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운명이다

오갑록 2009. 6. 3. 14:38

사랑과 아쉬움 ......

 

■  운명이다

 

 

운명(運命, destiny);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말하며, 숙명, 천명이라고도 한다. 필연(ananke) 우연(yche) 신의의지(fatum) 요행(fortuna) 등의 그리스어나 라틴어 어원들도 있다. 인간의 의도나 일을 포함하는 우주 전체가 인간의 의지와 관계 없이 움직이기 어려운 궁극적 결정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인지(人知)를 초월한 힘을 운명이라고 말 한다.

 

그것은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불가피한 필연의 힘이며, 누구라도 따를 수밖에 없고, 예측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힘이다. 또한 운명은 명확한 목적의지를 갖는 합리적인 힘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비합리적.초논리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운명의식이 처음으로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 눈앞에 벌어졌을 때이다. 즉 불가항적인 일에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 처리 요구에 따라 도출되는 것이 운명의식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도 극히 인간적인 심리현상으로서, 어느 시대의 사람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으며 일찍부터 운명은 신격화되어 신앙.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또는 추상화되어 신학.철학의 주제가 되어왔다.       (백과사전 중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라는 글을 2009.5.23. 05:21 경에 남기고, 스스로 타계하신 전직 대통령의 국상을 치른 지 얼마지 않은 5.30. 토요일 초저녁,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나도 사랑하는 조카를 다른 세상으로 떠나 보내야만 했다.

 

지난 주말, 조카의 사고 소식을 조금은 울먹이며 전해 오는 동생의 짤막한 전화통화 목소리는 뒤통수를 맞은 듯 찡하는 듯한 전율 속의 기억으로 귓속에서 아직도 쟁쟁하다. 30여 년 전 울산공장에서 사회 초년생으로 현장경험 수련 차 근무 중에 같은 동생으로부터 전해 받았던 “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 비보도 이번과 같은 목소리였기에, 그 순간의 감정들이 옛 것과 함께 뒤섞이며 놀램과 슬픔이 더욱 깊어지는 것만 같았다. 부모형제의 혈육이라는 이름으로 연이 이어진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한 혈육을 멀리 떠나 보내는 애절한 슬픔, 그 비통함이 어디에도 비 할 수 없음을 새삼스레 깨우치게 한다.

 

이제는 망자가 되어버린 조카를 생각한다.

낳아 기르는 과정과 성장기 동안에 그에 대한 좋았던 추억들이 점점이 흘러 들며, 끓어 오르는 사랑과 아쉬움이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뭉클뭉클 솟구쳐 올라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하도록 못 견디게 한다. 성하지 못한 몸으로 애써 일구어 온 아우네 가정에서 한쪽 기둥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아쉬움과 함께 불쌍함과 서러운 마음이 울컥대곤 한다.

 

장례기간 중, 불과 일년 남짓한 사회생활 새내기 동료를 잃고는 슬퍼하는 직장동료나 학교 동료와 선후배들의 진심으로 슬퍼하며 조문하는 모습에서, 고인이 된 조카가 그들과 사회생활의 인연이 비록 길지는 아니했었더라도 마음을 주고 열심으로 보내 왔었음을 가늠하게 하여, 아쉬움 속에서나마 작은 보람은 찾을 수 있었다. 출생과 함께, 크고, 성장하며 그 동안 우리 가족 모두에게 조카가 주었던 기쁨과 즐거움에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생각하며 명복을 빌어 본다.

 

이것은 운명이다 ......

되 뇌여 가며, 장지에 안치 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여 보았다. 

화장터 화롯가 창 넘어에 해당 번호푯말이 있는 밀실에서 몇몇이 둘러 앉아 화장을 지키는 가운데, 그 날 나의 거래은행으로부터 날라 온 핸드폰 문자를 들여다 보면서도 똑 같은 생각이 떠 올랐다.

“*** 님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한 쪽 혈육을 산화 하고 있는 도중에 받아야 하는, 이 생일축하의 메시지가

“운명이다.”고 고개를 끄덕거려 보며 또 새삼스레 눈시울이 붉혀지기도 했다.

 

부모에게 평생토록 응어리야 남겠지만, 가족 모두가 품었던 이 슬픔과 아쉬움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가면 잊혀지겠지, 그러한 것들이 삶이고 인생이고 운명이고 …… 하면서, 삶의 길 모퉁이 주차장처럼 한 켠에 아픈 마음을 비켜 놓고서 또 다시 무심하게 흘러 갈 것이고, 이 슬픔을 잊고, 무엇인가 구하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갈 것이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하는가 보다.

조무래기 집안의 작은 사람들이 앵앵대며 살아가는 작은 모습들 ……

그네들 주변을 맴돌며 흘러가는 세월을 두고서, 그들은 쉽게 운명이라고 이야기 하는가 보다.   

혈육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우리 가족들이 이번 일로 겪게 된 아쉬움과 슬픔을 운명이라는 이름에 실어서 날리고 올바른 의지로서 마음을 모아 굳굳하게 견뎌 낼 것을 기원하면서,

 

조카가 다니던 회사의 부서동료, 공채입사 동기생, 임직원 여러분, 그리고 멀리 포항에서 밤 늦게까지 올라 오신 많은 대학생, 대학원생 조카 선후배들과, 교우 벗들의 진심 어린 조문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이 곳에 글로 남겨 본다.

 

     2009.6.3. ()

     K. L. Oh

 

 

□  80년대 초에 불리던 대중가요, 왈츠곡 한 편을 놓고 읖조려 본다.

   

       . 허공 (虛空)

 작사 정욱, 작곡 정풍송, 노래 조용필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이야기

 

      스쳐버린 그 날들

      잊어야 할 그 날들

      허공 속에 묻힐 그 날들

  

작곡가 정풍송(정욱은 동일인의 예명)이 1979년 12.12 사태 후, 정권교체기 당시의 암울했던 정치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썻다고는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주제와는 또 다른 깊이의 감정도 느낄 수 있다.

   

 

□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좋은 글 중에서

      오늘은 슬피 울어도

      내일은 기쁨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오늘은 분노로 가득 차나

      내일은 소리 내어

      크게 웃을지도 모른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허무해도

      내일은 희망이

      푸른 날개를 퍼덕이며 찾아올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오늘은 내 주머니가 비록 초라하지만

      내일은 가득 찰지도 모른다.

      오늘은 날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내일은 날 찾아주는 사람들로 차고 넘칠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비방을 해도

      자신의 일이 옳다면 결코 주눅 들거나 멈추지 마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당신에게 주어진 영광에 대해

      시샘하거나 따돌릴지라도

      당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더욱 더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내 마음 같이 믿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등을 돌리고 떠나갈지도 모른다.

      진실로 당신이 그를 이해한다면 그를 용서하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야멸차게 물러서지 마라

      내일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를 믿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여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어제는 오늘을 몰랐던 것처럼

      내일도 잘 알 수 없지만

      삶은 늘 그렇게 지내왔고

      그래서 미래는 언제나 신비롭고 영롱하다.

 

      오늘 하늘은 맑고 푸르지만

      내일은 그 하늘을 영원히 못 볼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당신에게 주어진 일에

      묵묵히 정성을 다하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 운명에 대한 오해

                                                                                 홍사성 님의 글 중에서, 일부 발췌

부처님 말씀에 "세상에는 지혜가 있다고 자처하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일체가 숙명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주장과,

일체가 존우(尊祐)의 뜻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과,

일체가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진리가 아니며 옳지 않다. 어째서 그런가.

만약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위가 숙명으로 이루어졌다든가, 존우의 뜻에 의한 것이라든가, 인도 없고 연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과 같은 10가지 악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숙명적인 것이거나, 존우의 뜻에 의한 것이거나, 인도 없고 연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주장은 진리가 아니며 옳지 않다.

만약 그런 주장들이 진리라면 사람들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모를 것이며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도 모를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바에 의하면 모든 것은 인과 연이 합하여 일어난다.

육계(.....)가 합함으로 인하여 어머니의 태에 태어나고,

그로 인하여 육처(.....)가 생기고 육처로 인하여 감각이 생기고,

감각으로 인하여 집착이 생기며, 집착으로 인하여 괴로움이 일어난다.

괴로움을 멸하고 참다운 행복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팔정도를 닦아야 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괴로움의 현실을 알아야 하고, 괴로움의 원인을 끊어야 하며,

괴로움이 멸한 상태를 증득 해야 하며, 괴로움을 멸하는 도를 닦아야 한다.

                                                                     중아함 제3 13 <도경(度經)>

 

종교가 인간의 운명 문제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는 숙작인과론(宿作因緣論)이다. 이는 일종의 숙명론(宿命論)을 말한다.

인간의 운명은 과거부터 미리 결정돼 있다는 것이다. 별자리로 점을 보거나 사주팔자를 들먹이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는 존우화작론(尊祐化作論)이다. 이는 일종의 신의론(神義論)이다.

이 세상은 즉 신의 뜻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적 권능을 가진 신에게 빌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셋째는 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이다. 이는 일종의 우연론(偶然論)이다.

모든 것은 우연이 그렇게 될 뿐 필연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운명을 지배하는 것은 없으므로 그냥 잘 먹고 놀면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쾌락주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결정적인 모순이 있다.

 인간의 행위에 대해 책임질 주체가 없다는 사실이다. 살인을 하거나 거짓말을 해도, 그것은 다 숙명이거나 신의 뜻이거나 우연이라 한다면 그것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 ……

 

그러면 무엇이 진리인가?

불교는 어떤 존재나 사건이란 모두 어떤 원인과() 조건()이 합쳐져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좋은 씨앗을 좋은 땅에 심거나, 좋은 씨앗을 나쁜 땅에 심거나, 나쁜 씨앗을 좋은 땅에 심거나, 나쁜 씨앗을 나쁜 땅에 심으면 그 결과는 상이하게 나타날 것은 자명하다 이를 인연생기론(因緣生起論) 즉 연기론(緣起論)이라고 한다.

행위의 책임주체가 있게 되고 이에 따른 의지적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악한 사람이 반성하고 착한 사람이 되거나, 반대로 착한 사람이 나쁜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도 모두 자기 책임아래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반성도 하고 노력도 해야 할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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