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냥
기업 제조원가나 손익계산서를 보면, 기업들 마다 비용 요소가 업종에 따라 특이한 부문이 적지 않다.
목재나 합판산업에서 목재가 유실되는 항목들인 설물, 절동목, 심완목 등도 처음 접하는 이로서는 특이하고, 소금을 원료로 쓰는 어느 화학산업 경우, 소금 쓴 양을 추정하는 것도 특이하다. 블도저 몇 대가 소금 산 위에서 항상 소금을 밀고 다니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낮없이 원료 탱크에 밀어 넣어야 한다. 얼마나 사용했는지 파악하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장마철 장대비에 노천의 소금 산이 얼만큼이나 녹아 들었는지 모르고 월말 되면 기말재고 파악 시, 산처럼 쌓인 수 만 톤을 헤아리는 것도 흥미롭기만 하다.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 수 만 톤이 여기저기 천막으로 덮여 원시적으로 야적된다. 월말이면 그 제품의 양을 센답시고 쫓아 다니는 모습도 어려워 보인다.
반도체 공업에 많이 사용되는 공업용 순금이 있다. 금의 순도가 99.9999% ……이 처럼 높은 순도를 필요로 하므로 귀금속 업만 백년 넘게 해 온 독일 등 세계굴지의 몇몇 기업만이 독점 공급하는 원료이다.
원료로 사용하고 나머지 금이 얼마나 되는지 기말재고를 헤아리는 것도 쉽지는 않다. 와이셔츠 상자만한 크기의 금이 대략 50Kg이니, 돌반지 1돈 개념으로 환산하면 1만3천500돈 이다. 돌 반지 값으로는 대략 6억원 안 밖이 되는 비싼 것인데, 창고를 보면, 고압선 전선줄처럼 감긴 손가락 굵기의 금 두루마리 통부터, 머리카락 수 십분의 일 굵기의 중간 제품 금실, 토막 난 금 부스러기 통, 심지어는 내화벽돌 블록이 통째로 금에 박힌 채 있는 금 덩어리 등등 다양한 형태로 커다란 방의 선반에 금이 가득하다. 어떤 것은 금이 왕수에 녹인 용액상태로 반응용기에 차 있으니 창고 가득한 금의 재고를 세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의류산업에서 철 지나고 해 지나 유행 바뀐 재고자산을 평가하는 기준이나, 식음료산업 또는 의약품업의 기일 지난 재고처리 방법도 잘못 처리하였다가는 앞으로 남고 뒤로 밑 가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 전자부품 조립금속산업도 일원짜리도 못 되는 싼 것부터 제법 값 나가는 부품까지 크고 작은 수 많은 모델별 부품관리가 장난이 아니다. 버릴 것인지 아니면 언제까지 보관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넥타이 한 개도 어지간하면 십년 넘게 헤지고 닳아지도록 매고 다니는 습성을 가진 나이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프로그램이나 영상물도 그 나름의 특성이 있을 것 같다. 단기간에 못쓰게 되는 것도 있을 게고 오랜기간 후에도 가치가 돋보이는 것도 있을 터이니 보유한 재고자산 평가에 적정한 기준을 잡기란 생선이나 소채류의 시간대별 가치를 헤아리는 만큼이나 어려울 것 같다.
이연자산, 고정자산, 무형자산 같은 자산의 감가상각은 기간비용을 임의 기준으로 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돌아올 비용요소에 대비하는 성격의 충당금들도 유사한 성격의 비용 요소이다. 그래도 제조업 대부분의 손익계산이란 보이는 실물을 헤아리는 과정들이지만 서비스나 유통부문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어느 유명호텔의 손익을 검토한 적이 있다. 호텔은 객실수입이 주종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물 팔고, 먹거리 파는 베버리지 수입 비중이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원가요소 중에 특이한 것은 종업원의 임금구조 라고나 할까? 외모로는 그럴듯하지만 고객으로부터 팁을 받아야만 할 정도로 박봉의 종업원 그룹이 의외로 많았다. 받아 내는 팁의 정도와 종업원의 임금 수준이 서로 함수관계에 있는 특이한 업종이 호텔업이다.
원가계산 중 역시 어려운 것은 보험회사 수입.비용 구조 인 듯하다.
생명보험회사 인수를 위한 타당성 검토하느라 짱구머리 가지고 씨름 해 보며 실감한 일이다. 생명보험 보험료를 매월 얼마씩 수령할 것인지 정 할 때, 수 십년 이후 사고나 사망이 발생하면 지급될 보험금에 대해서 수명과 사고를 확률로 미리 예정해서 받아야 하는데, 그 적정선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생각된다.
방송사업은 일반 서비스업 성격의 단순한 손익구조 이다. TV방송국 설립하는데 손익계산 한답시고 씨름하면서 수 개월간 밤잠 설치던 때도 있었지만 들어 올 수입과 나갈 비용의 선이 분명한 편이다.
방송국의 매출액은 광고수입이 거의 전부다. 광고 수입은 광고주들이 많이 붙어야 하는데 광고주들은 그 방송에 얼마나 많은 시청자가 따르느냐에 비례하여 정해진다. 즉, 보는 눈의 개수에 따라 광고 단가가 달라진다. 자유경쟁 원칙에 따라 자율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방송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정해주는 일정비율로 책정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기는 하다. 어쨌든 광고단가 셈의 기본은 가시청 권역과 시청률이다. 방송국 간 서로 경쟁하며 시뻘겋게 벗어 제끼고 히히덕 거리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이기도 하다.
아나운서 한 두 명이 유명 게스트 한둘 모시고 입씨름하면서 10분을 보내는 식의 싸구려 제작원가 방송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같은 10분을 방송하더라도 몇 년씩 수 많은 인원이 공들여 기획하여 제작하는 대규모 투자원가의 프로그램도 있다. 방송은 제작원가, 광고단가, 시청권역, 시청률이라는 네 가지의 함수 관계만 해결하면 되는 듯하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사회성, 도덕성과 같은 덕목이 더 중요한 부문이 될 수 도 있다. 사회를 이끌고 가는 도구도 되기 때문이다.
그 방송프로그램 제작원가 원가계산서 중에도 처음 볼 때는 재미난 항목이 있었다. 계정과목은 다름아닌 “헌팅비”……, 방송프로 제작하는데 어인 헌팅?, 사냥하는데 쓰는 비용이 총 제작원가의 몇 퍼센트나 되다니? 그렇게 큰 줄 미처 몰랐다. 알고 보니 유명인사를 인선하고 모시는데 까지 드는 잡다한 기부.접대비 성격의 비용을 누구인가가 멋지게 작명한 듯하다. 코쟁이들 것 베껴 쓴 것일 수도 있다. 나처럼 무지렁이는 방송국의 헌팅비 좀 빼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로서는 소위 말하는 현대판 “그림의 떡” 중 하나가 “헌팅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헌팅 안 당하니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사냥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나 보다. 들에 사는 들것, 날아 다니는 날 것 사냥하는 포수부터, 인기 연예인 쫓아 헌팅 다니는 방송PD, 신부감 헌팅코자 마음 들뜬 선남들도 있다.
존경 하옵는 어느 사장님의 신년 초 덕담으로, “올해는 함께 두꺼비 사냥 종종 하자”시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이제 “대한” 추위도 막바지이니 만큼 “우수, 경칩”도 머지 않았다. 경칩 오고 잠들던 개구리 기지개 켤 즈음, 두꺼비도 엉금엉금 나오지 않을지 모르겠다. 두꺼비 사냥의 적기가 언제인지는 모른다.
겨울잠 한참인 이즘 같은 한 겨울인지,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경칩지난 봄철인지, 그도 아님 맹꽁이 울어 대는 한여름 장마 속 웅덩이 옆 수풀 속인지 알 수가 없다. 야밤 포장마차, 꼬지 안주 옆에 줄서 있는 두꺼비 병마개인지도 모른다.
내가 두꺼비 헌팅시기 언제인지 잘 모르는 것은 돈벌이도 마찬가지이다. 주식시장 오르락 내리락 널뛰기하는 때 매수시점 못 읽는 것도 그렇고, 요동치는 부동산 값에 멀거니 구경만하던 때도 그랬다.
창(방패), 화살(활), 勇(氣), ♂(♀), 돈(자루) ......, 이처럼, 사냥을 하려면 항상 나름대로의 필수품이 수반된다. 두꺼비 사냥 시에는 따개(잔), 오징어(접시), 그도 아니면 정(말), 情(言)일까 ?
2006.1.23.(월)
t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