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실수

오갑록 2008. 3. 31. 11:51

정성스런 ......

 

■ 실 수

 

   핸드폰 문자가 일상에 유용하게 쓰인 지 오래다. 통상, 날짜와 요일을 병기하여 약속일자를 문자로 보낸다. 날짜나 요일이 잘못 되면 그 오류를 검산하여 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날짜만 보거나 아니면 요일만 보고 약속 날을 기억에 남긴다. 확인의 여지가 없게 되니 날짜나 요일에 실수가 있을 경우 약속이 어긋날 수 있게도 된다. 금전거래에도 일금 몇 십만 냥 하고서, 번거롭지만 옆에 괄호 치고 아라비아 숫자로 (\000,000냥 정) 하는 식의 검증 항목을 남긴다. 주민등록 번호도 끝자리 숫자 한 개는 오류에 대비한 검증용 숫자이다. 만일 사람을 평가하는데 이처럼 기다 아니다 하는 식의 흑백논리로 확인하려고 한다면 답은 찾지 못하고 고달프기만 할 것이다.

 

사람 됨됨이의 평가도 그렇고, 미인의 평가도 그렇다. 학문적 업적이나, 사회적 정치적 유명세에 대한 공적 사항처럼 사람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들이 그렇다.

 

각선미만 보고 미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목구비며, 체형과 혈색은 물론 피부, 발에서 머리까지 외모와 건강미 심지어 말솜씨 노래솜씨 지적 능력까지도 평가하려고 든다. 여러 가지 항목을 종합해서 선하다거나 마음에 든다고 할 때 좋은 평가를 받는다. 좋게 보면 모두가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부모의 눈으로 보는 자식의 모습들은 대부분 그리 보일 것이다. 곱고 귀엽고 선하고……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 하다” 고 한다. 보는 자 마음의 프리즘을 통하면 새로운 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쁜 측면으로만 깊이 있게 뒤지고 본다면 인간이란 결국, 똥오줌을 싸고 도는 오물 보따리에 불과하지 않을까? 너 나 할 것 없이, 더럽고 추하고 냄새 나는 오물 덩어리, 달리 말하면 속물, 금전이나 명예를 제일로 치고 눈앞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는 생각이나 성질을 가진 것이 인간 ……

 

장관 선임에 국회의 비준절차를 밟으면서 됨됨이 평가를 하는데, 민주주의 발달로 독재시절에는 생각하기 어렵던 절차이다. 그런데 평가 때면 으레 여야가 딴소리를 낸다. 한 사람을 놓고 여야가 음양을 서로 달리 부각하는 현상이다. 어느 한편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 자체가 앞뒤 뒤틀린 모순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날짜와 요일을 맞추어 보려는 듯한 자세로서야 어찌 인간을 제대로 평가 할 수 있겠는가?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듯 이해와 아량으로, 모난 곳 뒤틀린 곳은 초점을 달리하여 흐릿하게 보고, 잘난 곳 선한 곳 아름다운 곳은 부각시켜 높이 평가 하려 하는 자세가 아니라면 결과는 항시 뻔 할 것이다. 피부도 자세히 보면 볼수록 많은 주름의 연속이다. 큰 주름 속에 작은 주름들…… 그렇지만 그 많은 주름을 통해서 인간의 아름다움은 표출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란 크고 작은 잘못과 반성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용서와 화해라는 넓은 시각에서 이웃을 볼 때, 삶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본다. 상처 나고 움푹 패인 주름진 어느 한 곳을 돋보기로 들춰보며 험하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아름다움이 어디에 존재 할 수 있겠는가?  식구도, 벗도, 이웃도 그러 할 것이고, 아랫사람이나 윗사람 경우도 마찬가지며, 정치인이나 위인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의도된, 알고서 행한 실수는 거짓이나 사기에 속한다. 젊은 날의 실수, 한 때의 실수라고 하며 지난 일을 후회하는 대목들의 본질은 어떨까? 실수와 시간 간의 함수, 행위의 시점에서는 옳거나 무심코 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생각하니 잘못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의도된 실수는 대부분이 욕심의 힘에 의해 왜곡된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멀리하면서 행한 일에는 시간이 지난 훗날도 실수로 재평가 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금전이나 명예, 정이나 쾌락, 크고 작은 욕심들로 채색된 욕망의 돋보기를 투시하며 변형된 일 처리가 낳은 결과들은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기 일쑤이고, 찌부러진 욕심의 허상은 실수라는 주름진 모습으로 볼 품 없이 기억되곤 한다. 그래도 그리 주름진 나의 과거에는 용서하고 싶고, 용서 받고 싶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용서 받을 만도 하다는 관용 어린 마음이 뜨겁던 어묵처럼 시간과 함께 어려져 뭉쳐진다. 욕심이라는 국물은 시간과 함께 굳어져 새로운 어묵으로 변한다. 내가 지닌 지난날의 잘잘못은 묵이 되어 한쪽 구석에 엉겨 있다. 덤덤한 맛으로 어린 묵의 모습이 마치 내 지난날 흘러 온 발자취며, 들추기 싫은 추한 모습, 냄새 나는 부분이기도 하면서 버리고 싶은 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있었기에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내장에 쌓인 똥오줌을 어찌 더럽다고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남의 것을 가리키며 코 싸매는 시늉하며, 더럽고 냄새 난다고 할 수 있을까? 남의 실수를 가지고, 날짜와 요일 맞추듯 맞춰보고 틀림을 이야기 하는 것은, 주름진 손금 골짜기를 확대경으로 봐 가며, 운명에 대해 말하는 이들과 비슷하지는 않을까?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는 이탈리아 전을 승리한 후 “나는 아직 배고프다” 는 말을 남긴다. 욕심으로 가득 찬 모습이다. 제 아무리 승승장구 잘 나가는 이더라 해도 그에 만족하지 못하는 본성, 언제나 모자라서 허둥대는 모습이 보통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발전적이라고 말들 하며, 부러워도 한다. 모자라야지만 올라야 할 목표가 생기고, 헝그리 복서의 근성이 나오며, 희망의 깃발을 드높일 수 있을까? 내리막 길, 아래를 향해 세우는 목표나 깃발은 의미가 없을까? 줄이고 나누며 낮추는 덕은 목표로서의 의미가 없을까?  바쁜 시간 쪼개가며 체중 감량을 위해서 땀 빼며 달리고 구르며 식욕을 참는 중년부인들의 고행을 보노라면, 키우고 찌우는 것만큼이나 감량의 과정도 어렵게 보이곤 한다. 물론, 체중을 줄여서 더 예뻐 보이고. 더 건강해 지려는 또 다른 형태의 욕심과 목표에 매달려 허둥대는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욕심은 실수를 부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발전과 아름다움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2008.3.31. (삼월 마지막 날)

K L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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