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촌닭

오갑록 2006. 2. 24. 16:48

 

■ 촌 닭 

 

        시골사람이 모처럼 서울에 오면 휘 번득 거리는 주변환경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시골 닭이 기웃거리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외모나 행동 또는 생각이 촌스럽고 어릿어릿한 사람을 “촌닭” 같은 놈 이라고 말한다.

 

남 앞에 서기 주저하는 내 모습을 표현하는 낱말 같기도 하다.

 

언제나 뒷전에서 어정대곤 하던 기억들이 많다. 어릴 적 다른 애들 미꾸리 잡는 동안 나는 메뚜기나 잡고, 그들이 미꾸리 잡다 뱀장어가 잡혀 미꾸리 거들 떠 보지 않을 즈음에야  미꾸리 잡으며 좋아 하던 기억이 새롭다. 국민학교 때 줄반장 한번 나서지 못한 일도 그렇고, 어느 음악당 앞에서인지 어릿하던 때도 그렇다.호사스런 차림의 아름다운 소프라노 가수가 옆에 있었다. 아리아 몇 곡을 열창한 후 무대를 마치고 평복 차림으로 앞쪽에 있던 내 곁에 서 있었다. 기절하는 소리를 내며 반가와 하기보다 그녀에 비해 초라하게 생각되는 내 모습이 “촌닭” 같다는 생각이 앞서 쭈삣 거리던 기억이 난다. 에쿠스, 벤츠, 비엠따블류, 렉서스니 하는 대형차 뒤를 따르는 내 차 모습에서도 그와 비슷한 생각 할 때도 있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조직의 수장이 된다든지, 사주가 된다든지 하는 욕심은 아예 접었던 것도 같은 맥락인 듯 하다.

 

대륙을 호령하는 군주던, 대중을 압도하는 영도자던 거창한 외양과 달리 왜소한 한 인간으로서의 외롭고 쓸쓸한 고뇌는 누구나 갖는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 들 때가 자주 있다. 방 한편에 선 나, 열광하는 운동장 군중 속의 나, 등산에 나서 정상아래 능선을 내려다 본 나, 별 헤아리던 가을 밤의 나…… 한 편 구석에 홀로 서 있다는 생각 할 때다.

 

조깅시간에 다니는 개울가를 걷다 보면 황새나 두루미는 어정어정 걷거나 목을 길게 뺐다 숙이다를 반복하고 있다. 물오리는 무엇인가를 헤치며 끝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런데 펭귄 같은 모습의 이름을 잘 모르는 오리크기의 덩치 큰 물새는 항상 물가에 우두커니 서서 제자리를 지킨다. 우리는 그를 가리켜 “우두커니 새”라고 별명 붙였다. 그런데 기분 언짢게도 그 새를 보면 “나” 를 닮은 새가 저기 있노라고 놀린다.

 

아파트며 부동산이 폭등을 하느니, 주가가 날개 달린 듯 치솟느니 하는 뉴스를 보면 그렇고 그런 내 모습에 체념하기도 한다. 대화 중에도 돈벌이나 군대, 여자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또 “촌닭” 모습이 되는 것 같다.

 

“촌닭” 모습은 기가 모자라 오는 모습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기(氣)”란 무엇일까?

“기막히다, 기차다, 기죽다, 기절하겠다……”라는 말을 생각하면 사람에게 “기(氣)”는 없어서 안될 중요한 것 같다.

 

사전 속  낱말 풀이는 간단하다.

(1) 활동의 근원이 되는 힘. [기력·생기·원기·용기 따위.]
(2) 숨 쉴 때 나오는 기운.
(3) 전체에서 느껴지는 기분. 분위기.
(4) 성리학에서 이르는, 우주 만물의 정기.

 

기가 빠지거나 단절되는 것을 두고 기절한다고 하면 그 기절은 무엇일까?

 

의학에서는 혈압이 떨어져서 뇌로 충분한 혈액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失神, syncope)을 의미하는데, 심장박동이 빨라지거나 혈압이 높아지면 기절하게 된다고 한다. 흥분에 의해 숨이 가빠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사람의 몸은 산소를 받아들여 피를 만드는데 산소를 지나치게 많이 받아들이게 되면, 즉 호흡이 가빠지면 혈액 속의 산소량이 증가하고 이산화탄소가 감소하면서 혈액은 달리 변하게 되고, 그러면 혈관이 수축되어 산소를 받아들이지 못 하는데, 이때 뇌혈관도 함께 수축 되면서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게 되어 뇌에 산소가 부족해져 일시적으로 빈혈이 일어나 기절하는 것이라고 한다.

 

철학에서는 “기(氣)” 의 의미가 더욱 큰 것 같다. 만물생성의 본질로까지 여긴다. 예컨대 왕충(王充)은 "천지가 기를 합쳐서 만물이 스스로 생겨났다"고 했고, 장재(張載)는 "필연적으로 기가 모여 만물을 이룬다"고 생각하여 '기'란 운명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했다.

 

유가(儒家)에서도 도덕수양을 하는 데는 기를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맹자도  "그 기란 것은 의(義)와 도(道)의 짝이며 이것이 없으면 굶주리게 된다"고 했다. 도가(道家)에서도 기는 호흡이며 몸 속에 있는 고유한 활력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써서 몸 속에 있는 기의 운행을 조절하면 오래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촌닭이란 우스운 모습이 거창한 의미의 기가 모자란 이유는 아닌성 싶다.
생각하며, 돌다리 두드려가며 망설이는 긍정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을유년” 닭의 해도 저물고 있다.
우쭐댔던, 퍼덕거리던, 두리번댔던,
아니면, 좋은 사람 두고도 좋다는 이야기 망설이며 머뭇거렸던,
또 한 해는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2005. 12. 30.(금)
t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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