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상실수업

오갑록 2016. 9. 3. 22:06


■  상실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죽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과 모른체 지나가게 되는 날이 오고

한때는 비밀을 공유하던 가까운 친구가 전화 한 통 하지 않을 만큼 멀어지는 날이 오고

또 한때는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사람과 웃으며 볼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이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변해버린 사람을 탓하지 않고, 떠나버린 사람을 붙잡지 말고

그냥 그렇게 봄날이 가고 여름이 오듯 내가 의도적으로 멀리하지 않아도

스치고 떠날 놈은 자연히 멀어지게 되고 내가 아둥바둥 매달리지 않더라도

내 옆에 남을 사람은 무슨일이 있더라도 알아서 내 옆에 남아 준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주고 아껴주지 않는 사람에게 내 시간, 내 마음 다 쏟고

상처 받으면서 다시 오지 않을 꽃같은 시간을 힘들게 보낼 필요는 없다


 비바람 불어 흙탕물을 뒤집어 쓴다고 꽃이 아니더냐 다음에 내릴비가 씻어준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거다.

아기가 걸어다니기까지 3000번은 넘어지고야 겨우 걷는 법을 배운다

3000번을 이미 넘어졌다가 일어난 사람인데 별 것도 아닌 일에 좌절하지말자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것은 너무 일찍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가장 불행한 것은 너무 늦게 사랑을 깨우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뻐긴다 해도 결국 하늘 아래에 놓인건 마찬가지인 것을

높고 높은 하늘에서 보면 다 똑같이 하찮은 생물일 뿐일 것을

아무리 키가 크다 해도 하찮은 나무 보다도 크지 않으며

아무리 달리기를 잘한다 해도 하찮은 동물 보다도 느리다


 나보다 못난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려 하지말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여 질투하지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하늘 아래 있는 것은 다 마찬가지니까.

......

                            

 


*******************************


□ 01

『상실수업』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의 단계를 거쳐 정신적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고 죽음과 남겨짐에 대한 실천적 도움을 통해 상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준다.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데이비드 케슬러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한 정신과 의사. 192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났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다른 두 자매를 바라보며 일찍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그녀는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평생 놓지 않았다. 스위스 시골에서 자란 엘리자베스는 아버지의 친구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일찍 생각하게 되었다. 공포에 직면하여 죽기 전, 그 남자는 이웃의 아이들을 그의 방으로 불러,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농장을 꾸려 나가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 경험은 어린 엘리자베스에게 '큰 자부심이자 기쁨'으로 남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아홉의 나이로 자원 봉사 활동에 나선 엘리자베스는 폴란드 마이데넥 유대인 수용소에서 인생을 바칠 소명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사람들이 지옥 같은 수용소 벽에 수없이 그려 놓은, 환생을 상징하는 나비들을 보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취리히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한 그녀는 미국인 의사와 결혼하면서 뉴욕으로 이주한다. 이후 뉴욕, 시카고 등지의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맡는데, 의료진들이 환자의 심박수, 심전도, 폐기능 등에만 관심을 가질 뿐 환자를 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앞장서서 의사와 간호사, 의대생들이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세미나를 열고,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의료계에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과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어떻게 죽느냐'는 문제가 삶을 의미 있게 완성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녀가 말기 환자 5백여 명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써낸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은 전 세계 2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될 만큼 큰 주목을 받았고, 그녀는 '죽음'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된다. 이후 20여 권의 중요한 저서들을 발표하며 전 세계의 학술세미나와 워크숍들로부터 가장 많은 부름을 받는 정신의학자가 된 그녀는 역사상 가장 많은 학술상을 받은 여성으로 기록된다.


말년에 이르러 온몸이 마비되며 죽음에 직면하는 경험을 한 엘리자베스는 70세가 되던 해에 쓴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The Wheel of Life』를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그녀는 죽음에 관한 최초의 학문적 정리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비할 바 없이 귀한 가르침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그 가르침을 전하며 살았다. 『인생 수업Life Lessons』은 그녀가 살아가는 동안 얻은 인생의 진실들을 담은 책이다.


『죽음 그리고 성장』을 마지막 저서로, 그녀는 2004 8 24일 눈을 감았다.


 

02

책을 시작하며

   작별의 문 앞에서


. 신은 감당할 만큼만 고통을 준다

‘자신이 쓴 글에 심취되어 밤을 지새울 수 없다면 그 글은 결코 다른 누군가의 밤을 지새우게 할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 글이 진정 우리를 울게 못한다면, 이 책은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을 것이다.


. 슬픔에게 자리를 내어주라

분노가 솟구치면 소리 내어 분노하라. 판단하지 말고, 의미조차 찾으려 하지 않고, 오직 분노 그대로를 느껴라. 어차피 삶은 불공평하다. 죽음 역시도 불공평하다. 그러니 이토록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상실 앞에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 눈물의 샘이 마를 때까지 울라

하지만 이것을 알라. 정작 피해야만 하는 일은, 쏟아내어야 할 눈물이 충분히 빠져나오기 전에 울음을 억지로 멈춰버리는 것이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라. 눈물이 전부 빠져나오게 두라. 그러면 스스로 멈출 것이다.


. 떠나간 이가 해왔던 것, 그것을 하라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당신이 ‘남겨졌다’는 것에 의미를 잃었는가? 당신이 왜 굳이 남겨졌는지 이유를 알고 싶은가? 신과 우주만이 그 정답을 얘기해주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만은 있다. 당신들은 모두 ‘살기 위해’ 남겨졌다는 사실이다.


. 사랑을 위해 사랑할 권리를 내려놓으라

착하고 바르게 살면 그 대가로 고통 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사랑을 알아간다는 것은 사랑할 권리를 조용히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  몸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라

이제 됐다. 그만 하면 됐다. 이제 당신에겐 오로지 당신 자신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돌아가서 자신과 접촉하고...(하략)


 

03

출판사 서평


슬픔을 애도하는 것에는 방식이나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슬퍼하고 비탄하는 것에 친숙해지기를 희망하며 우리는 이 글을 써나갔다.


이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이지만, 지금껏 책으로는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이 책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가장 힘들고 지칠 때 빛을 밝혀주는 작은 횃불이 되고 희망과 위로가 되길 기도한다.


 

04

상실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외


‘상실’을 생각해본다. 그 대상은 사람일수도 있고, 어떤 추상적인 존재일수도 있다. 이 책에선 사람이 상실의 대상이다.   “분노가 솟구치면 소리 내어 분노하라. 판단하지 말고, 의미조차 찾으려 하지 않고, 오직 분노 그대로를 느끼라. 어차피 삶은 불공평하다. 죽음 역시도 불공평하다. 그러니 이토록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상실 앞에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불공평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높고 낮은 산들이 계속 첩첩이 이어지는 풍광을 그려보게 된다. 높고 낮음 그 어디에나 태양이 비추고, 바람이 들어찬다. 그렇다면 거침없이 너른 평야는 어떤가. 더 황망하다. 그러니 높고 낮음에 너무 마음 두지 말자는 이야기다. 산들이 애당초 그렇게 자리 잡고 있진 않았다. 그 산들이 바다 밑에 잠겨 있었던 모습을 생각해봐라. 낮은 곳이 깊은 곳이었다. 단지 분노를 하되, 지혜롭게 할지어다. 이 글에서처럼 소리 내어 분노하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분노 그대로를 느끼라는 말에 초점을 맞출 일이다.


 “눈물의 샘이 마를 때까지 울라. 하지만 이것을 알라. 정작 피해야만 하는 일은, 쏟아내어야 할 눈물이 충분히 빠져나오기 전에 울음을 억지로 멈춰버리는 것이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라. 눈물이 전부 빠져나오게 두라. 그러면 스스로 멈출 것이다.


 억제된 슬픔 역시 병이 된다. 살아오며 자주는 아니지만,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희한한 것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음 구석구석에서 눈물, 콧물로 몰려나오는 것이다. 별별 기억이 꼬물거리며 살아나고 원초적이고 철학적인 존재론적 사고도 뒤섞인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 후 찾아온 평안함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평화다.


 “사랑을 위해 사랑할 권리를 내려놓으라. 착하고 바르게 살면 그 대가로 고통 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사랑을 알아간다는 것은 사랑할 권리를 조용히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사랑은 내 것을 비우는 것이다. 채우려고 사랑하지 말라. 혼자 살 수도 있는 사람이 결혼해도 잘 살 수 있다. 고독과 외로움과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결혼을 꿈꾸지 말자. 내가 이 땅의 한 사람 구제해주고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마음 하나면 결혼할 준비는 다 마친 거다. 잘 산다는 것을 경제적인 문제로만 생각하지 말자. 재력이 든든하면서도 평안하게 사는 가정 별로 못 봤다. 깨지지 않고 끝까지 잘 가는 것이 행복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 땅을 떠나면 더블 행복이다.


 “몸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라. 이제 됐다. 그만 하면 됐다. 이제 당신에겐 오로지 당신 자신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돌아가서 자신과 접촉하고, 스스로 어떤 감정 상태에 빠져 있는지 눈여겨볼 일이다. 몸의 속도를 늦추고, 오직 몸이 해달라는 대로 다 들어주라.


 몸이 보내는 신호엔 무심하고, 마음이 보내는 기척엔 매우 민감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 볼 일이다. 아기 엄마는 아무리 피곤해도 잠결에 아기가 칭얼대면 여지없이 깬다. 도저히 못 일어날 정도면 눈을 감은채로 아가의 가슴이라도 토닥여준다. 뭐라 뭐라 하면서. 이 책에선 상실 후 슬픔을 회복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몸을 위한 마음도, 마음을 위한 몸도 깨어 있어야 건강하다. 몸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의 속도도 늦추고 나를 다시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그렇게 해야 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매우 오래 전부터 익숙한 이름이다. 『죽음의 순간』을 통해 만났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지혜롭게 분노하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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