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꼬리 자르기

오갑록 2008. 12. 30. 11:59

밝고 상쾌한 ...... 

  

■  꼬리 자르기

 

 

         도마뱀은 지구상에 3,400 여 종이 있으며, 몸의 길이는 작게는 2cm부터 큰 것은 3m짜리까지도 있다고 한다. 도마뱀들은 위기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생존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천적에게 꼬리가 잡히게 되면 꼬리가 끊어지게 되고, 꼬리는 거칠게 꿈틀대어, 그 동안 자신은 적에게서 탈출 할 기회를 갖게 된다. 도마뱀들은 꼬리에 영양분을 저장하기 때문에 애완용으로 이들을 사육할 때는 손실 된 꼬리의 영양분을 음식으로 적절히 보충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꼬리는 바로 재생되지만 꼬리뼈는 재생되지 않으며, 본래 보다는 왜소한 모양으로 성장하는데, 연골과 비슷한 백색의 힘줄이 생긴다고 한다.

 

신체의 일부가 잘려도 다시 재생되는 것은 자기절단 또는 자절이라고도 하는데, 동물이 몸의 일부를 스스로 절단하여 생명을 유지하려는 현상이다. 자절은 무척추 동물에 많고, 편형동물(촌충, 와충), 환형동물(지렁이), 연체동물(문어, 오징어), 극피동물(바다나리, 불가사리), 갑각류(, 새우) 및 곤충류와 척추동물의 도마뱀 등에서 볼 수 있다. 자절은 대부분 탈리절이라고 하는 미리 정해진 일정한 부위에서 일어난다. 도마뱀의 꼬리에는 추골의 중앙부에 절단되기 쉽게 되어 있는 곳이 몇 군데 있고, 게는 걷는 다리의 기절과 좌절의 유합부가 절단되기 쉽게 되어 있다. 이 탈리절에는 자절 때의 출혈을 방지하기 위한 격막이 있으며, 근육이 심하게 수축하여 절단이 일어나게 된다고 한다.

 

자절은 중추신경계와 관련하여 일어나므로, 신경을 마취시키면 자절 부위를 건드려도 절단이 일어나지 않으며, 반대로 그 부위를 건드리지 않아도 중추신경의 적당한 부위를 자극하면 자절이 일어난다. 자절은 재생력이 강하므로 대개의 경우 상실된 기관은 그 후 재생된다. , 개체의 증식을 목적으로 한 자절을 생식자절이라고 한다.

 

우리 인체도 손톱이나 머리카락은 지속적으로 나오지만, 자르면 다시 성장하여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장기가 있다. 위암 등으로 인하여 위 절제 수술을 받는 경우인데, 초기 위암의 경우라면 보통 10-30% 정도를 잘라내며, 더 심하여 위 전체를 다 절제하여도 6개월 정도가 지나면 식도의 밑부분에 연결시켜 놓았던 소장이 늘어나서 위의 역할을 하게 되므로 식사를 할 때나 영양상태에는 큰 지장은 없다고 한다.

 

이렇듯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신체의 일부를 자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생활의 편리성이나 멋을 부리기 위해서 신체의 일부를 자르는 경우도 있다. 이발, 손톱 깎기, 군살 도려 내기 같은 단순한 자르기서 부터  미용을 위해 점을 빼거나 코의 골격을 손 대는 성형수술 등의 자르기도 있다. 

 

일부 식물의 경우 씨를 불리는 수단으로서 자르기를 한다. 어떤 수목은 가지를 잘라 뿌리 내리고 순을 내어 묘목으로 쓰이고, 씨 감자는 싹 눈이 있는 부위를 잘라서 심고, 고구마는 순을 내어 줄기가  어느 정도 크면, 그 줄기를 토막내어 자른 후, 뿌리 내려 씨 불리기를 한다. 동물의 경우는 촌충이나 불가사리처럼 잘라 내면 각각 별도 개체로서 성장하여 번식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다수는 암수의 형태를 이루며 암수교접에 의해 번식한다. 식물의 씨앗이나 동물의 정자 난자도 엄밀하게 따지고 본다면 몸통의 일부인 씨앗, 정자, 난자가 몸에서 잘려 나온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 개체의 증식을 목적으로 한 자절인 생식자절을 한 것이다.

 

동식물의 몸통을 자르는 형태들을 주섬주섬 억지로 엮어 본 모습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들의 생활행태에서는 어떤 모습의 자르기가 진행되고 있을까? 통상 일상생활 중에 해 오던 일을 스스로 그만둘 때, 무엇인가를 “끊는다”고 말 한다. 일종의 자르기이다.

 

새해만 되면 흡연 중인 많은 중년 남성들이 스스로 다짐하곤 하는 말이 있다. 새해에는 담배를 "끊겠다"는 다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하여 몇 일을 버티지 못하고 그 자르기를 포기하기 일쑤이기는 하지만…… 하기야 나도 올 봄에 HbA1c 8.1%나 된다기에 화들짝 놀라서 그 알량하게 마시던 술을 끊은 지 반년 가까이 된다. 그러나 새해에도 계속해서 안마실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처럼 쉽게 자르기는 했는데 얼마지 않아 슬금슬금 꽁무니가 기어 나오는 형국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놀음이나 마약 환자도 그 그늘에서 벗어 나려면 자신의 의지와 함께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끊으려 하는 목적이나 목표 설정이 분명하다면, 엿가락 자른 후 그 위에 밀가루 뿌리며 다시 들어 붙지 못하도록 하는 것처럼, 별도의 조처를 하겠지만 세상 일이란 게 그리 분명한 사안이 흔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서 끊은 듯하다가도 원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마음 속에 품은 바를 잘라내야 할 때도 장기나 육신의 마디를 잘라 내는 것만큼이나 아픈 것이 있다. 통상 뼈아픈 경험을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 것은 채우고자 하는 욕심의 크기에 비례하는 마음 한 편의 아픔이다. 이성, 가족, …… 살아가는 여정에서 한 동안 이웃했던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떠나 보내며 품었던 사랑을 잘라 내야 할 때 그렇다. 안방극장의 주제들처럼 애틋한 사랑의 이별도 그렇거니와, 어린 시절 학년이 바뀌며 1년간 함께했던 짝꿍을 서로 다른 반으로 갈리며 마음 속 깊이 느꼈던 서운함도 그러한 부류 중의 한 가지는 아니었을까? 단지 아직 때묻지 아니한 여린 심성 때문이었을까?  몇 해 전 대북사업을 추진해 오던 H그룹 회장의 갑작스레 타계했다는 뉴스와 같이, 경영환경 악화로 본의 아니게 사업의 한 분야를 포기하거나, 부나 명예를 잘리게 되는 경우도 목숨이 잘리는 것만큼이나 처절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목표를 설정하고 자르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신장, 간과 같은 장기의 일부를 잘라 부모, 형제 같은 사랑하는 이에게 이식하여 몸의 일부를 나누기도 하고, 불우 이웃을 위해 봉사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더러는 의술이며 습득한 기술을 개인의 시간을 잘라내어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활동을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일생 동안 애써 모은 재산을 싹둑 잘라 사회에 헌납하는 분도 적지 않다. 이번 년 말에는 38년 만에 처음 보는 고교 동창을 친구 몇과 어울려서 대전 지방으로 내려가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그는 고향 땅에서 양로원을 설립하여 이 사회재단에 선대로부터 대 물려 받은 적지 않은 부지를 잘라서 귀속시켜 십여 년간을 운영하고 있었다. 무의탁 노인을 포함한 활동이 여의치 못한 수 십 명을 부인과 함께 돌보고 있었다. 그는 학생시절에도 어릴 적 겪은 병으로 다리가 불편한 편이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 때는 불만과 적대감이 은연중 묻어나는 듯 느꼈었고, 과격한 편의 학생이었다고 기억된다. 오랜만에 만난 이 친구가 그러한 어려운 신체 조건을 극복하고 사회단체를 구성하여 자선사업을 열심히 추진하고 있는데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눔의 덕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절로 우러났다. 자르고 나눠서 가치와 보람이 커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만남이었다.    

 

마음 한 편에 자리잡은 생각을 자르거나 잘려야 할 것들이 사랑만은 아니다. 부질없는 욕심 못지 않은 미움, 증오, 놀람, 괴로움, 노여움…… 이러한 생각이나 감정들도 도마뱀 꼬리처럼 자르면 새로 돋아나곤 한다. 잘려진 생각이나 감정들을 우리는 "잊는다"고 말한다. 그것이 새로 돋아나는 것을 "기억"이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지난날의 먼 회상은 흐릿한 옅은 농도의 메마른 감정으로 덧칠 된 기억일 뿐이다. 그 때 그 순간의 격한 감정들이 그대로 되살아나게 된다면 편하게 살아갈 사람이 흔치는 못할 것만 같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표현이 그럴 듯 하다.      

 

속된 말로, 담배 끊고, 술 끊고, 그리고 여자 마저 끊고 나면 죽는 일 만 남는다고 한다. 목숨이 끊기는 것이다. 목으로 드나드는 숨을 잘라 버리는 것, 도마뱀 꼬리처럼 자르면 다시 나지 못하는 것이 생명 줄인 모양이다. 어순이나 어감으로만 본다면 전부 끊음은 좋다는 말만은 아닌 듯 하다.

 

그렇지만, 강한 믿음으로 중무장된 일부 종교인들은 믿음이 지극하다면 영생을 얻으리라고 다짐하며 포교에 열중한다. 불교의 대반열반경에서는 부처님이 제자인 '아난'에게 하신 말씀 중에 '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빠짐없이 덧없음(無常)으로 귀착되는 것이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일지라도 언제인가는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너와 나, 육신과 육신, 육신과 정신…… 서로의 인연이 잘리고, 그 헤어짐이 무상으로 돌아가리라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윤회사상이 자르기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지난 해는 어~ 하는 사이 술을 끊었다지만, 새해에는 또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을 더(?) 끊을지…… 쓸데없는 공상만 회전속도를 더해가며 굴려 본다.

 

2008.12.30.

K L Oh

 

 

        님의 침묵(沈默)

                                             한용운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갓슴니다

 

푸른산빗을 깨치고

단풍나무 숩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거러서

참어 떨치고 갓슴니다

 

황금(黃金)의 꽃가티

굿고 빗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듸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나러 갓슴니다

 

날카로은 첫<키쓰>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너노코

뒷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나는 향긔로은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은 님의 얼골에

눈 멀었슴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맛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녀하고

경계하지 아니 한 것은 아니지만

리별은

뜻밧긔 일이 되고

놀난 가슴은

새로은 슬븜에 터짐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것잡을 수 업는 슬븜의 힘을 옴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우리는

맛날 때에

떠날 것을 염녀 하는 것과 가티

떠날 때에

다시 맛날 것을 믿슴니다

 

아아

님은 갓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얏슴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돔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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