지 더 있다. 머릿속을 스치는 갖가지 상념들이다. 노인은 생각나는 모든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러니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말은 모두 꺼내 놓는다. 못다한 욕망과 못 이룬 바람들이기도 하고, 더러는 괘씸함과 서운함 이기도 하다. 한동안 못 보던 손님만 눈에 띄면 하소연을 해 보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를 않으니 야속하기만 하다. 모처럼 친정에 와서 그런 어머니의 모습과 하소연을 밤새워 들어 본들 막내딸은 속만 탈 뿐이다. 다 잊으시고 체념했으면 좋으련만, 그 분의 맑은 정신이 차라리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친정만 다녀 오면 며칠씩 몸살을 앓곤 한다.

 

어느날 막내 딸은 친정에 들린 차에 어머님 누워 기거하시는 방을 치워 드린다. 손 때 묻은 어머님 물건을 차마 손대기 어려워 방치하던 친정 오빠도 함께 거든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살다 남은 온갖 찌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더러는 버리기 아까워서 구석에 꽂아 놓았던 것, 더러는 아끼던 것, 더러는 귀하다고 여기던 것 …… 당시 그 물건을 구석마다 끼우며 생각했을 어머님의 마음들이 뒤범벅 되며 굴러 나오는 듯 했다. 아깝고, 아끼고, 귀하다고 생각하던 그 마음들이 …… 굴러굴러 나온다. 분 칠이나 한 듯 뽀얀 먼지 뒤집어 쓰고 빛 바랜 물건들이 많다. 승리표 팔각 성냥, 음료수 빨대가 든 비닐봉지, 손바닥 만한 전복껍질, 잔액 한푼 없는 빈 통장, 털실로 짠 연분홍 스웨터 ……

 

모두가 열심으로 살고 남긴 사물들이다. 무엇보다 아끼고 갈고 다듬던자신마저도 아들이나 딸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이제는 주체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틈틈이 끼워 놓았던 사소한 물건은 누구 하나 그 때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

 

부와 명예 명성을 제아무리 높이 꾸린 삶이었다 하더라도 시간과 세월 역사가 바뀌면 지금 이 자리의 노인분과 무슨 차이가 있을지를 곰곰 헤아려 보게 된다. 빈 소라 껍질 한 개를 두고 자기집이라고 다투는 바다 밑 낙지들이나, 제 영역이라고 꽥꽥대며 목에 힘주며 상대방을 몰아내는 연못가 물오리들, 서로 자기 자리라며 목 좋은 도로변 터에서 과일장사들의 핏대 올린 자리다툼, 모두들 나름대로 적극적이고 열심이다. 물길 따라 산 능선 따라 자기 종족의 터전이라고 투쟁을 일삼는 국가간의 끝없는 전쟁의 속성도 충성과 애국애족이라는 선홍색 보자기로 감싼 허울좋은 자리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과 명예를 남긴다지만 언제까지 무슨 이름이니 명예가 남을 수 있겠는가? 백 년이나 천 년이라는 극히 짧은 순간은 우주질서라는 큰 틀에서 생각한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축적된 부()를 자손에게 물려 주기 위해 아끼고 모으는 것만은 아니다. 꿀벌이 쉴 줄 모르고 부지런히 꿀만 따듯, 재산 불리는 맛에 별 작정 없이 모으기에 열심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아끼고 중하게 여기는 목적이 남기려는 데만 있지는 않다. 우리가 아끼며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진선미(眞善美)라고 하는 인간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를 더해 주는 데 있다고 본다. 나 자신과 내가 몸 담은 사회를 아름답고 선하고 진실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길 때 우리는 아끼며 소중하게 생각한다.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 한 줄기 햇살, 좋은 생각 까지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아끼고 소중하게 여긴다고 하는 것과, “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그라지고 난 후에 무엇인가를 남긴다는 것에는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 없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재산 건강 지식 사랑 시간  명예…… 생각하기에 따라 주제마다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할 수 있다.

 

나는 삶의 언저리에서 무엇을 남기는가? 

우리는 무엇을 남긴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주어진 삶을 열심으로 이어가는 낙지나 물오리의 한 순간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아니면, 길가 장사치의 다툼처럼 보내는 그 때를 열심으로 한다는 의미 말고는 남길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그 노인의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보며, 거울로 비춰 보는 훗날 내 모습은 결코 아니라고 큰소리 치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가치 없는 삶은 아니라고, 삶 자체에 의미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2010. 5. 12. ()

     오갑록 (K.L. Oh)

 

'◆ 관심과 의문......眞 > . 한 때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의 노래  (0) 2010.11.20
별의 별 생각 다 한다.  (0) 2010.10.04
바칼로레아 논술  (0) 2010.03.04
바탕과 근본, 그리고 순리  (0) 2009.12.26
기우(杞憂)  (0) 2009.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