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진짜 부자

오갑록 2007. 6. 21. 23:00

풍부함과 풍요로움 ......

■ 진짜 부자


   “나지오와 테레비”가 있어서

   "전설 따라 삼천리"도 듣고, "김일 빡치기"도 볼 수 있다면,

   그 집은 부자라고 생각했던 어린 날의 기억.

 

   “오리엔트 일제 시계에, 파카 만년필” 비끼차고 자랑하면,

   그 반짝임에 기 죽어

   너는 부잣집 아들이구나! 생각하며 부러워 하던,

   까까머리 신당동 중학시절.

 

   “기사 딸린 자가용”으로 등교하던 친구녀석 보고는,

   마냥 부럽게만 여겨지던

   머리 큰 학생시절.

 

   “열손가락 몇 번 쥐락펴락 할 만큼"

   수 많은 계열기업 거느린 대기업 총수, 존경하는 우리회장님은

   진짜 부자라고 생각하던 풋내기 신입사원 시절.

 

   “한국에서 조용히 여생을 지내려고"

   골프장이나 하나 건설할까 해서 모 처에 백만 평을 샀는데......

   말씀하시던 초로의 재일교포 어르신

   선망어린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던 얼마 전 내 모습.

 

    ……

 

   돌이켜 보면, 내가 생각하던 부자의 “잣대”란

   “현금 보따리” 크기로만 혜량 되었던 것은 아닐까?

 

   사심 없이 헐렁한 사원인지라 회사에서 별 인기는 없지만,

 

   먹고 잠자기에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몇 안되나 나를 기억하는 벗이 있기에,

   또한 경상 아낙, 여의도 친구,

   비록, 시시한 글이라도 잠시 눈길 멈추어,

   글 띄울 곳이 있다는 흐뭇함이 있고,

   돈벌이에 얽이지 아니하며 허황되고 자잘한,

   넉넉한 생각으로 여유 시간 굴려 보는 기회 또한 있으니,

   나는 진짜 부자가 아닐까?

 

  학생시절 동생 손을 이끌고 자주 찾아 오르던 동네 뒷산,

  응암동 백련사의 대웅전 처마 아래 그려진,

  구름타고 흐르는 선승들 그림의

  다양하고 유연한 “선(線)”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던 지나간 좋은 기억들이 있으니,

  나는 진짜 부자가 아닐까?

 

   봄이면 주말마다 오르곤 하던 북한산 승가사,

   돌부처 있는 높은 곳에 오르면 멀리 보이던 능선, 

   그 “선(線)”의 수려함을 볼 수 있었고,

 

   언제인가 찾아 보았던 계룡산 갑사 입구,

   나한들이 걸친 옷자락 끝의 황홀한 “선(線)”도  볼 수 있었으니,

   나는 진짜 부자가 아닐까?

 

   매주 주말 집안의 숙제물인 싸구려 난초 물주기,

   난초 잎새 선(線)들 아름다움이 눈에 뜨일 때,

   이를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고,

   싸구려 카메라에 풀잎 물방울 담으려 초점을 당기고,

   금강산 올라 돌산 “구도” 잡는답시고,

   쪼그려 앉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나는 진짜 부자가 아닐까?

 

   자동차 운전 중, 옆 차선에서 달리던 아주머니 승용차,

   깜박이 눈짓 한번 없이 갑작스러운 끼어들기에도,

   그냥 잔잔한 웃음만 지을 수 있는,

   나 자신의 넉넉함과,

 

   막걸리. 소주. 맥주. 포도주. 꼬냑,

   각각의 독특한 맛, 음미 할 수 있고,

 

   김치국, 청국장, 동치미, 무조림,

   싱거우면 삼삼해서 맛 나고,

   짤 때는 짭짤해서 좋으니,

   나는 진짜 부자가 아닐까?

 

   챠이코프스키

   “Serenade for strings in C major op.48”, “1812 Overture”,

   찾아 볼량에 CD가게 문턱을 넘던 순간도 있었고,

   흑인 소프라노 칼라스, Babara Handricks 가 부른 “Deep river”,

   큰소리로 부르기를 좋아하고,

   Byrd의 성가곡 “미제레레” 합창에 선향을 느낄 수 있고,

   조수미. 주현미 노래에도 쉬이 흥이 오르곤 하는,

   나는 진짜 부자가 아닐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항상 나를 믿고 따라 주는 따스한 부인과,

   어느 사이 성장해서 아버지를 잘 이해하여 주는 딸들이 있고,

   잘 따르던 동생들이 이제는 각기 짝을 찾아 내 곁을 떠나 있어도,

   진정어린 마음에서 형님, 오라버니로 받드는,

   흐뭇함이 있으며,

 

   아직도 무엇인가 주고픈 마음에 뭇 부족함 안타까워 하시며,

   걱정어린 보살핌의 눈초리를 멀리하지 못하시는,

   나에게는 언제나 자상하시기만 하신 어머님,

   방 문 지긋하면 뵈는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시기에,

   나는 진짜 부자가 아닐까?

 

      ***

 

   아들놈 손 잡고 공중탕에 들어서는

   허름한 츄리닝 차림의 아저씨도

   나 같은 딸딸이 아빠 눈으론 “부자”일 수 있다구요 ?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게 하고 누워……”

   이런 부자가 어떻게 진짜 부자냐구요?

 

   “믿음” 없는 부자는,

   “앙꼬 없는 찐 빵”일 수도 있겠지요?

    믿음으로 충만 된 벌건 눈으로 보면……

 

                      K.L.Oh

                      2000.12.2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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