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뻥과자

오갑록 2009. 5. 9. 12:03

지혜로운 ......

 

■ 뻥과자

 

 

    잽싸고 야무지게 셈 잘하는 이라면, 비프스테이크 후식으로 줄대고 기다리는 영양간식 식단을 꼽을 뿐, 영양도 별 것이 아닐 것 같고, 품위도 없어 보이는 뻥과자는 비바람에 날라 온 한 조각의 폐 스치로폴 정도로 밖에는 여기지 않을 듯 하다.

 

목으로 넘기는 것은 별 것 아니나 텅 빈 공간을 씹고, 멍청한 가운데 시간을 씹으며, 지금의 한 순간을 즐기는 것이 뻥과자의 장점이 아닐까? 뻥과자는 먹기 위해 먹는 과자는 아닌성 싶다. 씹기 위해 먹고, 바람을 모으려고 씹고, 시간을 자르느라 씹는 것 같다. 많이 씹은 듯 해도 넘기는 것 없이, 한참을 먹은 듯하지만 아직도 배고픈 것이 뻥과자다.

 

지나간 먼 날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어린 날의 기억 중에 우선 손에 꼽히는 몇몇이 있다면 뻥튀기와 강냉이 튀김을 빼 놓을 수 없다. 사람들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의례 때 묻은 벙거지 모자 깊게 눌러 쓰고 석유버너 풀무를 부지런히 돌리며 강냉이 튀기는 아저씨가 있다. “휘리익~~” 휘파람이나, “뻥이요!”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강냉이 튀기 아저씨가 주변의 시선을 모은다.

그리고 나면 애들이며 아주머니들은 웅성웅성 한마디씩을 흘리며 지나곤 한다. 간 떨어지겠느니, 애 떨어 지겠느니 하는 군소리도 우스갯소리를 겸해 흐르기도 한다. 씩씩대는 석유버너로 한참을 달궈진 시커먼 배불뚝이 강냉이 뻥튀기 기계의 목 줄기에서 거무튀튀하게 때 묻은 흰 광목자루로 토해내는 하얀 안개구름 속을 뒹굴며 튀겨 나오는 강냉이 뻥튀기가 생동적이고, 그 옆에는 납작한 호떡 모양새를 한 달궈진 암놈 후라이팬에 쌀 한 수저 퍼 넣고 수놈 후라이팬을 올려 놓고 누름 쇠를 당겨 압착했다 놓으면서 동그랗게 튀겨 나오는 "뻥튀기" 뻥과자도 아삭아삭 살아 있다. 그래서 강냉이와 뻥튀기는 서로 사촌 뻘쯤 되어 보이는 뻥과자라고 기억 속에는 남아 있다.

 

한 동안 잊고 지내던 토막 난 작은 기억이지만 이따금 기억에서 떠올려 진다.

 

작은 달콤함을 곁 들여 살짝 고소한 맛과 향이 흐르고, 바삭바삭한 좋은 느낌으로 씹히는 것이 자신도 모르게 뻥과자를 즐겨 찾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얼굴 주름도 제법 늘고 흰머리도 듬성듬성 거리는 이즈음까지도 늦깎이 어린이가 되어 뻥과자에 손이 자주 가나 보다. 나만 그럴까? 하고 부끄러운 생각도 가져 보지만 주말의 꽉 막히는 행락길 도로변에 도로사정을 귀신처럼 알고서 나타나는 장사꾼을 보면 그 생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뻥튀기와 튀긴 강냉이 봉지를 흔들어 대며, 다른 한 손은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치켜 올리고서 길가에 나타나는 뻥과자 장수들이 만일 행인들이 잘 사주지 않는다면 그렇게 자주 눈에 띄일 리가 없다. 밀리는 차 길에서 운전자나 승객의 지루한 시간 때우기 용으로 적지 않게 팔리는 모양이다.

 

씹어도 먹어도 배는 찰 줄 모르니 그래서 뻥인가?

빅뱅으로 터진 초기우주나 지금의 우리 우주공간도 뻥이요, 잘만 되면 후사 하리라는 정치인 말씀도 대체로 뻥이란다. 어린 아이들은 잘 안다. 아는 것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이 성에 안차면, 뻥까지 말라고 한다. 죽고프다는 노인네나, 시집 안 가고 홀로 살겠다는 처자, 밑지고 판다는 장사치들 말들이 뻥이라고는 하지만, 그 뻥이 있기에 세상은 오히려 더 살 맛 난다고도 할 수 있다. 노인이나 처자나 장사치나 뻥 치며 사는 면면들을 허공에 그려가며 바라보면 저절로 웃음이 흐른다. 입술이 열리기만 하면 죽어지고를 되뇌면서도 장수하는 길은 직심 있게 열심으로 찾는 노인분들 모습이 진지하고, 아들 손자 거느린 여인네들 치고 소시적 언젠가 한 두 번은 결혼 안하겠노라고 뻥치지 않은 이 있을까? 라는 엉터리 상상도 우습다. 리어카 과일 행상이건 분식회계로 적발되어 CPA의 회계감사보고서에 한정의견 딱지 붙은 대기업이건 간에, 정색하며 밑 가는 장사라고 뻥까는 것은 갓 잡힌 도둑이 자기는 아니라며 손사래 치는 듯한 모습이라 생각만으로도 생동감 넘치고 재미난다. 그래서 뻥은 세상을 더욱 다채롭고 활기차게 튀겨 주는지도 모른다.

 

삶이 뻥이라고도 말은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 나름대로 제 각각은 열심으로 살아간다

 

내일도 어제처럼 뻥인 줄 알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삶을 헤엄치듯 허우적대곤 한다. 기대와 희망의 날개 위에 얼룩 진 몸을 싣고 새 아침이나, 새 해를 맞으면 잘들 해 보자며 야단들이다. 선거철만 오면 유세장 연단 위 말씀들이 뻥이라고 하면서도 청중들의 시선은 행여나 하는 기대감에 다시 부풀곤 한다.

 

까 보면 아무것 아닌 줄 알면서도 까는 동안만은 기다림과, 기대감, 희망이 엉기고 서려서 삶도 뻥과자 만큼이나 맛 나는 시간이 되곤 한다. 뻥이 있기에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재미나고 구수하여 지루한 줄 모르고 즐길 수도 있게 되나 보다. 뻥이라고 싸잡아 무시하고 눈 흘겨서는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깨닫게 된듯하다.

 

어차피 세상은 커다란 한 뭉치 뻥과자인데 ……

빅뱅으로 터진 별세계도 뻥에서 시작되고, 화산재 뒤엉키며 매장되었다는 폼페이 시도 뻥으로 시작됐다. 숭숭 구멍 뚫린 검정 맷돌도 뻥에서 온 것이요, 서로들 한 푼도 주고 받은 게 없다며, 받은 돈은 뇌물이 아니라 정치자금이라며…… 저녁 9시 뉴스 속에 예쁘게 단장한 앵커우먼의 붉은 입술을 통해 줄기차게 튀겨져서 나오는 뻥들의 뉴스도, 입 속에 아삭 거리며 달착지근한 뻥과자처럼 바스락 대며 흘러가는 달콤한 세월의 속삭임 일수도 있으려니 ……

 

엊저녁에는 뻥과자 먹다가 빅뱅 뻥 하는데 까지 상상력을 펼쳐 보았다. 그 뻥이나 고 뻥이나 같은 뻥은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쓴 웃음도 지어보며, 자정이 다 되가는 늦은 시각에 돈 안 되는 엉뚱한 생각하니 영락없는 영감님이 다 되었구나! 하고 자책하면서 잠자리를 찾는다.

 

    2009. 5.  7.

    K L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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