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눈빛과 평가

오갑록 2008. 10. 21. 14:41

선명하고 매력있는 ......

 

 ■ 눈빛과 평가

 

 

사회생활 과정에서 반복되는 피치 못할 많은 일들 중 한 가지가 다른 사람을 읽고 평가해야 하는 일들이다. 결혼 상대를 선택하기 위해서 맞선을 본다거나, 직원 채용을 목적으로 면접을 보는 일처럼 우리주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 외에도, 거래관계에서 고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해야 한다거나, 전쟁터 또는 경기장에서 적이나 경쟁 상대 생각을 읽으려 하는 것도 남을 평가하는 일로 볼 수 있다. 범법자를 추적하는 형사의 번뜩이는 눈길도 결국은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행태이다. 해당 사건과 연루된 타인을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인 것이다.

 

주민등록, 병적, 호적, 졸업, 성적, 건강, 상벌처럼 증빙자료로 확인되는 것 외에,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사람 됨됨이를 따지기란, 목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항상 어렵기만 하다. 지식의 높낮이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근면, 성실, 정직, 화합, 화목, 우애와 같은 덕목이나 윤리 도덕성은 충분한지, 육체와 정신은 건강한지, …… 본성을 파악하는 것도 어렵고, 좋아한다거나, 무서워한다거나, 미워하는 등의 현재 마음의 동향을 읽는 것도 쉽지는 않다.

 

타인을 평가함에 있어 필요한 주제는 때와 목적에 따라 읽어내야 할 갈래들의 방향이 아주 다양하거니와, 그 폭과 깊이 또한 매우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예가 필기시험이다. 대학 입학시험이나,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은 필기시험도 비록 좁은 의미이기는 하나, 그런 평가의 한 부류로 볼 수 있다. 지식의 크기를 붕어빵처럼 일정한 틀에 넣어 찍어 낸 후, 개수를 세거나 크기를 재서 계수화 하여 서로의 순서를 가리고, 그를 근거로 입학대상을 선정한다거나, 일정한 기간 동안의 학업성취도 증감을 평가하고, 그 결과로서 학업을 독려 할 목적으로 필기시험은 이뤄진다.

 

평가를 하고자 하는 목적은 각기 다르지만 기본 원리는 서로 유사한 면이 많다.

 

혼인을 전제로 한 맞선 장소, 신입사원채용을 위한 면접 장소, 다수의 관중이 어우러진 축구 농구 야구와 같은 구기 경기장, 싸움이 벌어지는 각종 격투장, 돈벌이 다툼이 벌어지는 교역이나 상거래, 섯다판의 투전장, …… 심지어는 국가간의 전쟁터에서도, 사람이 모여 무리 진 사회를 이루는 곳이라면 서로를 평가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생각된다. 외모, 집안내력, 재력, 학력과 같은 기본 항목 평가가 있는가 하면, 근육부위나 조직의 힘, 사고력, 순간동작이나 순간판단력 같은 경쟁상대의 힘을 시험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 됨됨이 또는 한 사람 내면의 세계는 무엇으로 어떻게 평가를 하는가?

대부분 눈을 통해서 들어온 정보를 토대로 한다. 눈은 단순하게 사물을 보고 크기나 색과 빛을 판단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눈빛이며 소리나 동작을 바탕으로 한 종합된 느낌을 상대비교를 함으로서 평가 된다. 타인의 감정을 읽고 스스로만의 주관적 판단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 판단 아래서,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하고, 무엇인지 할까 말까를 정한다. 특이한 것은 인간들의 판단이란 선천적으로 유사한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다. 상대의 희로애락 감정을 서로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가 기뻐하고, 슬퍼하고, 좋아하고, 화내는 것을 꼭 말하지 않더라도, 나는 눈빛만으로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추려 해도 의지에 앞서 표출되고 마는 눈빛과, 그것을 알아 채는 것이 모여 사는 인간사회의 단면일 수도 있다.    

 

하기야, 곤충이며 포유류의 행동양식이 종류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같은 종일 경우에는 엇비슷하게 동일한 행태를 취한다. 철새는 철 따라 남북으로 함께 이동하고, 동물 종마다 특이한 짝짓기 행태를 취하며, 장마철 개미떼나 산란기 연어 떼는 한 곳으로 모여들고, 벌과 나비는 꽃을 찾아 들고, ……

 

상대방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것은 본능 내지는 섭리, 조물주가 설계한 범주일 지도 모르리라는 생각을 하여 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뭇 생명체가 같은 종끼리라면 서로를 상통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눈빛.낯빛.몸짓’을 찾아서라는 부제의 이승환 교수 글 가운데 일절을 꺼내 다시 음미하여 본다. 

 

****

 

유가적 생활세계에서

육체와 분리될 수 있는 정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곧 정신과 육체의 통합체로서의 ‘몸()’이다.

공동체의 상호주관적 시선에 드러난 ‘몸’을 통하여

‘나’는 밖으로 드러나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읽혀지게 된다.

따라서 눈빛과 낯빛은 곧

한 사람의 정신성(기의)이 밖으로 드러난 것(기표)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가전통의 ‘몸’은

자아와 세계와의‘교통방식’이기도 하다.

 

전통사회에서 지향해 온 ‘소속된 삶’은 자유주의의 범람과 더불어

이제는 과거의 영욕을 뒤로한 채 박물관의 창고 속에 고색창연한 유물로 등록되었다.

몰락한 공동체를 뒤덮는

세속화되고 물신화 된 자유의 물결 속에서

‘낯빛’은 왜곡된 모습으로 뒤틀려 우리의 눈앞에 드러난다.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농도 짙은 몸짓,

절제되지 않고 거칠 것 없는 감정표현,

호전적이고 경계 어린 혹은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눈빛

 

모든 가치가 일률적으로 화폐가치로 환산되는 자본주의의 문화에서

‘낯빛’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진실한 내면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부를 드러내주는 지표가 된다.

 

미인대회에서의 조작된 낯빛(이미지 메이킹),

쥔 자와 가진 자의 늠름한 낯빛,

그리고 부를 과시하기 위한 치장과 의복

 

이러한 낯빛.몸짓.의복들은

장자가 공자와 더불어 지탄했던 진실성이 결여된 ‘가면’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낯빛의 기만성을 인식하면서도

그 진실성에 대해서 더 이상 캐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 많이 가진다는 것은 더 좋은 일이며,

가진 것의 표현은 윤리적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

사적인 취미판단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상업주의에 편승한 기술문명의 덕택으로

우리는 가족과 친구로부터 해방되었다.

 

아내와 남편은 직접 눈을 마주치는 대신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스타의 눈빛을 매개로 공감대를 유지해나가고,

아이들은 숙제를 끝마치기 무섭게 오락기 앞에서

팩맨이나 베이버와 같은 우주의 악인을 대상으로 전쟁을 치른다.

친구들은 더 이상 골치 아프게 얼굴을 맞대고 시()와 인생을 논할 필요도 없이,

락 카페나 뮤직비디오 레스토랑에서 영상 속의 뉴키즈를 따라 춤추고 노래하기만 하면 된다.

소녀들은 더 이상 갈망하는 눈빛과 억제하는 몸짓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이,

상대방이 걸친 옷의 브랜드와 차종만 보고서 살덩어리를 내맡기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연인에게서

실종된 눈빛과 낯빛을 갈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행위의 ‘규칙’만이

우리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길로 인도해 줄 수 있을 뿐,

눈빛.낯빛 혹은 ‘감정’과 ‘성품’에 관한 이야기는

옛 노인네들이 남긴 진부하고 통속적인 훈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파편화되고 표류하는 자아,

왜곡되고 뒤틀린 자유,

전도되고 식화된 이성,

그리고 날로 팽배하는

상업주의와 물신주의의 물결에서 잠시 벗어나,

진열장 너머로 먼지를 쓴 채 간직되어 있는

‘소속된 삶’의 잔영들을 보고 있노라면,

낯설면서도 문득 반가운 기분이 든다.

 

왜 우리는 선험적이고 추상적 사변에 의한

거대 담론만이 진리라고 여기려 하는가?

왜 우리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세계에서의 체험들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하려 드는가?

이성과 감성, 그리고 합리와 비합리의 경계선은

그렇게도 명확하고 절대적인 것인가?

과연 보편적 행위의 규칙, 그리고 전략적 합리성만이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주는 것일까?

또한 철학과 비철학, 진리와 통속의 경계선은

과연 ‘누구에 의한’, ‘어떤 기준’에 의해 설정되었는가? ……

 

**** 

 

2008.10.21.()

K L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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