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많다는 것

오갑록 2008. 12. 3. 14:24

많고 다복한 ......

 

■ 많다는 것

 

 

        길고 짧음, 많고 적음, 밝고 어두움, 음의 높낮이, 향기와 악취, 쓰거나 시고 닮, ……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와 맛을 보는 등의 우리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대부분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좋음과 나쁨, 아니면 선한 것과 선하지 못한 것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두 가지는 얼핏 상반된 서로 “반대” 되는 의미처럼 여겨지지만 반대의 엄밀한 의미란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본다면, 느낌에 서로 상대적인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서로 반대가 되는 느낌이란 없는 것 같다. 반대라는 의미는 두 사물이 모양, 위치, 방향, 순서 따위에서 등지거나 서로 맞선 것.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하거나, 어떤 행동이나 견해, 제안 따위에 따르지 아니하고 맞서 거스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짧음은 긴 것과 상대비교 하여 볼 때 조금(?) 짧을 뿐 서로 반대는 아니다.

적음도 많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이 조금 적을 뿐이지 서로 반대는 아니다.

음의 높고 낮음도 음파의 진동 폭이나 높이가 상대적으로 조금 차이가 있을 뿐 서로 반대는 아니다.

명암도 파장의 높낮이와 진폭 차이로 인해서 명도에 차이가 있다고 서로 반대로 볼 수 있을까?

꽃 향기와 악취는 냄새의 느낌이 좋은가 나쁜가의 차이일 뿐 서로 반대는 아니며

쓰고 단 것, 짜고 싱거운 것도 나의 입맛에 정도의 차이를 뜻함이지 서로 반대라고 할 수는 없다.

진정한 반대의 의미들은 무엇이 있을까? 마주보거나 180도 서로 다른 방향의 화살표, 가는 것과 오는 것,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을 반대라고 나열해 놓고 본다면,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느낌은 그 정도에 크기 차이가 있을 뿐, 서로 상반된 것들은 아니라는 것이 쉽게 이해될 것 같다. 

 

곡선을 한없이 잘게 자르면 어느 점에서는 직선이 될 것이며, 험난한 파도로 일렁이는 넓은 바다도 멀리서 본다면 수평선이 되고, 높은 산 고봉준령이나 계곡도 우주선에서 내려다 본 지구의 사진은 톱니바퀴 마냥 요철을 그리지 아니하고 동그란 원형을 그리고 있다. 더 멀리서 본다면 한 개의 작은 별, 점으로 보일 것이다.   

 

이처럼, 대상을 한없이 크게 하거나, 아주 작게 한다면 직선이 되기도 하고 수평선이 되기도 하며, 지평선도 되며 동그란 원형이나 한 개의 점으로 수렴 되기도 한다. 사물이 그러한 것처럼 시간이나 감각으로 받아들인 느낌도 같은 이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본다.

 

많다는 것, 크다는 것은 반대개념으로 적음이나 작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 눈 안으로 들어 온 감각의 상대적인 크기를 뜻할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비해서 많고 크다는 것일까? 당연히, 마음에 품고 있는 기억 속의 잣대에 비해서 크거나 많은 것일 게다. 기억 속의 잣대는 순간적으로 본 바로 옆의 것이 될 수도 있고, 이웃이나 먼나라, 시기적으로 동시대의 것 또는 예전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사안일지라도 자신이 어느 것을 마음에 품고 있는지에 따라 크거나 많다고 느끼기도 하고 작거나 적게 느끼기도 하게 된다. 때문에 마음에 품은 크기를 비약만 할 수 있다면, 같은 크기를 놓고도 허공처럼 무한하게 크고 많다고 느낄 수도 있고, 수렴되어 흐릿한 한 개의 점만도 못하게 작거나 적게 느낄 수도 있다.       

 

나는 167 cm, 60 kg 키와 몸무게를 두고 왜소하다고 여기며 불만스레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음속의 기준되는 잣대를 자신에게 맞추고 본다면 크고 작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키 큰 이를 보면, “으음~ 저 사람은 죽으면 관 짝이 더 길어야 할 터, 관 값 꽤나 들겠구먼~~” , 우람한 체구의 사람을 보면 “무거운 짐 지고 다니느라, 발 뒷꿈치 힘 꽤나 쓰겠는걸~~” 정도로 밖에…… ,  크고 작음이란 고작해야 한 뼘 차, 그곳에 큰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때로는 우리사회가 틀에 찍힌 국화빵처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아니한 규격인간을 요구하기는 하지만…… 군대도, 입사도, 결혼도, …… 그렇다 해서 성공이며 영광, 삶과 죽음에도 국화빵 같은 규격이 적용되지는 않는 것만 같다. 작은 이가 잘 살기도 하며, 큰 이라 해서 아프지 않거나 죽음을 피하지는 못한다.

 

춥고 배고프면 몸이 고달프다. 마음도 따라서 서글퍼 진다. 누구나 한 개씩 품고 다니는 가죽주머니 그 곳만 마음에 닿는 음식물로 가득 찬다면, 그리고 몸이 춥지 않다면, 그 이상의 것이란 생각하기 따라서, 허공처럼 점처럼, 크게 보일 수도 적게 보일 수도 있다. 잘 모르는 내일과 후손까지 영원히 배부르고 따스하기 위해서 모으려면, 아무리 많더라도 항상 부족할 뿐, 많을 수 없는 것이 우리 모두 닮은꼴로 가진 욕심이다. 많다는 것, 언제까지나 만족할 만큼 많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는 언제나 모자라고 배고프기 때문이다. 수 백만 평의 사유지를 갖고 있는 이도 땅에 대한 애착은 줄지 않으며, 억만 금을 가진 자도 서푼 돈에 눈이 휘둥그러지기 일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조국과 민족, 온 인류까지를 생각해서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춥고 배고프지만 않다면, 많고 적음이란 마음 속 잣대의 상대수치에 불과하지 않을까? 내가 본 것이나 내가 가진 것이 생각에 따라, 한없이 많은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맛과 멋도 예외는 아니다. 꼭 쌀밥만 좋고 배부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콩밥에 보리밥 찾아 골목길을 헤맬 때도 있다. 틀에 박힌 사회의 통념을 벗어나, 제 멋에 사는 이도 많다. 콧수염도 길러 보고, 더벅머리, 갈기머리도 하여 보고, 은밀한 속살이 보이도록 부로 뜯은 바지도 입어 보고……, 좋고 선하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기준할 수도 있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기준 할 수도 있다. 좋음과 그렇지 못함도 수평선이나 지평선을 닮았다. 작게 보아서 굴곡이 있을 뿐, 크게 보면 한 줄기의 흐름 이자 삶일 뿐이다. 좋고 선함이 따로 있고, 나쁘고 사악함이 따로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단지 지금 가진 스스로의 마음 속 잣대가 안으로 굽었는가 아니면 밖으로 굽었는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최근 탤런트 옥소리가 헌법소원 올린 것이 깨져서, 간통죄를 피하지 못하고 팝페라 가수 정모씨와 함께 구형을 받았다고 한다. 남녀간의 사랑행각을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쁘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 사회의 틀을 유지하려면 구형을 받을 만큼 나쁜 짓이 된 것이다. 5천년 전쯤의 사회였다면, 힘 센 놈이 눈 맞아 서로 일을 치른다 하여 좋다 나쁘다를 평하지 않았을 듯하다. 단지, 지금 우리사회이기 때문에, 아직은 죄인으로 남아야 할 짝꿍이 된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느낌도 같은 이치다. 가령 여인의 미에 관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자신의 느낌이 무엇인가에 따라 예쁘게도 추하게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제 눈에 안경이라고도 말한다. 내 여자가 엇비슷한 처지 친구의 여자 보다 못할 때에 마음이 쓰이는 것이지, 억만장자의 여자만 못하다거나, 엊그제 저녁때 본 영화 속 여주인공의 미모만 못하다고, 또는 역사 속의 인물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 만 못하다고 속상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결국 마음 속 초점을 어디에 맞추고 보는지에 따라 허공으로 무한 발산되거나 점처럼 수렴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위대한 예술품이며, 대자연이나 동식물의 아름다움도 이러한 이치에서 얼마나 다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시간의 길고 짧음도 상대적인 길이일 뿐 생각하기 따라서는 수평선도 지평선도 될 수 있다. 생각에 따라 영원이 될 수도 있고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앞에 닥친 색색의 시간들, 사랑도 기쁨도 슬픔도 증오도 고통도 영원이 될 수도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오늘 지금까지 살아 온 나의 삶이 영원으로 이어 질 만큼 긴 것일 수도, 덧없이 흘린 순간에 불과 할 수 도 있다. 마음 속의 잣대에 따라 그 길이는 길어 질 수도 짧아 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시한부 명을 이어가는 투병자와 달음질 치며 건강미 넘치는 이가 앞으로 보낼 수 있는 나머지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면, 생의 남은 시간의 길고 짧음을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어느 쪽이던, 영원이 될 수도 순간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여보면 안될까?

 

2008.12.3.()

K. L. Oh

어느 사람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라느니 하는 소리는 아주 당치 않다.

거상(巨象)의 자결을 다만 덩치 큰 구경거리로 밖에는 느끼지 못한 바보도 있을 것이며,

봄 들판에 부유 하는 민들레 씨앗 속에 영원을 본 사람도 있다. 

(최인훈 “광장” )

어떠한 길도 하나의 길에 불과한 것이며, 너의 마음이 원치 않는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너에게나 다른 이에게나 무례한 일이 아니다.

모든 길을 가까이, 자세히 보아라.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몇 번이고 해 보아라.

그리고 오직 너 자신에게만 한 가지를 물어보아라. 이 길이 마음을 담았느냐?

그렇다면 그 길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소용 없는 길이다.

(Carlos Castan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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