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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와 아귀맞춤

오갑록 2011. 8. 16. 16:38

만족감 ......

 

  자연의 순리와 아귀맞춤

 

 

 

     순리대로 살아보려는 생각에, 때로는 부질없다고 여겨지는 욕심을 접어보려고 안간힘 써보기도 하고, 새로운 결심을 다져 보기도 한다.  하기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나로서는 큰일이고, 나에게 언제 닥칠 지 모를 죽음도 큰일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이어지는 하루하루의 삶 또한 나로서는 큰 일이다. 생명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은 순리라고 쉽게 말하면서도, 왜, 나에게 닥치는 삶의 모습만은 더 큰 얼굴로서 부각되어 내 앞에 다가서곤 하는가?

 

다름아닌 순리에 벗어난 욕심과 욕망의 돋보기로 확대된 허상의 모습을 쫓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더”라고 하는 욕망의 산물일 뿐이다. 대학교 입시 철이 되면 많은 수험생들은 받아 쥔 수학능력 점수가 한 두 점만 더 높았어도 하는 아쉬움으로 원하는 학교를 한 단계 더 높여 보며 탄식하곤 한다. 적성, 장래희망, 수학능력 따위를 고려하여 자신에게 적합한 소신 지원이 순리인 줄 알지만, 모르는 사이에 수험생들은 입시학원이 배포한 예상 커트라인 도표에 매달려 탄식 흐르는 씨름하기 일쑤다.

 

결혼, 사업, 부유, 건강, 명예, 아름다움, 수명 …… 자연의 순리로 여기며 대한다면 닥친 현실은 어느 것이던 긍정적일 수 있는 항목들이지만, 대부분 한 두 뼘, 한 두 개씩 부족한 아쉬움으로 까치발을 딛고도 모자란 듯 여기거나, 텅 빈 보따리처럼 느끼게 되곤 한다. 결혼 상대의 학벌이 조금 모자라서, 잘 나가는 기업만 못하여, 호사스러운 저택이 부러워서, 더 잘 던지고 더 잘 달리는 상대선수만 못하다고, 부나 명예며 아름다움이 조금 모자란다거나, 한 두 해만이라도 더 살기를 원하면서, 대부분은 그러한 욕심을 작고 순박한 바람 정도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순리대로 가는 길이 어렵고 험한 가시밭길만은 아닐 것이다.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니 윗물은 아래로 흐르고, 시간은 되돌리지 못하니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자연을 벗어나 역행할 수 없으니 자연에 순응하면 되는 것이다.

 

나의 앞에 지금 서 있는 자연은 자연법칙을 따르는 물질세계와 나에게 주어진 정신세계 까지를 망라한 것이다. 자연이라는 시간과 공간 사이에는 미미하지만 나라고 하는 존재도 끼워져 있음을 인식하고, 여기에 태어나고 그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 아주 단순한 자연의 순리임을 잊지 않고 세상을 바라 보라. 그 이치에서 벗어난 생각이며 행동을 억제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연의 이치라는 한 개의 틀, 즉, 그 아귀에서 벗어나보려는 부질없는 발버둥도 의미 없는 짓이며, 알 수도 없는 아귀 넘어서의 딴 세상을 막연하게 선망하거나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 아귀

 

사물의 갈라진 부분을 “아귀”라고 한다. 두루마기나 속곳의 옆을 터 놓은 구멍을 이름하기도 하며, 씨앗이나 줄기에 싹이 트는 곳을 뜻하기도 한다. 터진 곳에서 연유한 듯한 “아귀”가 옛말에는 입아귀, 주둥이, 아궁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입아귀는 아구지, 아가리, 니아귀, 아가빠리 처럼,  “아귀”에서 파생된 방언도 여러 가지가 있다.

 

“우는녀르 아그빠리를 짜~악 찢어 쁘릴라 !” 어린것이 앙앙대며 울라치면, 달래보려고 윽박지르던 어르신 말씀도 어릴 적 기억에 새삼스럽다. 심부름은 안 하는 녀석이 맛난 것만 보면 “범 아구지 같이 달려든다.”고 꾸중하기도 한다. 입아귀만 해도 우리에겐 좀 생소한 말이지만, 손아귀, 문 아귀, 아귀다툼처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낱말도 있다.

 

우리 눈에 익은 영상자료 가운데 “동물의 왕국”이 있다. 호랑이 사자와 같은 맹수며, 하마 악어들이 입을 크게 벌려가며 서로 입아귀 다툼하는 모습도 일련의 맞춤이긴 하지만, 젊은 연인들 사이의 입맞춤, 키스도 그와 유사한 행위의 부류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정을 나누는 애정 표현인데 왜 입맞춤을 하게 되는지 알 수 없다. 비둘기나 오리 따위의 조류들도 짝지어 부리를 쪼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기는 마찬가지다.

 

갈라진 부분이 맞닿아 틈새 없이 꼭 맞아 들어가는 모습을 “아귀가 맞는다”고 한다. “문 아귀가 틀어져 찬바람이 들어온다”는 말은 문과 문틀 사이에 틈새가 있음을 의미한다.

 

경영학의 기업회계는 돈 줄의 “아귀”를 맞추는 일이다. 주고 받은 장삿속 셈이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아귀”가 꼭 맞도록 셈 하는 기술인 것이다. 그 기술자를 보고 회계사라고 부른다. CPA라 부르는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려고 경영학도들은 법학도들의 고시 준비 못지않은 노력을 하기도 한다.

 

경영학이 무엇인가? 인사, 자금, 생산, 마케팅처럼 5M (Man, Machine, Material, Method, Money)을 바탕으로 이익의 극대화를 향해 여러 가지 각각의 기능을 가진 톱니바퀴를 “아귀”가 맞도록 구르게 하는 기능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 기능의 결과를 일정한 기간별로 압축하여 각 계층의 이해 관계인들이 잘 관찰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요약한 것이 재무제표이다. 이 재무제표는 종업원이나 경영진에게도 중요하지만 자본을 제공하는 주주나 투자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 원자재며 설비 등 물품 공급자나 제품 수요자와 같은 상품과 용역의 거래선, 과세당국 등 모두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셈의 표준이 된다. 그래서 이 표는 합리적면서도 셈의 “아귀”가 꼭 맞아야만 그 신뢰성을 유지하게 된다.

 

일정한 기간동안 돈을 주고 받은 자금운용표(C/F), 제품을 만드는 데 소요된 제조원가보고서(M/C), 상품을 사거나 제품을 만들어 팔아서 수익을 셈한 손익계산서(P/L), 여기에 들어간 재화와 용역의 기말현재 잔액을 셈한 자산. 자본과 부채를 기준으로 대차대조표(B/S)가 작성되는데, 자산총계와 자본 및 부채 총계가 끝전까지 딱 떨어지게 맞아떨어져서 “아귀”가 맞아야만 된다. 때문에 경영에서의 회계란 결국 “재화와 용역의 아귀 맞춤”이라고 볼 수 있다. 자산의 운용 내역과 자금조달 내역을 아귀 맞춤 하는 과정이 회계 업무이다. 자크를 끌어 올려서 줄 세워 보는 것과도 흡사하다. 차곡차곡 끼우지 않았을 경우 겹치거나 빈 곳이 눈에 잘 띄게 된다.

 

 

. 아귀맞춤

 

 아귀맞춤을 연상하는 데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역시 시계 부품의 톱니바퀴 돌아가는 모습이라고 본다. 자전거의 체인과 기어나, 겨울 옷 잠바의 앞 자크 맞물리는 모양에서도 아귀맞춤의 제 모습이 연상 될 수 있다.

 

기계공업에서는 두 축사이의 동력을 전달하거나, 동력의 방향을 변환시켜 주기위한 부품으로서 기어(Gear)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어를 자세히 관찰하노라면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인다. 왜 그런지 곰곰 짚어보면 정확한 “아귀맞춤” 때문인 듯 하다. 공학적으로 그 치차의 설계나 제작에는 수 많은 기술적 요소가 요구된다. 공업고등학교 때의 기계구조학에 나오는 치차 기본구조가 생각난다. 두께, 폭, 아덴덤, 디덴덤, 클리어런스 등의 기본구조를 갖는다. 양 축간 힘의 전달이나 전달방향의 변환, 마찰력 등에 따라 스퍼기어, 헬리컬기어, 베벨기어, 랙기어 등 기어의 모양도 다양하다. 기어의 아귀맞춤이 되는 가운데서 자동차가 구르고, 각종 기계가 원활하게 구동한다. 그 아귀가 어긋나게 되는 순간 구동체는 오작동 되거나 멈추게 된다.

 

아귀맞춤은 기계 부품인 기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의 생존이며 주변의 일상생활은 물론, 각종 물리현상이나 더 크게는 우주의 원리에까지도 착착 맞는 아귀맞춤 가운데 구르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 역으로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한 구동원리의 환경에서 적응하며 적응될 수 있을 때까지 생명체는 생존 될 것이며, 물리현상은 시간의 함수 속에서 건재할 것이다. 내 경험의 시간이 우주의 시간에 비하여 보잘것없이 짧다고 하여, 내가 물리적 현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인체의 건강도 그러하고, 먹이사슬로 이어지는 동식물 생태구조도 그러한 맞춤구조 가운데 생존이 지속되며 어떤 요인이던 간에 그 아귀맞춤이 무너진다면, 생명체는 건강이 무너지고, 생명까지도 위협 받게 되며, 생태구조는 허물어지게 되어 종족 흥망의 원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 자크의 이빨처럼, 그러한 아귀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들 건강의 아귀맞춤 요소로서 물, 공기, 영양소 같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기분, 감정, 희망 따위의 감정적인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사고를 가지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혈액 호르몬 영양소 등의 대사과정도 잘 맞는 자크처럼 이빨이 제대로 맞물릴 때 건강하다고 본다. 이에 더하여 영원, 영혼 등의 형이상학적인 요소를 제시하는 종교인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성공을 느끼고, 영광을 느끼며, 자아실현의 만족감을 갖기 위해서는, 이러한 건강이라는 자신 스스로의 아귀맞춤을 우선 느낄 수 있을 때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건강이라는 아귀는 어떻게 맞출 것인가? 합리성이 요구되는 것은 회계의 재무제표 작성시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싶다. 과하지 않고, 자연적이며, 순리적인 것은 건강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건강백세의 한계성을 인정할 줄 알고, 주어진 성(性), 체격, 체력, 정신력 등을 인정 할 줄 알며, 불로장생의 묘약만 찾을 것이 아니라 매일 먹는 낱알 알곡의 가치를 읽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믿는 종교만의 절대성을 잠시 접고, 남의 믿음은 과연 무엇인지 관심 두고 볼 줄 아는 넉넉한 마음도 우리 정신건강의 아귀맞춤에서 요구되는 지혜라고 여겨진다.

 

위의 예는 비록 건강에만 국한된 요소는 아니다. 부, 명예, 영광 등 삶의 어느 항목이던 순리적이고 합리적인 덕목이 따라야만 제대로 된 삶의 아귀맞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귀가 어긋나게 되면 기대할만한 현실도 없고 미래도 없다. 때로는 미래의 아귀맞춤을 담보하기 위해서, 행여 닿을 지도 모를 불의의 사고나 질병, 천재지변에 대비하여 보험에 부보(負保)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상에서 누구나 갖고 있는 착각 한가지가 있다. 나에게 지금 주어진 아귀맞춤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자만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때로는 희망이니 절망이니 하는 이름으로 훗날을 새롭게 그려본다고는 하지만 지금이라는 자크가 내일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명백한 착각 속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 인간의 본능처럼 여겨진다.

 

타인의 자크가 단절되는 것은 생명체의 당연한 현상이라고 이내 수긍하면서도, 자신에 대하여는 좀처럼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 대부분의 입장이다. 내일 있을지도 모를 자신의 죽음을 수긍하면서도, 진정으로 그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싫어한다. 때로는 그 단절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수 백년 후, 아니면 영원토록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이 아귀맞춤이 지속될 것을 막연하게 기원한다. 영혼을 믿으며 믿음 약속 신앙의 이름으로 희망한다.

 

시야를 좀 더 넓혀 보자. 자신을 벗어나, 나 자신을 감싸고 있는 대자연으로 눈길을 돌려 보자. 눈 여겨 보지않던 자연에서의 아귀맞춤도 새롭게 보인다. 산과 들, 하늘과 태양, 물과 공기, 그 가운데 중력을 받으며 생활하는 동식물 모든 것이 밤과 낮 그리고 계절의 수레를 타고 기어에 맞물린 듯, 아귀 맞춰 돌아가고 있다. 비록 나의 눈에 비친 자연은 약육강식의 다툼과 천재지변의 소용돌이가 있더라도, 해와 별이 돌고 있는 우주의 흐름을 벗어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에게 내일은 반드시 올 것이라는 오늘의 착각처럼, 비구름에 가린 해이지만 맑은 내일은 반드시 뜰 것이라고 착각하며 오늘을 숨 쉰다. 행성의 에너지 한계란, 오늘의 나로서는 과학도서 속의 이론에 불과한 것이며, 내가 오늘 보고 느끼는 대자연은 평형상태(Equilibrium state)이자, 완전히 평온한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내일도 오늘처럼 생명의 아귀맞춤이 자연적으로 이어질 것에 의심하지 않고 막연하게 믿으며 지낸다.

 

내가 사는 세상이 평형상태라고는 말해 보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웃의 어그러지는 모습들을 매일 접하며 지내야 한다. 멀리는 뉴스 속의 사건사고나, 가까운 이의 안타까운 아픔과 죽음에서 잠시 잠시 절망하곤 한다. 여기서 눈 여겨 볼만한 아주 웃기는 현상 한 가지가 있다. 타인의 엇갈려버린 아귀맞춤은 멀던 가깝던 쉽사리 잊혀진다는 것이다. 흐르는 시간 사이에서 흐려지는 감정의 농도 구배는 개인차가 있을 뿐 항상 작아진다는 것이다. 결국은 감정 없는 흐릿한 기억으로서 가물거리게 되어 평형상태로 남게 되는 것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과, 오늘이라는 자신의 아귀맞춤에만 끝없이 열중하게 된다. 물리적으로야 분명한 끝이 있으련만, 자기자신은 그 끝에 대한 감정이 타인의 것처럼 평온한 상태가 되어, 오늘도 오직 자크 손잡이 끌어 올리는 데만 열중한다.

 

 

. 내가 속한 세상 아귀의 본질

 

내가 님의 손아귀에 존재 하니, 님의 뜻에 따르겠노라고, 막연한 믿음을 종교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따르기도 한다. 이는 자기자신의 존재의 시발점을 그리 믿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말씀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인지, 그 합리성 여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자연의 운행이라는 아귀에서 어긋나고 있음을 자각하고야 만다.

 

이처럼 순리는 아르케나 우어스토프에 대한 믿음이나 어떤 특정한 아귀의 사이를 오가며 전혀 다른 생각이나 가치관으로서 우리에게 다가 오게 된다. 내가 특정한 아귀의 틈에 끼인 존재임을 부정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것은 모르겠노라고 무작정 놓아 버리기엔 너무나 큰 중압감으로 우리에게 존재하고, 나약하고 작은 자신의 그 모습에서 헤어나고 싶어한다.

 

순리는 일반적으로 자연스러움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자연이란 물리적으로 평형상태이며 정신적으로는 평온한 상태이다. 별들의 운행이라는 일정한 물리적 틀 속에서 눈 앞의 자연이 펼쳐지고, 행복과 불행을 이루는 삶의 굴곡들도 아귀를 맞춰 돌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순리라고 여기고 이에 맞게 따른다면, 평형과 평온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물체의 크기나 시간의 크기를 잣대로 하여 내가 어디에 속한 것인지를 따지다 보면 생각할수록 나는 더욱 작아져 버린다. 어떤 아귀에 속한 것인지 궁금해 하는 것 자체가 기대할만한 답 없는 허공 속의 의문이라고는 하지만, 자연의 이치며 순리를 생각하면 피할 수 없는 장애물로서 앞에 다가서곤 한다. 다만, 내가 속한 아귀의 종류며 크기 따위를 합리적인 상태에서 알고자 하기에는 현대과학이나 지금의 정신문명 만으로서는 터무니없이 큰 질문이라는 것도 인정 할 줄 알아야 한다.

 

때문에 제1원인인 아르케를 신이 만들었다거나, 절대자의 말씀에서 시작되었다거나, 우리들 스스로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등의 타인의 믿음에 대하여 거짓이라고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것도 자연스럽지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속한 이 자연계가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만큼, 그 자연 속에서 어떻다고 생각하는 자체도 자연스런 것으로 여겨볼만하지 아니한가?

 

 

   2011년 8월 16일 (화)

   오갑록

 

 

 

 

■  입맞춤

                                                                                                          안.세영, 글 중에서 부분발췌

 

입을 맞추는 것만큼 확실한 애정 표현이 또 있을까?

 

입 속에는 온갖 세균이 득실대고, 입 속의 분비물인 침을 튀기면 더럽다고 피하지만, 묘하게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입을 갖다 디밀면 애정행위로 돌변한다. 물론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맞춤은 상호간 애정을 더욱 돈독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해서, 입맞춤 행위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동성(同性)간에도 무리 없이 행해지고 있다. ……

 

입맞춤이라는 확실한 우리말이 있고, 또 이를 귀엽게 표현한 뽀뽀도 있지만, 입맞춤은 글자 그대로 입과 입을 맞춘 경우만 해당하는지 일반적으로는 ‘키스(kiss)’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물론 한자에도 접문(接吻), 합구(合口), 구흡(口吸), 친취(親嘴), 철면(啜面) 등 키스에 해당하는 표현이 있지만, 이는 주로 동물들의 동작이나 모자(母子)간의 행위 등 성적인 요소가 배제된 상황에서 쓰일 뿐 아니라 글자 자체가 쉽지 않은 탓에 일반화되지 않았다.

 

하기야 키스가 입과 입을 맞췄을 때만 쓰는 건 아니다. 일례로 오스트리아의 한 극작가는 입술에 키스하면 애정, 눈 위에 하면 동경, 뺨에 하면 호감, 이마에 하면 우정, 손등에 하면 존경 등으로, 입술을 맞대는 신체 부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며 키스의 종류를 분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스’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남녀 간 성적 요소가 풍부하게 함축된 애정행위로서 입술이 대상이라고 여기기 마련이며, 실제로 남녀 간 성행위를 단계별로 구분했을 때 실로 중요한 한 단계가 ‘키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녀 간 외성기의 결합이 ‘10장(十章)’이라면, 키스는 ‘9장(口章)’에 해당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키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성의학자들은 키스야말로 큰 돈 들이지 않고도 건강이 증진되는 최고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미국에서는 분위기 있는 키스를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5년은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사랑의 키스는 체중감소에도 큰 도움이 되어 사랑하는 부부사이의 ‘모닝 키스(morning kiss)’ 한 번은 3.8㎉의 에너지 연소 효과에 버금간다는 웃지 못 할 계산결과까지 내놓았다. 한술 더 떠, 키스를 하면 심장과 맥박이 거의 두 배 가량 빨라져 혈압이 상승하고, 췌장(膵臟)에서는 인슐린이, 부신(副腎)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는 구체적인 의학이론까지 제시되었다.

 

아무튼 남녀가 사랑의 정감과 욕구에 따라 입과 입을 맞대는 순간, 체내에서는 이에 뒤따른 격렬한 반응이 일어난다. 중국의 유언비어 ...... 한자성어(漢字成語) 5단계에,

     "이구동성(異口同聲), 좌충우돌(左衝右突),

      설왕설래(舌往舌來 ?),

      진퇴양난(進退兩難), 혼수상태(昏睡狀態)"

 

그럼 남녀 간에 펼쳐지는 성반응(性反應)과, 이 반응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체험하려는 욕구, 곧 성욕(性慾)에 대해 알아보자.  TV광고에, 성욕을 일목요연하게 압축한 표현이 있다는데 ……  “주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 이라나?

 

독일의 천재 시인 ‘괴테(Goethe)’가 읊조린 시의 일부분을 잠시 감상해 보자. 고희(古稀)라 일컫는 칠순(七旬)을 넘긴 74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앳된 19살 소녀에게 실연(失戀)당한 뒤 써 내려간 눈물의 시,  괴테는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도 절대 꺼지지 않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가슴속에 타오르는 불길" 이라며 진솔하게 표현했다. ……

 

    “나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에 빠져 버렸다.

     눈물이 흐르고 또 흐를 뿐이다.

     나는 그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도록 내버려두련다.

     그러나 그 눈물은 내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꺼 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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