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죄 (罪)

오갑록 2009. 10. 6. 18:08

영광 ......

■  죄 (罪)

 

     어느날 오후, 승객이 비교적 한가한 지하철 칸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을 내리 감고 아무런 생각 없이 멍청해 지는 시각이다.  잠이나 청해 볼 량으로 팔짱 끼고 힘을 한 참 뺄 즈음, 저 쪽 편에서 어느 분의 목청 높인 설교가 들려 온다. 피로한 기색은 있지만 나름대로 깔끔하게 단장 하신 중년을 넘기신 노신사다. 한걸음씩 천천히 내어 디디며 내 앞을 거쳐서 반대 편으로 지나가는 사이에 주장한 설교의 내용은,  “주 예수를 믿으라! 죄 짓고, 믿지 아니하여 용서 받지 못한 자는, 심판의 그 날이 오면 벌 받을 것” 이라는 골자였다. 구원의 길을 안내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그 분의 눈에 비치는 지하철 안 뭇 승객들이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지기에, 옳은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순수함이 묻은 설교이리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또 그 죄를 용서 받는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죄란, 이 세상의 가치관 또는 세계관이 어찌 형성 되었는지에 따라서 모양새가 달라지리라고 혼자서 어림하여 본다. 물론 특정한 종교의 시각에서 믿음을 가지고 보는 경우라면, 그 믿음에 따라서 달라 질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죄나 그에 대한 용서란 눈에 보이거나 만져 질 수 없는 것들이다. 마음에서 짓고 마음으로 풀되,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을 때, 크고 작은 짐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그 짐으로부터 벗어나 원만한 삶을 보낼 수 있다는 종교에의 굳건한 믿음이 요구되기도 한다. 물론, 같은 행동,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로 행한 행동과 생각을 죄라고 여기지 아니한 자라면 무슨 용서가 필요하겠는가?

 

죄에 대한 개념은 개인이 외적인 행위의 표준을 따라 살아가는 데 실패하거나, 타부(금기), , 도덕, 관례를 위반하는 것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죄라고 한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은

  . 종교적으로 생각되는 도덕적 악

  . 규범 윤리, 양심 도리 등에 벗어난 행위

  . 처벌 받을 만한 법률의 위반 행위

  . 도리에 거슬리어 괴로움의 과보(果報)를 부르는 나쁜 행위 등으로 구분한다.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죄에 관한 개념들을 구분해 본다.

  . 현세나 내세()에서 신으로부터 받게 될 죄에 대한 벌

  . 죄가 되려면 그 행위가 의도적이어야 하는 것인지의 여부

  . 양심이 죄를 범하고 있다는 인식을 재촉하는 죄악감을 낳아야 한다는 생각

  . 주로 신격을 가진 존재자 등의 중개자를 통해 죄에 대한 용서의 가능성

  . 죄에 대한 참회와 과거에 범한 행위에의 속죄

  . 죄의 경중을 가리는 체계 등

 

기독교는 죄를 하느님의 뜻에 대한 고의적인 침해로 보고, 인간의 자만, 자기중심성, 불순종에서 기인한다고 보았으며, 불교에서는 죄의 의미가 따로 없으며, 선행이든 악행이든 행위의 의지 그 자체가 업()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과 그 결과인 과()는 자신의 행위와 그 결과라고 보았다. 때문에 괴로움()과 죽음의 반복된 윤회로부터 벗어나려면 불교의 윤리규범인 오계와 팔정도를 따라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 오계: 살생, 도적질, 음란, 거짓, 음주를 말 것

  . 팔정도: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생명을 유지하고, 정진과 기억과 집중하기를 곧게 할 것

         五戒:  不殺生 不偸 不邪淫 不妄語 不

         八正道: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正命正精進 生念 正定

 

 이슬람교에서의 죄는 더욱 엄격해 보인다. 알라 신과 그리고 신과 관련 되는 이외의 것을 좋아한다면, 생각이나 행위들 막론하고 모두가 죄 몫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까지 한다. 더욱 엄격한 자기절제를 요구하는 듯 하다.

 

인간이 가지는 모든 종류의 욕망이나 욕구는 그 끝을 모를 정도로 길고도 질기다. 그러한 욕망과 욕구를 적정한 선에서 억제하며 조절하여야만 안정된 사회조직을 유지 할 수 있다. 남을 위한 질서유지라기 보다는 나와, 나의 가족, 내가 속한 조직이나 국민의 안녕과 질서의 유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안녕과 질서 유지에 목적을 둔 인간사회 윤리규범을 정하는데 기준선으로서 책정 된 것이 “죄”라고 하는 명목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 본다.

 

“죄”라고 칭함은 살아가면서 넘지 말라는 금단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그 경계선이 어느 지점인지는 시대와 지역마다 다르고, 종교나 사회계층마다 다르다. 같은 곳에 속한 사람들이라도 너와 내가 생각하는 경계선 또한 제 각각이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죄의 기준마저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또 다시 어찌 변할지 스스로도 가늠하기 어렵다. 푸른 창공에 뜬구름 흐르듯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것이 마음이고 생각이다. 잘한 일이라고 행하고 나서도 새 날이 오면 죄스러워 지는 일들이 어디 한두 번뿐이었던가?

 

명암이 교차하는 지점의 경계선, 선과 악이 교차하는, 좋음과 싫음이 교차하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 그러한 지점의 경계선을 긋는 것과도 같은 것이 “죄”라고 본다면 죄의 본질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에게 밝다고 해서, 나에게 유리하다고 해서, 내가 좋다거나 기쁘다고 해서, …… 상대방도 항상 그러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죄”의 본질은 막연하여 경계선을 긋기에 언제나 애매모호하다는 생각을 갖곤 한다.

 

어제 보낸 단순한 하루, 일상을 돌아봐도 죄 짓지 아니하고 보냈다고 쉽사리 단언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다.

   "어제 새벽에도, 신선한 우유 한 컵을 마시고 나서 아침운동 차 조깅에 나섰다.

    저녁 밥상에는 모처럼 올라온 LA갈비 구이가 부드럽고 연한 육질에 감칠맛도 좋았다.

    혈당치를 관리해야 할 주제에, 맛나다며 앞뒤 가리지 않고 여러 점을 뜯어 댔다." 

 

새끼 송아지 먹이로 나는 소의 젖을 가로채서 마시고, 아직 나 어린 연약한 소를 도살하여 양판점 매장에 오른 갈빗대를 끓여 놓고 맛나다고 뜯어 댄 나의 어제 일이 과연 아무런 죄가 안될까? 무심코 지나친 하루 일상의 일이었지만, 하늘을 우러러 보기에 결코 부끄러운 일들이 아니었을까?

 

에로 영화 한 편을 감상한다고 하자.

젊고 발랄한 연인들의 섹시한 장면에서 흥분하거나 침 흘리며 보는 관객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며 볼까?

그러한 음란한 생각만 해도 “죄”가 된다고 하는, 어느 종교의 교리와는 분명 어긋나는 행태인 듯하다.

 

Homosexuality, sodomy, 코란을 들어 모슬렘에게 죄악시 하는 내용들 가운데 한 죄목이다. 만지고 비비며 핥거나 쪽쪽 빠는 사랑의 행태들도 짐승들이나 하는 수간(獸姦)의 “죄”라고 한다면, 우리가 이즈음 즐기는 TV 연속극이나 영화관 상영물 들은 어느 한가지도 이 죄목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남자가 금이나 은으로 치장을 해도 죄요, 술을 마셔도 죄다. 고뇌에 찬 한숨도 죄요, 슬픔으로 짓는 눈물도 죄다.

 

그래서인지 스페인 대주교 이시도라는 “내가 지은 죄는 바닷가에 널린 모래알보다 많다.”고 했다. 앤드류 매튜스는 저서 Being happy에서 “죄의식을 갖지 말고 즐길 건 즐겨라.”라는 글을 썼으며, 미국의 수필가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죄 없이 우리는 좋아질 수 없다. 죄야말로 우리 인간의 미덕을 찾게 하는 옳은 길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세계관, 우주관, 삶의 가치관이 나름대로 서지 않는 한, 생명체인 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나, 오늘 하루를 살아 간다는 것 자체가 “죄”라고 해도 스스로 헤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죄값을 치러야 할 걱정으로 번민하며 지내야만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11:29)에도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2009.10.6.()

   오갑록

 

 

(참고자료)

 

□  이슬람교 (회교)

                                                                                                                    백과: 위키 & 두산

   이슬람교(아랍어: الإسلام al-islām)는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하는 유일신 종교로, 그리스도교, 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이슬람(Islam)”이란 뜻은신에 대한 순종”이란 뜻이다. 신자는 무슬림(Muslim)이라고 한다. 이슬람은 제정일치의 교리를 가졌기에 종교는 곧 정치이며 따라서 교리가 곧 법이다. '이슬람의 법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모슬렘(Moslem)', '무슬렘(Muslem)'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이슬람교의 경전은 꾸르안(코란)이며,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대천사 가브리엘(아랍어: 지브릴)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이슬람 종파는 시아파 (이란, 전체 무슬림 인구의 약10%), 수피 무슬림 (중앙아시아), 나머지는 모두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의 정통파)이다.

 

. 교리

이슬람은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믿는 유일신 종교이다. 이슬람 교리는 이만(6가지 종교적 신앙)과 이바다(5가지 종교적 의무)를 기본으로 하며, 6() 5()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5행을 무슬림의 신앙생활을 받치는 다섯 기둥으로 보아 아르칸(기둥들)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니파 무슬림에게 다섯 기둥(Arkan-al-Islam)은 샤리아(이슬람법)에 근거하며 무슬림에게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시아에는 ‘종교의 뿌리’(Usul-ad-Deen)로 알려진 다섯 가지 믿음과 ‘종교의 가지’(Furoo-ad-Deen)로 알려진 열 가지 의례가 있는데, 이 열 가지는 수니의 이슬람의 기둥과 유사한 것이다.

   . 신앙고백 (샤하다) -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예언자라는 선언

   . 기도 (쌀라) - 매일 5회의 기도

   . 단식 (사움) - 일출부터 일몰까지, 이슬람력 9(라마단) 한달 동안 음식.음료의 섭취와 성행위를 금한다.

   . 자선 (자카) - 일반적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부자들의 재산의 2.5%나 농민들의 연 생산의 10-20%정도며,

                        이 돈이나 생산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진다.

   . 메카 순례(핫즈) - 이슬람력 12(둘 힛자)에 이루어지며 경제적 신체적으로 능력이 있는 모든 무슬림이

                        일생에 한 번 행해야 한다.

 

꾸란(코란)은 알라로부터 계시 받은 기독교의 성서이고, 무함마드(마호멧)는 모세, 예수 등 많은 예언자들과 함께 알라로부터 선택을 받은 사도이며 동시에 마지막 사도이다. 주요한 세계종교 중에서 역사가 제일 짧지만, 다른 종교보다 전파속도가 가장 빠르다. 기독교에게 제일 위협적인 종교로 전 세계 신도 수가 10억에 이른다. 현재 한국에서도 45천에서 5만 명의 신도를 가지고 있다.

 

어원적으로 알라는 아랍어 알 일라(al-ilàh'The God')의 단축형, 명칭의 기원은 셈족의 언어에서 신()을 가리키는 'Il'로 보이며, '알라'는 아랍어에서 ''을 의미한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서 알라의 3가지 중요한 주제는

   . 알라는 창조주. 심판자이며 상 주는 존재

   . 알라는 유일하고(wāid) 근본적으로 1명인 존재(aad)

   . 알라는 전능하고 자비로운 존재

 

오늘날 이슬람교도들이 읽고 있는 코란은 예언자 마호메트가 사망(632)한 지 20년이 지난 제3대 칼리프 우스만 이븐 아판('Uthmān644~656 재위) 때에 완성된 것이다. 이때 양피지, 가죽, 야자나무 껍질, 나무 조각 및 낙타의 몸 등 여러 군데 흩어져 씌어 있는 코란 구절을 모아 비단과 파피루스에 다시 수록하여 기본경전으로 만든 것이다.

 

코란은 아랍어 기록 문헌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랍 문학에 미친 영향 또한 지대하다.또한 고대 아랍 문학의 특징인 심취적 요소를 수준 높게 다듬어 놓은 모형이어서 오늘날까지 아랍어가 분열되지 않게 막아준 파수꾼 역할을 했다. '코란'이란 말은 아랍어 동사 '읽다'(qa raaa)에서 나온 파생어로 '읽는 것', '독경'(讀經)을 뜻한다.

 

. 이슬람 법률:샤리아

절대 유일신 알라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이슬람의 교리이다. 따라서 이슬람 법은 이슬람 공동체에 내린 알라의 계명을 표현한 것이고, 이슬람 신앙을 믿는 이슬람교도들에게는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체계인 것이다. 이를 샤리아라 하는데 본래의 뜻은 '물 마시는 곳으로 이끄는 길'이다.

 

샤리아는 한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절대신과 인간 양심과의 관계도 포괄하고 있다. 샤리아는 서구법과는 달리 절대신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마호메트 사후의 사회적 변천에도 불구하고 샤리아는 변형되지 않는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결혼을 정상으로 보고 경제적 궁핍에 의한 독신을 예외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또 가족을 사회의 기본단위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코란은 수도원의 독신생활을 혹평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신비주의자들은 여자를 악으로 간주하고 보통 독신생활을 하고 있다. 부부관계는 의복과 같이 몸에 맞아 상호 사랑과 자비로 이루어지는 것을 권장한다. 부모에 대한 효행, 특히 어머니에 대한 효를 강조했다.

'◆ 관심과 의문......眞 > . 한 때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탕과 근본, 그리고 순리  (0) 2009.12.26
기우(杞憂)  (0) 2009.11.18
젊음과 건강함의 역설적 의미  (0) 2009.09.23
삶과 가치관  (0) 2009.09.08
마음 다스리기  (0) 2009.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