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소중한 것

오갑록 2007. 7. 26. 15:15

참하고 청렴한 ...... 

 

■ 소중한 것


      이른 아침 나서는 출근길, 동네 놀이터 주변의 여기저기 나 붙은 색다른 안내문이 눈길을 끈다.

“반지를 찾습니다. 제게는 소중한 것입니다. ……”

간밤에 부근에서 분실한 반지를 습득한 사람을 찾는 알림장이다. 연락처를 남기면서, 후사하겠다는 내용으로 마감을 했다. 그네와 미끄럼틀 기둥, 가로수, 가로등 등에 온통 도배가 되어 있다. 순간 스치는 나름대로의 시나리오에 멋적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늦은 밤 놀이터 주변에서 주고 받은 의미 있는 선물”을 달콤함에 넋이 나가 어둠 속 어딘가 놓아 둔 채, 찾지 못하여 애태우는 미성년의 앳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찾는 이로서는 “아주 소중한 것”일 게다. 적어도, 써 붙인 그날 아침에는……

 

소중한 것이란,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그 대상이 무궁무진 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 다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부와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겠지만, 바이러스 연구하는 생물학자는 연구중인 바이러스 한 마리가 무엇보다 중할 수도 있고, 별 따며 사는 우주천체 과학도는 드넓은 우주 자체가 소중한 관심사가 될 것이다. 그것은 물질에만 한정 된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마음과 정신 또한 마찬가지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있다. 사랑하는 것 , 아름다운 것, 위대하고 거룩한 것, 기쁨과 희망, 건강 ……    

 

소중하다는 것은 “나”를 구심점으로 두고 시간이라는 끈에 매달려 원운동을 하고 있는 가지각색의 욕심과 욕망이라는 물체와도 비슷하다. 똑 같은 사안일지라도 시간과 욕망의 크기, 그리고 원운동의 가속도와 같은 마음 씀씀이에 따라, 목숨과도 바꿀 만큼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끈 풀리면 쓸데없는 쓰레기나 공상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나”라는 주체는 생체로서의 “나”도 그렇지만, 사회적 주체로서의 “나”에게도 그 원리는 다를 바가 없다. 배불리 먹고 마시고 배설하며 살아가는 데 소중한 물품과 이의 조달에 필요한 돈 또는 건강이 될 수도 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웃보다 좋은 입지를 차지하려는 소중한 것도 있다. 때로는 학문과 철학. 종교적인 더 높은 차원의 소중한 것들도 있다. 명예, 사랑, 평화, 희망, 안식처럼 거룩하고 높은 이름으로 치장된 것들이 그것일 수 있다.

 

시간이 가고 나이 들면, 세월이 흐르고 역사가 바뀌면, 그렇게 소중하다고 여기던 모든 것이 새큼하고 달콤하던 흔적은 사라지고 맹물처럼 덤덤해지는 것이 세상 이치인 듯하다. 욕망에 불타는 이글거리는 젊은 때의 눈빛은 사라지고 젖먹이 갓난아기처럼 평온 심을 한 백발노인의 편안한 모습을 볼 때면,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를 생각나게 하곤 한다.

 

어릴 때는 달콤한 먹을 것에 소중함을 느낀다. 성장기에 생각하던 크고 작은 소중한 것들이나, 이성과 가족의 사랑에 애태우던 한 때의 소중한 것들도 때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되곤 한다. 땀 배고 지친 모습이 될 때까지 운동에 매달리는 주름진 초로의 이웃들을 보면, 그들이 원하는 소중한 것은 건강하게 장수하기 바라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소중한 것이란,  누구나 이처럼 짧은 끈으로 이어진 시간의 줄에 매달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지 싶다.

 

질풍노도처럼 숨막히고 어렵던 역사의 한 대목들을 읽을 때도, “그 때 그 사회의 소중했던 것이 지금은 무엇이 되었는가?” 하고 반문하여 본다. 중국 진시황 황릉이나 만리장성, 피라미드의 흔적도, 전쟁으로 할퀸 자국을 보는 우리 근대사의 처절함 들도, 이제는 세월과 역사라는 시간 함수로 인하여 빛 바랜 현재의 형상들을 보면, 그 때 소중했던 것들의 의미 없음에 허탈해 질 때가 있다.

 

신뢰 믿음 사랑의 이름으로 오래도록 남을 만한 것도 있을 듯 하지만, 변화무쌍하게 요동치는 나 스스로의 마음을 헤아리노라면 그 소중한 것들 역시 마찬가지로 시간이나 세월, 역사가 흐르면 탈색되고 미지근한 싱거운 물맛처럼 바뀔 것이다.
 
나이 들어  원시안 되면 글 한 줄 읽는데도 멀리해야 보인다. 빨갛고 꼭꼭 차던 잇몸은 주저 앉고 치간은 멀어진다. 마음 또한 그 만큼씩 멀어져서, 먹고픈 맛난 음식도 줄거니와, 불타는 정열이나 짜릿한 취흥마저 시들하게 느껴진다. 한 때는 그렇게 소중하던 것들도 마음에서 멀어지고 또한 흐려지게 마련인 듯하다. 그렇게 멀어지고 흐릿해진 평상심의 상태를 평온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오늘, 지금 시간, 이 순간은 어떠한가?” 라고 묻는다면, 아침 출근길에 본 광고문 중의 잃어버린 반지만큼이나 소중한, 풋풋한 야채처럼 아삭거리는, 크고 작은 또 새로운 것들로 항상 줄 잇곤 한다.

 

마음 한편은 언제나, 또 다른 새로운, 소중한 것으로 채워져 있는 것도 생명력의 한가지 특성은 아닐까?

 

2007.7.26.
K L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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