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눈높이

오갑록 2015. 4. 23. 17:22

함께 하는 ......

 

■   눈높이

 

 

     우리의 삶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나 홀로의 삶도 상정해 볼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길은 쓸쓸하고 외로운 여정이 될 수 밖에 없고, 무서움과 두려움 또한 더 잦아질 것이다. 넓은 들판이나 깊은 산 속, 또는 시커먼 바닷가에서 칠흑처럼 어두운 밤을 당신은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러한 곳에서, 나 자신을 집어삼킬 듯 당기는 암흑 속의 무섭도록 커다란 힘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그러한 부류의 무서운 힘은 명암의 극명한 차이에서만 경험되는 것은 아니다.

 

예측 가능하고 자주 경험하는 일상의 생각이나, 풍경, 모습 등에서는 느껴 보지 못했던 느낌이나 감정이, 예상 못한 극한의 색다른 환경에서는 무서움, 두려움 따위로 엄습해 오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곤 한다. 칠흑 같은 야밤의 명암 차이처럼, 천둥 번개 같이 소리나 빛의 극명한 차이에서도 느끼게 된다. 괴물이나 귀신의 소굴을 연상하는 경우도 보통 사람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난 험악한 형상 때문에 느끼게 되는 무서움이다. 마찬가지로 의식주 환경에서의 극한적인 차별이나, 종교, 가치관, 사상이나 철학 따위에서도 미처 상상치 못 할 만큼 큰 차이가 나는 이색적 사회현상과 맞닥트리게 된다면, 같은 이치로 인한 두려움이 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사회생활에서도 유사한 경우는 종종 경험하게 된다. 자기보다 너무 높다거나 터무니없이 낮다고 여겨지는 부류의 집단 앞에 홀로 서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움츠려 들게 된다. 돈 많은 갑부나, 명예나 학식, 지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 위축되기 쉽고, 그것이 돈이던, 힘이던, 사랑이던 간에 떼거지로 내미는, 감당하기 어려우리만큼 수 많은 도움의 손길 앞에서 불현듯 느끼게 되는 두려움도 서로 다른 차이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유명세와 인기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오히려 부담되어 정신적 압박으로까지 다다르는 사례도 심심찮게 일어나곤 한다.

 

일상에서 서로를 잘 통하려면 마주하는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끼리끼리 논다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의미가 여기에도 적용될 것이다. 서로 어울리는 수준이 맞아야 한다고도 한다. 여기에는 평등, 균등, 조화, 어울림, 또는 중용(中庸)의 덕()”이라는 의미가 교차되기도 한다.

 

무릎 꿇어 자세를 낮춰가며 눈높이를 같이하고서, 힘없고 약한 자를 보듬는 종교인이나 유명인사 들의 모습도, 어쩌면 서로를 통하고자 하는 연출된 자세라고도 볼 수 있다. 자기도 같은 눈높이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부나 지위이던, 학식이던, 건강이나 나이던 간에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서로를 통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보고, 말하고, 생각하며, 놀아줘야만 서로가 소통하는데 쉬워진다. 내가 좀 더 가진 것이 있다 하여 생색내다가는 따돌림 당하기 쉬운 이유이다. 내가 좀 더 배웠다고 문자 쓰다가는 어울리기 쉽지 않게 된다. 자기 잘났다고 미모를 내세운다면 누가 함께 어울리고 잘 놀아주려 하겠는가? 같은 크기, 같은 높이, 같은 생각, 같은 가치관을 유지하려고 서로 고심할수록 그 관계는 서로 잘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관계에서도 예외일수는 없다. 그래서 노인 분들 모시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가 보다. 어머니와 아들, 모자간의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이 백 살이 가까워 온다 한들, 수준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이치에서 예외가 될 수는 있는가? 자기의 나이를 상대방 수준에 올려 놓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 할 때, 모자간이라 하더라도,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본다. 한 쪽이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 해야만 섭섭한 감정이 생가지 않음은 분명하다. 돈푼 때문에, 귀찮다는 핑계로, 또는 사소한 가치관의 차이로, 미루거나 무시해 버리면, 정상적인 관계를 지탱하기 어렵게 되고 만다. 어른 모시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가 보다.

 

구순이 다가오는 왕회장을 모시던, 전 직장 회사의 일이 떠 오른다. 그의 자식들로서는 부자간의 도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주식 소유지분과 재산 상속에 신경이 안 쓰일 리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역경 속에서 부를 일궈낸 노인의 가치관과, 그의 그늘에서 성장하고 신교육을 받은 자식의 세상 보는 안목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어쩔 수 없이 왕회장 눈높이에 맞춰가는 듯한 부잣집 자식들 모습이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비친 적이 있었다. 회사생활 속에서 보이는 사소한 행동 하나, 말투 하나가 그러했다. 그들 나름대로는 눈높이를 맞추려고 어려운 시각들을 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장수하는 노인을 두고, 벽에 똥칠하도록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치매로 노망 색 짙은 노인이 때로는 자기가 싼 배설물을 스스로 치운답시고 버린다는 것이 자기 방안에서 벽에 내던진다는 것이다. 이 정도에 다다르면 눈높이 맞추기가 참 힘들게 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역할까지 해야 되고, 참을성도 극에 달해야만 될 것 같다. 더불어 살아감의 의미란 대체 무엇이고, 왜 그리해야 하는지 의심 들기 시작할 것이다. 어찌 할 수 없이 전문기관의 자문과 요양원 위탁의 수순으로 넘어가게 되는가 보다.

 

믿음이나 신뢰란 어느 수준까지를 두고 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게 된다. 혈육간의 인간관계, 눈높이를 재는 데에도 한계는 있으리라는 가정이 서게 된다. 물의 특성이 끓는 점과 어는 점에서 나뉘듯, 인간 특성의 한계점도 특정되어 눈높이를 재는 것도 정()과 부()로 나뉘어져, 한계점을 벗어나면 환자로서 대접해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 한계점이란, 나이, 체격, 체력 보다는,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 정도에 한정해야 될 것이다. 고령자라고 하여 모두가 그렇지는 않고, 왜소하다거나 허약체질이라고 전부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똥 주무르는 노인이라고 다 그런 정도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왜일까? 사례연구를 하여 보기로 하자.

 

박 할머니는 몇 해 겨울만 더 견디면 연세가 백 살이다. 그는 어려운 환경과 역경을 거치면서 거친 세상을 경험하였다. 사회는 어려웠던 시대였고, 가난한 환경이었다. 그래서 고령임에도 누구에 지지 않을 만한 근검절약 백단이다. 노령에 걸 맞는 적당한 치매 기운은 있기에, 쉬이 의심하고 미워하고 욕하기는 하지만 당신 연령에 비해 그래도 건강한 편이다. 정신도 청량하고, 먹고 치장하고 배설하는데 주변의 큰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잘 해결한다. 때때로 얼굴 닦는다며 때 타월로 두어 시간씩 박박 문질러 얼굴 전체가 벌겋게 부어올라 피부연고를 바르곤 할 정도는 된다. 그래서 화장실의 때 타월은 감추고, 부엌 가스 레인지의 잠금 장치를 별도로 하기도 하는 등의 조치는 하지만 ……

 

그 이의 이력을 생각한다면, 지난 주에 그가 똥 주물렀던 사건이 자식에게는 별반 이상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게 아끼고 절약하며 생활하여 온 것을 그의 아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치아가 모두 빠지고, 이십 여 년 동안 틀니를 사용해 왔다. 딱딱한 것을 물다가 그 이빨이 부러지면 아들은 접착제로 붙여 주곤 했다. 그게 잦아지다 보니 지난 주에는 부러진 이빨을 삼켜 버렸는지, 조각을 분실하여 버렸다. 노인이 무슨 일을 벌일지 아들은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노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 봐,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이 아침 운동을 다녀 오는 사이, 노인은 대변을 보고 나서, 분실했던 이빨 조각을 찾고자 화장실에 비치된 작은 소쿠리에 자기의 변을 걸러 댔다고 한다. 운동 다녀온 아들에게 자기가 아침에 한 일을 겸연쩍게 자랑은 했지만, 아들은 무심한 양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그날 못 찾았으니 다음 번에 더 해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몇 일 동안 앞니 한 개가 빠진 채 생활을 했다. 음식물 씹는 데는 여전했지만, 마주하고 보는 이로서는 뻥 뚫린 앞니가 민망하기만 하다. 불편하지는 아니하니 그대로 쓰다가 가겠다(?)는 말 만 몇 번이고 하신다. 그래도, 가서 고쳐오라는 말씀은 전혀 안 하신다. 아들이 느끼기에, 노인의 사전에는 아예 그런 말은 없는 듯하다. 원만한 일은 참고 견디면서 언제나 그리 살아오신 게다. 몇 날을 허비하고 나서, 아들은 치과며, 치과기공소를 수소문 해 본다. 단순한 땜빵으로 수선이 가능할 듯 한데도, 환자(?)가 함께 와야만 된다고 하고, 어느 치과에서는 다른 곳에 가 보라는 말도 들었다. 귀찮은 일이라는 투다. 치과기공소는 치과를 거치지 않고 자기네가 직접 수선하면 규정에 어긋난다고 한다. 그래서 소개 받은 치과를 거쳐서, 의사처방과 함께 기공소의 수선을 마치게 되었다. 그러나, 규정 때문에 곧바로 수선해주지 못한데 대하여 미안해하며 수선비 받기를 끝내 사양한다. 아들의 마음은 더 무겁기만 하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빠진 이빨을 볼 때만큼이나 허전하기만 하다. 수선한 틀니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왠지 무겁다.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은 항상 어렵다. 전화 한 통이면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일에도, 몇 일 동안이나 실랑이를 벌이고, 재고, 눈치 보아 가며 해결해야 되기도 한다. 가치 없는 행태고, 의미 없는 시간 낭비며, 자랑감도 안 되는 부끄러운 일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일상의 삶, 그 면면들이 그러한 일들로서 점점이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것이 제아무리 크고 위대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사의 범주가 아니겠는가? , 영광스런 일이 있다면 과연 무슨 일들을 상정해 볼 수 있을까? 반짝이는 별도 따고, 쟁반 같은 달도 따고 한들, 그 실체란 한 줌 흙먼지와 크게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를 터인데 ……

 

 

2015.4.22.()

오갑록   

 

 

□ 

. 유유상종(類類相從) : 같은 무리끼리 사귀다. 비슷한 부류의 인간 모임을 비유한 말.

. 물이유취(物以類聚) : 사물은 종류대로 모인다. 같거나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리는 것을 말함.

                                                                                                                   (백과사전)

하늘은 높고 땅은 낮아, 하늘과 땅의 구별이 정해졌다. 낮은 것과 높은 것이 벌여 있어서 귀한 것과 천한 것이 각기 자리를 얻게 된다. 움직임과 고요함에 일정함이 있어 강한 것과 유순한 것이 결정된다. 삼라만상은 같은 종류끼리 모이고, 만물은 무리를 지어 나누어지니, 이로부터 길함과 흉함이 생긴다.

(天尊地卑, 乾坤定矣. 卑高以陳, 貴賤位矣. 動靜有常, 剛柔斷矣. 方以類聚, 物以群分, 吉凶生矣.)

                                                                                                    주역(周易) - 계사상(繫辭上)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며,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을 향한다. 구름은 용을 좇아 일고, 바람은 호랑이를 좇아 분다. 성인이 나오면 만물이 보고, 하늘에 근본을 둔 것은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 것은 아래와 친하니, 이는 각자가 그 비슷한 것을 좇기 때문이다.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則各從其類也.)  주역 - 문언(文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