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수수께끼

오갑록 2008. 5. 26. 13:43

감사와 기쁨 ...... 

 

 ■ 수수께끼

 

 

      "깎으면 깎을 수록 커지는 것은 무엇?" 이냐는 수수께끼를 떠 올려 본다. “구멍이니 연필심”, 깔깔대며 답이라고 큰소리 쳤던 어린 날의 말이 중년을 지나고 있는 지금도 답으로 여길 수 있을까 하며 허접스런 생각을 하여 본다. 

 

존재의 특성에 대하여 불교에서는 무상(無常). 무아(無我). () 세가지 를 칭하는 말로 삼법인(三法印) 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한다. 이 삼법인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팔정도(八正道)의 처음인 정견(正見)이라고 하는데, 무상(無常)은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며, 그 주제는 떠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도 한다. 젊음을 떠나는 늙음과, 건강함을 떠나는 병듦, 그리고 삶을 떠나는 죽음이 고통이며, 무상이란 이러한 떠남 즉, 상주함이 없음을 의미 한다고 한다. 영원하게 존재하는 실체를 부정하는 말이 무아(無我)로서 변화하는 자체가 존재요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우리 인간에게 인간을 구성하는 정신적 육체적 기본요소란 5가지 존재요소(5, 五蘊)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물질(), 감각 또는 느낌(), 느낌에 대한 지각(), 마음 속 구성물(), 그리고 오온을 앎 즉 인식(), 이 다섯가지 ....識을 오온이라고 하는데 자아니 영혼이니 하는 것도 오온의 만남과 떠남, 즉 무상에 있다는 것이다. 병노생사, 만남, 헤어짐,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함,  여덟 가지 고통(八苦)의 원인을 집()이라고 보았으며,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사성제의 한가지로 꼽았다. 인간의 괴로움과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불교 교리의 근간이라고 하는 사성제는 苦 (고 - 존재함의 괴로움), 集 (집 - 괴로움의 원인인 탐욕), 滅 (멸 - 괴로움의 소멸), 滅道 (멸도 - 멸을 위한 8가지의 바른 수행방법)으로 요약하여 설명된다고 한다.

 

옛사람들 생각에도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득도의 길()은 그 원인인 집()을 다스리는데 있다고 보았던 듯하다. 여기서 고통(八苦)의 원인으로 지적한 집()이라고 함은 무엇일까?

인간의 욕심을 채우면서, 키우고 모으고 높이며 길게 하는 모든 것들이 아닐까? 그러한 ()을 다스려 소멸시킨다 함은, 현대 사회생활에서는 상치되는 어감이 될 수도 있다.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저축하고 배양하기를 권하는 발전적 또는 욕망이라는 선한 의미가 담겨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깎으면 깎을 수록 커지는 것? 욕심을 깎고 깎으면 무아(無我)로 이르는 길, 다시 말해서 집()을 멀리하여 길()을 키우는 것이라고 답 한다면, 중년 지난 이의 답으로서 그럴듯하여 보이지는 않을까?

 

여기에 어감과 어순 그리고 태(態)를 조금씩 변형하여 본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 동안의 욕심 자국들이 묻어 나는 듯하다. 우리의 욕심과 연계된 뭇 항목들이 수수께끼의 답안 중 한 항목이 될 것만 같아 보인다. 나 그리고 나를 구심점에 둔 사회라는 이름의 주변 일상이 그렇다. () 와 재물, 재능과 지식, 출세와 권력 그리고 영광, 생명과 건강, 주색(酒色)을 밝히고 희희낙낙함을 즐기던 지난 시간들이 이곳 저곳에서 묻어져 나온다. 결국 묻어져 나오는 그 얼룩무늬 자체가 우리들 삶의 흔적은 아닐까?

 

많으면 많을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모이면 모일수록 

높으면 높을수록

넓으면 넓을수록

먹으면 먹을수록

취하면 취할수록

예쁘면 예쁠수록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놀면 놀수록

길면 길수록 ……

 

지난 주말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병문안을 다녀 왔다. 입원병실 예약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가 환자의 질환 보다 앞선 중요한 이야기 거리였다. 링겔 병을 대여섯 개나 주렁주렁 달고 투명 관을 통해서 약 액이 방울방울 굴러 내려 환자를 달고 있고, 침상 아래로는 농과 함께 핏기 어린 배설물들이 장기 별 배설 량 측정을 위한 서너 개의 분리된 플라스틱 투명 배변 통으로 줄대고 내려가고 있다. 다인용 암환자 수술 회복병실에는 옆의 환자 침상도 이 같은 겉모습은 비슷하다. 현대사회나, 의학에서는 환자의 환부 치료를 한다고 표현을 한다. 관점을 달리하여 생각하면 생명의 길이를 길게 해 보려는 우리사회의 몸부림과도 같아 보인다. 고통스럽지만 육체적인 아픔 만큼이나 무섭고 두려운 앞날, 죽음에의 막연한 불안을 우선 피해 보려는 본능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소나기 피해 손으로 얼굴 가리기 격이다 는 생각도 하여 본다.

 

고장 난 장기를 자르고 도려내어 꿰맨다 함은 어느 면으로는, 아픈 곳의 감각을 다스림도 아니요, 느낌을 다스림도 아니며, 느낌을 지각하는 마음을 다스림도 아니다. 무상(無常). 무아(無我)를 외면한 채 무작정 생명을 길게 늘리고픈, 나와 그리고 내가 속한 우리 사회의 끝없는 욕심으로 인해서 병실 잡기가 그만큼 힘들 정도로 환자들로 넘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변형된 수수께끼를 다시 이어 본다.

길면 길수록 커지는 것은? 생명일까?, 행복일까?, 고통일까?

 

....識 이라는 오온(五蘊)의 무상함을 잊을 때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무아.고" 라고 하는 삼법인(三法印)의 깊은 뜻을 어렴풋이나마 깨닫는다면 쉬운 질문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여 본다. 

 

2008.5.26.

K L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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