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그늘

오갑록 2006. 2. 17. 16:00

 

■ 그늘 


   항상 양지 녘이 좋은 것은 아니다. 구석진 그늘에 박혀 나름대로 안식을 찾고픈 때도 더러 있다.

그것이 본능일 수도 있다.

 

아직 말 못하는 기저귀 찬 어린애들이

구석지고 옴팽이 진 곳 기어들며 얼마나 들 좋아 하는지를 자주 본다.

그리고 물 넘어 정신 좀 나간 이들이나, 노망기 살짝 든 노인들도

반 그늘 구석진 곳 곧잘 찾아 나서기는 유아들과 비슷한 듯하다.

 

건강한 성인도 이와 비슷하게 힘들고 울적할 때면

양지 바른 밝은 곳 보다는 빛이 가려진 침침한 곳을 찾게 되곤 한다.

 

어둠 깔리는 밤이 되면 대다수 꽃잎은 움츠리며 오그라든다.

가금류나 야생동물 들도 밤이면 비슷한 모양새를 하며 잠을 청하고 안식을 취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양지 바른 햇볕아래 활짝 핀 꽃잎처럼

대개의 동식물은 환한 곳에서 보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며 공격적 형태를 취한다.

 

그늘 아래 기대어 서 있는 모습

 

쉬며 안식을 취할 수는 있으되

성취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꼭 좋은 모습은 아니다.

앞에 나서서 뛰고 주장을 내세우는 자세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양지와 음지가 대조적인 것 만큼.

 

그 그늘이라는 곳은 꼭 나무아래 또는 구석진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크고 이름 난 훌륭한 남편으로 모시는 부인일 수도 있고

선두에 나서서 전장을 지휘하는 지휘자 휘하의 뒷줄에 선 졸병일 수도 있다.

큰돈 벌고 있다거나, 커다란 사업 벌리고 있다고 큰 입 헤 벌리고 떠드는 사람의

사업체 직원일 수도 있고,

줄서기 잘해야 한다며 소문난 정치가 후광 아래 선 신참내기 정치 초년생 이거나,

이름 떨친 과학자 연구실의 새파란 연구원일 수도 있다.

 

그러한 훌륭한 남편이나 지휘자, 성공한 사업가나, 정치가, 과학자들을 양지 녘 사람이라고 칭한다면,

그들 양지에 선 사람들은 나서는 권한의 크기만큼 의무가 따르기 마련이니,

매사를 지휘하고 결정하는 고뇌의 순간이 떡이나 영광의 크기와 비슷하리 만큼 큰 어려움들도

함께 따른다고 한다.

수시로 밤잠 설치고 때로는 고층에서 몸을 던지고픈 충동이 일 만큼 고뇌의 틈바구니 속에 하루하루를 외줄타기 하듯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크고 강한 만큼 위기나 위험 요소도 많은 것을 보면, 음지와 양지에 자라는 식물과 유사한 점이 마치 자연의 이치인 듯하다.

 

이제 사회생활 어느 만큼 익숙하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모습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 온다. 직장이건 돈벌이건 그늘아래 있다 보면 나서서 날고 뛰기 보다 편하고 안정감은 있다지만, 연약하고 겉자라 잘 크지 못하는 식물모양, 성장과 성공도 왜소하게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가까이 지내던 분들 성공한 모습 접하면 스스로 더 초라하게 느껴오곤 하는 감정은 나만이 아닐 성 싶다. 그늘에서 한 발짝 더 뒤로 물러서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청소년에게 대망을 가져라고 가르친다.

비록 지금 왜소하더라도 야망이 큰 만큼 스스로를 작게 보지 않고

강하게 다짐할 수 있게 때문이리라.

 

양지에 선 훌륭함에 아낌없이 칭찬하고 때로는 존경할 줄 아는 덕과, 음지에서 받쳐 주는 이들에게 수고에 대한 격려와 함께 비록 작더라도 나눔의 아름다움을 갖는 것이 성숙한 성인의 올바른 자세라는 생각이 머리색 듬성듬성 변한 뒤늦게야 알게 되니 이 역시 씁쓸하기만 하다.

 

어제는 회사 주주총회가  잘 끝났다. 작은 규모나마 회사운영 결과물을 처분하는 자리였다. 이익잉여금 처분안과 합병결의안 등이 처리되는 과정을 본다.

비록, 마음 깊이 따르는 사업주체는 아니더라도 몸담은 곳의 결과물 배분을 한발치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달거나 곱지 만은 못했던 듯하다.

 

돈 놓고 돈 먹기 투전판에서 판돈 한 웅큼 움켜 쥐는 형국과도 같이 느껴지는 것은

그늘에 선 자의 성숙하지 못한 그릇된 시선이려니……

 

2006.2.17.(금)

t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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