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과 의문......眞/. 한 때의 생각

오갑록 2016. 1. 11. 11:55

동질성 ......

■  멋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운 것을 이라고 한다. 또는 고상한 품격이나 운치, 보기 좋고 아름다운 모습이며 태도를 두고 이라고 한다.“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 중의 한 부류인 셈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보다는 훨씬 더 광범위 하고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시각적, 청각적뿐만 아니라 심미적 관점에서의 가치 평가가 더 큰 몫을 차지한다.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준다거나,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을 경우에 아름답다는 표현을 쓴다.

 

궁극적인 아름다움이란 자기에게 편안함이며 이로움을 줄 수 있음을 갖게 될 때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자기에게 유리하고 좋은 방향을 지향하는 것들이다. 배부르고 따스하고 평안 안녕을 줄 수 있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다. “를 중심으로 한 가족과 사회에 유리하고 좋다고 여기는 물리적 현상, 사회적 또는 심미적 현상들을 망라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러한 아름다움을 향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구체적 활동들이 예술이라는 생각을 하여 본다. 그만큼 예술의 원론은 자기 중심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나와 우리라는 틀을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예술이라고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던지 간에 인간에게는 예술이 될지언정, 개나 소에게는 그러하지 않는 이치인 것이다. 예술의 본질일 것이다.

 

예술이 동시대적, 동사회적, 동질적 특성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지금 시대에는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옛날이나 먼 훗날도 같은 평가를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 예술이나 아름다움의 한계며, 자기가 속한 사회를 벗어난 또 다른 계층의 사회에서도 같은 평가를 받기가 만만치 아니하다는 특성이 있기도 하다. 빈부, 학식, 종교처럼 다양한 계층마다 아름다움은 서로 다른 관점을 갖는다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동질성이 유지되는 선에서만 서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왜 동시대성, 동질성이 요구되는지 그 뿌리를 살펴보자.

 

, , , , 질감, 원근 따위를 보면서 이들이 서로 마음에 와 닿는 조화를 찾는 것이 시각예술이라고 한다면, 소리의 높낮이 음색, 음량, 박자 따위를 들으면서 마음에 닿는 조화를 찾는 것이 청각예술이다. 물론, 시간과 공간의 한정된 틀 속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사고 및 시청각 능력의 극히 한정된 범주의 물리적 정신적 현상 중의 한 형태에 불과함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우상(偶像)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 우리의 편견과 착각들 가운데 동굴의 우상은 인간 개개인의 특수한 입장에서 성장과정에 형성된 2차 본성에 의한 것들이다. 예술의 특성에서 꼭 전제 되어야만 될 제한 요소인 셈이다. “이나 아름다움의 특성의 시작이기도 한 것이다.  아름다움을 표방한 예술이란,“동굴의 우상이라고 지칭한 그 허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멋있다, 아름답다고 하여, 너도 그러하리라고 여겨서는 아니 되는 이유이다. 인간에게 국한되는 것일 뿐, 절대적 원리로서의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어리석음이요, 설령 찾았다고 하여도 그것은 우상에 지나지 않음을 한 번쯤 생각하여 볼만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시간적 공간적으로도 제한을 받는다는 것은 예술의 이해에 중요한 개념이 될지 모른다. 세상에서 영원 불멸의 공통된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것은 믿음에 토대를 둔 신앙의 행태를 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아주 좁은 의미로 본다면, “이 유행을 타며 변화무쌍한 것에서도 시공(時空)의 제한이라는 유사성을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전자기기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가 느끼는 감성과 멋은 어느 정도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사진전이니 미술전은 올드한 형태의 예술행위로서, 아날로그 세대의 보다 낡은 가치관에서 진행되는 행사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3 D 아이맥스로 상영되는 시공간의 종합예술은 디지털 세대에 걸 맞는 예술 행태라고도 주장 할 수 있다.

 

물론 지난날을 추억하며 즐기는 예술행위도 있다. 사극이며, 골동품 수집을 예로 꼽을 수 있다.  시간을 초월하여 지나간 날의 예술 감성을 즐기는 것이다. 미래 공상 영화도 그 다른 예가 될 수 있다.

 

아날로그 감성, 디지털 감성을 분리는 하여 보지만, TV, 비디오, 영화, 컴퓨터, 오디오 따위도 그 근간은 아날로그적 음악 미술과 문학의 장르를 벗어날 수는 없다. 단편을 보느냐, 종합편을 보느냐 정도의 차일 뿐이다.

 

판소리를 즐기느냐, 오페라 가곡을 즐기느냐는 자기가 속한 시대와 사회가 어디였었느냐에 따라 갈리게 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멋이나 아름다움은 관습에서 젖어 드는 것이 정상이라고 여겨진다. 시대성과 사회성이 따른다는 이야기이다. 우상에서 비롯된 학습효과를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멋에 산다는 말이 예술분야에서는 더 잘 어울리게 된다. 스스로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만큼 좋은 것은 없다. 대다수의 사안 중에서,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것은 타인이 평가한 타인의 가치일 뿐, 궁극적인 가치란 언제나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는다.

 

자기 능력과 처지에 맞는 조화로운 멋과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 좋은 일인 것이다. 상대방의 눈치나 보면서 부끄러이 여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부나 명예를 연계하며 판단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자기의 취향이 조직과 사회가 밝고 발전적이며, 아름다운 곳을 향하게 한다는 전제가 무시되어서는 아니 된다. 지향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를 바란다면 말이다.

 

이제 제법 나이든 또래 친구들이 사진전, 서예전을 개최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멋이며 아름다움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늘 관심을 갖게 되는가 하는 생각을 새삼스레 짚어보게 된다.

 

2016.1.11.()

오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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