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善/1.감정 (感情)

감정의 흐름에 관하여

오갑록 2014. 2. 22. 17:07

부끄러움 ......

■  감정의 흐름에 관하여

 

 

□  흐름과 운동의 본질

 

   “왔다 가는 인생”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힘들고 고달프면 체념이라도 하듯 푸념 섞어가며 나오는 소리다. “오고 간다는 것”은 흔한 자연현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속 깊은 진리가 묻어 있는 듯하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자연현상은 크고 작은 움직임 속에서 존재한다.

 

동식물은 각 개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과 함께, 그 생체내의 미토콘드리아나 세포 따위도 장기나 조직과 함께 운동을 하며, 섭취 분해 흡수 소화 배설 따위의 운동이 수반된다. 눈 비는 바람에 날리며 내린다. 부는 바람에 휘날리는 것은 그 뿐만은 아니다. 나뭇가지와 잎새, 풀이나 꽃잎, 물결도 따라서 흔들리곤 한다. 행인의 옷섶이나 머리 결도 따라 춤추고 봄바람이 불면 우리네 마음까지도 일렁이는 듯 움직임을 경험한다. 기류 해류 지하수 지각과 같은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들도 온도 압력 비중 위상 등의 구배(勾配)에 따라 운동을 하고 있다. 지구 달 해 그리고 별들도 빠른 속도로 운동을 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가 측정 가능한 우주공간도 빛의 몇 배 속도로 팽창운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자연의 모든 물리적 현상들은 정지상태가 아닌 운동상태 이다. 버스 승객이 보는 운전자는 앉은 채 멈춘 듯하지만 실제는 차량 속도만큼 운동 중인 것과 마찬가지다. 앞 산의 산봉우리는 정지상태처럼 보인다. 실제는 지각의 운동방향으로 움직이며, 지구 자체가 자전과 해를 축으로 공전 운동 중이며, 그 보다도 더 크게는 우리은하계도 회전운동을 하고, 우주 또한 광속의 3.5배로 팽창 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구의 한 편에 선 산봉우리도 결국은 지구와 같이 격렬한 운동 중인 것이다.

 

운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모양으로 본다면, 상하 또는 수평의 직선운동과 회전운동 왕복운동 등을 생각할 수도 있다. 나를 중심으로 볼 때는, 나에게 다가오는 운동이 있는가 하면 나로부터 멀어지는 운동도 있다. 단순히 물질이동 개념의 운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급차의 경광등처럼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운동도 있듯, 동식물을 종자별 개체별로 본다면 번식과 멸종 자체도 탄생과 사망이라는 반복운동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결국, 운동이란,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가에 따라 서로 다르게 느껴진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그리고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가의 기준도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을 하여 본다. 이는 물질의 이동 뿐만 아니라 시각이나 관념의 이동까지도 움직임이 있는 운동으로서 살펴 볼 가치가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누가 판단 할 때 느껴지는 운동인지도 중요하다.

 

지진, 해일, 밀물과 썰물, 비 바람 태풍도 운동이며, 밤낮이 바뀌며 해와 달도 운동 중이다. 동식물이 나서 성장하는 과정이 운동이지만, 나서 죽고 다시 번식하는 것도 운동이다. 매일의 일상에서 느끼는 희로애락 따위의 감정도 들고 나기를 거듭하며 흐르는 일종의 운동이다. 강물과 조수처럼 나의 감정도 쉼 없이 흐른다. 모두들 멈춤 없이 지속되는 운동들이다. 물질의 운동처럼, 시간, 정신, 감정도 멈춤 없이 흐른다는 것은 진리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지내 온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의 흐름이 어떠했었는지를 보자. 어떤 감정이건 간에, 나에게 다가오거나 나로부터 멀어지기는 했지만, 내 마음 속에서 결코 멈춰 섰었다고 기억되는 경우는 없다. 기쁨이나 슬픔도, 사랑이나 증오도, 놀람이나 두려움도, 고마움이나 괘씸함도, 희망이나 좌절도 …… 늘 그래 왔었다고 기억된다.

 

운동의 관점에서 “나”를 중심으로 본 “감정”, 특히, “나에게로 다가왔다가 나로부터 멀어져 가는 감정”의 움직이는 모양을 살펴봄도 의미 있는 일이다.

 

□   다가옴과 멀어짐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을 “감정(感情)”이라고  한다. 우리의 일상은 그러한 감정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이 이어지는 것이다.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가며 이어 지고 멀어지며 잊혀 지기를 반복한다.

 

그들에 대한 한결 같은 공통점을 찾는다면, 대다수 감정들은 우리에게 “다가옴과 멀어짐”으로써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대개의 감정은 다가 오며 나의 것으로 되는 듯 하지만 스쳐 지나가듯 어느새 내 곁을 떠나 점점 멀어지게 된다. 흐르는 냇물처럼 머무를 줄 모르는 것이 감정이다. 감정이란 어느 한 곳에 정체하지도 않고, 나의 것으로서 소유될 수도 없으며, 지속적으로 흐른다는 점에서는 시냇물을 꼭 빼어 닮았다. 흘러 오는 성 싶다가도 내 앞을 스치는가 싶으면 다시 이내 멀리로 흘러 가곤 한다.

 

  . Coming & going

  . Get into close & become more distant 

 

때로는 도도히 흐르는 대하처럼 밀려 오는가 하면, 때로는 장마철 계곡의 급류처럼 숨가쁘게 닥치기도 한다. 실개천 따라 졸졸대며 흐르는가 하면, 잔잔한 호수 되어 머무는 성 싶기도 한다. 자갈이며 가랑잎에 막혀 머무는 듯할 때도 있지만 땅으로 스며들며 아래로 흐름은 이어진다. 이처럼 우리들 감정은 항상 어디로 인지 흐르고 있다.

 

흐르는 냇물은 궁극적으로 어떻게 될까? 나의 앞으로 흘러 드는 듯 하지만 이내 흐르며 멀어진다. 그리고 다가오는 물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다. 일상에서 겪게 되는 감정도 누구에게나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곤 한다. 정체할 줄 모르고 한 쪽으로 흐르기를 계속한다. 크거나 많게, 작거나 적게 그리고 완급을 이루며 흐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궁극적인 방향이며 목적 따위에 관심 받지 못한 채 우리 곁을 스치기 일쑤이다. 유아기 젖먹이 시절, 젖 달라며 양 주먹 불끈 쥐고 얼굴 파랗게 질리듯 울어대며 보채던, 그 순간의 감정을 주름지고 흰머리 난 늙은이 될 때까지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대부분의 감정들이란 단절되고 토막 되어 시간이 지나면 멀어지곤 한다.

 

물의 흐름으로부터,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는 지혜를 챙길 수 있다는 상상은 어떨까? 물의 흐름에는 초가집 추녀 끝 낙수처럼 시적인 흐름도 있고, 격류나 파도처럼 두려움이 앞서는 흐름이 있으며, 잔잔하고 고요한 흐름도 있다. 때로는 그 힘을 이용하여 전력생산도 하며 배를 띄우기도 한다. 혈액, 침, 눈물, 소변처럼 흐름은 생명체의 생명 유지며 체내의 불순물 배설에서도 이용된다. 형태야 어떻던지 간에 아래로 흐른다는 것만은 순리처럼 보인다. 이 때, 증발이니, 파도니, 밀물 썰물처럼 위로도 흐르는 차원 다른 요인은 생각에 들지도 아니한다.

 

어떤 면에서는 한 통 속을 돌고 돌며 흐르는 격이기도 하다. 증발 응축 흡수 배설 여과 낙하를 거치면서 바다로 모였다 헤쳐지기를 반복한다. 지구 지층과 대기층, 더 크게는 우주공간 내 한 통 안의 현상에 불과하다고, 통 크게 말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물질의 생성이나 물이 담긴 우주의 미래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갖는 뭇 감정들은 어디를 향해서 흐르고 있을까? 생체로서 갖게 되는 “본능”이라는 이름의 방향으로 향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져 본다. 본능은 욕심이니, 욕망이니 하는 이름이 붙여져, “나”라고 부르는 개체를 위해서 항상 “선(善)”한 쪽을 향한다.  “나” 또는 나와 가까운 “내편”의 배를 불리고, 편하고, 따스하고, 기쁘며, 좋은 쪽을 향해서 나의 감정은 흐른다. 여기에서 옳고(Right) 그름을 따진다 함은 자기 쪽에 좋은(Good) 감정에 대해 사회윤리,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못해 나누거나 억제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감정의 흐름은 자기 좋은 곳을 향한다.

 

  . 물이 높은 곳으로 흐르려면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감정이 남에게 좋은 방향으로 흐르려면,

    희생정신, 봉사정신 또는 다른 형태의 대가가 요구된다.

 

우리 눈에 들어 오는 물길이란 항상 바다로 향하고 모이는 듯 하지만, 증발과 응축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되돌아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염두에 두며 감정을 대하고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길의 흐름은 험한 때도 많지만, 때로는 타고 즐기기도 하고 유용한 에너지원으로서도 이용된다. 감정의 흐름도 때로는 창조적인 지혜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감정의 격랑이라는 힘을 이용해서 새로운 탄생을 이루려는 사람은 누구일까? 춤 추고 노래하며 그리거나 만드는 예술가, 체능과 문학, 과학기술 개발 등 우리 문명과 문화의 발달은 그러한 감정을 타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무리일까? 그와 반대로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곳으로 감정이 이끌리기도 한다. 억제하지 못하는 격한 감정의 결과로 빚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이 뉴스마다 한 자락씩 자리하는 것이 그 보기가 될 것이다.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거나 빼앗기까지도 한다.

 

□   결심과 다짐

 

해와 달이 도는 운동을 막아 보려는 넋 빠진 이는 없을 것이다. 철이 바뀌고 밤낮이 바뀌는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순응할 뿐이다. 그러나 자연현상의 운동을 조절하여가며 삶을 더 편하고 윤택하게 하는 일들도 적지는 않다. 비바람을 피하는 안락한 집을 짓고, 홍수를 조절하는 댐을 건설하고, 방파제를 높이는 따위들이다.

 

삶의 과정에서 겪는 감정들도 비슷한 면이 많다는 생각을 갖는다. 체념이라는 이름으로 어찌 하는 수 없이 순응해야만 되는 감정이 있는가 하면, 절제하고 억제하며 크기나 완급을 조절 할 수 있는 감정들이 있다. 댐이나 방파제를 건설 하듯,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결심과 다짐”을 하곤 한다.

 

    슬퍼하지 않으리, 두려워하지 않으리, 미워하지 않으리,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

    언제나 감사하자. 믿음을 갖자. 항상 기쁘게 살자, 이 영광을 고이 간직하자 ……

 

그러나 우리는 경험하곤 한다. 사소한 동요에도 맥없이 무너져 버리는가 하면, 하루 해가 채 지기도 전에 눈 녹듯 사그라져 버리는 허술했던 “결심”들이 얼마나 잦았던 지 ……

 

건설용 자재가 크고 강하며 질기고 외관이 수려한 것만이 반드시 최상급의 자재는 아니다. 굵은 자갈과 가는 모래도 필요하고 가루인 시멘트나 적당한 굵기의 긴 철근도 골재로 쓰인다. 타일과 목재, 페인트와 벽지, 유리도 필요한 이유이다. 강함도 중하지만, 유연성, 가공성, 굵기나 외관 따위가 제각각 적절해야만 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는데 있어서도 그러한 건설자재와 다름이 없다.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굳건한 결심이 중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강하고 변함없는 “결심과 다짐” 만이 최선의 선택은 아닐 것이다. 잘못을 뉘우치고 시정하여 개선하며 보내는 것도 그에 못 지 않을 수 있다. “다짐”에 대한 강하거나 유연함, 또는 그 사용 크기나 조정 주기며, 가치기준 따위를 얼마나 잘 배합하며 조절할 수 있을 지가 중요한 이유이다.

 

“충성 맹세 복종”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라면 아름답다고 하지만 깡패조직의 경우 라면 다르다. “사랑”의 다짐도 선남선녀 사이, 어미와 자식 사이, 서로 같은 믿음을 가진 신도들 사이 라면 미덕이라고 말하겠지만, 불륜한 사이, 원한 맺힌 사이, 이교도들 사이 라면 다를 것이다. 개발제품 설계도가 업데이트 하며 수정되듯, 생명체가 환경 적응에 따라 진화 하듯, 자신의 감정에 대한 “결심과 다짐”도 적절한 수정과 망각이 따라 주어야만 그 삶이 사회질서, 자연질서와 잘 융화되는 것이 아닐까?

 

이조시대의 가치기준을 고집하며 갓 망건이나 댕기머리 버리지 못하는 굳센 결심이나, 일본군 병사 요코이 쇼이치의 천황에 대한 충성심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28년 이나 괌 정글 생활을 하다 구출된 충성 고집 행각은 “다짐”이 굳센 것만이 아름답게 여겨지지 아니하다는 예라는 생각이 든다. 여하 한 감정의 결심이나 다짐도 셈과 여림의 조화 속에 적당한 기간동안만 존속해야 하는 일종의 적정 수명이 있는 셈이다.

 

어떤 감정이 도를 넘게 세거나, 너무 여리거나 또는 너무 오래가게 되면 조화로움을 벗어나 추하게 변질된다. 감정이 밖으로 표출되는 대표적인 것으로서 웃음과 울음을 생각 할 수 있다. 기쁨이던 슬픔이던 간에 상황에 따라 과하게 웃던지, 울던지 하면 추해 보이며, 너무 오랜 시간을 끌거나 짧아서 적당하지 못할 때도 추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좋은 감정이던 나쁜 감정이던, 그 다짐의 세기나 기간을 어찌 다룰 것인가는 우리를 망설이게 한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지키겠다는 강한 결심을 한지 얼마지 않아 힘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감정은 머물지 못하고 항상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감정의 흐름은 순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강한 결심만이 바른 것이며, 변하지 않아야만 옳은 것도 아니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올바른 감정의 다스림은 순리에 따르는 것이 최선이다. 순리는 무엇인가? 본성에 순응하는 것이다. 가능한 한 본능에 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본능이어야 할까? 그 대상은 무한하다. 나, 나의 가족, 우리사회, 우리민족, 우리인류, 우리 생명체 …… 몸매관리 욕심에 홀린 심한 다이어트로 위장이 상하고 건강을 해친다거나, 도에 넘는 정력제니 보약으로 간 손상을 유발하고 몸이 상해 고생하는 경우를 눈 여겨 보라. 나를 위한 경우지만, 한 쪽으로 치우치면 전체 몸을 상한다. 자기 혼자 재미 보자고 행한 부정으로 순탄하던 가정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제 식구 잘 살자고 회사며 조직의 일을 그르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나라까지 등진 근대사 속의 인물도 있다. 자기 민족 자기 종교를 위한답시고 평화와 세계질서를 해친 역사도 있다.  

 

그렇기에 순리나 가치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사회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나도 옳지만 개나 소도 모두 옳을 수 있다. 욕심은 본능이다. 욕심을 채운다는 것은 자신에게는 순리에 따르는 것이지만 그 상대방으로서는 순리에 어긋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바른 사회, 바른 세상을 가꾸려면 자신을 생각하기 앞서 상대방을 고려 할 줄 아는 지혜가 요구된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개개인 각자는 흐르는 “감정의 댐”을 과하지 않는 선에서 잘 다질 줄 아는 지혜가 요구된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감정의 댐”을 열어 젖힐 줄 아는 용기도 삶의 향기와 아름다움임을 알아야 한다.

 

   “너 자신에게만 한 가지를 물어보아라. 이 길이 마음을 담았느냐?

   그렇다면 그 길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소용 없는 길이다.” 

 

페루의 문화인류학자 카스타네다의 말처럼 자신이 마음에 닿아 택한 길이야말로  자신에게 좋은 길이며, 자신에게 최선이고 바른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1.4.18. (월)

      오갑록

 

 

      □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류시화

 

 

 

■ 느낌

 

   점점이 흘러 가는 시간들,

   그 대하의 징검다리를

   한 점씩 내 딛으면서

   너 나 없이 품고 가는 것

 

   그것은 느낄 수 있는 것과

   감정을 갖는 것입니다.

 

   때로는 무의식 중에,

   때로는 즐거움으로

   때로는 두려움이나 고통으로

   때로는 사무치는 슬픔에

   느낌 또는 감정이라는

   가닥실은

   나의 삶과 함께

   항시 흐르고 있습니다.

 

   ......

  

   천적들처럼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느낌이 있는가 하면

   서태지 좋아하는 신세대가

   흥부가 박타령에 흥 오를 리 없듯

   살아가며 후천적으로 키운 느낌도 있습니다.

 

   느낌이란 무엇일까?

 

   좁게 보면 신체의 오감(五感)으로 느끼는 부문일 수 있습니다.

   신체의 감각 수용기 종류에 따라, 받아들인 특수한 자극에 따라

   흥분하는 것이 오감입니다. 그 자극의 전달과정은 다양하지요.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청각......

   오감 외에도 심부감각, 내장감각, 평형감각 등이 있습니다. 

 

   감정이란 위와 같은 신체기관을 통하여 얻은 느낌을 스스로의

   가치 기준에 따라 시공(時空)을 가감하여 각기 특정 양상으로

   영향을 받아 마음에 되새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감을 통한 느낌이 사람마다 비슷하다고 한다면,

   거기서 오는 감정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감으로 받아들인 느낌이 스스로의 “가치기준”이라는

   후천성 또는 선천성 프리즘을 통하면서 얻는 감정이

   서로 다르기에 그러하겠지요.

 

   똑 같은 사물에도

   서로 다른 감정을 갖는 이유를 가리기도 쉽지 않지만

   그 감정의 종류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며 변화무쌍합니까?

 

   사소한 감정의 노예가 되어

   잠 못 이루던,

   부질없던 한 순간이

   세월이 흘러 나이 든 후

   후회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한 순간 지녔던

   마음 속의 고장 난

   “프리즘” 때문이라고 봅니다.

 

   백색광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빨.주.노.초.파.남.보 각각의 색상으로 나뉩니다.

   프리즘으로 백색광을 나누듯,

   감정을 나누어 봅니다.

   잘 표현 된 것으로는

   사단칠정(四端七情)이 좋을 듯합니다.

 

   맹자는 사단(四端)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시비를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이라 하고,

 

   예기(禮記)와 중용(中庸)에서 칠정(七情)은

   기뻐하고(喜), 성내고(怒),

   슬퍼하고(哀), 두려워하고(懼),

   사랑하고(愛), 미워하고(惡),

   욕심 내는(欲) 감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어느 노승의 선담이 새삼스럽습니다.

   오감으로 얻은 느낌은,

   느낌 그 자체일 뿐입니다.

   사단칠정 중 어느 한 감정이란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

   제각각 흔들리는

   고장 난 프리즘을 통과한

   허상에 불과하니,

   이를 두고 어쩌고저쩌고 함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가르침이라

   생각됩니다.

 

   사단칠정 중

   한 곳의 허상에만 집착해서

   오늘 하루, 한 순간을

   허덕이지는 아니하였었는지

   스스로를 짚어 봅니다.

 

   편식의 해로움을 알고,

   백색광의 함축된 의미와

   선조들 중용의 덕을 생각하면서

   기쁨과 화냄, 슬픔과 두려움,

   사랑과 미움, 갖가지 욕심……

   이러한 느낌과 감정을 편식하지 말고,

 

   백색광처럼 하얗게,

   치우침이 없이 뚜벅뚜벅……

   그렇게 가져가야 할 터인데……

 

   좁쌀 아저씨 쫌팽이 생각입니다.

 

       2007. 6.  .

       오갑록

 

 

 

 

■  (心)

 

                                                   한용운

 

(心)은 심(心)이니라.

(心)만 심이 아니라 비심(非心)도 심이니,

심외(心外)에는 하물(何物)도 무(無)하니라.

 

생도 심이요, 사도 심이니라.

무궁화도 심이요, 장미화도 심이니라.

호한(好漢)도 심이요, 천장부(賤丈夫)도 심이니라.

 

신루(蜃樓)도 심이요, 공화(空華)도 심이니라.

물질계도 심이요, 무형계도 심이니라.

공간도 심이요, 시간도 심이니라.

 

심이 생(生)하면 만유가 기하고

심이 식(息)하면 일공(一空)도 무하니라.

심은 무의 실재요, 유의 진공(眞空)이니라.

 

심은 인(人)에게 누(淚)도 여(輿)하고 소(笑)도 여하느니라.

심의 허(墟)에는 천당의 동량도 유하고, 지옥의 기초도 유하니라.

 

심의 야(野)에는 성공의 송덕비도 입(立)하고 ,

퇴패(退敗)의 기념품도 진열하느니라.

심은 자연전쟁의 총사령관이며 강화사니라.

금강산의 산봉에는 어하(魚蝦)의 화석이 유하고,

대서양의 해저에는 분화구가 유하니라.

 

심은 하시(何時)라도 하사 하물(何事何物)에라도

심 자체뿐이니라.

심은 절대며 자유며 만능이니라.

 

 

 

  

■  감정의 종류

 

빗물과 지하수, 맑은 물과 흙탕 물, 민물과 바닷물, 쓴물 단물 신물, 폐수처럼 물줄기를 이루는 물의 종류는 목적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감정도 그와 비슷하다. 기쁨 슬픔 분노 놀람처럼, 좋다거나 나쁘다는 두 가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곤 한다.

 

 

    감정(感情)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으로서, 사람이 오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느끼는 것이며, 정서(emotion)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몸 속의 사건에 대한 지각이다. 감정을 뜻하는 영어 낱말 feeling, 느끼다의 어원은 "만져서 촉감으로 감지하다" 였으나, 어떤 특정한 감각기관이 아니라 모든 감각작용을 통해 감지한다는 뜻으로 발전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R.S.우드워스가 감정과 정서의 문제를 개인의 "내면 상태"의 문제로 규정함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자들은 이마누엘 칸트의 정의에 따라, 감정을 심리학에서 affect라고 부르는 마음의 유쾌한 상태, 불쾌한 상태와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감정은 본래 내면적·주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정에 대한 연구는 서로 별개인 2가지 문제, 즉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감지되는가, 그리고 감지된 사건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졌다.   (사전 인용)

 

□  “감정의 종류와 이론”  중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처럼 격렬하고 강하지만 폭발적으로 표현되어 오래 지속되지 않는 감정을 '정서(情緖)' 또는 '정동(情動)'이라고 한다. 타오르는 듯한 애정, 강렬한 증오 등도 이에 속한다. 이에 비해서 약하기는 하지만 표현이 억제되어 비교적 오래 지속되는 감정을 '정취(情趣)'라고 한다.

 

공포는 정서이며, 걱정과 불안은 정취이다. 격노(激怒)는 정서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불유쾌한 생각은 정취이다. 홍소(哄笑)는 정서이고 미소는 정취이다. 그 밖에도 유머·분함·행복·비애·외경(畏敬) 등과 같이 가치의식이 가해진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감정이 있는데, 이를 '정조(情操)'라 한다. 이는 가치감정이기 때문에, 그 가치에 따라 도덕적·종교적·예술적·과학적 정조로 나눌 수 있다.

 

W.분트는 쾌(快)·불쾌, 흥분·침정(沈靜), 긴장·이완 등 감정의 3방향설을 주장하였고, P.자네도 기쁨과 슬픔, 노력과 피로, 들뜸과 허무감의 3방향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서 J.로이스는 쾌·불쾌와 안정·불안의 2방향설을 내세웠다.

 

M.B.브리지스는 갓 태어난 아기의 정서는 처음에는 단순한 흥분에서 출발하여 생후 3개월 경에 쾌·불쾌·흥분으로 분화하고, 4개월 경에 불쾌는 노여움·혐오·두려움으로 분화하였다가, 1년 만에 질투가 분화해 나오는데, 이처럼 미분화(未分化)의 흥분은 점차 섬세한 감정으로 분화한다고 주장하였다.

 

S.프로이트는 사디즘이나 마조히즘 등의 이상심리에서, 사랑과 미움, 복종과 반항, 쾌와 고(苦) 등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양향성(兩向性:ambivalence)이라고 하였다. 양향성은 복잡한 감정의 심리적 일면을 잘 꿰뚫고 있다.

 

W.분트는 개개의 특수적 감정과 의식에 뚜렷이 떠오르지 않는 자아상태의 감정을 구별하여, 후자를 일반감정이라고 하였다. W.슈테른은 개개의 공포와 일반적인 불안을 구별하였으며, M.하이데거는 전자를 존재적(存在的:ontisch), 후자를 존재론적(存在論的:ontologisch)이라고 하였다.

 

 

□  감정과 신체변화

                                                                                                                  민.경환  강론 중에서

인간의 기본감정은 고유한 신체변화와 연결이 되어 있다. 즉, 얼굴 표정이나 행동 경향성과 강하게 연결 된다. 이는 진화상에서 공포, 분노 등의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는 사건이 효과적 성공적으로 반응하기 위한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준다.

   분노(공격), 공포(도주), 혐오(배척과 회피), 사랑(협동과 가족형성),

   기쁨(삶의 활력소), 슬픔(자기 재조직 및 사회적 지원의 유발)

 

이러한 감정에 따른 신체변화는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범 문화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  인간의 감정

         "신과 나눈 이야기" 중에서

                                                                                                       닐 도널드 월시,  일부발췌

서러움(grief)은 자연스런 감정입니다.

어떤 종류의 상실이든 상실을 체험할 때,

내면의 슬픔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우리 부분입니다.

그 상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든, 아니면 콘택트렌즈를 잃어버리는 것이든.

자신의 서러움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러움에서 벗어납니다.

슬플 때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슬픔에 대해 아주 건강한 태도를 갖게 되고 ,그만큼 자신의 슬픔을 쉽사리 극복합니다.

계속해서 억눌린 서러움은 대단히 부자연스런 감정인 만성 우울로 됩니다.

 

노여움(anger)은 자연스런 감정입니다.

이것은 우리더러 “아냐, 됐어” 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하지만 노여워 한다고 해서, 반드시 남을 남용하게 되는 건 아니고,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게 되는 건 아닙니다.

계속해서 억눌려진 노여움은 대단히 부자연스런 감정인 분노(rage)가 됩니다.

 

부러움(envy)은 자연스런 감정입니다.

이것은 다섯 살짜리 꼬마더러 자기도 누나처럼 문고리에 손이 닿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만드는 감정입니다.

계속해서 억눌려진 부러움은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질투(jealousy)가 됩니다.

 

두려움(fear)은 자연스런 감정입니다.

모든 아기들은 딱 두 가지 두려움만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즉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큰 소리에 대한 두려움.

그 외의 다른 모든 두려움들은 환경이 가져다 주고, 부모가 가르친 학습된 반응입니다.

자연스러운 두려움의 목적은 약간의 주의를 심어주는 데 있습니다.

주의는 몸이 계속 살아 있게 도와주는 도구다.

그것은 사랑의 부산물,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계속해서 억눌려진 두려움은 대단히 부자연스런 감정인 공포(panic)가 됩니다.

 

사랑(love)은 자연스런 감정입니다.

아기가 한계나 조건 없이, 위축되거나 당황하지 않고, 평소에 자연스럽게,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사랑은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표현되고 받아들여진 사랑의 기쁨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약당하고,한정되고, 규칙과 규제와 관습과 제한들로 뒤틀리고, 통제되고, 조작 당한 사랑은 부자연스러워집니다.

계속해서 억눌려진 사랑은 대단히 부자연스런 감정인 소유욕(possessiveness)이 됩니다.

 

억눌러진 자연스런 감정들은 부자연스런 반응과 대응들을 낳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자연스런 감정들 대부분을 억누르면서 살지만,

사실 이 감정들은 우리 친구들이고 우리가 받은 선물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이 도구들을 받는다. 이것들은 우리가 삶을 뚫고 나갈 수 있게 해줍니다.

위의 다섯 가지 감정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통합 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분화 되었다고 보아도 됩니다.

이 사랑의 감정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마음이 확장되고 평화로워지고, 행복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당신의 병을 치유합니다.

사랑은 행동 되어질 때까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곧 행동으로 옮겨져야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에너지가 가장 강력하며,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줍니다.

                                               

 

  

■  인간의 감정세계                                               

 

                                                                    민.경환  강의 중에서, 블로그 예스24                      

□  감정이란?

 

. 감정은 모든 것을 의식에 이르게 하는 주된 원천이다. (칼융)

    감정 없이는 어둠이 빛으로, 그리고 무관심이 감동으로 변환될 수 없다.

    감정이 감동을 일으키게 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경로

.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 (23세 때 작품)

    같은 상황에도 사람마다 체험하는 감정, 표현방식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는 작품

. 뭉크의 사진은 불안함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유명

    예술은 표현이다.

    사람들에게는 세상 현상을 이원적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   이성과 감정에 대한 공통적 관점

 

. 이성과 감정은 상호대립 (갈등)

      합리주의 대 낭만주의 전통

      니체,  아폴로 대 디오니소스

      이성은 유익하고 발전적인 것. 감정은 해롭고 파괴적인 것

. 동.서양의 주류사상

      서양의 주류사상은 소크라테스로부터 이어지는 합리주의, 계몽주의 사상을 거쳐 과학주의

      공자 이후로 감정보다 이성을 우월한 존재로 본다.

 

. 이성과 감정에 대한 공통적 관점

    감정을 극복하고

    이성의 인도에 따르는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교육의 목적 (사회적 요구)

 

□   감정의 정의와 기능

 

마음의 상태

  . 주관적 느낌 - 상황, 사랑, 사건에 대한 주관적 (불안, 초조)

  . 신체변화 수반 - 감정을 느끼면 주먹을 쥐고, 맥박이 빨라짐

  . 행동 유발 - 감정의 역할 (행동을 유발시키는 동기를 제공)

                두려움을 느끼면 도망을 간다.

 

의식의 흐름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 (윌리엄 제임스)

        심리학의 창시자, 미국의 심리학자

이성은 신체적인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다.

감정은 신체적인 경험이 필수 (생명체를 생명체답게 한다)

이성의 metaphor(은유법)은 컴퓨터

감정은 다양한 색체를 지님 (감정연구의 매력)

감정은 세계는 다양해서 “무지개 색채”라고도 함

감정은 이성을 흐트러트리고 합리적 판단을 방해한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마음을 자연과학처럼 경험적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주장

         (빌레흠 막시밀리안 분트) 독일의 심리학자,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

 

□   감정의 기능

 

. 개인과 환경 (사람, 사물, 사건) 간의 관계를 수립

    감정이 없으면 관계가 없다.

    감정이 없으면 애착, 사랑이 존재할 수 없다.

. 인간관계는 감정 교환의 관계다. (가장 중요함)

    감정 없이는 인간은 모래알일 따름이다.

 

. 이성의 영역 밖을 담당

    이성을 인도하고 도움을 제공

    이성과 상호보완

. 인성의 판단보다 빠를 때가 있다 (본능) - 뱀을 보았을 때 도망

. 이성의 구성 - 지식, 경험, 인지적 능력

 

. 사회적 삶의 하부구조를 제공

    특정행동을 도와주고 유발시키는 역할 (두려울 때 도망)

    감정은 진화론적 기능보다 사회적 삶을 도와준다.

    개인과 환경 특히 사람과의 관계를 수립하는데 중요한 역할

    사회적 삶의 하부구조를 수립하는데 중요한 역할

 

. 정서지능 (EQ – 현대 자본주의의 산물)

   감정을 삶에 유익하게 활용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능력

   감정은 이성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감정적 능력이 훈련이나 교육을 통해서 개선될 수 있다.

. 인지적 능력 (IQ - 문제해결 능력)

    IQ는 우리 삶에 유익하기 보다 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본래의 목적인 학습능력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지적능력을 서열화 시키는 존재로 전락

 

□   인간의 감정세계

 

감정의 종류

 

. 정적감정 (쾌감정) - 기쁨, 행복, 즐거움 - 삶의 활력소

    긍정심리학 - 인간 마음의 밝은 면을 규명해서 북돋으려는 심리학의 한 분야

    삶의 활력소로 자주 체험

    특정행동 유발과는 관련이 적음 (그 기분을 누리면 된다)

 

. 부적감정(불쾌감정) - 두려움, 분노, 혐오 등

    특정행동의 유발과 관련이 있다.

 

. 기본감정 - 고유한 신체변화와 연결이 되어 있다.

    고유한 신체변화 - 얼굴 표정, 행동 경향성과 강하게 연결

. 범문화적 -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 진화상에서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는 사건이 효과적

    성공적으로 반응하기 위한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준다.

         (공포, 분노 등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분노(공격), 공포(도주), 혐오(배척과 회피), 사랑(협동과 가족형성)

    슬픔(자기 재조직 및 사회적 지원의 유발), 기쁨(삶의 활력소)

 

. Darwin의 연구 - 진화론적 전통연구

 자연선택이라는 진화론적 기본과정을 세상에 소개.

 인간과 하등동물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

     인간은 동물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하등동물로부터 진화론적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 Ekman - 얼굴표정의 범문화적 연구

   안면피드백 가설 - 얼굴 표정과 감정 체험간의 신경회로 존재

   감정표현 규칙 - 신체 및 문화규범에 따른 감정표현 관계

   기본감정(행복,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을 나타내는 미국인 사진을

       Fore(푸아)족에게 보여주고 감정에 맞는 표정 찾기

        6개의 감정이야기에 해당되는 표정을 짓도록 한 다음 미국 대학생들에게

          상응하는 감정을 고르도록 함

       6개의 기본감정의 얼굴표현이 문화에 상관없이 인류보편적 얼굴 표정은 생리적인

         신경계와 표현규칙(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에 의해 결정됨(보편적이다)

       학습의 영향이 아니라 둘 사이의 신경회로가 있을 것이다.

       얼굴표정과 특정 정서체험 사이의 신경회로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

 

. 안면 피드백 가설

    얼굴 표정 → 감정의 주관적 체험

      강한 주장 - 얼굴 표정이 감정을 만들어 낸다.(화난 표정 - 화가 난다)

   약한 주장 - 어떤 감정을 체험하고 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얼굴 표정을 지으면

                   그 감정을 보다 강하게 체험하게 된다.

 

□   현대인의 사회적 삶과 감정

 

. 인간관계의 중요한 감정들

 

. 사랑: 가족형성의 기초가 되는 정서

    단기간의 열정적 사랑(사랑에 빠짐)이 지속적이고 배려하는 사랑으로 변환

    사랑과 결혼의 관계 (엄청난 결정 - 감정의 강렬)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이 된 시기는 낭만주의 시대 이후

 

. 슬픔: 세련된 문화 - 슬픔의 강조

. 분노: 관계의 강화 및 재조정등에 기여

    충동적 범죄와 관련

    분노의 표현 - 상대방이 알게 한다

    분노의 감정이 남아 있을 때 희망이 있다. 경멸은 끝이 난다.

    분노는 개인적 문제이자 사회적 문제

    분노의 통제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 혐오: 신체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뿐 아니라

    영혼이나 사회적 질서를 해치는 모든 종류의 오염에 대한 방어로 확장됨

    도덕, 종교와 관련

    아동 성추행의 혐오는 문화나 사회윤리로 혐오의 정서가 확대

 

. 경멸: 외집단 구성원으로 취급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척의 정서,

    편견 및 차별과 밀접한 관련(나치, 노예)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음

    경멸이 타 집단을 향할 때는 구성원들이 전체적으로 공유하므로

    잘못된 것임을 모르면서 친 사회적인 행동이라고 불림

 

□   인간생활과 감정의 주요 주제들

 

. 결혼생활과 감정

분노는 가능성이 있다 (관계의 재조정)

경멸의 표현이 보다 파괴적, 정적감정의 표현을 더 자주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칭찬, 격려, 기타 정적인 표현을 자주해야 잘 유지

정적 표현이 부정적 표현보다 2:1. 3:1 정도 많아야 결혼생활 유지

부부 관계에서 치명적인 상처가 되는 부정적 표현은 삼가야 한다. 

 

. 부모와 자녀의 감정

엄마의 우울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자녀에게 무관심하게 된다.

아기의 감정교환 요구에 냉담하고 무관심하다.

 

. 노년기 감정

30살 - 감정이 복합적, 기쁨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앞날에 대한 걱정도 있다.

60살 – 신체 약화와 동기의 변화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 중요해짐)

 

. 감정 최적화 가설

감정을 최적화 시키기 위한 노력 (즐거움, 행복은 최대화 반대의 감정은 최소화 시킴)

흥분, 각성수준이 낮고, 긍정적인 것을 바람

편안한 감정, 평온한 감정. 각성수준이 낮되 긍정적인 감정 추구

 

. 사회선택적 가설

친구들이 떠나고 네트웍 형성이 안됨, 이것이 노인이 선택한 결과다.

노인들은 감정 최적화를 이루기 위해 사람, 사건들을 선택해서 접촉해야 한다.

 

. 자신의 감정생활을 돌이켜 보라 - 적용

 . 나는(우리 가족은) 감정(체험, 표현, 이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 감정은 노력해서 충분히 향상 시킬 수 있다.

 . 나는 주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나? (부정적, 긍정)

 . 왜 그런 감정을 자주 느끼는가? (선행사건, 해석, 대처?)

     객관적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

 . 나의 감정 조절(감정 표현)의 방식은 무엇인가?

     억압, 발산, 회피, 재해석, 수용

     서구가 보다 감정 발산적인 문화

     한국, 중국, 일본 등은 감정절제 문화

 

  

 

■  감정의 종류

                                                                                                            성산.교회 자료 중에서

감정은 여러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지만, ”긍정적(+) 정서”와 ‘부정적(-) 정서”로 분류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 감정을 많이 느끼고 - 감정을 잘 다루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 감정을 많이 느끼고 이를 잘 다루지 못한다.

 

. 긍정적(+) 정서의 예: 기쁨(喜), 즐거움(樂)

 

좋다 상큼하다 안심되다 깨끗하다 신바람나다 후련하다

기쁘다 짜릿하다 편안하다 유쾌하다 사랑스럽다 흡족하다

즐겁다 산뜻하다 감미롭다 상쾌하다 자랑스럽다 든든하다

 

괜찮다 뿌듯하다 달콤하다 자유롭다 만족스럽다 근사하다

흥겹다 흐믓하다 황홀하다 건강하다 영광스럽다 멋있다

설레다 시원하다 눈부시다 행복하다 믿음직하다 따스하다

 

반갑다 신선하다 찬란하다 새롭다 터질듯하다 훌륭하다

빛나다 참신하다 화려하다 넘치다 다채롭다 재미있다

신나다 싱그럽다 화사하다 놀랍다 뭉클하다 평화롭다

  

. 부정적(-) 정서의 예: 슬픔(悲), 우울(憂), 화(怒), 미움(惡)

 

우울하다 적막하다 절망적이다 짜증나다 구역질나다 소름끼치다

울적하다 거북하다 가슴아프다 억울하다 혐오스럽다 고통스럽다

불쌍하다 애처롭다 불행하다 불쾌하다 유감스럽다 원망스럽다

 

측은하다 허전하다 캄캄하다 괘씸하다 환멸스럽다 신경질나다

서글프다 삭막하다 한스럽다 이갈리다 경멸스럽다 불만스럽다

처량하다 쓸쓸하다 미어지다 죽겠다 염증나다 성질나다

 

쓰라리다 공허하다 비참하다 떨리다 미치겠다 약오르다

안타깝다 서늘하다 암담하다 두렵다 싫증나다 숨막히다

슬프다 저미다 참담하다 화나다 권태롭다 억울하다

 

아리다 서럽다 불안하다 귀찮다 지루하다 섬뜩하다

싸하다 가엽다 초조하다 겁나다 따분하다 무섭다

안됐다 언짢다 답답하다 밉다 역겹다 열받다

 

지겹다 외롭다 갑갑하다 싫다 아프다 괴롭다 서럽다

 

 

■  감정과 정서

 

 

. 정서(情緖)

                                                                                                                             위키백과

정서(情緖, emotion) 또는 정념(情念)은 다양한 감정, 생각, 행동과 관련된 정신적ㆍ생리적 상태이다. 정서는 주관적 경험으로 대개 기분, 기질, 성격 등과 관련이 있다. 넓은 의미의 감정 가운데서도 급격히 생기는 일시적인 노여움·두려움·기쁨·슬픔·놀람 등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 정서의 발달

브리지스(K. M. B. Bridges)는 유유아(乳幼兒)의 정서발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유아(乳兒)에서 최초로 발견되는 정서반응은 전반적인 흥분이다. 눈에 강한 빛이 들어온다든가, 갑자기 안아올렸다가 침대에 내려놓는다든가, 손을 잡아당기든가 할 때 일어난다.

 

  . 생후 3주일경에는 '흥분'에서 최초로 '고통'이 분화한다. 아플 때, 배고플 때, 또는 잠을 방해당했을 때, 기저귀가 젖어 있을 때 불쾌감에 의해 생긴다.

 

  . 다음에는 기쁨이 분화한다. 어른다든지, 안는다든지 하는 경우에 웃음의 반응 등으로 나타난다.

 

  . 생후 2년까지는 2분 된 기쁨(快)과 고통(不快)에서 기쁨은 득의(得意)·사랑·즐거움으로 분화하며, 고통은 노여움·혐오·두려움으로 분화해 나간다.

 

. 특징

 

. 유아기

 

유아기 정서는 지속시간이 짧고, 폭발적·일과적(一過的)이고, 나타나는 빈도수가 많음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이다. 거기에 비해서 아동기는 비교적 안정된 시기로서, 유아에 비하면 극단적인 정서표현이 적다. 그러나 정서의 표현형태나 정서를 야기하는 대상은 생활공간의 확대와 변화에 따라서 분화하여 풍부하게 된다. 정서를 야기시키는 대상의 발달적 변화로서 두려움(불안)의 예를 들어 보면, 유유아기(乳幼兒期)의 두려움의 대상은, 소음이나 낯선 물건·낯선 장면·낯선 사람, 위에서 떨어지는 물건 등이다. 6세 경이 되면서 상상력의 발달과 더불어 상상의 생물·괴물(怪物) 등에 대한 무서움이 증가한다. 또한 어두움이라든가 위험한 것, 유해물 등에 대한 두려움도 증가한다. 취학할 무렵에는 실패라든가 굴욕에 대한 두려움 등도 나타난다.

 

. 아동기

 

아동기에는 대체로 화재라든가 천재지변·전쟁·죽음 등의 비교적 외적사상(外的事象)에 대한 두려움(불안)이 많다. 이에 대해서, 청년기가 되면 신체나 성(性)·인간관계·취직문제·시험 등에 관해서 불안을 느끼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 밖의 정서도 각각 그 대상 혹은 표출방법의 발달과 더불어 분화·확대하고 혹은 변화되어간다.

 

. 청년기

 

청년기는 성년기에의 과도기로 부적응의 시기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정서적 불안정의 시기이다. 자아의 발견 때문에, 또는 많은 불안을 안고 있기 때문에 다양화하고, 심화(深化)하고, 동요하는 내면생활이나 감정으로 인해서, 자기의 이해자를 찾기 위한 애정적인 욕구도 강해지며, 그것들을 얻지 못한 데서 오는 강한 고독감이나 자기부정(自己否定)의 감정·열등감 등이 특징적인 정서적 상태이다. 자기혐오나 자기비판 등도 나타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정서적으로 극히 불안정하고, 때로는 그 표출이 반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위험성까지도 지니게 된다.

 

 

 

□   감정 (感情)

                                                                                               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감정(感情)은 사물과 인간 등에 대해 품는 느낌으로서. 기쁨, 슬픔, 분노, 체념, 놀람, 혐오, 공포 등이 있다

 

정신의학, 심리학에서는 감정(emotion)과 기분(mood)을 구별하기도 한다. 전자가 보다 더 일시적인 것을 가리킨다. (종종 날씨(weather)와 기후(climate)에 비유된다). 그러나 양자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뇌 과학적으로 감정은 대뇌의 표면(대뇌피질) 및 뇌 심부(변연계(辺縁系) 등)와, 신체의 밀접한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또한 감정이며 생각, 인식 등은 비록 그 사람의 의식에 따르지 않더라도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 이외의 포유류도 대뇌 변연계(辺縁系)의 구조는 인간과 유사하여, 변연계 각 부위에 대한 전기 자극이나 신경 활성물질의 투여에 의해 불안, 공포,· 분노 등 인간의 감정 반응과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오래 전부터 알려지고 있어서, 이러한 동물들도 감정(정서)이 있다고 추측된다. 그러나 비교인지과학적으로는 연구가 초기 단계이고, 어디 까지나 자극과 행동의 상관 관계가 관찰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 감정의 생물학

 

생물학적으로 감정은 크게 네 가지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 감정을 일으키는 뇌 과학적 메커니즘

. 감정의 사회적 메커니즘

. 개인의 감정을 형성하는 감정의 개체 발달

. 종(種)에서 보편적인 정서를 형성한 진화적 기능

 

처음 두 가지는 지근 요인(至近 要因), 다음 두 가지는 궁극적 요인이라고 한다.

 

. 지근 요인

 

감정의 뇌 과학 ; 생리학적으로 감정은 신체 감각에 대한 무의식적인 감정(emotion, 정서)과 의식적인 감정 (feeling 또는 emotional feeling)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의식적인 감정 (feeling)은 대뇌 피질 (대뇌의 표면) 특히 대상회(帯状回) 전두엽이 관여하고 있다. 무의식 감정은 피질하(皮質下, 뇌의 중심 부위)의 편도체(扁桃体), 시상하부(視床下部), 뇌간(脳幹) 뿐만 아니라, 자율 신경계, 내분비 계, 골격근 등의 말초계(뇌의 외부 조직)도 관여한다. 그러나 감정(感情)이나 감정의 움직임(情動)도 피질(皮質)과 대상회(帯状回) 만으로 성립한다는 반론도 있다 (Rolls 등).

 

예를 들어 우리가 두려움을 느낄 때는, 동시에 맥이 빨라지며, 입이 마르고 손에 땀이 나는 것을 느낀다. 공포를 느끼고있는 것은 피질(皮質)이지만, 주변의 반응(심장박동 등)을 일으키는 것은 피질하(皮質下) 이다. 그러나 감정을 생각할 때는, 양자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감정의 2가지 요인설을 발전시켜, 감정을 체험하고 인식하는 것은 자극에 대해 발생한 신체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외피가 만든 스토리라고 주장 하고있다. 예를 들어, 피험자에게 아드레날린을 주사 한 후 불쾌한 환경에 둔 경우, 아드레날린의 부작용을 알지 못한 피험자는 아드레날린에 의해 일어난 심장박동이나 식은 땀 등의 반응을 환경 탓에 불편했다고 싶어하겠지만, 부작용을 미리 알고 있는 피험자라면 아드레날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불쾌감도 적었다고 한다. 즉 피질이 신체의 반응을 전후의 상황을 맞추어 해석한 감정이라는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주) 감정의 2가지 요인 이론은 1960 년대에 제기 됐지만, 그 후 2가지 요인이 되는 직접적인 증거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가설을 수정하여 생리적 기반(=情動 )에 따라 그런 감정이 형성된다는 감정의 2 단계설을 주창했다 (1982 년). 이를 발전시킨 것이 Lazarus 등으로 감정을 사회성도 포함한 보다 복잡한 것으로 정의했다 (죄책감, 질투, 사랑 등을 포함).

 

또한 일부 학자의 감정 이론은 외계로부터의 자극에 대해, 먼저 위험한 지,  유익한 지를 피질하(皮質下) 및 대상회(帯状回)에서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다음에 피질에서 어떻게 행동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 판단에 따라 주변의 반응 (교감 신경의 흥분, 골격 근육의 긴장 등)이 일어나고, 마지막으로 피질에서 그것을 의식적인 감정으로서 인식한다.

 

이 설의 근거가 되는 실험적인 증거는, 강한 감정을 야기하는 시각적인 자극을 단시간 (30ms 이하) 주입하면 의식상으로는 인식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초에서는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 이다. 그러나 의식에 대해 어디에서 어떻게 감정의식이 발생하고있는 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여 명확치 못한 실정이다.

 

위와 같은 신체와 감정의 긴밀한 관계는 감정과 관련된 일상적인 말에서도 잘 보인다. 예를 들어  "가슴(胸) 아픈, 단장(断腸)의 슬픔, 피 끓는 흥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가슴을 뛰게 한다, 창자가 들끓는, 피가 머리로 오른다. 역겹다, 씁쓸하다 …… 등"

이 중 일부는 전형적인 교감신경 항진반응이며, 일부는 그로부터 귀인 된  소화관(消化管) 증상이다.

 

정신질환의 치료에 사용되는 인지행동요법(認知行動療法)은 "인식 방법을 변경하여 감정을 조절한다 “는 이론에 근거하고있어 피질과 피질하(皮質下)의 상호 작용을 응용 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율훈련법은 "손이 따뜻하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등과 같이 편안한 신체 상태를 이미지하면서 심신의 긴장을 잡는 훈련 방법이며, 스트레스 해소, 정신 질환, 신경증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이것도 말초의 자율신경 반응과 감정의 상호작용을 응용 한 일례이다.

 

2012년 10월, 신경외과 세계적 권위자 인 예벤 알렉산더는 "사후세계는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본래 일원론자(一元論者)로서 사후세계를 부정하고 있던 인물이었지만 뇌의 질병으로 입원 중에 임사(臨死) 체험을 경험하고 회복했다. 퇴원 후 체험했던 뇌 상태를 철저하게 조사한 결과, 혼수상태에 있던 7일 동안 뇌의 대부분은 기능을 정지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그것은 사후세계에 틀림 없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경험에서 "뇌 자체가 의식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는 실체이원론(実体二元論)의 가설을 세웠다.

 

. 개체 발달

 

어린아기도 생후 며칠 만에 어머니의 표정에 반응하게 된다. 또한 공중에 뜬 물체를 보면 오래 응시하는 등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주요 감정은 4살 무렵까지는 형성된다.

 

진화 심리학에서 상정하는 요인

 

진화 심리학에서 감정의 구조는 환경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을 결정하기 위한 생물학적 적응이며,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생각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친족 간의 애정은 혈연 선택에 의해, 친자(親子)간, 부부간의 애정과 반목은 친자의 대립, 성적 대립의 요인에 의해 진화했다고 생각하고있다. 또한 어느 학자는 각각의 감정이 다른 선택의 힘에 의해 형성되어 다른 기능을 갖게 되며, 따라서 다른 신경적 기반 또는 모듈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일부 진화생물학자와 게임 이론가 들은 우정, 협력, 배신, 죄책감, 공정성, 도덕성 등을 일으키는 동기로서 일부 감정이 진화하고 그것은 호혜적 이타주의와 간접적 호혜성, 일반호혜성의 이론에서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감정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타고나며, 일반인지능력에서 어느 정도 독립적이며 내외의 자극에도 즉시 자율적으로 발동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생물학적 적응이라는 관점은 기능주의 심리학에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   감정의 분류

 

인간에게 어떤 감정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다양하게 논의되어왔다. 다음은 역사 문화적 경위, 감정연구의 역사에 따른 분류 등이다.,

 

. 중국의 오정(五情);  인간이 갖는 대표적인 감정을 5가지로 보았다.

 

(喜 기쁨)

(怒  분노)

(哀 슬픔)

(楽 즐거움)

(怨 원망)

 

. 3자경(三字経)에는 “曰喜怒、曰哀懼、愛悪欲、七情具”라고 하여

 칠정(七情)이 인간에게 주어졌다고 했다.

 

(喜 기쁨)

(怒  분노)

(哀 슬픔)

(懼 공포)

(愛 사랑)

(悪 증오)

(欲 욕망)

 

. 육정(六情); 일반적으로는 대표적인 감정으로서 6가지 종류를 제시하곤 한다.

 

(喜 기쁨)

(怒  분노)

(哀 슬픔)

(楽 즐거움)

(愛 사랑)

(憎 증오)

 

 

. 부수(部首)가 심(心 )으로 감정을 표하는 한자

 

(忌 꺼림), 인(忍 참음), 노(怒 성냄), 공(恐 두려움), 치(恥 부끄러워함), 련(恋 생각함), 비(悲 슬픔), 수(愁 시름), 모(慕 그리워함), 우(憂 근심), 괴(怪 기이함), 포(怖 두려워함), 회(悔 뉘우침), 한(恨 원한), 석(惜 아낌), 도(悼 슬퍼함), 유(愉 즐거움), 증(憎 미워함), 분(憤 격분함), 회(懐 회의), …… 등

 

 

. 인도의 전통적인 미학이론

 

 “나우아. 라사”  인간의 기본적 9가지 감정을 제시함

 

슈린가라 (연애 감정, 사랑하는 마음)

하스야 (해학적인 웃음)

카나 (슬픔)

라우도라 (분노)

뷔라 (용감한 마음, 활력 넘치는 기분)

바야나카 (공포)

비밧사 (혐오)

아도부타 (놀람)

샨타 (평화)

 

 

. 찰스 다윈

 

슬픔, 행복, 분노, 경멸, 혐오, 공포, 놀라움이라는 일곱가지 기본적인 감정이 문화에 따라 다르지 않고 보편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아이의 성장과 오랑우탄의 감정 표현의 관찰을 통해서 인간과 다른 영장류의 유사성을 발견했다.

 

. 심리학적인 감정의 분류

 

표정 인식에서 본 감정의 분류.

 

폴 에크먼은 다음의 6 가지 감정은 생물학적 기반을 가지고 휴먼-유니버설(모든 인간에게 동일하다)고 결론 지었다. : 행복감, 놀람, 공포, 슬픔, 분노, 혐오

에크 먼은 1990 년대에 이 목록을 확장하고 다음을 더했다.; 즐거움, 경멸, 만족, 곤혹, 흥분, 죄책감, 공적에 근거한 자부심, 안심, 만족감, 기쁨, 죄책감

 

. 표정

 

감정은 표정이나 몸짓이 되어 나타난다. 표정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일부이다.

 

표정은 자율적으로 작동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의식적으로 컨트롤 할 수 없다. 또한 휴먼-유니버설한(지구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인) 성격이며, 어떤 문화에서도 기본적인 표정은 공통점이 있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통신 신호는 다른 개체를 조작하는 데 자유롭게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일부 생물 학자들은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전하는 것이 가장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핸디캡이 있는 신호의 일종이 아닐까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떤 이익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 감정에게 당면하는 질환이나 상태

 

감정이나 기분이 당면하는 질환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기분 장애 (우울증, 조울증, 조병(躁病) 등)이다.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 (우울, 피로, 기운이 없거나, 슬픔, 울고 싶은 것 같이 싫어 지거나, 죽고 싶은 절망)을 나타낸다. 하지만, 조병(躁病) 상태에서는 기분이 상쾌하게, 건강하고 활기가 넘친다. 자신 만만하고, 움직이고 싶은 등의 기분을 나타낸다. 중증이 되면 공격적인 기분과, 분노가 전면에 나타난다.

 

그러나 우울한 기분을 나타내는 질환은 우울증뿐만 아니다. 적응 장애, 정신 분열증, 섭식 장애, 인격 장애 등 다양한 질환에 합병 할 수 있다. 또한 정신 질환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일시적으로 우울증으로 되는 것은 자주 있다.

대뇌 변연계(大脳辺縁系)의 일부인 편도체(扁桃体)와 그 주변이 파괴되면 Kluver-Bucy 증후군이라는 성(性) 행동 이상, 정서 이상 (원숭이의 경우 뱀을 봐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손 대려고 하는) 구진 경향(口唇傾向) 등을 특징으로 하는 상태가 된다.

 

Alexithymia 는 정신의학 용어로 자신의 감정을 자각 ·인지하고 표현 할 수 있는 능력이 서툴러, 공상력이나 상상력이 모자라는 경향을 가리킨다. 이러한 경향을 가진 사람은 정신 질환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것이 서투르기 때문에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 버리는 것이다.

 

이슬람 세계 음악이 인간에게 주는 감정을 이용하여 의료 행위로서의 음악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유나니 의학).

 

. 감정에 작용하는 약물

 

 항우울제 : 항우울제는 우울증, 우울상태의 치료제며, 우울 기분, 의욕 저하 등을 개선한다. 세로토닌 계, 노르 아드레날린 계, 도파민 계 신경을 활성화 하여 효과를 발현한다. 항우울제는 이들 3가지 계통의 신경계에 작용 강도가 각기 다르며, 약마다 약효가 다르다.

 

. 항불안제 : 벤조디아제핀 수용체 작동하여 불안을 없애는 작용이 있다.

불법 약물이다. 자극은 뇌의 도파민 계를 강하게 자극하여 편안함의 기분을 표현한다. 그러나 동시에 도파민 계 신경의 이상을 초래하고, 다양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초래한다.

그 외에도, 알코올, 스테로이드 등 다양한 약물이 감정에 작용한다.

 

. 감정을 분석하는 의료 공학기술

 

정서활동(情動); 감성 제어 기술 분야에서는 운율에서의 감정 인식이 있다. 의료 공학 기술로는 감정 흥분에서 90 % 이상의 인식 수준을 가지고 있지만 감정은 개인의 인지수준에 영향 차이가 있어, 거기까지의 정확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감정인식 : fMRI에 사용 가능한 감정 인식은 음성에서의 감성 제어기술ST가 있다. 그러나 음성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  감정의 분류

 

Basic emotion

Basic opposite

 

Joy

Sadness

 

Trust

Disgust

 

Fear

Anger

 

Surprise

Anticipation

 

Sadness

Joy

 

Disgust

Trust

 

Anger

Fear

 

Anticipation

Surprise

 

 

 

 

Advanced emotion

Composed of...

Advanced opposite

Optimism

Anticipation + Joy

Disappointment

Love

Joy + Trust

Remorse

Submission

Trust + Fear

Contempt

Awe

Fear + Surprise

Aggressiveness

Disappointment

Surprise + Sadness

Optimism

Remorse

Sadness + Disgust

Love

Contempt

Disgust + Anger

Submission

Aggressiveness

Anger + Anticipation

Awe

 

 

. 감정의 도표 (Robert Plutchik)

. 各種 情绪(중국)

 

崇拜 · 挫敗 · 情意 · 激動 · 痛苦 · 憂慮 · 疏離 · 驚異 · 娛悅 · 憤怒 · 悲傷 · 煩惱 · 焦慮 · 顧慮 · 覺醒 · 吸引力 · 苦楚 · 關懷 · 鼓勵 · 慈悲 · 鄙視 · 滿意 · 失敗 · 沮喪 · 樂趣 · 抑鬱 · 渴望 · 絕望 · 失望 · 厭惡 · 反感 · 不愉快 · 痛苦 · 恐懼 · 熱心 · 狂喜 · 歡欣鼓舞 · 尷尬 · 享受 · 迷人 · 熱忱 · 羨慕 · 欣快 · 惱怒 · 激動 · 高興 · 敬畏 · 殘忍 · 鍾愛 · 驚嚇 · 挫折 · 狂怒 · 愉快 · 歡喜 · 歡欣 · 愁悶 · 喪慟 · 罪責 · 快樂 · 怨恨 · 鄉愁 · 希望 · 無望 · 恐怖 · 敵意 · 羞辱 · 受傷 · 歇斯底里 · 熱戀 · 不安全感 · 侮辱 · 激怒 · 孤立 · 妒忌 · 喜悅 · 歡騰 · 喜好 · 憎恨 · 寂寞 · 熱望 · 愛 · 性慾 · 憂鬱 · 悲慘 · 屈辱 · 忽視 · 焦躁 · 樂觀主義 · 憤慨 · 恐慌 · 激情 · 可惜 · 欣慰 · 驕傲 · 盛怒 · 癡迷 · 懊悔 · 摒棄 · 自責 · 怨恨 · 嫌惡 · 滿足 · 輕蔑 · 多愁善感 · 怀旧 · 羞恥 · 震驚 · 悲哀 · 惡意 · 苦惱 · 驚奇 · 同情 · 親切 · 緊張(慢性壓力) · 興奮感 · 折磨 · 拘束 · 不開心 · 報復 · 悲痛 · 發愁 · 震怒 · 熱誠 · 狂熱 · 高傲

 

                                                  . Daniel Goleman, Emotional Intelligence (London 1996) p. 271

 

 

. 감정 (感情一覧)

                                                                                              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안심(安心) 불안(不安)  감사(感謝) 경탄(驚愕) 흥분(興奮) 호기심(好奇心) 성적호기심(性的好奇心) 냉정(冷静) 초조(焦燥) 곤혹(困惑) 행복(幸福) 행운(幸運) 릴랙스、긴장(緊張) 명예(名譽) 책임(責任) 존경(尊敬) 친근감(親近感) 동경(憧憬)              

 

욕망(欲望) 의욕(意欲) 공포(恐怖) 용기(勇気) 쾌(快) 쾌감(快感; 善行.덕에 관한)  후회(後悔) 만족과 불만(滿足.不滿)  무념(無念) 혐오(嫌悪) 수치(恥)  경멸(軽蔑) 질투(嫉妬) 죄악감(罪悪感)  살의(殺意) 샤덴후로이데(독: Schadenfreude) 사우다드(포르투갈어: Saudade) 기대(期待) 우월.열등감(優越感、劣等感)  아쉬움.원망(怨) 고통.고난(苦)  슬픔.비애(悲) 애닯음.안타까움(切)  화.노여움(怒) 체념(諦念) 절망(絶望) 증오(憎悪.愛憎)  사랑(愛) 공허(空虚)

 

   * 샤덴후로이데 (シャーデンフロイデ, 独: Schadenfreude);

타자의 불행 슬픔 고통 실패 따위를 들었을 때 느끼는 기쁨 즐거움 등으로 반기는 쾌감, 독일어로 “결손이 있는 쾌감”

 

   * 사우다데(サウダージ, 포르투갈어 Saudade);

향수 동경 사모 안타까움 등의 의미를 갖는 포르투갈어 및 그리스어로서 유사한 의미로  모리냐(morriña)란 단어가 쓰임

 

 

 

 

 

■  감정과 관련된 스피노자의 사상

 

 

□  감정 (스피노자)

                                                                                                     로페스, 글 중에서 일부분 발췌

감정의 기원과 본성, 감정의 힘, 지성의 힘에 의한 감정의 극복 등등에 관한 가르침이 스피노자의 "윤리학"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원칙적으로 보면 감정이란 매우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고, 모든 존재자들과 마찬가지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며, 여기서도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생긴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선이나 평면, 물체를 다루는 것처럼 감정을 연구 하려한다. 전체적으로 감정과 덕을 통해 감정을 극복하는 것 등에 관한 그의 생각은 그의 인식론과 나란히 하고 있다. 감정은 감성적인 앎에 덕은 능동적인 지성에 해당된다.

 

감각적인 앎의 특징은, 공간과 시간 안에서 개별화되는 것에서만, 생성과 변화를 본다는 점이다. 내적인 연관은 잊혀져, 사물들은 우연히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고, 우리는 받아들이는(수동) 상태에 있게 되며, 바로 여기에 감정 즉 영혼이 움직여지는 것이 성립하게 된다.

 

그가 받아들이는 근본감정은 욕망, 기쁨, 슬픔의 세 가지이며, 그 중 제일 일차적인 것이 욕망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모든 감정은 언제나 욕망이다. 이런 것은 이미 흄의 견해이기도 하며, 또 후에 칸트의 견해로도 될 것이다. 또한 이런 견해는 스토아학파의 견해였으며, '표상을 꺼버려라!'라는 스토아의 학파의 외침에 동조하고 있다.

 

스피노자는 수동적인 감정 이외에도 능동적인 감정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기의 덕론을 주장한다.

 능동적인 감정은 전체적으로 기쁨의 한 종류이며, 용기로서 나타난다. 이 능동적인 감정은 '영혼이 힘센 것(용기)'와 '고귀한 품성(관용)', 두 가지 중요부분으로 나눠진다. 이것들과 더불어 이성적인 앎이 인간에게서 힘을 쓰게 된다. 이때 우리는 세계를 '영원한 모습'으로 즉 그 전체와 필연성으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덕에 이르려고 한다면 감성적인 앎이라는 혼란 되고 알맞지 않은 표상으로부터 명석하고 알맞은 이성적인 앎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이성적인 앎이 우리들에게 내적인 법칙성과 필연성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것의 실체'의 너울을 보여준다. 우리들이 혼란 되어 있는 표상에서 명석한 관념들을 만들어 낼 때, 수동적인 것은 끝난다. 그리고 또 원인을 제거해버림과 동시에 결과도 끝난다.

 

그러니 그가 윤리학 서문과 정리에서 데까르트와 스토아학파를 반대하면서 언급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사상을 올바르게 결합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현인은 덕이 있는 사람이요 착한 사람이다. 이런 현인이 바라는 것은 참된 것과 올바른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올바른 것을 본다는 것은 그것을 찾아 애쓰고 사랑하는 것을 일컬음이다. 이것이 유명한 '하느님에 대한 지적인 사랑'이다. 하느님 안에서는 사고와 의지가 일치하며, 또 자유와 필연성도 일치한다. "그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있는 사물이 자유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윤리학)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자의 삶은 '모든 것의 실체'의 본질과도 일치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한 지적인 사랑은 하느님 안에서 실체, 즉 자연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그런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스피노자는 지성개선론의 첫머리에서 목적으로 삼았던 것,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무엇이 최고의 선인가 하는 것 등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곧 정신이 전체적인 자연과 통일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윤리학이 뜻이 있는 것일까? 당위의 학문은 가능성 을 전제로 삼는다. 그런데 스피노자에게도 자유가 있는가? 다시 말해서 필연성과 일치하고 있는 그런 자유는 인간의 자유가 아니다. 인간은 삼각형이 아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윤리학이란 있을 수 없고, 인간의 정열에 관한 물리학만 있을 뿐이다. 모든 것 들이 '모든 것의 실체'로 부터 기하학적인 필연성을 가지고 생겨난다면, 우리들이 고쳐야 할 것이 왜 있는 것일까? 질병과 악은 스피노자와 모든 범신론에 있어 극복 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로 남게 된다.

 

. 개인과 공동체

 

스피노자에게는 인간의 정열에 관한 물리학 밖에 없다는 사실을 특별히 잘 밝혀주는 것이 그의 국가론이다. 그의 국가론에서는 윤리적인 계기는 완전히 물러나 버리고, 욕망과 힘의 관념만 군림하고 있다. 그의 초기의 저작인 「짧은 논문」은 플라톤의 ?향연?처럼, 사랑은 본 질적으로 우리들에게 속하는 것이며, 전적으로 존재의 법칙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윤리학?에서는 홉스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를 보존하려는 충동'을 인간행위의 법칙이라고 본다. 거기에다 마키아벨리의 정신도 이에 가담해, 스피노자는 국가론의 첫째 문단에서 자기는 '유토피아'를 쓰려는 것이 아니며 '현실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서의 인간을 받아들이려 한다고 말한다.

 

그는 홉스로부터 자연법 이론과 국가계약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연법의 개념은 자연 주의적인 개념이다. "나는 자연법을 자연의 법칙 자체, 또는 그것에 따라 모든 것이 생겨나 는 규칙, 즉 자연의 힘이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자연과 모든 개인들의 자연적인 권리는, 그 권력만큼 넓게 되며, 자연과 권력은 서로 겹쳐지게 된다.

 

이 때에 이성에서 생기는 욕망과 다른 원천에서 생기는 욕망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도 없다. "왜냐하면 현명한 사람이건 어리석은 사람이건,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개인을 행동하도록 충동하는 모든 것은 자연의 힘이라고 헤아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 피노자는 홉스와는 달리, 개인이 자기의 자연적인 권리를 공동체에다 완전히 떠맡겨버렸다 고는 생각지 않았다. 왜냐하면 개인은 자기를 보존하려는 충동이 생기면, 남에게 맡겼던 것 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도 체결된 계약들이 그 국가에 이익이 될 때까지만 지키면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는 개인주의가 홉스에게서 보다 훨씬 더 강하다. 스피노자는 하느님은 개인만 창조하고 '국민'은 창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자연은 고대와 중세기의 자연법 이론들이 보고 있던 그런 이상적인 자연이 아니다.

 

스피노자에게서 당돌하게도 자연주의가 나타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의 인식론에서의 많은 것들은 극단적인 플라톤주의이며 관념론이며, 여기서 자연은 이상적인 자연이고, 하느님은 여러 이념들의 이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연은 매우 조잡한 자연이며, 쓰여지는 말들 이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의 철학은 엄밀한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념들이 애매하다는 것이 바로 그의 철학의 특징이다. 라이프니츠는 윤리학을 읽고서 그 개념들이 애매하고, 모순에 차 있다고 지적 한다.

 

 

□   감정의 본성과 기원 (스피노자, Spinoza) 

                                                                                                                 도마, 글 중에서 발췌 

. 정신(정신의 본질은 충분한 관념과 불충분한 관념으로 형성됨)은 명료하고 판명된 관념을 갖고 있건, 혼란 된 관념을 갖고 있건 어떤 무제한적인 지속을 위하여 자기 존재에 고집하려 한다. (= 욕망)

그리고 정신은 자기의 이러한 노력을 자각한다.

 

. 노력이 정신에만 관계될 때 : 의지

  정신과 신체에      : 충동

이 결과로 충동은 인간의 본질에 불과하다. 그 충동의 본성에서 자기 보존에 필요한 많은 것이 필연적으로 이끌어 내어진다.

 

. 충동과 욕망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차이가 없다. 욕망은 스스로의 충동을 의식하는 충동이다.

 

.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사물을 좋다고(선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추구하고, 의욕하고, 혹은 충동을 느끼거나 욕구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그것을 추구하고 의욕하며 갈망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좋다고(선하다고) 판단한다.

 

. 사랑은 外的原因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즐거움)에 불과하다. 미움은 외적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에 불과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사랑하는 것을 현상대로 소유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반대로 미워하는 사람은 그가 증오하는 것을 제거하고 부정하려고 노력한다.

 

. 인간은 과거나 혹은 미래의 사물의 像에 의해서도 현재의 사물의 상에서 받는 것과 같은 기쁨과 슬픔의 감정에 움직여 질 수 있다. 과거나 미래의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그 사물에 의해서 동요(자극)되었거나  혹은 동요될 것이라는 경우에 한 해서이다. 실제 우리는 어떤 관계 하에 사물을 상상하는 한, 그 사물을 긍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신체는 그 존재를 배제하는 감정에 의해서 움직여지지 않는다.

 

. 希望은 불안정한 기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기쁨은 그 결과에 대한 회의적인 사물의 미래 혹은 과거의 像에서 생겨난다. 恐怖란 의심스러운 사물에 관한 상에서 생겨나는 불안정한 슬픔이다. 기쁨은 보다 큰 완전성에로의 이행이다.

 

. 정신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반대로 우리에게 슬픔을 부여하는 사물의 존재를 배제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사랑하는 것에 기쁨을 주는 것으로 상상하는 일체를 긍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와 반대의 것도 성립한다.

 

. 인간이 자신과 자신의 사랑하는 對象에 관해 정당한 것 이상의 평가를 하며, (거만, 정신착란의 일종)

반대로 자기가 증오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당한 것 이하로 판정되는 것을 우리는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 경쟁심은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이지만, 이것은 우리와 닮은 다른 것이 동일한 욕망을 갖는 것으로 상상하는 데서 우리에게 생겨나는 욕망에 불과하다.

 

. 자기로부터 사랑 받는 대상이 다른 사람과도 우정을 맺고 있으며, 또 그가 독점하고 있는 것보다 우정의 유대가 같은 정도이거나, 혹은 그보다 더욱 공고하다고 생각한다면,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미움을 느끼고, 또 그것과(자기의 사랑하는 것) 우정을 맺고 있는 다른 것에 대하여 시기심(질투)을 느낄 것이다.

 질투는 사랑과 미움이 함께 작용하는 데서 생겨나며, 그가 질투하는 다른 사람의 관념을 동반하여 생겨나는

마음의 헛갈림(동요)에 불과하다.

 

. 자기가 허약하다는 관념을 동반하는 이 슬픔을 卑下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고찰하는 데서 생겨나는 기쁨은 自己愛 혹은 만족이라 부른다. 인간은 본성상 미움과 질투에로 이끌리게 되는 것이 명백하다.

 

. 어떤 개인의 감정도 다른 개인의 감정과 결코 일치할 수 없다. 그 불일치의 차이는 한쪽 인간의 본질이 다른 쪽 인간의 본질의 相異에 따라  그만큼 크게 된다.

 

. 기쁨, 슬픔, 욕망 그리고 이들로부터 형성된 마음의 헷갈림과 같은 온갖 감정과 혹은 이들 셋으로부터 파생된 감정 즉 사랑. 미움. 희망. 무서움 등의 감정은  우리가 느껴지는(움직여지는) 대상의 종류에 대등할 만큼 많은 종류가 존재한다.

 

 

□ 감정의 규정 (스피노자) 

 

. 욕망이란, 인간 본질 그 자체이다.

 

욕망은 자의식을 동반하는 충동이다 그리고 충동은 인간의 본질 그 차체다.

이 경우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유기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한에서 그러하다

 

정신이 자신의 욕망 혹은 충동을 의식할 수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의식의 원인을 포함하기 위해서는 그의 주워진 각 변화상에 의하여 결정되는 한이라는 조건을 첨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본성의 변화상태를 인간 본질의 개개의 상태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때 상태가 본래적인 것이건 혹은 그것이 사유의 속성으로 파악되건 연장의 속성으로 파악되건 혹은 그들 양자에 동시에 속하건 어떤 경우건 좋다. 따라서 여기서 욕망이라는 개념을 근거로 인간의 노력. 잠재력 충동. 의지 등 모든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감정의 변화에 따라 다양화하며, 그리고 때로는 흔히 상호 대립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인간은 여러 방향으로 무질서하게 이끌리고 또 자기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알지 못한다

 

. 기쁨은 인간이 보다 작은 안전성에서 보다 커다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 슬픔이란 인간이 보다 커다란 안전성 보다 작은 완전성에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행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기쁨은 완전성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실제 이행하려고 하는 완전성을 지니고 태어났다면, 인간은 아무런 기쁨의 감정도 없이 완전성은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은 기쁨의 감정에 대립되는 슬픔의 감정을 보면 더욱 명백 하다. 실제 슬픔은 보다 작은 안전성에로 이행하는 데서 성립되며 보다 작은 완전성 그 자체로 인하여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이 어떤 완전성에 관여하는 한 슬프게 될 수 없다. 그리고 슬픔은 보다 커다란 완전성이 결핍하기 때문에 성립된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결핍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픔의 감정은 구체적인 작용이며, 그 작용은 보다 작은 완전성에로 이행하는 작용 이외의 아무런 작용도 아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활동력이 감소하고 혹은 억제되는 구체적인 작용이다.

 

쾌감이나 상쾌. 우울 .고통에 관한 정의들을 생략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여러 감정들을 주로 신체에 속하며 그리고 기쁨이나 슬픔의 어느 종류에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경탄이란 정신이 그 때문에 움직여지지 않도록 묶여져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정신이  그처럼 몰두하는 것은 그 상상이 특수하며 그 이외의 상상과는 전혀 관계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 경멸이란 어떤 것이 정신을 거의 감동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눈 앞에 보면서도 그 안에 있는 것보다 그 안에 있지 않은 것을 상상하도록 정신을 유발시키는 상상이다. 존경 모멸(侮蔑)의 정의 생략

 

. 사랑은 외적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대상과 합일(合一)하려는 사랑하는 사람의 의지이다라고 정의하는 작가(作家)들의 정의는 실은 사랑의 본질이 아니고 오히려 그 하나의 특질을 표현하는 데 불과하다.

 

사랑의 특질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내부에 있다. 따라서 의지에 의하여 사랑하는 대상과 합일하려고 할 때, 나는 그 의지(意志)라는 개념을 동의라든가 혹은 마음의 심려, 즉 자유로운 결의로는 이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하는 대상이 없을 때는 자기 자신을 그것과 합일하려고 하며, 혹은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이 거기에 있을 때는, 그것이 눈앞에 언제나 계속 있기를 욕망하는 것으로는 해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앞에 예로 든 것처럼 어떤 욕망이 없다 해도 사랑은 이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히려 의지를, 사랑하는 대상이 눈앞에 있기 때문에 사랑을 주는 쪽에서 일어나는 만족이라고 간주한다. 그 만족에 의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이 강하게 되거나 혹은 적어도 유지되어 진다.

 

. 미움은 외적인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 애호〔애모)는 우연히 기쁨의 원인이 되는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 혐오〔꺼림)는 우연히 슬픔의 원인이 되는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 헌신이란 우리가 경탄하는 것에 대한 사랑이다.

놀라움〔경탄〕이 사물의 신기한〔새로운〕것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만일 어떤 것에 대한 놀라움을 몇 번이나 상상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놀라움을 중지 할 것이다. 따라서 이로부터 헌신이라는 감정이 쉽게 단순한 사랑으로 그 성질을 바꾸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 조소(嘲笑)란 우리가 경멸하는 것이 증오하는 것에 내재(內在)하고 있음을 상상할 때 생겨나는 기쁨이다.

 

. 희망이란 불안정한 기쁨이다. 즉 그것은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갖는 미래(未來)나 혹은 과거의 사물에 대한 관념에서 생겨난다.

. 무서움〔공포=두려움〕은 불안정한 슬픔이다. 즉 그 결과에 대하여 우리가 어느 정도 의심을 갖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에 대한 관념에서 생겨난다. 

이들  두 규정에서 볼 때, 무서움을 동반하지 않는 희망이란 있을 수 없고, 또 희망을 수반하지 않는 무서움이란 존재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희망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은 미래의 희망적인 존재를 배제(排除)하여 버리려는 어떤 것에 관해서도 또한 상상하고 있음이 상정(想定)된다. 고로 이 경우 그는 슬프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가 희망에 의존하는 동안,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것을 두려워(무서워)한다고 상정된다.

 

그러나 반대로 무서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바꾸어 말하면, 자신이 증오하는 것의 결과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사람은 그런 것의 존재를 배제하려는 어떤 것의 결과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사람은 그런 것의 존재를 배제하려는 어떤 것을 상상한다. 이 때문에 그는 기뻐할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이 상상하는 한(限), 그런 것이 실현되지 않도록 희망한다.

 

. 안전(안심)은 하나의 기쁨이다. 즉 의심의 원인이 제거되어진 미래나 과거의 존재 물에 대한 과념에서 생겨나는 기쁨이다. 

. 절망이란 하나의 슬픔이다. 즉 의심의 원인이 제거되어진 미래나 과거의 어떤  것에 대한 관념에서 생겨나는 슬픔이다.

 

사물의 결과에 관해 의심이 원인이 제거된다면, 희망에서 안심(안전)이, 무서움(공포)에서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은 원인이 제거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과거나 미래의 사물이 현실적인 존재로 상상하는데 서, 그리고 현재 눈 앞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서, 혹은 그가 의심을 품고 있는 그런 것의 존재를 배제하려는 어떤 다른 것을 상상하는데 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나 미래의 사물에 대한 상(像)으로 부 터도, 현존하는 사물의 상에서 얻어지는 것과 같은 기쁨이나 슬픔의 감정에 의해 움직여(자극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 희열(기쁨을 가져오는 것)은 뜻밖에 실현되는 과거의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 

. 양심의 가책이란 하나의 슬픔이다. 즉 희망에 반하여 실현된 과거의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 동정은 우리가 동류(同類)라고 상상 되는 다른 사람에게 당면한 화(禍)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픔이다.

 

. 호의(好意)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 적의(敵意)란 타인에게 화(禍)를 끼지는 사람에 대한 증오이다.

 

. 과대평가란 다른 사람에 관하여 사랑 때문에 정당한 것 이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 과소평가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미움 때문에 정당한 것 이하로 평가하는 것이다.

 

. 질투(시기)는 다른 사람의 행운을 보고 슬퍼하며, 반대로 다른 사람의 화를 보고 기뻐하도록 사람을 자극(동하게)하는 경우의 슬픔이다.

 

 

□   이해와 감상 (스피노자의 사상)

 

 스피노자의 철학사상은 합리적 세계관으로, 범신론, 숙명론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스피노자는 우선 우주 자체를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이라고 복 그것의 존재를 위해서는 신이 필요하다는 데카르트의 사상을 비판하고, 우주 자체는 완전히 합리적이라고 보았다.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혹은 인과론적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있고, 우주의 일부인 인간의 지능은 이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보았다. 모든 것은 반드시 그 이유와 원인이 있고, 이 우주 전체의 이유와 원인은 우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내재한다고 주장했다.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하며 영원의 시각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스피노자는 우주의 본질을 실체(Substantia)라고도 하고, 자연(Natura)이라고도 하여 신=실체=자연이란 등식이 성립되게 하였다.  모든 것은 합리적으로 되어 있고 모든 사건은 모두 이유가 있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숙명론적이었다. 

 

스피노자가 가장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썼고, 그의 사상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윤리학’은 그의 사상을 무신론이라고 정죄하려는 신학자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가 죽은 후에 비로소 출판되었다.

 

일반적으로 ‘윤리학’이라고 알려진 이 책은 실제로 윤리의 문제가 그 주된 내용이 아니고 오히려 스피노자의 형이상학 인식론, 인간학이 정리된 것이다. 모두 5부로 된 이 책은 1. ‘신에 대하여’ 2. ‘정신의 본성과 근원에 대하여’ 3. ‘감정(Affectus)의 근원과 본성에 관해서’ 4. ‘인간의 예속 혹은 감정의 힘에 관해서’ 그리고 5. ‘지능의 힘에 대해서 혹은 인간의 자유’로 나누어져 있다. 

 

완전한 조화를 이룩하고 있는 유기적인 전체(신, 자연)는 데카르트가 주장한 바와 같이 정신적인 실체와 물질적인 실체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일 뿐이며,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그 실체의 두 속성에 불과하다 하였다.

 

그리고 이 두 속성을 가진 자연은 능산적(能産的)자연과 소산적(所産的)자연으로 나누어 고려될 수 있는데, 전자는 영원한 법칙에 따라 모든 사물을 생기게 하는 힘이요, 후자는 전자에 의하여 생겨지나 곧 없어지는 모습을 말한다. 그러나 그 모두는 물론 전체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독존적인 실체와는 달리, 의타적 존재들은 모두 양태(Modus)들이라고 부르고, 그러나 모든 양태들은 물론 유기적으로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만물은 모두 자체실현을 위하여 노력하며 인간에게 있어서 그것이 이루어질 때 쾌감을 느끼고 방해될 때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감정도 필연적인 법칙에 의하여 일어난다. 그는 선과 악도 쾌감과 슬픔과 비슷하게 설명하여 자기충족을 가능케 하는 것이 선이며 방해하는 것을 악이라 하였다. 인간은 감정의 힘을 원동력으로 하여 자기충족을 추구하지만 이성의 조절이 없으면 타인과 충돌을 일으켜 방해를 받는다. 이성은 감정을 조절하여 더 올바르고 효과적인 만족을 얻게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성 스스로가 감정(Affectus)이 되어서 역행하는 감정을 억누르기도 하고 자기충족을 성취시키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 모든 것이 예외 없이 인과법칙에 의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모든 사건과 행동은 항상 필연적이며, 따라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간이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은 환상이며 마치 돌멩이가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면서 스스로 원해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선을 위하여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역설하였다. 

 

 스피노자 철학은 오랫동안 묻혀 있었으나 독일 시인 레싱과 철학자 헤르더에 의하여 재발견되었고, 헤르더를 통하여 괴테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독일의 낭만주의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에 힘입은 바 크다. 신, 인간, 자연의 근본적인 일체성이 낭만주의의 한 중요한 요소이며, 그것은 스피노자의 상당한 영향 아래 이루어진 것이다. 

 

 스피노자의 유기적이요 숙명론적인 자연관은 그 외에도 쇼펜하워와 니체, 베르그송 등의 생철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스피노자는 한편으로는 철저히 수학을 모형으로 한 합리론을 주장하면서도 감정과 의지에 관심을 기울였고, 낭만주의와 신비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참고 자료)

스피노자(1632-1677), 네덜란드의 철학자.

암스테르담 출생. 포르투갈계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남

“신(神)·인간 및 인간의 행복에 관한 짤막한 논문” “지성 개선론” “데카르트 철학 원리”(1663) “국가론”(1677)을 마지막 저작으로 남기고 폐결핵으로 죽었다.

“신학정치론”을 익명으로 출판하였으나, 이것이 신을 모독하는 책이라고 비난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윤리론 (에티카) Ethica in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1675년 완성)

 

 스피노자는 사물에는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경향(자존성)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것을 근거로 정치와 도덕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인간에게 있어 자율적인 이성의 작용이 자존성(自存性)이며, 도덕의 실제 목적은 이성의 작용으로 생기는 희열에 의해서 얻을 수 있다. 이성의 최고 작용은 신과의 필연적인 관계에서, ‘영원한 형상 밑에서’ 사물을 직관하는 것으로서 이것에 따르는 자족감이 바로 ‘신의 지적 사랑’이며, 여기에서 도덕의 최고 이상이 추구되었다.

 

스피노자 자신은 무신론자 ·유물론자로 불리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지만, 그의 철학 특히 자연이라는 범신론이나 연장(延長)의 속성 사고방식 속에는 이러한 해석을 낳을 소지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