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무거운 짐

오갑록 2008. 11. 16. 13:38

겸손과 덕망 ......   

 

■ 무거운 짐

   

찬 바람 이는 쌀쌀한 늦가을, 떨어지는 가랑잎 밟히는 소리에 스산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들어선다. 오늘도 습관처럼 인기척과 함께 어머님을 찾아 방문을 연다. 추위를 느끼시는 듯, 뒷방 구석에서 TV에 시선을 맞춘 채 웅크리고 앉아 계시는 모습이 더욱 초라하고 힘없어 보인다, 어머님의 주름치마 폭은 한없이 넓어만 보일 적이 한 때는 있었다. 너그럽고 사랑스럽고 인자하시며 성경 구절 그 말 만큼이나 항상 용서하며 감싸 줄 것만 같다고 생각되던 어릴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문을 열고 보는 순간 멈춘 그 분과의 시선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가 여기에 계심이 스치는 듯 느껴 온다. 아직도 벗어 던지지 못하신 채, 무거운 짐 지고 버티시느라 안간 힘을 쓰시고 계시는 그 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쓸데 없는 자질구레한 욕망들…… 짜다 싱겁다, 많다 적다, 크다 작다, 질다 되다, 지지지 않고 왜 볶았느냐, 아까운 것 왜 버리느냐, 더 먹어라, 진지상을 대하면 음식타령만 해도 한 두 가지 새로운 시시비비 거리가 끊길 줄 모르게 다양하다. 통장의 글귀가 보이지 않지만 아무도 믿을 만 하지 못하니, 푼돈도 직접 관리를 하여야만 직성이 풀린다. 파파 노인네가 은행 창구 앞에 헤매는 모습이 선하여 안쓰럽기만 하다. 자신 말고는 누구를 믿겠는가? 구석구석 아픈 곳은 많고, 어둠에 쌓인 골방에서 미래와 영혼에 대한 두려움은 얼마나 더 하시겠는가? 곁에 있는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아니 하니 외롭고 야속하고 서러운 마음이야 오죽하랴? 그래도 정신만 들면 한가지씩 자손들 걱정으로 여기저기 헤아리며 마음이 저리 곤 하신다. 곁눈질 하며 보고 있노라면 답답할 때가 많다. 모자람 불만 불안 야속함도 훌훌 털고, 생색 내기에나 쓰일 뿐인 돈이나 물욕도 이제는 놓으실 만 할 때라고 탓하고 싶다. 맛난 것만 마음에 담으시고, 좋은 것만 보고 느끼시며, 평온함만 생각하신다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항상 앞선다. 이제는 그러한 무거운 짐을 벗으실 만 할 때라고 말씀 올리고 싶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마음 먹은 대로 벗어 던질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이제는 알만 한 나이가 된 듯 하다. 그 짐은 누구나 지고 지내는 거울에 비친 자화상과도 같다. 죽기 전까지는 짐 진 자들이 그 짐을 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에, 성경의 구절 또한 그러한 삶이나 운명을 노래한 것은 아닐까?

 

부여잡고 놓지 못하는 무거운 짐들이 어디 한두 가지만 있었던가? 나이 들수록 부풀어만 가고 더해가는 노인네의 쓸데 없는 것처럼 뵈는 작은 욕망들이 있다. 중환자실에서 생명의 끈을 맺지 못하고 신음하는 중병 환자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구원과 영혼 천국을 향한 구도자 들만 그러한 것도 아니다.

 

주식가치며 자산가치가 가을 낙엽마냥 뒹굴며 떨어지는 것도, 딸 아들의 오르지 못하는 성적에 안달하는 것도, 들어오는 발주량도 떨어지고, 수금이며 수익성이 떨어지는 어려운 경영환경도 ……, 욕심에 찌든 마음으로는 모두가 무거운 짐들이다.

 

푼돈에 넥타이 맨 나 같이 째째한 월급쟁이 눈으로는 제법 사업에 성공한 듯 보이는 친구가 있다. 40줄에 들어섰을 적에 그의 말 한마디가 그리도 부러울 수가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오전에 업무를 마무리하고 오후 3~4시경이면 직원들에게 일 맡기고 일찍 퇴근하며 여가를 챙긴다고 하면서 이제 우리 나이도 그럴만한 때가 되지 않았느냐?” 하던 그 친구의 안부전화 통화였다. 나야 그 때는 중견사원이니 파김치가 되도록 업무에 찌들어서 12나 되야 퇴근하곤 하던 때다. 그러던 이가 중년기를 다 지나 얼마 전 만났을 때의 이야기가 실망감을 준다. 80대 중반까지는 사업을 더 해야겠다며 사업의지를 불태우던 말이다. 사업욕심을 버렸노라 하던 40 적의 말은 뒤엎은 채, 이런저런 사업확장에 한참 열 올리고 있노라는 전언이다. 환율 물가 성장 같은 경영환경 여건이 날로 악화되어 가는 이즈음은 그 친구의 무거운 짐이 가중될 것만 같아 마음이 짠하다.

 

건강문제가 주는 짐도 적은 것은 아니다. 올 초 건강검진에서 갑자기 혈당이 높다고 하니, 환자취급 받으며 마음 한 편이 누르는 듯한 무거운 짐처럼 느껴 온다. 몸으로 느끼는 짐이 아니라 마음으로 지는 짐이었다. 그러나 이즈음은 그 덕에 좋은 시간들을 보내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곤 한다. 혈당치 개선에는 식이요법과 운동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들 주문 한다. 그래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 눈 비비며 탄천변으로 사이클을 끌고 나가 출근 전에 한 시간 남짓 달린다. 아령과 함께 간간이 달리기도 조금, 운동기구도 조금씩 탄다. 저녁 식사가 끝나도 산보와 조깅을 섞음섞음 한 시간 이상 걷고 뛰고 한다. 안 하던 운동을 하니 먹거리도 더 맛나다. 눈 뜨며 마시는 우유 한 컵부터 시작해서 잠들 때까지 짜금짜금 대며 마시고 씹는 것도 예전에는 못 느끼던 보통 아닌 재미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신바람 나는 날개를 단것이라고도 생각할 수가 있다. 무거운 짐도 마음 먹기에 따라 더 할 수도 벗을 수도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세상은 마음이 짓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 것은 아닐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약골에 쌀 가마 지고 버둥거리는 짐꾼처럼 근육으로 버틸 수 있는 짐만 무거운 것은 아니다. 욕심을 채우지 못하여 힘쓰는 것들도 무겁다. 투정 어린 노인처럼 맛이 맘에 들지 못하는 경우도 자신에게는 짐 되고, 사춘기 여성의 멋이나 감성도 스스로 못마땅 하다면 짐이 되기도 한다, 권세나 물욕과 같은 욕심으로 지워진 짐 또한 무거울 수 있다.  늙음을 자책하고 있는 이나, 중병 든 이의 암울한 마음도 무겁다. 젊은 날의 놓칠 것만 같았던 사랑이나, 분에 넘쳐 흘릴 것만 같은 큰 재산을 부여잡고 발버둥 치는 이들의 마음도 무겁다. 지은 죄로 짓누르는 양심의 가책에 스스로 고통 받는 자도 그 짐은 무겁다. 영혼이나 구원, 심판의 날에 관한 두려움을 지고서 살아 가는 자도 그 짐은 무겁다.

마음으로 지은 무거운 짐들이라면 마음으로 풀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꼭 누구에게 가야만 짐을 풀 수 있으며, 안식과 평온을 찾고 쉴 수 있는 것일까?

 

2008.11.16.()

K.L.Oh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란,

    죄책감으로 짓눌리고 괴로워하는 사람들,

    양심이 살아있으면서 그들의 영혼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

    구원에 대해 불안해하며 구원을 원하는 사람들,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있으나 어떻게 통과할지는 모르는 사람들,

    지옥에 대한 생각으로 떨며 두려워하는 사람들,

    천국을 갈망하나 그곳에 가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자신들이 악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들 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영혼들…… 그러한 모든 이들에게

    예수는 누구든 간에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답니다.

 

       “The labouring and heavy laden” describes all who are pressed down and burdened by a feeling of sin. It describes all whose consciences are set at work, and who are brought to concern about their soul – all who are anxious about salvation, and desire to have it – all who tremble at the thought of judgment, and know not how to get through it, and of hell, and are afraid of falling into it; and long for heaven, and dread not getting to it; and are distressed at the thought of their own badness, and want deliverance.

To all labouring and heavy laden souls, whoever they may be, to you Jesus speaks- to you is this word of salvation sent. Take heed that it is not in vain.                              J.C. Ryle (1816-1900),

    “The Christina Race and Other Sermons” p. 56, 58 (Charles Nolan Publishers,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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