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젊음과 건강함의 역설적 의미

오갑록 2009. 9. 23. 15:36

향기로운 ......

 

■  젊음과 건강함의 역설적 의미

 

 

   "젊음과 늙음"이나 "건강함과 병듦"은 그 기준들을 자신 있게 말하기 애매할 때가 많다. 혈기 왕성하며 팽팽하고 윤기 나는 10대의 피부도 세월이 가면, 땀 밴 속적삼에 간 기 피어 나듯 눈가며 입가로 잔주름이 여기저기 번지고, 검던 머리는 모르는 사이 잿빛으로 차츰 변해 간다. 그렇다고 이를 두고 병 든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이가 든다거나 늙어 간다고 말할 뿐이다.

 

나이를 햇수로 따지기는 하지만, 피부의 모양새, 혈색이나 머리카락의 색, 구부정한 허리며, 잰 걸음걸이, 자세 등과 같은 외모, 말투며 어둔한 행색 등으로도 그 나이를 가름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외모만큼이나 따라서 변하는 것이 세상을 보는 안목인 듯 하다. 삶에 대한 생각이니 사고니 가치관이니 하는 따위들은 살아 온 연륜이나 외모만큼 같이 따라 변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현상이다.

 

노년으로 접어들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판단력도 흐려진다고 들 한다. 건망증 치매 알츠하이머 같은 거창한 병명들이 따라 다니기도 하나, 어느 정도까지는 노화의 한 현상에 불과한 자연현상으로 인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어 본다. 나이 들어 주름지고, 흰머리 나오는 것이 병이 아니듯 떨어지는 기억력이나 판단력, 잦아지는 건망증을 두고 병이라고까지 한다면 왠지 우리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게 여겨진다.

 

젊음을 앞세운 열정과 기개도 나이 들어 황혼 녘이 되면 포기와 좌절이 앞서기도 하고, 이해와 용서로 너그러워 지기도 한다. 마치 팽팽하던 피부가 늘어지고 주름지는 현상을 닮기라도 하듯, 뽀족 하고 날카롭게 날 서기만 하던 감정들이 두리뭉실 무뎌지며 넓어 진다는 사실도 자연스러운 이치로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이다.

 

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아파야 할 이유도 없다. 나이 들며 겪어야만 되는 여러 가지 노쇠 현상에서 오는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장애는 신분의 차이나 시대의 차이와 관계없이 우리 앞에 언제고 한번씩은 찾아 온다. 그렇다고 그리 마음 상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개인 차이가 있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수명의 연장기간만큼 늦어 진다고는 하지만 피하기 어려운 것이 나이 들어 늙어 가는 현상이다. 중년기, 장년기를 지나며 다가오는 시력감퇴 치아손상 뇨실금 전립선비대 고혈압 당뇨 같은 각종 성인병들도 관심과 적절한 관리로 개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피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숙명이라고 여겨진다.

 

영롱한 무지개 빛 희망으로 채색 됬던 젊은 꿈도 미수니 졸수니 망백이 되면 빛이 바래게 되고, 해맑던 표정은 차츰 간 곳 없이 흐린 날 저녁 하늘처럼 어두운 그림자를 감출 수 없게 된다. 변하는 표정에서 삶에 대한 생각이며 가치관이 변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노인 분들의 생각을 듣노라면 소중한 것도 세월 따라 변하고 그 중요도 또한 같이 변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곤 한다.

 

살아 가면서 욕심, 욕망의 주제들은 다양한 장르로서 우리들 앞에 다가서곤 한다. 기차역 시발점의 차창을 통해 물끄러미 바라보는 길가 풍광을 닮았다. 일어섰다 바삐 스쳐 지나가는 차창가 전봇대들 모양처럼, 때로는 돈과 온갖 영욕들이, 때로는 정이나 사랑, 때로는 건강 주제가 시차를 두고 바삐 왔다가 스치듯 이내 지나치곤 한다.

 

나서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다시 늙어 가는 삶의 과정에서, 오가는 뭇 주제와 그 주기란, 크게 보아 사람마다 다를 리 없다. 시대와 지역 자기의 환경에서 오는 차이가 있다손 치더라도 삶의 주제라는 큰 틀은 사람마다 크게 다를 바 없으리라는 상상을 하여 본다.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를 나름대로 챙기고 나면, 종족 불리기의 근간이 되기도 하는, 사랑의 주제가 앞에 나서곤 한다. 그리고 아픈 곳 없이 오래도록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인간의 바램 또한 앞서 말한 어떤 주제와도 뒤지지 아니한다. 더러는 존재의 근본에 대한 형이상학적 높은 차원의 것에 관심을 두고 삶을 내닫는 이도 있지만 아주 적은 숫자이거나, 고민한다 해도 짧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학문이니 명예니 종교처럼 삶의 목표나 지표로서 우리를 이끄는 것들도 의식주나 건강 문제만큼이나 만족과 행복을 안기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고민하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하거나 두렵게도 한다.

 

선과 악, 좋고 싫음을 차연(差延)의 관계라고 예를 들어 설명한 김.형효 교수의 강연을 돌아 본다.

 

   선()은 악()의 차연(差延)이고 악도 선의 차연이다. 서로가 상관적 대립의 입장을 띠면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서로 상대방이 없으면 자기의 존재도 성립하지 않는다. ‘선과 악’은 각기 자기 고유성을 지닌 실체가 아니므로 각각이 존립하는 타자의 흔적에 다름 아니다. 산마루의 주름이 산의 양 기슭을 형성하였듯이, 사이의 차이가 ‘선과 악’의 이름을 양면성으로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양면성은 사실상 마음의 양면성에 불과한 것이다.

 

선과 악(善惡), 아름다움과 추함(美醜), 성스러움과 속됨()은 모두 이중성의 차연(差延)관계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골짜기가 있으면 능선이 따르며, 요철의 패인 곳이 있음은 나 온 곳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젊음과 늙음, 건강함과 병듦또한 그러한 차연(差延)의 연장선에 불과함으로 이해될 듯도 하다.

 젊고 건강함도 세월에 따라 자연스레 늙게 되고, 그에 맞춰 여기저기 노쇠현상이 뒤따르는 것이니만큼, 선악을 구분함과 마찬가지로 젊고 늙음을 나눈다거나, 건강하고 병듦을 나눈다고 하는 것도 사실상 마음의 양면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강연 내용 중에 선()에 대한 대목이 나온다. 노자 말씀의 선과 악을 각기 다른 말로 치환해 가며 음미하여 본다면 늙고 병듦의 의미가 새삼스러워 지기도 한다. "젊고 건강함"을 선이라 생각하고, "늙고 병듦"을 악이라고 생각하여 보자.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가 다 미()를 미라고 여기면 그것은 악()이고, ()을 선이라고 여기면 그것은 불 선(不善)이다. 선인은 불선인의 스승이고, 불선인은 선인의 자산이다.(故善人不善人之師不善人善人之資)’ 라고 했다.

선을 향한 의지가 순진하게 자기 뜻대로 세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하지 못한 어둠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 선을 향한 도덕명분을 퇴색시킨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도덕을 앞 세워 사회 정의를 세워 보려고 하나, 생각대로 되지도 않으려니와, 또한 세상이 그렇게 선 의지에 의하여 소유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우리가 도덕을 앞세워 사회정의를 세워보려고 하나, 선 의지에 의하여 소유되지 않음을 말한 대목은, 우리가 "젊고 건강(())" 하고자 하는 의지에 의하여 소유되지 않음을 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강연에서 그는, 본능(本能)이 요구하는 재미는 소유론적 재미지만, 인간의 본성(本性)은 아상(我相)을 버릴수록 그 기쁨이 커진다고 했다. 젊음과 건강함도 아상(我相)의 한 편이고 그래서 소유에의 집착을 멀리 할수록 기쁨도 커진다고 볼 수 있을까?  

 

   인간은 재미있는 삶을 자연적으로 갈구한다. 재미있지 않으면 인간은 즐겁게 하려 하지 않는다. 사회생활도 도덕생활도 직업생활도 공부도 다 재미있어야 한다. 이 재미를 본능과 본성이 다 요구한다. 그러나 본능이 요구하는 재미는 소유론적 재미이나, 본성이 그리워하는 재미는 존재론적 재미다. 본능과 본성은 다 마음의 자연적 자발성의 힘이다. 본능은 아상의 만족을 추구하나, 본성은 아상을 버릴수록 그 기쁨이 더 커진다. 인간은 좋음을 찾는 마음, 즉 이익을 좋아하는 마음이다.

자아의 의식이 모든 생각의 흐름에 동반하고 있는 한에서 인간의 생각은 아상(我相)과 아애(我愛)와 아견(我見)의 편파적인 틀을 벗어날 길이 없다. 자아의 지성은 부분적(partial)이고, 자아의 의지는 편파적(partial)이다.

 

선악(善惡)과 미추(美醜)와 성속()의 차연관계가 마음의 양면성에 불과 하듯, "젊음과 늙음, 건강함과 병듦"도 마음의 양면성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젊음이나 건강도, 소유론적 재미를 가지려고 하기 보다는 아상을 떨치려고 애쓰므로서 찾아오는 보람이 더욱 값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망백이 가까운 어머님의 일상을 눈여겨 본다. 쇠잔한 기력에도 가족이라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푸성귀를 가꾸시려 있는 힘을 다해 열심으로 밭 일구고, 찬거리니 푼돈에도 어린아이 투정으로 때마다 일을 삼고, 심해진 건망증이나 피치 못할 노인병이 하루살이에도 어지럽기 일쑤지만, 이를 두고 누가 병자라고 하겠는가? 한 건강한 자연인의 삶이 이어지는 과정으로 담담하게 여기며 언제나처럼 가까이 지냄이 옳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여 본다. 이제 나이들어, 몸과 정신은 아픈 곳이 심 하시지만 그래도 건강하시다는 생각이 역설적일까?   

 

      2009. 9. 23. (수)

      오갑록 (K L Oh)

 

 

(참고자료)

 

* 아상(我相)                                                                               (국어사전)

.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참다운 ‘나’가 있다고 집착하는 일을 말함

. 잘못 깨달은 것에 집착하여 이를 참다운 ‘나’라고 생각하는 일

. 자기의 처지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 오온(五蘊)                                                                               (위키백과)

  불교 용어로서, 우리들 개인의 존재가 5개 요소의 집합으로서 형성된다는 것,

  몸과 마음 즉 개인 존재를 가리킨다

    . () 肉體

    . () 의식의 感受作用으로서의 감각

    . () 의식 중 槪念·知覺·表象을 구성하는 작용으로서의 表象

    . () 受·想 이외의 능동적인 심리작용으로서의 의지나 행동적 욕구

    . () 대상을 분석판단하고 종합 인식하는 마음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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