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실하고 정직한 ......
■ 경 험
경우에 따라서 경험 많은 경력자를 찾는다. 경험에서 축적된 업무상의 높아진 숙련도나 노우하우를 짧은 시간 내에 실패 없이 정확하게 경제적으로 이용하기 위함이다. 경력자를 찾는 회사들이 그렇다. 대선이나 의원 선거면 나 붙은 선거 전단지에는 꼭 이력사항이 따르고 무엇을 경험했는지 하는 경력사항이 있다. 유권자는 그 경력을 토대로 선출할 사람을 점 찍는다. 좋은 경력자가 이 사회나 지역의 살림을 더 잘 꾸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지만, 지나간 경험이 미래에도 꼭 같이 적용될 일들이 적기 때문에 우리를 실망시킬 때도 많다. 엉뚱한 예이겠지만, 대다수 남성들이 경험 많은 여인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꼭 집어 뭐라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일과 감정은 다른 류의 무엇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달콤했던 경험이나 잊지 못할 경험이 있다. 보통은 처음 겪어 보는 경험이 다음에 겪는 일 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곤 한다. 그래서 첫경험을 입에 달 때가 많다. 기억에 떠 올리기도 싫은 험한 경험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낭패를 보는 경험들도 있다. 그 낭패란 스스로의 마음 속 깊이 쓰리게 똬리 트는 것도 있으며 사회적 매장을 당하는 일까지도 있다. 성적인 욕구, 재물의 욕구, 신앙의 욕구, 평판과 지위의 욕구…… 그 요인들이란 대부분 욕심과 도덕 사이에서 또는 시대적 가치관의 갈등에서 오는 단순한 형태의 경우가 더 많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달콤할 것 같은 경험이지만 그 시대, 그 사회의 도덕 관념의 틀로서는 용납하지 아니하는 것도 있다. 종교 교단들이 그 잣대가 더 엄하여 개중에는 죄나 악으로 몰아가는 경험들까지도 있다.
개인의 경험이 모여 사회적 경험이 되고 역사의 바탕으로 발전한다. 경제. 종교. 사회. 문화. 과학…… 각각의 역사는 경험을 바탕으로 쌓아 올려진 탑과도 같다.
중견 제조회사에 몸 담고 회사의 기획업무를 오래 한 덕분에, 나는 이런저런 사업을 검토하느라, 별 빼어난 재간도 없는 주제에 제법 다양한 분야의 사업성에 대한 경험을 해 본 것 같다. 사업을 계획하고, 그 타당성을 검토하는 일은, 한가지 사업을 실행하며 진행하여 사업실적을 쌓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한 사업에서의 시장구조와 경쟁구도, 기술현황과 개발 가능성, 투자규모나 설비수준, 자금조달 방안, 수익구조, 향후 전망 등을 조견함으로서, 기능인으로서 한편의 작은 기능은 누적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돌이켜 보며 나열해 보니, 내가 엮어 본 사업성 검토의 경험도 적지는 아니한 것 같다.
신설, 증설 또는 사업 처분이나 사업 합병. 분할을 위해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해 사업을 재보는 경험을 했다. 화학산업인 소다회, 중조, 염화칼슘, 인산칼슘, 과산화수소, 인산, TDI, PVA, 시약, 정밀화학약품, 카리제품 등의 여러가지 무기화학약품 각각의 신.증설 검토를 필요에 따라 검토 주제가 상이하기는 해도 여러 차례씩 경험했고, 유리공업, 합판사업, 목재사업, 농약사업, CAN 그리고 반도체 산업의 언저리인 실리콘 웨이퍼, 골드 와이어, EMC 등도 한 편씩 뒤져 봤다. 파워 서플라이어, DC 팬모터, FA 사업, 압전소자 PTC PZT 같은 전자부품 부문이나, 전선산업 등도 수 개월씩 때로는 자료조사도 하고 타당성을 점검하여 본답시고 씨름하곤 하던 경험도 했다. 사원연수원 추진이나 사옥 건설도 짚어 본 경험 중의 하나이며, 부지개발 관련하여 골프장 건설이나, 유리온실 화훼 산업, 아파트 건설사업, 물류단지 조성사업, 위락지구 사업, 농지개발 관련 사업도 한참씩 사업이라는 면에서 정리하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수 백만 톤 쌓인 폐기물 처리한답시고, 고속도로 공사며, 비료산업, 건자재 산업 분야를 두드려 본 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이다. 1년여 동안 4~5십만평 단위의 대단위 공단부지를 찾아서 강화도부터 태안반도에 이르는 서해안 주변을 따라 다녀 본 경험도 회사 일 덕택이다. 기존 생명보험회사 인수 의뢰를 받아 남 모르게 사업 타당성 검토 한답시고 생명보험업 공부에 씨름하던 것도 경험이고, TV방송국 설립추진 시에는 컨소시엄 자료 만드는데 총대 메고 맡았다가, 허술하게 업무 처리하는 바람에 TV방송국 설립권은 따 냈지만, 존경하는 회장님께 팍~ 찍혀서 후사가 험했던 것도 개인적으로는 쓴 경험이다. 그 회사를 그만 두고 조그만 소기업으로 몸을 옮긴 후에도 유사한 경험을 많이 한 편이다. 간판용 플렉스라는 플라스틱 개발관련 사업도 경험하고, 각 종 생활용품과 건강기능식품 관련한 제조를 기획하고 새집증후군 처리용품 같은 상품기획도 경험했다. 최근에도 플라스틱 압출 성형, 탈취제, 원적외선 방사제품, 외국인근로자 조달대행사업, 외식산업인 피자 프랜차이저 같은 좀 엉뚱한 분야도 몇 달간 씩 주물며 두드려 보는 업무를 경험을 했다.
검토하여 생산설비가 신설.증설 되거나 회사가 설립되는 등 사업이 실행된 것도 있지만 검토하여 보고만 하고 끝 난 것도 많다. 각 분야마다 특성이 있고 조건이 상이한 새로운 부문들이다. 이제는 비교.검토 하는 재미가 새로운 퍼즐 대하듯 흥미로울 때가 많다. 여러 분야의 검토 경험에서 오는 숙련으로 얻은 자신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회사 조직 속에는 내가 다루던 품목이나 사업이 어느 분야인지는 남아 있겠지만, 개인 입장에서 본다면 그 흔적들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과 구름이 흘러 간 것과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내가 경험했다는 것이 무엇인가?
주먹 안에 남는 것이 없다는 것처럼 생각된다.
보고 생각하다가 흘러 가는 것, 그러한 것이 경험인 것 같다.
내가 경험한 그렇고 그러한 류의 사업 검토만 그러할까?
사업의 실행이나, 한 분야 학문 탐구의 경험도 크게 다를 바는 없을 것 같다.
현금이라는 사업의 결과물, 명예라는 업적이 남으니 다를 것이라고?
올해, 존경하옵는 명예회장님 타계 소식 접할 때 생각하니, 나의 경험과 그분의 경험이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잠시나마 들었다. 재물이야 지고 갈 수 없으니 차제하고라도, 이름과 명예마저도 시간의 함수 속에 녹아 들 것 같다는 쓸데 없는 생각과 함께……
지난 한 주간은 또 색 다른 경험을 한다.
분명,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인데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하고는 느낌이 판이한 것 같다. 회사 일은 아니지만, 어느 사찰의 중건사업계획을 만들어 달라는 과제가 나왔다.
불자도 아니고, 유사한 사업검토 경험도 없으니 그 속성을 전혀 모르는데…ㅎ
현장 탐방을 가기 전날, 토요일은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 겸해서 대천 홍성 안면도를 당일치기로 한바퀴 휘 둘러 다녀왔다. 좋은 가을 날씨에 아기 재롱도 곁들이고 차창가로 흐르는 볼거리며 갯가의 먹거리들도 풍성하니 고단함도 잊은 채 늦은 시간에야 귀가 한 탓에, 몸은 무거웠으나 가벼운 마음으로 일요일 아침을 맞았다. 놀이계획에 하루 밀려 일요일 사찰 터 탐방을 위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너무 일찍 나서는 바람에 동행인이 오기를 기다리느라 공원 가를 시간 남짓 서성대야 했다. 공원 가 주변에 널려진 휴지 줍기도 해 보고, 가을 아침 햇살을 맞으면서 공원벤치에 앉아 멍청한 시간도 잠시 보내 본다.
대부도에서 시화호 제방까지 횡단하는 도로변이면서, 제부도가 내려다 보이는 곳인 현지에 도착한 후, 해변 야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서해안 갯벌과 해질 녘 석양이 장관이며, 하루 두 번 갯벌 바닷길이 열린다는 관광명소가 눈에 드는 곳이다. 대불(大佛)이 설 마땅한 자리가 있는지 타당성을 본답시고 설레를 떤 것이다. 주제 넘게......
점심은 절에서 제공하는 절 밥을 들었다. 공양(?)이라고 하던가?
김치, 깻잎 절임, 들깨가루 넣은 미역국, 버섯반찬 …… 생전 처음 먹어보는 절 음식이다. 불자도 아니려니와, 스스로 지은 죄가 지대함을 잘 아니, 사찰 인근을 무서워함은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예전 같으면 귀신이라도 붙을까 봐 무서워서 입에 대지도 못했을 터인데, 나이 든 탓인지 제법 비위가 좋아진 것 같다. 집 와서 점심에 절 밥 먹은 자랑을 하니 “찬에 생선은 없지요?”하는 물음이 우습다. 생선?, 멸치새끼, 새우 한 마리도 없었을걸? 답은 그리 했지만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유명한 사찰일수록 대체로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나는 풍광 구경 삼아 인근의 절 구경을 많이 다닌 편이다. 법당 문 밖 멀찌감치서 불상 구경은 하지만 법당 안으로 들어가 본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웅전 불상의 다양한 표정, 손 끝이나 도포 자락의 선(線), 천장 이엉을 장식한 단청의 은은하고 깊이 있는 질감, 오랜 세월을 자랑하듯 쩍쩍 갈라진 목조 기둥의 깊이 패인 틈새들이 이루는 자연의 문양과 촉감 …… 그런 류의 쓸데 없는 곳에만 정신 팔다 나오곤 하는 곳이 내 방식의 절 구경이다. 물론 처마 끝 달랑달랑 매 달린 풍경 저 너머로 멀리 보이는 능선 자락이며 하늘, 흐르는 구름이며 하는 식의 원경은 구경할 때 마다 항상 다르게 마음에 와 닿곤 한다.
하얗게 텅 빈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느끼는 단순한 감정이다.
그 순간 그 곳에 그 것이 있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 들만 맴도는 시간이다.
표정의 넉넉함, 흐르듯 고운 선들, 안정감을 더하는 색, 그윽한 질감, 목조기둥의 지나간 세월의 촉감, 하늘, 구름, 처마 끝 풍경(風磬)의 잔잔한 진동……
그러나 이 날 절 방문은 그와 좀 달랐다. 주변환경이나 목적도 이전과는 색다른 경우다. 오후 늦은 시각에 일행의 소개로 사찰 주지스님을 뵈었다. 목적이 있는 만큼 사업구도 잡는데 필요로 하는 내용을 챙기다 보니, 수도승으로서의 스님이 아니라 사업주로서의 CEO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생각이 든다. 마음을 비운 하얀, 빈 공간과 마음이나 뜻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 못지 아니하게 세속으로 욕심 가득 찬 꿈 많고 자신감과 포부 넘친 모습이, 익히 알던 여느 재벌 노인 분에 버금갈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의 그러한 행적을 바탕으로 그 다음 주초에는 사찰의 추진계획서라는 것을 꾸려 보았다.
통상적인 사업계획 수립과 큰 차별성은 없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단지, 마켓팅 활동이 색 다르고 그에 따른 수입구조가 일반사업과 종교는 서로 판이하다. 어떻게 신도의 불심을 자극하여 얼마나 많은 내방객을 모으는가도 중요한 관건인 듯하다. 그 것은 사찰의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리라. 그 밖에 설계, 건설계획, 소요자금계획, 자본계획, 자금조달계획 등 유사한 점이 많다.
이 사찰에서 불심을 자극할 주제로 선정한 것은 규모가 큰 관음상을 구상하고 있었다.
수십 미터 크기의 관음상이 서해안 석양을 구도로 어우러진다면 불자의 시선과 마음을 챙기기에 좋은 지역이라는 견해다. 단지 수 십억 원에 이르는 자금조달 방안이 우선 과제인 듯 하다. 자료수집을 겸해서 그 관음상에 관한 내용을 찾아 본다.
(천수천안관음보살)
. 6관음의 둘째. 천 개의 팔에 달린 각각의 손바닥에 눈이 있는 관음
. 많은 손의 눈으로 무한한 자비를 베푸는 관음
. 6도(道) 중 아귀(餓鬼)를 구제하고 교화하는 관음
. 생명을 연장하고 죄를 소멸하며 병을 제거하는 공덕이 있는 관음
. 천(千)은 광대 무변함을 나타내고
. 천수(千手)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큰 작용이 있음을 표시
. 보통은 42개의 팔과 27개의 얼굴을 지닌 형상
. 합장한 손을 제외한 40개의 손에는 저마다 소지물이 있고
. 나머지 950여 개는 광배(光背) 상태의 작은 손으로 표현됨
. 서역이나 티베트에는 실제로 천 개의 손을 표현한 그림도 있음
일본 ; 실제 천 개의 손을 지닌 목조 입상이 唐招提寺에 조성됨
중국 : 하북성 용흥사 22m, 천수관음상 중 아시아 최대 규모
외관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는 이중의 인격을 가진 자가 "나"뿐일까?
아니면, 이 사업을 추진하는 사찰의 추진 주체도 그러한가?
해수관음 천수관음 하며 수십 미터 불상을 앞세운 불교종단 모두가 그러한가?
아시아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교회, 천주교의 예배당들 뾰족한 종탑들과는 얼마만큼 다른 차이가 있을까?
더 높은 곳, 더 큰 것을 향한 우리들의 바램이 그러한 모습으로 눈 앞에 다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건축물이 그렇고, 위성 발사도 그렇게 볼 수 있다. 현재 국내 최고 층으로 올라가는 여의도 72층 파크원 빌딩이나, 계획 중인 555 미터 높이의 112층 롯데2월드 빌딩, 바다를 가로 질러 오르는 12.3Km 길이 인천 연육교와 그 가운데 230 미터 높이의 드높은 탑신 ......
높이 오르고자 함이 어디 그 뿐이랴? 오늘 쏘아 올린다는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1호”도 높이로만 본다면 종교계 종탑보다 더한 것은 아닐까?
이번 경험은 탐욕의 한 모습을 우연히 구경하여 본 “쓴(?) 경험”이라는 생각을 하여 본다.
더 크고, 더 높이 그리고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스런 우리의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본 경험인 듯하다.
K. L. 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