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비밀과 여유

오갑록 2009. 8. 31. 12:58

정다운 ......

 

■  비밀과 여유 (봉함 이메일)

 

 

    어려운 가운데에서 성공한 어느 한 개인의 성공의 비밀도 크겠지만, 국정원에서나 다룰만한 국가 차원의 비밀이나, 신이나 알만한 우주의 비밀처럼 보통사람으로서는 아무도 모를 듯한 큰 비밀도 있습니다. 그러한 어렵고 무게 있는 비밀은 접어두고, 가볍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작은 비밀들을 돌아 봅니다.

 

작은 호기심만으로도 알 수 있는 작은 비밀은 때로는 우리를 즐겁게 해 줄 때가 많습니다. 아우성 치며 열심으로 사노라고 메마르기만 한 삶을 그 과정에서 잠시라도 촉촉하게 적셔 주기도 하고, 기쁨이나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들도 적잖게 있습니다. 딱히 비밀이라고까지 하기에는 과장된 듯도 하니, 호기심을 갖게 하는 일들 정도로 말함이 더 나을 지도 모르지요.

    

손가락 끝에 침 발라 문 창호지 뚫어가며 어둠 속 방안 사정을 헤아려 보려고 하는 민속영화의 어떤 장면처럼 …… , 가려 진 곳이라고 생각되면 몰래 훔쳐 보고픈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궁금증에 관한 순박한 행태라고도 생각하여 봅니다.

 

까발려서 훤하게 뵈는 것 보다는 보일 듯 말 듯 스리살짝 가리워진 것이 더 얏~스러이 느껴지는가 하면, 안개 속 그림이나 영상처럼 때로는 반투명 반그늘의 은밀함이 더욱 마음에 끌리기도 합니다.

 

휑하니 열린 남의 집 앞마당은 무심코 지나치게 되더라도, 빗장 잠긴 남의 집 대문 안은 궁금해서 문틈을 엿보고픈 충동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쓸데없는 남의 속 궁합이나 가정사가 궁금하기도 하고, 내 삶과는 무관할 것만 같은 자질구레한 연예가 정보에 관심이 끌리게도 됩니다.

 

열린 곳에 널려 진 이야기 보다는 귀 잡아 당기며 “비밀인데……” 하는 이야기에 더욱 솔깃해 지는 것이 선량한 선남선녀들의 마음 씀씀이가 아닐까요? 이야기도 그러하고, 그림도 그렇고 ……, 그러나 열어보고 알고 나면, 결국, 알맹이 없는 텅~빈 공간임을 우리는 종종 깨닫게 되곤 합니다.

 

몰래 훔쳐 본 대문 속 사정이나 문틈 사이로 본 물정이 그러하듯, 흐릿하게 가려진 반투명의 장삿속 사정이나, 부러움으로 선망하던 이웃들 세상살이의 크고 작은 호사스러움도 내막을 알고 나서 실망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커튼이니 옷가지로 가리워 진 육체의 속 사정도 알고 나면 작은 실망감으로 그렇고 그리 느껴 질 때도 유사한 경험은 아닐까 합니다.

 

인터넷 문화가 일상화 된 요즘, 이메일을 접할 때도 예외는 아닙니다. 암호로 잠긴 파일 속 내용들이 때로는 더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궁금증의 대상이 다르기는 합니다만 ……

 

잠겨 진 남의 파일을 대하면서, 셈 잘하는 학생이라면 안 풀리던 문제풀이 답안이 궁금할 터이고, 기술개발에 열중인 개발자라면 경쟁사의 개발도면 파일이 궁금할 터이며, 주식투자에 열중인 이라면 관심종목의 재무구조니, 자금조달 현황, 수익 전망, 신기술 전망에 등에 대한 남이 모르는 정보가 궁금할 것입니다. 그리고, 피가 뜨거운 건강한 젊은이라면 이성을 다룬 화끈한 사진 한 점 정도에 관심 가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닐 듯 합니다.

 

선명하지 못하고 흐릿한 것은 눈에 보이는 사물만은 아닙니다. 훔쳐 보고픈 세상살이의 모든 것들이 다 그러하지는 않을까요? 어렴풋한 연인들 간 서로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나, 학문이나 지식에 대한 욕망, 알듯 모를 듯한 진리 탐구나 종교적 성취에의 갈증 ……

 

세월이 흐른 뒤 신혼생활의 짜릿함이 식어 가는 것을 우리는 무심코 받아 들입니다. 무턱대고 높이고 쌓는데 만 허덕이던 젊은 때 삶의 언저리도 깊게 주름진 노인네가 되어서는 뭇 욕망에의 열정들이 점차 시들해 진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노인 분들이 자기의 지난날들을 허망하다고 들 말하니까요.

열심으로 쌓고 벌려가며 목표하던 학문이니, 재물, 명예니 영광 들도 세월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자기가 노인이 되어 알고 나면 별것이 아니더라고 하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쁜 보조개를 한 여인과 코가 우람하게 큰 남자가 깊은 밤을 함께 지내고 난 후, 서로들 상대방에 대해서 “별 것 아니던데 ……”한다는, 좀 싱거운 음담패설도, 모르는 바에 대한 기대감과 알고 나서 느끼는 실망감 간의 괴리를 놓고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여 봅니다.

 

큰 산에 오를 때를 생각하여 봅니다. 저 높은 산 능선만 넘어서면 탁 트인 새로운 세상이 있을 듯 해도 헉헉대고 땀내며 올라서면 또 새로운 산등성이 우리 앞을 막고서 서 있곤 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명한 탐험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깊은 계곡, 깊은 동굴, 심연의 깊은 바다 속도 다가서면 모양을 조금씩 달리한 바위 암반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하곤 합니다.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을 비밀이라고 합니다.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나 참된 의미를 숨기고 가르침을 설하는 것도 비밀에 해당합니다. 비밀리(祕密裏)에 열린 회담이라고 할 때처럼, 관련 당사자 이외에 남이 모르는 가운데 하는 일을 비밀리(祕密裏)에 한다고 합니다.

 

힘에 벅찬 큰 비밀을 알 때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린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비밀의 열쇠를 들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기도 합니다.

 

빗장을 잠가서 보내 온 이메일에 막연한 기대(어떤?)를 걸고, 눈 침침한 중 노인네가 더듬더듬 애 써서 암호 열고 들어가니, 별 것 아닌 시시한 펌글 한 두 점 이더라고 푸념하시는 분의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속아서 흥분하여 몽둥이들 들고 몇 차례 쫓아 나선 마을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여하튼, 유리알처럼 맑은 삶 보다는, 남 모르는 한 편의 구석이 있음도 작은 행복의 한 조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남 눈에 띄지 않게 감춘 보물단지 열쇠나, 억만 금이 입금 된 통장 비번, 휘황찬란한 여친의 현관문 열쇠는 아니더라도, 부인 몰래 감춰 놓은 쌈지 돈 지갑이 그렇고, 생각만 해도 얼굴 붉어지는 음큼한 생각 한편이 그렇고, 남은 아직 모를 거라고 여겨지는 자질구레한 기술이며 지식 나부라기 들이 그렇습니다.  무턱대고 그냥 나누기에는 아깝다고 여겨지는 훌륭한 분들의 지질한 말씀 한 구절들도 그렇습니다.

 

남이 보면 쓰레기 통 속, 잡동사니 임을 알면서도 자기 좋아 남 몰래 감춘 구석이 어디 한두 가지 이겠습니까?  제 깐에는 아껴가며 감춰 둔, 지난날의 빛 바랜 흑백사진 속 얼굴 한 점이 그럴 때도 있으시지요?

그런 일 들도, 우리들 삶의 여유로움이고 한가함의 한 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듯한 작은 비밀 한 두 가지로 인해서 하루가 웃음짓게 되고 윤기나게도 합니다.  

 

2009.8.30.(일)

오갑록 (K L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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