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
■ 외로움
. 외로움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감정들
우리에게는 여유로운 감정이 외로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배부르고, 따스하고, 평안하여 안정된 상태에서 더 많이 젖어 드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마치, 따스한 날, 고요한 호수 위의 뱃전에서나 갖게 되는 것이 그러한 감정이지, 허기에 지친 사람이 추위나 더위 속에서 격랑 위에 놓인 뱃전이라면 갖기 어려운 감정일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행복한 순간의 끝자락에서나 젖어 들 수 있는 여유로운 감정 정도일 수도 있겠지만, 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을 버릴 정도의 극심한 감정상태에 이르는 경우의 사회현상 또한 종종 경험하곤 한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하는 중년이 가을정취에 젖어가며 느끼는 외로움은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꿈에나 그려보는 그리운 고향을 애타 하고, 고운 님을 떠나 보내 몸부림치는 이들의 외로움은 다른 어떠한 어려운 감정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본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가 갖게 되는 외로움은 억울하다거나 분함, 자기욕심에 차지 못한 불만 따위의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이, 강자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한 데서 오는 소외감과 외로움이 엉켜있는 조금은 색다른 것일 수도 있다.
가을을 타는 외로움처럼 감상적이고, 차라리 아름다운 가벼운 감정의 것이라면, 탓할 바 안되지만, 견디기 힘든 보다 더 무거운 감정의 것들이라면, 이를 상쇄 할 수 있는 또 다른 유익한 감정에는 무엇이 있을지를 짚어 보고, 자기의 것으로 취해 보는 것은 역시 바람직한 행동일 것이다. 자기의 외로움을 두고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고 미워하는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은 떨쳐내야 한다. 항상 자기의 몫이며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숙명적인 감정이 “외로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시대니, 국가니, 조상이니 하는 자기외적인 사회현상에서 영향 오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 여하에 따라서는 여하한 경우라도 달리 느낄 여지가 항상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숙명이니 운명이라고 여기는 자신의 한정된 목숨까지도 때로는 외로움의 큰 원인이 되기는 하겠지만, 생명체가 겪는 당연한 숙명으로 가벼이 여긴다거나, 그도 아니면 “믿음”이라는 종교적 감정을 유입시켜가며 감정의 골을 더 얕게 하며 외로움을 떨치고 위안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처럼, 사랑하는 마음이나 남을 위한 봉사 정신도, 더해 가는 만큼 외로움의 크기는 줄어들 수 있고, 원대한 목표를 앞세운 야망의 그늘 아래에서라면 상대적으로 한가로운 외로움은 쉽사리 접근치 못할 것이다. 꼭 영웅본색은 아니더라도 직분에 충실하고 열정과 열심으로 살아갈 때 그 여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루 한 시간이 바삐 돌아가는 현대 생활에서는 젖기 힘든 감정일 수 있다. 어떤 전문분야를 생각해 보더라도 열정 속에 찌든 현대인이 그럴 짬이 어디 있으려나 싶은 것이다. 예술, 체능, 연구개발, 경쟁 심한 사업가는 물론, 군사나 행정도 어디서나 숨 가쁘게 움직이는 듯하다. 그래서 짬을 내어 휴식시간을 갖기도 한다. 우리는 차분한 시간을 즐기는 사이사이에 외로움의 감정이 유입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차라리 행복한 감정이 대다수다. 그렇지만 감당하기 힘에 부친 외로움이 있다면 그 반대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좀 더 큰 희망과 야망을 찾아 좀 더 바쁘고 힘들게 일 할 수 있는 분위기의 조성이야말로 그 어려움을 극복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외로움의 근원은 지난날과 미래에 대한 상상과 가정, 불안과 못다한 욕심 욕망 따위가 어우러진 그늘진 마음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욕망의 문턱을 낮추고, 불안을 상상하거나 가정하는 시간을 짧게 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개선되는 감정이라는 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추스르며, 잘 만 이용한다면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채근할 수 있는 감정이 “외로움”이기도 한 것이다.
2014.11.11.(화)
오갑록
ㅁ 외로움
(사전인용)
고독;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외롭고 쓸쓸함, 부모 없는 어린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
외로움; 낯선 환경에서 혼자 적응할 때,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였을 때 등 혼자가 되었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외로움의 어원은 하나를 뜻하는 “외”와 “그러함” 또는 “그럴 만함”이라는 뜻을 갖는 접미사 “~롭다”가 붙여져 된 것으로 추측한다. 내성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외향적 성격의 소유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즐기고 주위에 사람이 많다. 때문에 외향적인 사람이 내성적인 사람 보다 외로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었다고 느낄 때, 실제로 뇌의 통증을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 된다고 한다. “왕따”나 “따돌림” 같은 사회 현상도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심리적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시켜 외롭게 만듦으로써 심리적 고통을 주는 행위라고 한다.
고독이란 한자를 풀이하면, 고(孤)는 子와 瓜가 합친 형성문자다. 독(獨)도 개(犭)는 둘이면 싸우니 홀로 두어야 한다는 형성문자다. 子에 고와 발음이 비슷한 오이 과(瓜)가 합쳐져 외로울 孤라는 한자가 만들어졌다. 가지에 오이가 달려있는 모양을 보면 오이는 마디 하나에 쌍이 아니라 딱 하나의 오이만 열린다. 그 열린 모습이 오이(외)롭다. 같은 박과 식물에 속하는 참외도 그렇다. 스위트 한 감(甘)오이(외)가 참외로 되었다고도 하지만, 오이처럼 열린 모습이 진짜 참 외로워서 참외라는 설이 더 끌린다.
ㅁ 외로움(loneliness)
헨리 나우엔 (늘푸른나무, 2008>)
외로움은 오늘날 인간 고통의 보편적인 원인 중 하나입니다. 정신과 의사와 임상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외로움은 사람들이 제일 흔하게 털어놓는 불만이며 늘어나는 자살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알코올중독, 마약 복용, 다양한 심신중후군(예를 들어 두통, 위통, 요통 등), 수많은 교통 사고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하나 됨과 일치와 공동체를 이상으로 삼고 있는 문화를 경쟁적인 개인주의와 조화시키려는 이 세계 속에서, 어린이들, 청소년들, 성인들과 노인들은 외로움이라는 이 전염병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외로움의 뿌리는 매우 깊기 때문에 낙관적인 선전, 사랑을 대치하는 이미지들이나 사교모임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외로움의 뿌리는 조건 없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사랑을 베풀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용당할 염려 없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의심을 먹고 자랍니다.
절박한 고립감 으로 우리 의식 속에 자주 비집고 들어오는 이 본질적인 의로움을 우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또 우정이나, 사랑도, 결혼이나 공동체도 이 외로움을 없애 줄 수 없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떤 때는 환상이 현실보다 낫습니다. 그러니 외로움 가운데서 부르짖다가 우리가 끌어안고 한 순간이라도 그 품 안에서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이 쉼을 얻으면서 이해 받고 용납 받는 순간적 경험을 누릴 수 있을만한 그 누군가를 찾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질문들은 우리의 상처받은 가슴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러나 설사 우리를 어려운 길로 인도할지라도 우리는 이 질문들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 어려운 길은 외로움에서(loneliness) 고독(solitude)으로 들어가는 전환의 길입니다. 외로움으로부터 도망하고 그것을 잊거나 부인하려는 대신 우리는 그 외로움을 지켜서 그것을 열매 맺는 고독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영적인 삶을 살려면, 먼저 외로움의 광야로 들어가서 조용하고 끈기 있는 노력을 통해 메마름의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할 뿐 아니라 강한 믿음도 있어야 합니다. 거칠고 메마른 광야에 오색 찬연한 꽃밭이 열릴 수 있음을 믿기 힘 든 것처럼, 우리의 외로움 속에 미지의 아름다움이 감추어져 있다고 믿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가는 이 움직임은 모든 영적인 삶의 시작입니다. 이 움직임은 쉼 없는 마음에서 안식하는 영으로 향하는 움직임이고, 또 밖으로 발돋움 하려는 갈망에서 안에서 발돋움 하는 탐구에로의 움직임이며, 불안한 매달림에서 편안한 유희로 향하는 움직임이기 때문입니다.
( Henry J. M. Nauwen, ‘영적 발돋움’에서)
ㅁ 외로움과 만성통증
(박진영, 심리학과 건강)
옆구리가 시리다거나 뼈에 사무친다는 등 ‘외로움’을 나타내는 말들에는 신체적인 괴로움에 빗댄 표현들이 많다. 그리고 실제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외로움이나 소외감 등을 느낄 때 활성화 되는 뇌 부위가 신체적인 고통을 느낄 때 활성화 되는 뇌 부위와 거의 겹치는 등 외로움이 주는 아픔은 ‘진짜’ 아플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외로움과 신체적 고통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사실에서 더 나아가 최근에는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먹으면 외로움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렇게 외로움이 일상생활에서도 실제 ‘아픔’과 관련을 보인다면, 통증을 고질적으로 느끼는 환자들에게서는 어떨까. 이들에게서도 외로움이 통증을 더 악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건강 심리학(Health Psychology) 저널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섬유근통증후군(fibromyalgia)이라는 만성 통증 질환을 겪는 환자들에게서 평소 외로운 정도 및 하루하루 외로움을 느낀 정도가 통증 정도와 관련을 보였다고 한다.
우선 고질적으로 외로워하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매일의 외로움과 통증의 관계를 관찰한 결과 외로움을 더 느낀 날은 그만큼 더 아픔을 느끼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그 결과는 나이, 결혼 여부 등의 인구통계학적 변인들 및 우울증상 같은 기타 심리적 요인과 상관없이 유효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실제 통증을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외로움을 케어(care)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뿐 아니라 같은 병에 걸려도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불행하고 예후가 좋지 않은 등 외로움은 다양한 환자들에게서 병을 악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환자들의 외로움은 결코 가볍게 볼만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외로움은 단순히 ‘친구가 많은 것’이나 객관적으로 활발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정도보다 피상적이지 않은 ‘양질의 관계’들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와 더 큰 관련을 보인다. 환자들이 양질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에 대한 많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ㅁ 외로움의 실존주의적 접근
우리는 때로는 외로움을 느낍니다. 비단 커플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도 외로움은 늘 홀로 태어나 홀로 죽어야 하는 인간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SNS에 늘 접속해놓고, 연락이 오지 않는 연락수단을 계속 들여다보는 것도 어쩌면 겉으로는 알지 못해도 계속해서 우리는 깊숙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외로움에 대한 실존주의적인 입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먼저 문제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과연 외로움을 느끼는 것인가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가요? 때로 우리는 외로움 그 자체보다도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에 고통 받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감정이 먼저 외롭기 때문인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명료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두려워하지 말고, 그 대상이 외로움이 아니라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큰 위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 외로움을 직면해 볼 것
우리는 진짜 '혼자 있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요? 그저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 치료자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 볼 것을 권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상상의 여지는 더 커다란 두려움을 만들고 고통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두려워하는 것을 직면하면 오히려 '겨우 이거야?'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자들은 오히려 지독한 외로움을 직면해볼 것을 권합니다.
: 혼자서 며칠 간 외부와의 연락 없이 혼자 지내 볼 것
핸드폰도 끄고, 텔레비전도 끄고 컴퓨터도 끄고 한 번 외부와의 연락 없이 혼자의 시간을 보내보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미칠 것 같은 일만은 아님을 알 수도 있고, 스스로와 대화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외로움이 사실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체감해본다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어느 정도 감해질 것입니다.
. 사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 있습니다. 이는 바로 모든 사람은 혼자 태어나고 홀로 살아가다가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는 있지만 늘 제 인생의 주체는 저 하나뿐이죠) 혼자 떠납니다. 이는 어떻게 해도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한다'고 말해도, 또 이해하려고 애써도 인식론의 오래된 문제처럼 타인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한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아주 기본적인 차원에서 내가 느끼는 붉은 색이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느낌의 붉은 색인지 알 수 없는걸요. (나에게 붉은 색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르게 인식되고 (예를 들면 청록색)보이지만 모두 '붉은색'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움은 인간에게 견딜 수 없는 시련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가 느끼는 힘든 감정은 외로움 그 자체가 아닌 두려움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 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잇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많은 사람들이 이미 연인관계(romantic relationship)을 맺고 있음에도 오히려 더 외로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랑에서의 외로움은 많은 곳에서 표현됩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노래는 다른 내용이지만, 오히려 누군가를 만나기 때문에, 더 외로워진다는 푸념은 아주 일상적으로 들려오고 느껴집니다.
관계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마틴 부버(Martin Buber)의 말들은 이러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마틴 부버는 우리에게 우리의 관계들에 대해 재고해볼 것을 제안합니다. 관계는 나와 그것의 관계(Ich-es)와 나와 너의 관계(Ich-du)가 있습니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필요를 기반으로 한 피상적인 관계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나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나와 너의 관계는 다릅니다. 온전한 '너'는 그 자체의 존재만으로도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사랑의 관계에서 상대방이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더 생각해주기 바라는 마음은 그만큼의 기대치를 낳고, 그 기대치만큼 달성되지 않을 때 관계 속에서 외로움과 소외를 느낍니다. 하지만 마틴 부버에 따르면 사랑은 자신 그 자체로 온전한 상태에서 상대방을 외로움의 해소를 위해 필수적인 수단(자신 자체로는 부족한 상태)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자체를 별개의,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하며 상대방의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을 어떤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되게 하라는 칸트의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 우리의 관계들은 어떤가요? 한 번쯤 내가 때로는 누군가에게 화가 날 때,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겠습니다.
ㅁ 가을에 유난히 외로움을 타는 이유 ……
(FM; 다음 팁 Q)
가을이 되면 해가 떠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온도가 떨어진다. 원시인에게는 먹을 것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에 맞춰 우리 몸도 격심한 ‘구조조정’이 일어난다.미국 오하이오대 랜디 넬슨 교수는 생쥐의 경우 가을이 되면 면역 기능이 강화된다고 ‘영국왕립학회보’ 최근호에 발표했다. 햇빛을 쬐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몸 안에 멜라토닌이라는 물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식 능력은 반대였다. 수컷 생쥐는 햇빛 쬐는 시간이 줄어들면 생식과 관련된 조직이 위축됐다. 넬슨 박사는 “가을이 되면 먹이가 줄어드는 등 환경이 나빠지기 때문에 생식에 쓰일 에너지를 우리 몸을 지키는데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동물들의 발정기는 대개 봄이나 여름이다. 그때 새끼를 가져야 먹이가 많을 때 키울 수 있다. 가을에 새끼를 가지면 겨울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서울대공원의 권순호 연구실장은 “가을이 되면 동물들은 이성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따뜻한 여름에 이완된 혈관도 가을이 되면 다시 좁아진다. 혈관이 넓으면 체온을 빨리 빼앗기기 때문에 가을과 겨울을 잘 견디기 어렵다. 혈관이 좁아지면서 바깥으로 나온 체액은 세포로 흡수되는 등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이 우리 몸에는 큰 스트레스다. 이 스트레스가 너무 크면 우리 몸은 쉽게 피로해진다. 연세의대 강희철 교수는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가을이 되면 한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기가 어렵고 외부 자극에 대해서도 민감해진다”며 “사람이라면 자꾸 다른 생각이 들고 별것 아닌 일에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을을 타는’ 것이다.
동물들은 가을이 되면 모여 있으려고 한다. 여럿이 함께 있으면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녹일 수 있다.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낚시꾼은 장소만 잘 잡으면 월척을 떼로 낚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가을 낚시는 낭패를 보기 쉽다. 물고기들이 가을이 되면 식욕이 떨어지고 몸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 미끼에도 눈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 교정에 가면 까치가 잔디밭에 내려앉은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겨울에 대비해 먹을 것을 잔디밭에 숨기기 위해서다. 가끔 기억력이 나쁜 까치는 자신의 식량 창고를 깜빡 잊고 겨울을 난다. “까치나 청설모가 잣을 숨겨놓은 뒤에 파먹지 않아 봄이 되면 잣나무가 자라는 곳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이 도시 생활을 하면서 ‘계절을 타는’ 행동은 점점 달라지고 있다. 일본 연구팀이 60년대 조사한 결과 봄이 되면 여성의 경우 갑상선 호르몬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이 활동하려는 욕구가 왕성해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연구팀은 일본 여성들의 식사에서 탄수화물의 비율은 줄어들고 지방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을이 되면 사라졌어야 할 모기가 따뜻한 집안에서 여전히 날아다니고, 바퀴벌레는 사시사철 번식력이 왕성한 것도 도시가 가져온 변화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도 과학이 발전하면서 언젠가는 고어(古語)로 남을지 모른다.
ㅁ 기러기 아빠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초등학교 때 즐겨 불렀던 ‘기러기’라는 동요입니다. 기러기는 어린 마음에도 쓸쓸하고 외롭게 가을 하늘을 줄 맞춰 날아가던 새였습니다. 흔히 부부애가 두터운 것을 원앙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만 사실 원앙은 바람둥이고 진짜 절개를 지키며 사랑하는 새는 기러기랍니다. 그래서 전통혼례에서 목안(木雁)을 전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기러기는 홀로 되면 평생 재혼을 하지 않고 새끼들을 극진히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족과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아야 하는 ‘기러기 아빠’라는 말도 거기에서 유래했으니까요. 뜨거운 가족애 하나만으로 혼자 사는 수고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외로움과 싸우는 가장을 기러기 아빠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 기러기의 생활사
우리 조상들은 기러기를 아주 멋진 새로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두 다리를 바짝 뒤로 모으고 높은 하늘을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행렬은 낭만적인 정취가 가득 있어 보인다. 기러기는 그 우는 소리가 처량한 정을 자아내게 하므로 예로부터 사랑하는 임과 이별의 아픔을 담은 시(詩)와 노래로 많이 읊어져 왔고, 동양화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여 왔다. '평사낙안(平沙落雁)'은 기러기가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편평한 모래펄에 맵시 있게 내려앉은 모습을 묘사한 성어로서 글이나 문장이 매끈하게 잘 되었음을 비유하는 뜻으로 전용(轉用)되어 왔다.
기러기는 오리과의 물새로서 쇠기러기· 큰기러기· 흰기러기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주둥이가 넙적하고 물갈퀴가 달린 것은 오리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목이 길고 다리가 짧으며 덩치는 오리보다 배 이상 크다. 기러기는 3월부터 10월까지 사흘에 두 번 정도 알을 낳으며 1백일 가량 자라면 성조가 되는데 다 자란 수컷은 몸무게가 5∼7kg 정도까지 나간다. 강 바다 늪 가에 살며 갈뿌리를 파 먹거나 이삭을 주워 먹는다. 해마다 가을이면 시베리아 사할린 알래스카 등지에서 날아와 월동하다가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겨울 철새다.
. 기러기의 언어문화
가을이 깊어가는 무렵 북쪽에서 찬바람[朔風]을 타고 하늘 구만리를 날아온다고 하여 기러기를 '삭조(朔鳥)', 서로간에 신의가 깊다고 하여 '신조(信鳥)', 큰 기러기와 작은 기러기를 '홍안(鴻雁)'이라고 부른다. 이밖에 북녘에서 날아와 서리를 전한다고 '상신(霜信)', 가을과 겨울 두 계절을 지낸다고 하여 '이계조(二季鳥)'라는 별칭이 붙어 있으며, 한방에서는 양기에 좋다는 뜻으로 '양조(陽鳥)', 보양의 왕이라 하여 '왕조(王鳥)'라고 부르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황금알을 낳는」거위는 영어명(英語名)이 'goose'이고, 야생의 기러기는 ''wild goose'라고 한다. 거위는 기러기의 변종인데 일찍이 가금으로 길러진 까닭이다. 한자문화권에서 거위[鵝]를 '家雁(가안)'이라고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러기는 신라 문무왕이 축조한 안압지(雁鴨池)란 이름에도 등장한다. '안항(←雁行)' 은 기러기의 행렬이란 뜻으로 남의 형제를 높여 이르는 말이며, 먼 곳에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안신(雁信)' '안백(雁帛)' '안서(雁書)'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기러기를 '긔려기'라고 불렀다. '기러기'라는 말은 이 새가 '기럭기럭' 우는 데에서 나온 의성어이다.
. 전통 혼례식의 전안례
전통 혼례식 때 행해지는 전안례(奠雁禮)란 의식은 지난날 농경사회에서 풍요 및 다산(多産)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전래 혼에서는 신랑이 신부 집으로 와서 혼례를 행한다. 전안례는 홍안지례(鴻雁之禮)라고도 하는데 신부 집에서는 먼저 안마당에 차일을 치고 안방에 전안청(奠雁廳)을 준비한다. 다리가 높은 탁자에 붉은 보를 깔고 곡물과 과일 등을 차린다. 탁자 앞에는 돗자리를 깔고, 대문에서 탁자 앞까지 행보석(行步席)을 깐다.
신랑은 백마를 타고 신부 집에 가는데, 기러기 한 쌍을 든 기럭아비[雁夫]가 신랑보다 앞서 간다. 신랑이 당도하여 신부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바치면 신부 어머니는 기러기를 치마에 싸서 전안청에 안치한다. 전안례가 끝나면 신랑이 장인께 재배하고 나서 안대청에 마련된 초례청(醮禮廳)으로 안내되어 신랑 신부가 상견례를 하며 초례(교배례: 혼례식)를 올린다.
이런 경사스런 자리에 수많은 금수(禽獸) 중에 하필 기러기를 택한 것은 기러기처럼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아들딸을 많이 낳아 백년해로하게 해달라는 기원의 표시라는 것이다. 조상들은 한 해 농사를 모두 마친 늦가을에 질서 있게 무리 지어 날아와 금실 좋게 짝을 이루며 사는 기러기를 신의·화목·정절을 상징하는 새, 모두에게 풍요로움을 전하는 상서로운 새로 여겼던 까닭이다.
처음에는 전안례에 산 기러기를 쓰다가 점차 나무로 만든 목안(木雁)이나 닭을 대신 쓰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지난날 전통의 뿌리가 깊은 마을에서는 혼례를 위해 '기러기집'을 한 채씩 지어 수· 부· 귀· 다남 등 오복(五福)을 모두 갖춘 집에서 관리하고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한 번 빌려 쓰는데 쌀로 셈하여 받았다. "기러기집 딸은 묻지 않고 장가든다."는 말이 지금도 전해오는 것은 이런 집 딸이 행실과 용모도 단정하거니와 눈썰미와 손썰미가 매서워서 오랜 경험 끝에 비법으로 전해온 음식 맛을 내는 솜씨 또한 뛰어났기 때문이다.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이옥(李鈺)이란 여인은 지나온 신혼 시절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
"신랑은 목안(木雁)을 쥐고/ 신부는 건치(乾雉)를 쥐었으니/ 그 꿩이 울고 그 기러기 날 때까지/ 두 정 그치지 않으리…."
ㅁ 외로움
법정스님
혼자 사는 사람들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살아가고 있으며,
자기 그림자를 되돌아보면
다 외롭기 마련이다.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무딘 사람이다.
너무 외로움에 젖어 있어도 문제이지만
때로는 옆구리께로 스쳐 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을 통해서
자기 정화, 자기 삶을
맑힐 수가 있다.
따라서 가끔은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
ㅁ 외로움에 관하여
. 그 놈의 유혹
(탁현민의)
‘연애했던 기억이 아득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더 편해진다. 아냐,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사람들을 만나 보지만 그저 낯설다.’
딱한 노릇이다. 마음이 안 가는데 억지로 좋아할 수도 없으니 그저 외로워 외로워 노래나 부를 수밖에 없다. 다들 외로움에 많이 지쳐 보인다. 한번이라도 외로워서 ‘외롭다’고 소리 내어 말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외로움’은 꽤나 힘들다.
외로움이 얼마나 힘든가 하면 ‘외롭다’고 발음하는 것조차 힘들다. 전설원순모음인 ‘외’는 대개 ‘왜’로 발음되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외’라는 발음은 물 건너가고 ‘왜’가 되곤 한다. 제대로 발음하는 것조차 어렵고 힘든 일이다.
섬에 있으면서 나는 주로 외로웠다. 혼자가 되고 싶어 섬에 왔으면서도 혼자 있으면 자꾸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만 했다. 가끔 친구들이 다녀가기도 하고 여행 온 사람들과 만나기도 했지만 며칠이 지나 다들 집으로 돌아가면 외로움은 무슨 사채 고리 빚처럼 불어나 도통 감당이 안 되었다. 함께 있다 떠나는 사람 마음도 그렁그렁하겠지만 비어 있는 신발장과 접힌 빨랫대, 지인이 두고 간 책 한 권과 잘 개켜놓은 이불을 바라볼 때마다 이제 다시 혼자가 되었구나 싶은 마음에 몹시 저릿했다.
전화기만 들면 10초 안에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공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할 수도 있고 미주알고주알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외로움이라니 싶겠지만 허기졌을 때 음식 사진을 보는 것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은 것처럼, 아니 오히려 더 배가 고픈 것처럼 그런 것들은 외로움을 풀어주기보다 외로움에 그리움을 더할 뿐이다. 첨단 시대에 소통 수단도 다양해지고 속도도 빨라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여전히 외롭고 그리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공연 연출가
긴 여름 내내 외롭고 그리운 날들을 보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외로움의 이유가 그리움 때문이란 걸 알았다. 동시에 그리움이 외로움의 이유라는 것은 이 모든 외로움을 견디게 해준다는 것도 알았다. 대상이 있다는 것, 구체적이든 막연하든 그리운 누군가 혹은 무엇이 있다는 것은 오늘 이 외로움을 참을 만하게 만들어 준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게 만들어 준다.
외로운 그대, 다행이다. 어쩌면 정말로 불행한 것은 외롭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그립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외롭지도 그립지도 않고 사는 것일지 모른다. 외로움은 내가 가장 그리운 사람이 누군지를 분명하게 일러주고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려주고 잃어버린 꿈을 그려준다. 그러니 외로워 말라가 아니라 외로워라. 외롭고 외로워서 그리운 사람을 찾으라. 그도 거기서 외롭게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으리라 믿으며….
ㅁ 외로움—원인이 무엇인가?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전에 의하면 외로움이란 혼자 있을 때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해서 다른 사람과 떨어져 있기도 합니다. 때때로 혼자 있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많은 사람은 기도나 묵상을 할 때 종종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합니다. (마태 14:13; 누가 4:42; 5:16; 6:12) 그에 반해 외로움은 고통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삭막한 도시 생활
대도시에서는 매우 많은 사람이 밀집해서 생활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느라 자신의 이웃도 잘 알지 못합니다. 결국 그들은 낯선 사람에게 둘러싸인 채 살아갑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모르는 사람에 대해 흔히 갖는 불신과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하려는 욕구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 것일 수 있습니다.
.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많은 대기업과 산업체가 운영되는 방식 때문에 근로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외로움을 느끼며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흔히 그들은 끊임없는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더욱이 대기업에서는 잦은 부서 이동으로 인해 직원들이 불안감과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낍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프랑스 근로자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살에 대해 논하면서 많은 근로자가 “빠르게 변하는 경제 때문에 견디기 힘든 압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통신 기기를 사용한 의사소통
일본의 사이토 테츠로 교수는 “핸드폰과 같은 통신 기기가 널리 보급됨에 따라 사람들의 의사소통 능력은 필연적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선데이 텔레그래프」지는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전자 기기들은 ··· 사람들을 점점 더 고립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 직접 대화를 나누는 대신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프랑스에 사는 스물한 살 된 레이철은 자신이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은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 인터넷 채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직접 만나려는 노력을 덜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더 외로움을 느끼게 돼요.”
. 환경의 변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거나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자주 이사해야 했습니다.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웃과 친구, 학교, 때로는 가족을 떠나게 됩니다. 그들은 마치 뿌리는 그대로 둔 채 다른 곳으로 옮겨 심겨진 식물과 같다고 느낍니다. 프랜시스는 가나를 떠나 프랑스에 도착했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는 데다 날씨도 쌀쌀했어요. 정말 외로웠지요.” 베이자트는 영국으로 이민 왔던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아는 사람이 몇 명 있기는 했지만 문제를 상의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한 친구나 가족은 없었죠.”
.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배우자와 사별하면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배우자를 간호해 온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공허감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파리에 사는 페르낭드는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그는 “가장 친한 벗이었던 남편과 더 이상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게 제일 힘들어요”라고 말합니다. 아니라는 여성은 “건강 문제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더욱” 남편이 그리워진다고 이야기합니다.
. 이혼, 별거, 원치 않는 독신 생활
이혼이나 별거를 하면 가족들은 대개 외로움을 겪고 낙오자가 된 듯한 느낌을 갖습니다. 일반적으로 자녀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데, 그 영향은 이전에 전문가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부모가 이혼한 자녀는 어른이 되었을 때 외로움을 느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적당한 배우잣감을 찾지 못해서 결혼하지 못한 사람도 흔히 외로움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결혼하면 더 행복할텐데요”와 같은 생각 없는 말을 들으면 더욱 외로워질 수 있습니다. 혼자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데는 기쁨에 더해 어려움도 따르기 마련인데, 이들은 배우자가 없기 때문에 혼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 노령 및 청소년의 생활 방식
연로한 사람도 종종 외로움을 느낍니다. 심지어 가족이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습니다. 때때로 친척이나 친구들이 방문하겠지만, 며칠이나 몇 주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때는 어떻겠습니까? 한편 청소년들도 자주 외롭다고 느낍니다. 상당수의 청소년은 텔레비전, 비디오 게임, 컴퓨터 등에 빠져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ㅁ 외로움
(국민체육진흥공단)
. 외로움의 원인
사회적 원인
외로움은 관계중심에서 결과중심의 변화와 빠르게 변하는 사회변화로 서로
친밀한 관계를 나누지 못하는 사회현상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달적 원인
성장과정에서 겪는 애정의 결핍과 부모의 수용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대인관계의 기술을 적절히 배우지 못하게 되면, 대인관계의 어려움과
고립감으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심리적 원인
두려움, 낮은 자존감, 적대감 등은 타인과 친밀한 대인관계를 맺기 어렵게
만들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장벽을 만듦으로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환경적 원인
혼자 있어야 하는 맞벌이 가정의 아동이나
1인 가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문화적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더 쉽게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 외로움의 유형
대인관계 기피형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고 귀찮게 여겨져 대인관계를 기피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대인관계가 무의미하고 무익하다고 생각하여 타인의 간섭 없이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생각하고 일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지나치면 자기 생각을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교류하고 비교하는 기회가 줄어들게 됩니다. 또한 생각이 자기에게 한정되어 독단적이 되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 미숙형
다른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 하지만 사람을 사귀는 기술이 서툴러 친한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유형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말과 행동이 부적절하거나 공격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거나, 거부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먼저 말을 건네거나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이 포함됩니다.
대인관계 피상형
겉으로는 대인관계가 원만하여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은 많지만 절친한 친구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속마음과 감정을 잘 털어놓지 않고
피상적으로 대화합니다.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으로 자신의 고민과 어려움을 상의할 사람이 없습니다.
대인관계 중독형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의존합니다.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허전해 하며, 늘 누군가와 함께 있으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생명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 등 상대에게 지나친 기대를 가지고 있어, 실제적인 대인관계에서 쉽게 실망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 외로움이 미치는 영향
인간은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어야 하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따라서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운명적으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혼자’있는 시간은
창조와 자기성찰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문학가, 예술가, 학자, 종교인들은 공통적으로 오랜 외로움의 시간 속에서 창조적 업적과 자기성찰을 이루어 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영위됩니다.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타인과의 교류와 애정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친밀한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우정과 사랑은 행복의 주요한 원천입니다.
긍정적 영향
외로움은 인간에게 성숙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시작하도록 사람들을 동기화 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부정적 영향
. 사회적 영향
외로운 사람은 두 사람 간에 대화할 때 상대방에게 관심을 잘 보이지 않거나, 대화의 주제를 자주 바꾸거나,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회피하는 대화를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 인지적 영향
외로운 사람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약해지고 비현실적인 기대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정서적 영향
외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 공허함 등을 상대에게 이해 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자기 스스로를 비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 외로움의 자가진단테스트
현재 겪고 있는 외로움을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자가진단 테스트입니다. 아래는 외로울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10가지를 선정하였습니다.
각 항목을 읽고, 자신이 경험한 증상의 정도에 따라 체크해 보세요.
(결과)
모든 문항의 점수를 합산한 것이 자신의 외로움 수치가 됩니다.
·15~20점_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정도로 정상입니다.
·21~29점_ 약간의 외로움을 느끼는 상태로 현재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상황이나 사고 등을 점검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30~40점_ 심하게 외로움을 느끼는 상태로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 외로움 자가진단테스트
① 전혀 안 느낌_ 1점 ② 조금 느낌 _ 2점
③ 상당히 느낌_ 3점 ④ 심하게 느낌 _ 4점
※ 각 문항에 해당되는 점수를 적어주세요.
. 함께 일하는 것 보다 혼자 하는 것이 좋다. ( )
. 힘들 때 속 깊은 얘기를 할 사람이 없다. ( )
. 요즘 혼자 있기가 힘들다. ( )
.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낀다. ( )
. 다른 사람이 연락해 주기를 기다리는 나를 의식한다. ( )
. 요즘 난 외톨이 같다. ( )
. 의지할 사람이 없다. ( )
. 가끔씩 사람이 그리워진다. ( )
. 새로운 친구나 사람을 사귀기 힘들다. ( )
. 다른 사람들로부터 단절되고 소외된 느낌이다. ( )
. 외로움 대처법
외로움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꾸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약함이나 미숙함의 징표이다.’
‘이런 외로움은 나만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부정적 측면만 강조된 편견입니다.
01
대인관계 기술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하십시오.
친밀한 대인관계는 따뜻하고 열린 마음뿐만 아니라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고 공감
해 주는 일은 성숙한 대인관계의 기본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분명하고 부드럽게 표현하는 일, 그리고
서로의 고민을 공개하고 나누는 일은 친밀한 관계를 촉진
시킵니다. 타인을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눈으로 보기보다는
장점과 배울 점을 발견하고 이를 표현해 주는 일은 서로에게
기분 좋은 일입니다.
때로는 대인관계를 잘 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02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대인관계가 물론 중요하지만,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은
흔히 혼자서 이루어 내야 합니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자기성찰과 창조적 작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귀중한 시간입니다.
03
타인에 대한 비현실적인 지나친 기대를 버리십시오.
타인이 항상 나를 인정해 주고 친절과 관심을 보일 수는
없으며, 모임에서 항상 내가 주인공일 수는 없습니다. 타인과
금방 쉽게 친해질 수도 없습니다.
04
타인에 대한 비현실적인 지나친 기대를 버리십시오.
타인이 항상 나를 인정해 주고 친절과 관심을 보일 수는
없으며, 모임에서 항상 내가 주인공일 수는 없습니다. 타인과
금방 쉽게 친해질 수도 없습니다.
05
자신의 대인관계 방식을 살펴보십시오.
내가 대인관계에 너무 소극적인 것은 아닌가?
타인의 행동에 너무 예민해서 쉽게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닌가?
학업이나 일에 쫓겨 대인관계를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
06
혼자 애쓰기 보다는 희망길벗을 찾으십시오.
당신의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희망길벗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07
대인관계에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갖도록 노력하십시오.
동문회, 동호회 등의 다양한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십시오.
타인이 당신에게 접근해 오기를 기다리기보다 타인과 접촉
할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갖도록 노력하십시오.
ㅁ 외로움 극복하기
(법륜스님)
. 외로움을 이기는 법
외로움이라는 것은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부부가 껴안고 살아도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외롭고 아무리 많은 사람과 같이 있어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외롭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늘 남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복잡하게 사는데도 외롭다고 합니다. 스님들은 저 깊은 산속 인적이 드문 곳에서 혼자 살아도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혼자 있어도 마음의 문을 열고 있으면 외롭지 않아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옆에 있어줘야 외롭지 않고 혼자 있으면 외로운 게 아닙니다. 혼자 있더라도 마음이 열려 있으면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새가 있고, 나무가 있음을 느낍니다. 봄이 되면 봄을 즐기고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계절을 만끽할 수 있어요.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함께 대화할 수 있어서 좋고 그가 돌아가면 혼자서 고요히 명상할 수 있어서 좋지요.
이렇게 받아들이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더불어 있어도 귀찮지 않아요. 그런데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혼자 있을 땐 외로워 못살고 같이 있으면 귀찮아서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일가친척이 없기 때문에 외로운 게 아니라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내가 가족이 없어 외롭게 살았으니 오히려 가족이 많은 시댁식구와 함께 어우러지면 그들이 다 내 가족이 됩니다.
이렇게 가족이 많아졌구나 생각하면 외로울 이유가 없습니다. 나와 남편을 나누고 나와 시댁을 나누고 스스로 울타리를 치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중략)
외롭다는 것은 내 마음의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외로운 거예요. 내가 나를 해치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빚어진 것이니 이 생각을 버리시고 오히려 마음의 문을 열고 가족들과 더불어 지내도록 하세요.
ㅁ 법정스님의 잠언집에서
harrison
.
대나무 숲은 봄 바람에 촘촘한 머리숱 헹궈내며 일렁입니다.
밤꽃은 山門에 드는 행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떨어집니다.
눈부신 이파리는 초록즙이 뚝뚝 배어 나올 듯 짙어 갑니다.
신록이 여러 겹 곱디고운 線을 그려내는 山이 하나 있습니다.
산 정상에 서면 남해바다는 멀리 아득합니다.
소백산맥 끝자락 전남 순천 조계산.
국내 최대 승보사찰 송광사와 사찰양식의 최고 경지를 보여주는 선암사를
가슴 양 켠에 동시에 품은 산.
여인의 품속 같은 산세는 푸근하기 그지 없습니다.
1980년대초 고교에 다니는 한 남학생은 출판사 ‘범우사’가 발행한 법정스님 수상록’무소유’를 읽고서 ‘치기어린 作心’을 합니다.출가야말로 참 인생살이의 출발이요. 속세의 인연을 훌훌 털어버려야 참 진리를 향한 구도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바람결 같은 자각 말입니다.하지만 어린 청년은 몇날 몇일 속만 끓이다 ‘귀여운 작심’을 거두고 맙니다.속세의 대학을 가되 철학과에 들어가 못 다한 구도의 길을 걷자는 타협을 하게 됩니다.용기 없음을 한탄하며 선암사 대웅전 뒤켠에서 친구와 깡소주 음주행위를 하다 스님들께 야단맞고 쫓겨나기도 합니다.
법정 (法頂)스님은 선암사 뒷산에 불일암을 손수 짓고 1975년부터 1992년까지 17년 동안 혼자 생활하시며 수행 정진하셨습니다.법정스님은 월든 호숫가 숲 속에 은거한 헨리 소로우에 비견됩니다.스님은 청년시절에 출가, 홀로 산속 오두막 수행을 통해 삶의 허상을 꿰뚫어 보며 참된 앎을 찾아갑니다.한국 현대불교의 대표적 학승이며 선승이기도 합니다.그는 자연주의를 몸소 행하는 사상가이면서 실천가입니다.
.
6월 12일은 불교계의 하안거 결제일 이었습니다.(夏安居 : 여름철 한 곳에 머물며 수행에만 전념하는 일) 안거란 겨울 3개월, 여름 3개월씩 스님들이 외부와의 출입을 끊고 참선 수행에 몰두하는 제도입니다. 이날 서울 길상사에서 열린 결제 법회에서 법정스님은 “가끔 거리에서 성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웃고 가는 걸 보면 그 웃음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우거지상을 한 사람을 보면 보는 사람 마음도 구겨진다”며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상 속 수행에 집중할 것을 당부합니다.무릇 중생들의 일상성을 수행의 생생한 텃밭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스님은 우리 모두에게 결국 ‘소유한 것의 소유’가 되어버리는 삶의 허상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출가한 지 50년이 돼가는 스님은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간주하기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고 말씀하시며 삶은 순간 순간의 있음이며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라고 깨우치십니다.스님은 일찍이 “꽃이 어느 날 갑자기 피는 것이 아니라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난 뒤 봄에 꽃망울을 터뜨리듯이, 쉼 없는 행의 축적 뒤에 깨달음이 오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 류시화 시인이 묶어낸 법정스님 잠언집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중에서 일부발췌 (조화로운 삶, 2006)
. 생각을 전부 말해버리면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꼭 필요한 말만 할 수 있어야 한다.
안으로 말이 여미도록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쏟아내고 마는 것이다.이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생각을 전부 말해버리면 말의 의미가,
말의 무게가 여물지 않는다.
우리가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는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세상 사람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살아가고 있으며,
자기 그림자를 되돌아보면 다 외롭기 마련이다.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무딘 사람이다.
너무 외로움에 젖어 있어도 문제이지만
때로는 옆구리 께를 스쳐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을 통해서
자기 정화,자기 삶을 맑힐 수가 있다.
따라서 가끔은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
. 만남이란 분신을 만나는 것
만남은 시절 인연이 와야 이루어진다고 선가에서는 말한다.
그 이전에 만날 수 있는 씨앗이나 요인은
다 갖추어져 있었지만 시절이 맞지 않으면 만나지 못한다.
만날 수 있는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가
시절 인연이 와서 비로소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만남이란 일종의 자기 분신을 만나는 것이다.
종교적인 생각이나 빛깔을 넘어서
마음과 마음이 접촉될 때 하나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 텅 비우고 무심히 지켜보는 시간
저마다 자기의 일상생활이 있다.자기의 세계가 있다.
그 일상의 삶으로부터 거듭 거듭 떨쳐버리는 출가의 정신이 필요하다.
머리를 깎고 산이나 절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것들을 버리고 떠나는 정신이 필요하다.
외롭다고 다른 탈출구를 찾으려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처럼 영혼의 투명성이 고이다가 사라져 버린다.
마음을 텅 비우고 무심히 지켜보는 시간이 없으면 삶의 탄력을 잃게 된다.
. 회심(回心)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진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하루 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면 내 삶 자체가 얼룩지고 만다.
회심, 곧 마음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삶의 의미를 심화시켜야 한다.
맺힌 것은 언젠가 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생에 풀리지 않으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 곤란이 없으면 자만심이 온다
삶에 곤란이 없으면 자만심이 넘친다.
근심과 걱정을 밖에서 오는 귀찮은 것으로 여기지 말라.
그것을 삶의 과정으로 숙제로 여겨야 한다.
저마다 이 세상에 자기 짐을 지고 나온다. 그 짐마다 무게가 다르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 나온 사람은 남들이 넘겨볼 수 없는 짐을 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 무학(無學)
무학이란 말이 있다.
전혀 배움이 없거나 배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많이 배웠으면서도 배운 자취가 없음을 가리킴이다.
학문이나 지식을 코에 걸지 말고
지식과잉에서 오는 관념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지식이 인격과 단절될 때 그 지식인은 가짜요, 위선자이다.
. 선(禪)
선방 안에서만 통하는 선이라면
뒤주 속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다.
뒤주 속에서 살아 나갈 길을 찾아
인간의 거리로 뛰쳐나와야만
비로소 창조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
창백한 좌불은 많아도
살아 움직이는 활불(活佛)이 아쉬운 오늘이다.
. 함께 있다는 것
사람은 저마다 업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을 따로 해야 되고 행동도 같이할 수 없다.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기 마련이다.
물론 인연의 주재자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늘 함께 있고 싶은 희망사항이 지속되려면,
서로를 들여다보려고만 하는 시선을 같은 방향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서로 얽어 매기 보다는 혼자 있게 할 일이다.
현악기의 줄들이 한 곡조에 울리면서도
그 줄은 따로 이듯이, 그런 떨어짐이 있어야 한다.
. 소유로부터의 자유
사랑은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풋풋해지고 더 자비스러워지고
대방이 좋아할 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
소유란 그런 것이다. 손안에 넣는 순간 흥미가 사라져 버린다.
사랑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 요즘 나의 심경
요즘 자다가 몇 차례씩 깬다.
달빛이 방안에 까지 훤히 스며들어 자주 눈을 뜬다.
내 방 안에 들어온 손님을 모른 체할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앉는다.
한 낮의 좌정보다 자다가 깬 한 밤 중의 이 좌정을 나는 즐기고자 한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으니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이면 맑은 정신이 든다.
중천에 떠 있는 달처럼 내 둘레를 두루두루 비춰주고 싶다.
ㅁ 외로움에 관한 시 모음
엮은이: 정연복
. 외로울 때
이 세상 모두 섬인 것을
천만이 모여 살아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욕심에서
질투에서
시기에서
폭력에서
멀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떠있는 섬
이럴 때 천만이 모여 살아도
천만이 모두 혼자인 것을
어찌 물에 뜬 솔밭만이 섬이냐
나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이생진·시인, 1929-)
. 나는
나는 약한 벌레와 같이 살아가는 미미한 존재이오나
누구에게도 열 수 없는 외로움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약한 벌레이오나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나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아, 그와도 같이
미미한 인생이오나
나는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외로움 하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나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조병화·시인, 1921-2003)
. 아,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어느 날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주위엔
항상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 이런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생각하니
수첩에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를
읽어 내려가 보아도
모두가 아니었다.
혼자 바람맞고 사는 세상.
거리를 걷다 가슴을 삭히고
마시는 뜨거운 한 잔의 커피.
아,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이 세상이 쓸쓸하여
이 세상이 쓸쓸하여 들판에 꽃이 핍니다
하늘도 허전하여 허공에 새들을 날립니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간 지우고
허전하고 허전하여 뜰에 나와 노래를 부릅니다
산다는 게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어서
파도는 그치지 않고 제 몸을 몰아다가 바위에 던지고
천 권의 책을 읽어도 쓸쓸한 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글 한 줄을 씁니다
사람들도 쓸쓸하고 쓸쓸하여 사랑을 하고
이 세상 가득 그대를 향해 눈이 내립니다
(도종환·시인, 1954-)
.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힘
누구도 함부로 외롭다고 말해선 안 된다
외로움을 사랑해 본 사람만이
외롭다고 말해야 한다
외로움을 저만치 보내놓고
혼자 앉아 외로움의 얼굴을 그려본 사람만이
외롭다고 말해야 한다
외로움만큼 사치스러운 것은 없다
그의 손으로 무지개를 잡듯이
외로움을 손으로 잡을 수 있어야
외롭다고 말할 수 있다
외로움의 가슴속에 들어가
바알간 불씨가 되어보지 않는 사람은
외롭다고 말해선 안 된다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 때, 한 방울 이슬처럼
외롭다고 말해야 한다
(이기철·시인, 1943-)
.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내 청춘의 가지 끝에
나부끼는 그리움을 모아 태우면
어떤 냄새가 날까
바람이 할퀴고 간 사막처럼
침묵하는 내 가슴은
낡은 거문고줄 같은 그대 그리움이
오늘도 이별의 옷자락에 얼룩지는데
애정의 그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사람아
때없이 밀려오는 이별을
이렇듯 앞에 놓고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그대를 안을 수 있나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그대 사랑을 내 것이라 할 수 있나
(유안진·시인, 1941-)
.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시인, 1950-)
.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
모두 다 떠돌이 세상살이
살면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엔 누구를 만나야 할까
살아갈수록 서툴기만 한 세상살이
맨몸, 맨손, 맨발로 버틴 삶이 서러워
괜스레 눈물이 나고 고달파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모두 다 제멋에 취해
우정이니 사랑이니 멋진 포장을 해도
때로는 서로의 포장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들
텅 빈 가슴에 생채기가 찢어지도록 아프다
만나면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데
생각하면 더 눈물만 나는 세상
가슴을 열고 욕심 없이 사심 없이
같이 웃고 같이 울어줄 누가 있을까
인파 속을 헤치며 슬픔에 젖은 몸으로
홀로 낄낄대며 웃어도 보고
꺼이꺼이 울며 생각도 해보았지만
살면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엔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 그림자 멀리 멀리
얼음장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속에 든 빙산이 제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 길 트는 일입니다
한쪽으로 만장봉 계곡물 풀어
우거진 사랑 발 담그게 하고
한쪽으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눈
저너기 떡취 얼러지나물 함께
따뜻한 세상 한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고정희·시인, 1948-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