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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안경: 편견과 착각

오갑록 2009. 3. 24. 18:25

 강인한......

안경: 편견과 착각

        우상(偶像, idol)으로 왜곡되고 덧 칠 된 우리의 가치관

 

 

   인도는 거의 4천년 전부터 이어오던 카스트 제도를 1950년 헌법을 제정하여 없앴고, 미국도 1862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으로 흑인노예제도 폐지를 기하였으며, 어떤 국가는 무산계급인 프롤레타리아를 위하고 브르주아로 불리는 자본계층의 타파를 기치로 정치개혁이 시도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근세의 계급사회에서 현대사회로 급격한 발전을 하여 왔다. 양반과 왕족, 중인, 상민, 천인(노비, 서얼)과 같은 엄격했던 사회의 계층구조는 이제 우리사회에서 거의 사라졌다.

 

 

고대의 노예 사회, 중세의 봉건 사회처럼 계급의 구별과 대립이 있는 사회를 두고 계급사회라고 부른다. 여기서 발전하여 현대와 같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까지 이르렀고 이념대립이라고 하는 대조적인 용어를 낳게 했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를 지향하는 사상으로 기본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 원칙,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하며, 공산주의란 사유재산에 근거한 계급 지배를 없이하며 무계급 사회를 지향하고, 생산 수단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사회 체제이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는 이념이라는 이름에서 보면 상반된 듯 하면서도 국민을 위한다는 취지는 서로 다름이 없다. 권리며 의무, 자격이 차별 없이 한결같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 한다는 평등과 박애 정신을 표방함에는 부분적으로나마 유사성이 있다.

 

한편에서는 지금 민주주의가 한창 꽃 피는 시기라고들 하지만, 그 그늘 뒤에 어두운 구석은 그래도 남아 있다. 인도는 카스트 제도를 없앤 지 오래라고 해도 말단 계층인 달리트들의 부당한 차별은 여전하다고 한다. 노예해방 150년 역사의 미국도 당선된 오바마 흑인대통령을 보며 눈물 철철 흘리던 흑인들의 영상에서 그들의 고단하고 차별화 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양반과 상놈의 계층 구분을 없앴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과연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 할 수 있을까? 말과 생각을 달리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 계층구조는 이조 시대 그 때나 진배없이 상존 하는 것은 아닐까?

 

가진 자와 없는 자, 식자와 무식자, 권력을 쥔 자와 그 아래에 휘둘리고 있는 자, 거래 관계가 있다면 팔고자 하는 자와 사고자 하는 자, 거대 자본의 힘 아래 기술과 지식으로 뭉쳐 진 보이지 않는 큰 손, 그 손 아귀에서 헤어날 길 없는 듯한 현대인들의 하루살이 일상은 살펴보면 어렵게 지내는 면면이 적지 않다. 

 

 

곡물, 석유, 유화, 전자, 자동차, 메이저라는 이름으로 거머쥔 자본의 힘 아래서 모르는 사이에 예속된 현대인의 삶……, 자식 낳으며 살아가는 단순한 동물의 개념에서 성인남녀의 혼인 적령기는 20대 초반 전후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는 30대를 넘겨서야 결혼 여건이 될만큼 각박하고 어려운 사회구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새 시대라는 색안경 너머로 보이는 새로운 가치 기준을 쫓아서 더 좋은 것을 향하여 열심으로 뛰어 온 우리 사회구조 영향이다. 이러한 사회구조나 가치기준 형성에는 보이지 않는 큰 손들의 그늘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까? 더 따스하고 배는 불러졌지만 시집장가도 제 때 못 갈 만큼 더 각박해진 사회라는 사실을 잊은 채 우리가 생활 하는 것은 아닐까? 열심으로 살아 간다는 것과 인간답게 살아 가는 것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

 

사회의 계층을 달리하는 약자와 강자가 서로를 마주 보는 견해에는 다른 면이 상존한다. 그들 대부분은 프랜시스 베이컨이 설파한 4가지 종류의 우상 중 하나의 이유로 한 편으로 편향되어 서로를 보거나 서로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의 시력이 2.0인 건강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보이는 사물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한다. 인간이 볼 수 있는 그 것에는 항상 한계가 있음을 잠시라도 잊고 착각한다. 돋보기를 쓰거나 색안경을 쓰고 이를 통해 사물을 확인한다. 이 때 보이는 바 그대로를 인식한다. 크기가 다르고 색상이 다르다고 인정하려고 한다. 이 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일부가 아닌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며 판단 한다.

 

독실한 믿음으로 양손 굳게 모아 기도하는 신자를 보면서 그 믿음이 착각이라고 어느 누구도 쉽게 말하지는 못한다. 진정한 종교인, 진정한 사제라면, 양 손 모으며 기원하는 그 믿음이야말로 꼭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말씀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 믿음에 의심하는 이웃이 있다고 해도, 그리 말하는 이를 두고 돌팔이라고, 사기꾼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돋보기 넘어 보이는 사물이 올바른 크지 인지, 색안경을 통하여 보이는 빨강색이 과연 제대로 보이는 색인지를 자신있게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언제나 그것은 상대적인 크기며, 상대적인 색감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언어란 자기합리화에 이용되는 인간의 중요한 도구이다. 인류의 발전역사와 함께 자기포장을 위한 언어도 함께 끝없이 진화하여 왔을 것이다. 그 언어로 포장 된 속내를 뜯어 보노라면, 스스로는 언제나 정당하다고 여기겠지만 타자(他者)의 눈으로 본다면 왜곡되고 채색 된 편견인 경우 또한 많을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신기관 (Novum Organum, 1620)”에서 명석한 사고를 가로막는 그릇된 정신 경향을 가리키는 4가지 종류의 우상(偶像, Idol)을 지적했다.

 

   . 환경이 인간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인류의 턱없는 착각 (종족의 우상)

   . 자신의 기호나 관점이 보편적/합리적/전체적이라는 무의식적인 착각 (동굴의 우상)

   . 언어가 대상과 일치할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 (시장의 우상)

   . 집단의 가치관/문화/이념/종교를 배타적으로 고집 (극장의 우상)

 

 

식탁 앞에서의 편식도 해가 되듯, 이와 같은 편견들도 자신이나 사회에 해가 될 것임이 자명하다. 그 편견에서 시작된 착각을 떨쳐 낼 때, 자신의 발전과 건강하고 밝은 사회, 아름다운 세상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우월하다고 보는 집단의 인사들이 그 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집단을 대하는 진정한 태도들은 어떠한가? 때로는 사랑이니 동정이니 협동이니 하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겉치장을 하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속내를 알고서는 마음 상해 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눈을 감고 생각하여 보라, 그들이 자기네 보다 약한 집단의 타자(他者)를 얼마나 우습게 보며, 때로는 멸시와 경멸 어린 눈 시위를 날리곤 하던가? 지나간 짧은 기억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의사, 정치인, 군인, 사업가, 문인, 종교인…… 의학 언저리의 다른 학문은 학문처럼 여기지 못하는 연륜 있는 의사 분을 대하기도 하고, 선거철만 지나면 안하무인으로 돌변하는 위정자도 적지 않게 경험하곤 한다. 군사력이건 재력이건 필력이건 간에 그 힘이 우월하다고 판단되면 도에 넘게 곁을 넘보는 개인이나 집단은 우리 주변에 허다하다. 여기서 국가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종교계를 자세히 짚어 보자. 종교란 현세와 내세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수행하는 과정은 인간이 하는 것이므로 한 솥 밥을 먹는 같은 종교집단이라 해도 이를 집행하는 계층(종교를 업으로 하는 이)과 집행자를 따르는 무리(신도)들 간에는 서로 다른 의견이나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서로를 대하는 자세 또한 한결같지 못함을 뉴스에서 종종 접하곤 한다.

 

더구나 종교적 윤리체계는 전통적 가치관에 뿌리를 두므로 새로운 사회환경에 어울리지 못하는 경직성을 지닌다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사회적 갈등과 함께 종교 간의 갈등 또한 심각하다. 이러한 갈등의 골은 민족이나 국가간에 대 물림 하는 전쟁의 미궁에서 허덕이게 한 사나운 역사도 적지 않았다. 

 

 

자기 자식만 잘나 뵈며, 내 고향 사투리가 정겹고, 우리나라 만만세에, 흰둥이 검둥이 보다는 동양인이 가깝게 생각된다. 마찬가지로 내가 속하지 않은 이교도에는 거부감 들기 십상이다. 스스로를 포함한 소속된 조직의 당위성은 그것이 국가관, 시대관, 종교관, 가치관 ……  어느 것이나 “나”를 중심으로 한다. 서로가 그 중심에 서서 평가하고, 상대와는 끝 없는 다툼으로 이어진다. 마치 이것이 삶의 본 모습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때로는 화합과 평화를 소리쳐 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누구를 위한 화합과 평화이던가? 언제나 자기중심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나” 자신도 그렇다. 때와 장소를 달리하며 변화무쌍하게 상반되는 다른 생각으로 다툼이 끊이지 않고는 하지만, 결국 “나” 좋은 곳으로 방향 틀고는 한다. 이를 두고 때로는 헤맨다고도 말하고 때로는 망설인다고도 이야기 한다. 자기합리화라고도 한다.

 

 

옳고 그름, 선과 악,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만족과 불만, 평온과 불안 ……

 

누구나 적어도 한가지씩은 자기에게 맞는 색안경을 쓰고 살아 간다. 시력이 좋아 안경은 안 쓰노라고 주장해도 소용은 없다. 이세상에 나오면서 천연렌즈 두 개씩은 달고 나왔으니 그 것을 통해서 보는 세상은 부모로부터 받은 질 좋은 유기물 안경알을 통해 보는 세상일 것이다.

 

나의 눈에 들어 와서 내가 수용하는 가시광선 특정 파장의 색상만을 보고 사물을 이해하며 이 세상을 바라 본다. 그리고 판단하고 평가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옳다고 믿고 싶어 한다. 색안경을 건너 온 사물이며 사상들이 왜곡되고 채색 된 편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하게 멀리 한 채 우리들은 살아 간다.

 

어느 일이건 자신과 가족이 옳고, 조국, 우리민족,  내가 속한 조직, 내가 믿는 신앙 …… 우리만이 항상 정당하며 옳다고 생각한다. 브르주아인가 아닌가로 양분되고 차별화 된 세상, 내가 속한 성안의 사람들만 따스하고 배부르면 그것은 당연하며 옳다고 생각한다.  기업집단도, 노동자 집단도, 의사집단도, 정당인도, 종교집단도 심지어 국가나 민족도 예외는 없다.

 

먹고 마시며 보고 듣고 평가한다는 것 모두가 색안경을 통해 느낀 잔상일 뿐, 실체는 아닐 수도 있다는 허황된 의문을 가져 본다면 어떨까?

 

    2009.3.24.

    오갑록 (K. L. Oh)

 

 

  카스트제도

 

카스트 제도는 아리아 인이 갠지스 강 유역으로 진출 할 무렵에 만든 엄격한 계급제도이다. 2천년~4천년 전에 북인도에는 아프리카 계통의 드라비다 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백인 계열의 아리아 인들이 쳐 들어와 인종이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하여 바르나(Varna) 라는 4가지 계급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가장 유력하다.

 

이 제도는 인도의 독특한 사회 제도로서 인도인의 일상 생활, 풍습, 사상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회 계급 제도인 카스트는 '모든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난다'는 인식을 기본 바탕으로 한다.

 

인도인을 크게 네 계급 즉 브라만(5%, 사제자, 승려, 교육자), 크샤트리아(10%, 무사, 통치자), 바이샤(15%, 농민, 상민), 수드라(10%, 노동자)로 구분하여 아리아 인은 위의 세계급으로 구분하고 비 아리아 인을 최하층인 수드라로 규정하였다. 계급은 출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위의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봉쇄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신의 입에서 브라만, 팔에서 크샤트리아, 허벅지에서 바이샤, 발에서 수드라가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아웃카스트라고 하는 다섯번 째 계층인 아츠유타(achuta), 또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 있다. '억압받은 자들'이란 의미의 달리트(Dalit)라고도 한다. 인도 인구의 약 15%에 해당하는 '5계급' 불가촉천민은 대부분 오물수거, 시체처리, 도살 등의 일에만 종사할 수 있어 절대적 빈곤 속에서 엄격한 차별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다. 카스트의 4개 계급 밖에 있어서 이른바 '오염된'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인도인 6명 중 1명꼴이 달리트이다. 이들은 길에 침을 뱉을 수 없어 목에 침을 뱉는 오지통을 달고 다녀야 하고,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허리춤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한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 수 없고, 힌두교 사원에 들어가 기도도 할 수 없다.

 

인도는 1950년 헌법이 선포됨과 동시에 불가촉천민 폐지를 선언했으며 1955년 법이 제정되면서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16천만 달리트들은 부당한 차별과 폭력에 시달린다고 한다.

 

힌두교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 카스트 제도는 인도의 기본적 종교 관념인 윤회와 업 사상을 이론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전생의 행위에 따라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 태어날 수 있다는 업 사상은 사실상 카스트 제도에 대한 철학적인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가 인도 역사에 미친 영향은 인도인의 일상생활은 물론 풍습 및 사상전반을 지배하였으며, 윤회와 업 사상에 의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졌다. 이 제도는 인도 사회를 수 많은 별개 단위로 갈라 놓아 정치 사회적으로 협조할 수 있는 길을 방해함으로써 발전을 저해하는 해독을 끼쳤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신분에 알맞은 생활을 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인도 사회를 안정시키는데 공헌하기도 했다.

 

□  미국의 흑백 인종차별

 

1862.9.22.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한다. 그러나 기존의 노예 주에는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고 의회 통과도 안된 채, 링컨 대통령의 선언으로 연방 주의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게 된다. 1865.12.18. Thirteenth Amendment에 의해서 전 미국에 있는 노예들이 자유를 갖게 된다. 비록 법적으로는 노예제가 철폐되었지만 미국의 인종차별은 아직까지도 존재한다. 흑인과 백인이 같은 무대에서 춤도 못 췄고, 식당에서도 흑인존 백인존 이런 형식으로 나눠져 있었다.

 

미국은 남부와 북부로 나뉘는데, 북부는 산업이 발달로 노예가 필요 없는 산업 구조며, 전통적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적이면서 외국과의 무역에 예민하며 강한 연방국가를 선호한다. 반면에 남부는 농업이 발달되었고, 특히 목화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주 저렴한 노예가 필요했다. 전통적으로 영국에 우호적이고, 자업자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보호무역주의 외국과의 무역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런 성향에 따라 연방정부 보다 주정부 즉 자치정부가 더 힘이 센 것을 선호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노예에 대한 인식에서의 충돌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남북관의 갈등이 결국에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경제정책, 권력갈등이라고 본다.  

                                                                                                                     (: 알렉 중에서)

 

□   브루주아

 

부르주아지(프랑스어: bourgeoisie)는 중산층이란 뜻이었으나, 마르크스주의 이후 현대에는 자본가 계급을 의미한다. 이의 형용사는 부르주아(프랑스어: bourgois)이다.

 

프랑스어로 ‘성’()을 의미하는 bourg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부를 축적한 계급은 성안에 살고 그렇지 못한 계급은 성밖에서 살았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이러한 유래에 따라 부르주아는 자본가 계급을 뜻하게 되었으며, 반대말은 무산자를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이다. 이들은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등장했으며 프랑스 대혁명 역사에서는 영세상인이나 일용직 노동자 등의 민중과 기득권층(로마 가톨릭 성직자, 왕족, 귀족) 사이의 제3계층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였다. 민중과는 달리 재산과 학식을 갖고 있었지만 기득권층의 권력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 시민혁명으로 기득권층이 몰락한 이후에는 자본가라는 이름으로 산업혁명 시대의 지배계급이 되었으며, 노동자 계급과의 갈등으로 사회주의의 도전을 받게 된다.

 

프롤레타리아트(독일어: Proletariat)는 사회적으로 하위 계급을 일컫는다. 무산 계급(無産階級)이라고도 한다. 원 의미는 로마 제국 당시 군에 입대시킬 자신들의 아들(라틴어: proles, 자식) 말고는 다른 부를 소유하지 못하는 이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그 후 카를 마르크스가 사회학적인 용어로 도입하였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란 "자기 자신의 생산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아서 살기 위해 부득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현대 임금 노동자"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노동자 계급을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부른다.                                                                                                                 (From: Wikipedia)

 

□  종교

 

종교는 불합리한 사고체계이다. 종교는 첫째로 사실과 동떨어진 세계관에 머물고 있고, 둘째로 그 가치관이 항상 합리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종교적 윤리체계는 전통적 가치관에 사로잡혀있어 새로운 사회환경에 어울리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경직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회적 갈등을 빚어내고 있어 종교들 사이의 갈등이 심각하다. 종교적 신앙의 다름에 의한 갈등이 항상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고, 종교가 제도화될수록 거기서 초래되는 갈등은 심각한 파급효과를 일으킨다. 문화, 특히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생활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종교가 결국엔 사람들의 평화적 공존과 인류공동체를 이루는 데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수행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지금껏 쌓아온 인간사회의 문명을 파괴하거나 종국에는 자멸시킬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종교 자체의 문명사적 문제점이 있다.              (배동인, 종교란 무엇인가? 중에서)

 

종교란 일반적으로 현세와 내세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종교(宗敎, religion)는 초월적 절대자 또는 신성시하는 대상을 경외(敬畏)하는 신념체계를 기반으로 하여, 신앙(信仰), 기원(祈願), 예배(禮拜)의 행위로써 구제, 축복,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현상의 하나이다. 불교의 경우, 이른바 “상구보리(上求菩璃),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이상으로 삼는다. , 최상의 자아완성, 모든 인류의 구제, 인류의 평화적인 공존이다. 종교의 일반적 기능은 현실 세계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서 생기는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백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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