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맛난 ......
■ 한 우
평창 한우마을, 횡성 한우마을 ……,
광우병 소문에 한우 고기라는 상품명이 한참 유행하는 듯하다. 한우가 무엇일까? 한국에서 기른 소인가? 한국 토종의 종자를 따로 부르는 것인가? 홀스타인 젖소도 한국에서 사육한 것은 한국산이고, 소를 수입하여 서너 달 국내에서 사육하다가 도살해도 한국산이란다. 들판에 풀 뜯겨가며 우리나라에서 기른 순수 한우 누렁 소가 얼마나 많겠는가? 수입 사료에 수입 첨가약품과 항생제 먹여가며 잘 기른 소들이 대부분은 아닐까?
지난 주말에는 평창 한우마을에서 모임을 가졌었다. 금요일 낮에 출발하여 저녁을 함께하고 1박 한 후 토요일 상경하는 일정이었다. 서울에서만 항상 갖던 또래들 모임을 좀 더 먼 곳에서 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택한 곳이 평창이었다. 주말에 하룻밤 자고 온다고 하니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불참자가 더 많아, 기껏 7~8명 밖에 참석자가 없었다. 아직 중년계층이기 때문이라 가사나 사업에 주말 일정들이 모두 바쁘신 모양이다. 나도 회사 일 뒤로하고 금요일 점심시간에 뛰쳐나가긴 했지만 자주 써 먹다간 잘리기 쉽상일걸? 하는 생각이 우습다. 일보다 놀기가 우선하는 꼴이다.
동네 이름이 한우마을인 줄 알고 갔지만, 가서 보니 음식점 이름이 평창에 있는 한우마을이란다. 살치살, 꽃등심, 안심, 등심…… 불쌍하게스리 도살 당한 소의 살점에 각가지 그럴싸한 이름 붙여 늘어 놓고 팔리고 있다. 매장 한편은 고기구이 음식점, 한편은 정육 매장이다. 주말이면 하루 매상이 수 천만 원에 이른다고 하니, 강원도 한 구석의 먹자판 점포를 보면서 “먹어 조진다”는 상소리가 새삼스레 떠 올려진다.
식당 지배인님이 열 올리며 한우 소의 현황을 설명한다. 꽃등심 부위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이 암놈일 수도 있고, 숫놈일 수도 있단다. 더 안 좋은 것은 거세한 숫소라고 한다. 거세 숫소는 사육하기 좋지만 육질이 짤깃거리는 맛이 없어 맛은 별로라고 한다. 그냥 숫소는 질기긴 해도 오히려 고소한 맛은 있단다. 거기에다 이즈음 한참 말 많은 24개월 미만이냐 아니면 나이 많은 늙은 소이냐에 따라 같은 부위라 하여도 육질의 품위는 전혀 달라 진다고 한다. 지배인님 왈, 벗님네 들이니 좋은 부위별 최상의 품질로 가져왔노라고 자랑한다. 좋은 술과 육질 좋은 고기 그리고 너스레 잘 떠는 몇몇 녀석들이 있었으니…… 과음에 과식을 피하지 못했다. 보아하니, 술과 고기 맛 본지 꽤나 오래된 촌놈 같은 내가 제일 많이 해 치운 듯 했다.
인근에 펜션 방을 하나 마련하여 느지막하게 들기는 했지만, 여러 명의 나이 든 사내 놈들이 강원도 산 중에 술이 거나해 가지고서 할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한편에서는 태백 카지노의 땡기는 곳 가서 구경 좀 하자는 부류도 있었지만, 새벽 다 된 때에 두시간 거리나 되는 그 곳까지 가서 촌 것들이 기웃거려 봐야 무슨 낙이 있겠느냐며 방에 그냥 주저 앉아 버렸다. 한편에서는 어느 사이 고스톱 판을 벌렸지만, 나야 별 흥미가 없으니 그냥 옆에 앉아서 술타령만 해 댔다. 어렵사리 일찍 죽어 간 동료들 이야기, 학교 교내에서 쌈박 질 하던 이야기, 자기사업 자랑 이야기, 공치던 경험, 해외 나들이 경험, 그리고 나서 최근 촛불집회 정치판 이야기 끝에, 돌아가며 옛날 학생시절 자기 경험담이 줄을 댄다. 한쪽은 철들기 전 첫경험의 쓴 기억, 한 쪽에서는 비아그라에 씨알에스, 실리콘 확장 얘기가 나오더니, 또 다른 한 쪽은 농 짙은 여친 얘기, 그러다 듣던 이 중에서 자기도 좀 소개시켜 달라는 넉살 좋은 주문……
그러면서, 모두들 과음과식에 시달리느라 지친 밤을 지새고 강원도 산동네에서 해장국 집 찾아 돌았다. 그리고 올갱이 해장국 집을 찾아 들었다. 술김에 선잠 깬 이들이 입맛에 익숙지 못한 쌉쌀한 맛이 그리 좋을 리는 없지만 아침을 때운다. 어디 사내들이 밥만 먹고 살던가? 주머니 주머니에서 약봉지 꺼내 들고 물통 앞에 줄을 댄다. 간장약, 신장약, 심장약…… 장년기를 넘어서는 남성들의 애환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이지만 음식점 여사장과 농담 따 먹기도 빠질 수 없다. 허허실실 허를 주고 실을 딴다고 하던가? 식당 앞에 담가 놓은 더덕술을 사자고 흥정을 붙이다가 한 병을 덜렁 사는 친구도 있다. 이 거래가 음식점 주인백의 장사술인지, 여행객의 취흥인지는 모른다. 오전에 원주 치악산 구룡사 아래의 기슭 개울물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잠시 발을 적시고 서울로 향했다. 점심은 분당의 한 식당에서 함께 하고 헤어졌다.
몇 십 년 만에 밤 지새며 함께 보낸, 평창 한우마을 방문에서 우리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좋은 술 좋은 고기 맛에서 남는 것이라고 해야, 품위 없는 뱃살 밖에 더 나오겠는가? 술김에 떠 올린 지나치는 음담패설이나 우스갯소리가 무심히 지낸 삶의 한편을 돌아 보고 자극할 수 있었을까?
경직된 어느 한 조직의 워크�에서처럼, 생활이나 조직의 목표에 득이 되고, 건설적이며 발전적인 주제들만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주저리주저리 꺼낸 이야기들 속에서 지나쳐 보낸 수십 년 간의 시간들을 개개인이 각자의 세월이라는 주머니에서 끄집어 내어 나름대로 생각하고 만져 보며 되씹어 볼 수 있는 새로운 짤막한 기회는 아니었을까? 빠르게 흘려 보낸 지난 여느 날들 처럼, 여름 초입의 주말 하루를 또 그렇게 점 한개를 찍어서 굴린 것은 아닐까? 백사장의 많은 모래알 중 한 알 처럼......
K L 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