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善/17.아쉬움 (惜)

아쉬움

오갑록 2010. 12. 26. 15:34

아름다움 ......

■  아쉬움

 

 

   하루 해가 넘어가는 일몰을 보노라면 아쉽고, 년 말이면 의례 갖게 되는 아쉬움이 있다. 아쉬움이 무엇일까? 그것은 마음 한 구석 무엇인가 허전한 빈 공간을 느끼게 하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명암으로 굴곡 진 한 조형물의 그늘지고 들어간 부분이 그러하듯,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부드러운 곡선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여 본다.

 

우리가 한 생명체임을 인정한다면, 누구에게나 마지막이라는 어느 날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며, 그 날을 맞게 될 것이리라고 대강은 짐작 하며 살아간다. 굳은 신앙으로 영생을 기대하는 이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여하튼 피할 수 없는 그러한 운명, 숙명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보편적 상식으로는 부정하기 어려운 부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숙명적인 그 시간이 다가오면 당연하다거나 만족한다기 보다는 아쉬움을  더 느끼게 될 것이다.

 

생명만이 그러한 종말과 같은 한정적 요소가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공하는 듯한 사업, 성취도 높은 학문적 위업, 놀랄 만큼 독특한 연구개발 실적, 조직에서의 승승장구하는 승진, 운동가나 연예인의 유명세 등등에서도 우리의 생활 어느 분야이던 간에 실패나 불만이라는 이름으로 그와 유사한 한정요소는 존재 한다고 본다. 이러한 끝, 오메가는 삶의 이치나 순리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때때로 끝 없는 성공이니, 끝없는 인기란 우리 모두의 턱없는 바람에 불과하리라는 것을 잊은 채, 열심이라는 이름으로 앞만 향해 뛰듯 살아간다. 때문에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사업의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 “Terminal value”라는 항목이 있다. 예상되는 경영환경 요소를 년차별로 반영하여 사업내용을 평가 하고 이를 계수화하여 대략 10년 내외의 장기간에 걸친 년차별 수익가치와 자산가치를 평가한다. 그 수치를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여 기업이나 사업의 가치를 산정하게 된다. 이 때, 10년 이후 미래의 무한누적 수익가치를 현가(Net Present Value)로 환산하여 가까운 미래(예, 10년 후)의 특정 년도 가치로서 환산한 값을 “Terminal value”라고 말하는데,

 

“Terminal value”가 삶의 과정에서 부딪치게 되는 여러 가지 유형의 “아쉬움”과 닮은 면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하지 않은 대다수의 통상적 사업의 경우에는 무한 미래가치의 현가는 그다지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Terminal value”는 꼬리 자르기 정도의 가치로서 평가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처럼 “아쉬움”도 그 자체로는 커 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주제에서 잘린 꼬리만큼의 가치 밖에 못 되는 경우가 많음을 알게 된다.

 

시골장터 어물전에서 간 갈치 한 두름을 살라치면 아주머니는 익숙한 날랜 솜씨로 다다닥 하고 토막 내어, 한치 남짓한 꼬리부문은 손님에게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손도 대지 않고 칼로 휘익 하고 도마에서 쓰레기 통으로 직행 시키고 만다. 가운데 토막만을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 준다. 볼 품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 단지 그 것이 어물전에 진열된 갈치 꼬리의 가치다. 꼬리가 꼭 필요 한 것은 아니지만, 운송 도중 조금이라도 꼬리가 잘린 생선을 골라 잡는 손님은 드물다. 우선 제켜 놓고 나머지 중에서 손이 간다. 어떤 면에서는 “아쉬움”도 그러한 생선의 꼬리를 많이 닮았다. 우리 삶에 소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없으면 볼 품 없는 삶이었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 “아쉬움” 가운데 삶의 아름다움, 멋, 향기가 묻어 남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특정한 경우의 “아쉬움”에 대해 생각하여 본다.

 

삶의 과정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많으면 많을수록, 높으면 높을수록, 오래 살면 살수록, …… 더 이루지 못해 아쉬워한다는 것을 한 해 한 해, 나이 들어 갈수록 실감하게 된다. 그렇기에 재벌총수가 재화축적에 더 열중하고, 직위가 높아질수록 더 악착스레 일하고, 백세를 바라보는 노인 분들이 풋내기 젊은이들 보다 더 건강 챙기기에 매달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색다른 가정을 해 볼 수도 있다. 바뀐 입장에서라면 과연 무슨 생각을 갖게 될지를 생각하고, 그 들 입장에서 겪게 될 아픔은 어떨지를 주제넘지만 가늠해 보자.

 

……

가령, 나 자신이, 젊은 시절 갖은 역경을 떨쳐 내고 자수성가 하여 거대 재벌을 거니는 총수자리에 있게 된다는 상상을 해 보자. 이제 자신이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 왕성한 경영활동과 사업 의지에 불타고 있다고 하자. 물론 총수의 자리는 누구나 소화 해 낼 수 있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경제. 정치. 사회를 읽어 낼 줄 아는 통찰력과 함께, 상품, 기술, 인력, 자금, 마케팅을 잘 이해하고 조직관리 능력과 이러한 요소를 통합한 계획과 조정 그리고 실행을 위한 추진력과 결단력을 겸비한 재능이 남다른 구석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한 이의 눈에는 재화의 굴러가는 모양새가 눈에 잘 들 것이고, 그 증식의 방법에도 묘안이 적지 않을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검은 손, 약탈자나 경영에의 수렁(Hazard)들이 눈에 선하여 그들을 피해가는 방안이 줄 댈 수 있다고 가정하여 본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총수로서 기업성장에의 욕망을 삭히지는 못하고 오히려 더 불타게 된다는 것이 보편적 삶의 이치라고 한다면, 자식이던 형제던 간에 자기보다 못한듯 해 보이는 누군가에게 그 자리를 넘긴다는 것은 마음 아플 것이다. 시간과 세월, 미처 이루지 못한 눈높이에 이르는 영욕에의 “아쉬움”이 총수라고 하는 높은 위치만큼이나 크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적, 물리적인 시간은 한정된 듯하고, 못다 이룬 “아쉬움”은 태산처럼 밀려들고, 재산을 탐하는 듯한 검은 손길들은 주변에서 뻗쳐 오는데, 믿어야 될 자식이나 혈족은 믿음직스럽지 못해 아쉽기만 하고 ……

 

 

……

2010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시간, 젊은 시절 못다한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채, 이상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좋은 사례 한가지가 KBS 2TV에 방영되었다.

 

71세인 한 노인의 기막힌 일상을 추적 촬영한 기획물 이었다. 갈 곳 없이, 광화문 인근 시내를 방황하며 까페, 패스트푸드 점, 성당의 예배장소 등으로 하루 24시간을 전전하면서 종일 한번도 눕지 못하고 앉아서만 생활하는 여인이었다. 품위 있는 곳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이 몸의 고달픔보다 앞선 듯 하다. 그렇지 않다면야 길 바닥에라도 들어 누웠을 터인데 말이다. 종교단체에서 지원하는 푼돈만으로는 끼니도 변변치 못하여, 추적 촬영 했던 당일은 온종일 커피한잔이 먹거리의 전부였다. 그러니만큼 나이보다 초췌하고 추한 모습이다. 지금은 이렇게 10여 년을 떠도는 형편이지만, 학생시절은 한 명문 대학교의 59학번으로 불문과를 졸업했고, 한 때는 외무부 공무원으로 중년이 되도록 근무했으나, 무슨 사정으로 인해 퇴직을 했다고 한다. 수입은 끊긴 지 오래고, 이제는 연고 가족 하나 없는 막막한 신세의 노인이다. 영자신문을 또렷하게 잘 읽어 내려가고, 영문 일기를 기록하며 아직은 정신도 맑은 편이었다. 그녀가 과거 익숙했다던 한 호텔 양 식당에서, 기자가 제공하는 식사에 감격해 한다. 눈을 지긋이 감으며 자른 고기를 포크로 들어 올리는 순간모습에는 많은 감회가 묻어 있었다. 초라하지만 익숙한 듯한 그녀의 양식 식사 모습에서 젊을 적 그녀의 생활습관이나 가치기준을 엿보이게 했다.

 

혹시 보호시설을 알선해 준다면 따르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영어로 “No” 라고 분명하게 잘라 말한다. 자신의 입장을 잊은 채 꿈 많던 젊은 시절 품었던 꿈과 생활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는 듯한 노후 삶의 모습이 시청자 어느 누구의 눈에나 애처롭고 딱하게 비춰질 것 같았다. 이 분의 과거에 대한 “아쉬움”은 지금은 꼬리가 아니라 “몸통이자 전부” 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꼬리는 꼬리다움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삶에의 뭇 “아쉬움”도 자체로만 가치를 느끼는데 그쳐야 한다. 마치 어물전 아주머니가 쓰레기 통에 내던지던 갈치 꼬리처럼 삶에서 묻어 난 “아쉬움”들 일랑 아낌 없이, 미련 없이 던져버리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생각을 해 본다.

 

……

 

위에서 본 성공한 기업수장의 가설이나, 떠돌이 여자 노인 이야기에서처럼, 우리 뭇 삶 속에서 “아쉬움”은 그렇게 싹트고 커간다. 사업이나 삶의 양식만 그렇지는 않다. 건강도, 생명도, 사랑도, 명예도, 욕망으로 물든 여하 한 크고 작은 바람이나 희망도 그러한 “아쉬움”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삶의 이치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느 형태이든 “아쉬움”이 뒤따르곤 한다.

 

그 아쉬움의 크고 작은 모습들을 찾아 본다.

 

. 못다한 시간과 세월을 보내며, 한 해를 아쉬워 하기도 하고, 일생을 아쉬워도 한다. 죽음이 예상되는 중환자, 형 집행을 대기 중인 사형수, 막다른 길에 접한 조난자, 도망자 또는 문제아라면 여러 아쉬움이 맴 돌 것이다.

 

. 정치 군사 경제 사회와 같이 덩치 큰 아쉬움도 있다. 전쟁과 평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달린 커다란 줄기에서 오는 시련들은 국민이나 민족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일제의 침략, 1.2차 세계대전, 625 전쟁 …… 역사 속에서 인류나 민족의 오류를 배우며 느끼곤 하던 아쉬움이 어디 한 두 곳만 이었던가?

 

. 못다한 사랑에의 아쉬움도 있다. 연인간에 못다한 풋사랑도 그렇거니와, 부모와 자식 혈육 간에, 부부나, 벗이나 사제 간에 못다한 사랑이 남았다면 그 아쉬움도 클 것이다.

 

. 이별의 아쉬움도 사랑하는 사이에서 오는 아쉬움이다. 반 백년 만에 재회하는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만난지 한두 밤 만에 다시 헤어져야 하는 이들이, 버스 창가를 까치발 뛰며 손길 길게 뻗쳐가며 아쉬워 하는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 사고나 천재지변, 아픔이나 고통을 당해도 아쉬움은 남는다. 한 걸음만 늦췄어도, 뒤차만 탔어도, 술 담배만 덜 했어도 당하지 않고 피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태풍으로 스러져 간 황금 들녘을 보며 느끼던 아쉬움은 무엇이었던가? 어떤 죽음이었던 간에, 상가 집의 살아 남은 유족들에게 아쉬움이 없겠는가?

 

. 한 두 표 차이로 낙선의 쓴 맛을 당하는 출마자의 아쉬움이나, 입시생의 수능점수 한 점의 아쉬움은 크게 다르지 아니 할 수도 있다. 한 점이 인생의 향방을 뒤틀어 버릴 수도 있다는 강박관념이 짓누르기 때문이다.

 

. 아름다움에 눈이 어려, 키 한 뼘,, 몸무게 한두 킬로그램에 몸 달아 아쉬워하는 젊은이도 많다.

. 60대, 70대가 되어서 늦깎이 공부에 매달리는 만학도도 적지 않다. 배움이란 언제이건 긍정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단지, 젊을 때 못다한 학문에의 아쉬움에 매달리는 현상 일 수도 있다. 그 때의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채 무작정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격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 손해를 당하면 남는 아쉬움은 크다. 채권관리 소홀로 부도를 당했다거나, 환율,수요,가격,기술경쟁,자금수지 등의 잘못된 경영예측으로 인해 당하는 손실이 있어도 그렇다. 주식시장의 출렁이는 시세 속에서도 아쉬움의 요소는 많다.

 

. 한탕 주의에서 느끼는 아쉬움도 적은 것은 아니다. 로또 복권 1등 당첨자와 숫자 한 두 개 다를 때, 슬롯머신 땡기다가 수박 반쪽이 안 내려와 대박의 꿈이 날라간 때, 경마니, 고스톱 판이니, 큰 판돈 걸린 도박판일수록 아쉬움의 빈도도 많아지고 크기도 커진다.

 

. 우리는 흥미로운 아쉬움도 자주 경험한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면 한 골, 한 발, 일 초에 야단이다. 굴러가는 공의 향방에 따라 수시로 아쉬움이 남게 되고, 탄식이 나온다. 빗나간 헤딩 볼에 다 건져 올린 월척을 놓쳐버린 순간의 아쉬움 만큼 클 때도 있다. 볼링 야구 골프도 볼 때 마다 아쉬움이 함께 구른다. 선수도 그렇고 관중도 그렇다.

 

. 깊은 꿈 속을 헤매다 갓 깨어나서 아쉬워 한 때는 없는가? 한없이 반가운 이를 만나고 나서, 동전 닢 푼돈을 주워 담고 나서, 닿을 듯 말 듯 애틋한 이성의 손길을 놓치고 나서 허우적대다가 …… 꿈에서 깨어나 아쉬워 하던 기억들이 더러는 남아 있을 것이다.  

 

. 아직은 배가 차지 않았는데, 빨던 젖을 빼면 어린아기는 울거나 바둥댄다. 아쉬움을 알리는 것이다. 모유를 먹이던 젖먹이 어린애가 이유식으로 바꾸려고 하루 내내 어미와 아기가 실랑이 벌이는 것을 본다. 젖 달라고 보챈다. 어린 것은 밤잠을 못자고 굴러 댄다. 말 못할 아쉬움이 어린애를 그리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물론, 년 말만 되면 세모(歲暮)의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남는다. 남녀노소, 빈부에 관계없이 때만 되면 의례 젖게 되는 이 아쉬움은, 때로는 어물전의 팔려나간 갈치 꼬리처럼 하잘 것 없을 수도 있지만, 생각하기 따라서는 어항 속 구피의 멋진 꼬리처럼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해 주는 것들은 아닐까?

상당히 많은 경우, 아쉬움의 가치는 삶의 향기 배인 아름다움 들 그 자체가 아닐까?

 

2010.12.26.(일)

오갑록

 

 

 

□  아쉬움을 사랑 하십시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모든 일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람과의 만남도 그렇고

우리의 삶 자체도 그렇습니다.

 

아쉬움은 후회와는 다릅니다.

후회는 우리를 과거에 머물게 하지만,

아쉬움은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지난 일의 아쉬움 때문에 새 일을 하고,

지난 만남의 아쉬움 때문에

다시 사랑하는 우리들입니다.

 

아쉬움에 애태우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 삶의 여백이요,

한계에 대한 지혜입니다.

 

아쉬움을 사랑하십시오.

마음이 겸손해지고 밝아질 것입니다.

 

아쉬움이 많았을지라도

그 아쉬움으로 새로운 오늘을 열 때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계획들로

희망이 무성할 테니 마음 조아려

감사함으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글)

 

 

 

■  노랫말 속의 아쉬움을 찾아서 ……

 

 

□  허공

                                   노래: 조용필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  ~~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 이야기

스쳐버린 그날들 잊어야 할 그날들

허공 속에 묻힐 그날들   ♪  ~~

 

잊는다고 생각하기엔    ♪  ~~

너무나도 미련이 남아

돌아선 마음 달래보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설레이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슬픈 옛이야기

스쳐버린 그 약속 잊어야 할 그 약속

허공 속에 묻힐 그 약속   ♩ ~~

 

 

□   이등병의 편지

                                        원곡: 김현성, 리메이크: 김광석. 전인권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

열차시간 다가올 때 두 손 잡던 뜨거움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에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 시 가운데의 아쉬움을 찾아서 ……

 

 

□   하얀 그리움

                 시화연

차마 그립다 말 못하고

가까이 다가서지 못해

서성이던 그대...

 

목련 향 하얗게 퍼지면

다하지 못한

사랑의 아쉬움으로

그리운 이 내 가슴에 스며든다

 

스치는 바람 한 자락에도

흔들리는 내 작은 몸짓은

끝내 소리 없는 침묵으로

빈 가슴 쓸어 안고

 

새벽을 맞는다.

 

 

□   아쉬움

                                        박근수, (2008. 발표, 시집 “들뫼”) 

함께 있는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고

 

기다리는 시간은

한없이 길다

 

너에게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 밤을

!

던져버릴까?

  

 

□   묘한 아쉬움

   장 수남

아직은 이르지 않을까.

묘한 아쉬움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지

이곳 저곳 떠돌다 지친 단풍

착한 바람만 나면

 

곱게 누워 조금 남은 꿈 한 번 더

작게 피어볼는지.

 

매서운 늦가을 바람은

비를 앞세워 가는 임 옷깃 적시고

보내야만 하니.

 

 

□   아쉬움

                                      최병준, (2006년 발표, 시집: “낙엽은 지축을 흔들고")

말없이

꿈을 키우는

그대 영원한 생각에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한 채

무심코 바라보았을 뿐이었네

 

보이지 않는

미지의 힘을 기르기 위해

멀리서 지켜보긴 했으나

함께 어울리지 못했고

 

하늘을 나는 외기러기인 냥

바라보았을 뿐

나래를 펼칠 흉내를 내지 못했고

 

향기로운

꽃 내음을 간직하고 있는

갓 태어난 새색시인 냥

표현을 감추었네.

 

 

□   회상 – 아쉬움

             임영준,  (2004년 발표, 시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골목 끝나는 곳에서

그 아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흠칫 놀라는 나를 보고

장미 한 송이 불쑥 건네고

“바보” 하면서

혀 내밀고 달아났다

 

가물거리는 기억 저편

양 갈래 머리 또렷한 입매

오똑한 콧날 시원한 이마

주위를 밝히던 그 아이는

어느 동네 누구에게

사랑 받고 있을까

 

무심한 세월이 한스럽고

이유 없는 고독이 쌓이고

일상이 겹칠 때마다

쫓아가 끌어안고

볼을 부비지 못한 그 바보가

언뜻 언뜻 원망스러워진다

 

 

□   아쉬움

        최수홍, (2002년 발표, 시집: “사랑 그리움 기다림”) 

눈이 있어도

그대가 떠나는 걸 못 보았다

 

귀가 있어도

그대가 떠나는 소리를 못 들었다

 

눈이 있어도

철이 없이 떠 도는 안개 섬에 눈이 멀어

그대가 떠나는 걸 못 보았네

 

귀가 있어도

철이 없이 떠도는 안개 섬에 눈이 멀어

그대가 떠나는 걸 못 보았네

 

귀가 있어도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흘러가는

검은 강물 소리에 귀가 멀어

그대가 떠나는

낙엽 밟는 소리를 못 들었네

 

 

□   아쉬움

                                          임계자,  (2005년 발표, 시집: “사랑으로 전하는 시 향기”)

가로수 가지마다

황금 잎새로 물들이고

하나하나 떨구면서

작별 인사 준비하네

 

이웃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노동의 땀방울 가지마다 걸어둔

지아비 눈물겨운 삶이 생각나게 한다.

 

지치고 외로웠던 흘러온 물

넒은 가슴속에 담아두고

도야지 꼬리만 한 위로조차

담 모퉁이에 접어 둔 채

 

하얀 서리 머리에 이고서

눈바람 뿌려주는 아침을

마지막 남은 황금 잎새에 실어

아쉬움으로 날려보낸다.

 

 

□   아쉬움

                                         김진학

강하나 건너에

길 몇 개 건너에

그대 있지만

 

갈 수 없음에

볼 수 없음에

 

별하나 볼 수 없는

비 내리는 밤하늘

우러러

 

내려앉은

구름을 봅니다.

 

구름처럼 내려앉은

내 가슴을 봅니다.

 

가까이 계시지만

먼 하늘이 된 그대를 봅니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채색된

그대만 봅니다.

 

가고 싶어도

보고 싶어도

 

갈 수 없음에

볼 수 없음에

 

 

- - - - - - - - - - - - - - -    (국어사전에서 인용)   - - - - - - - - - - - - - - - - - - -

 

 

■  아쉬움

 

 

□   필요할 때 없거나 모자라서 안타깝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나는 요새 돈이 아쉽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쉬운 게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권세도 재물도 아쉬울 것 없는 연세 높으신 어르신

그는 선친의 재산을 물려받아 평생 아쉬운 것 없이 살았다.

이번 축구 경기는 아쉬운 점이 많은 경기였다.

 

광표는 궁핍해 가는 단원들의 약점을 잡아 그 사이에 단원들을 묶어 놓기 시작했다.

    돈이 아쉬운 곡예사에게 빚돈을 줌으로써 그들을 자신에게 하나 둘 귀속시켜 갔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희수는 그녀를 멀리 하려고 애를 썼다.

    자기 아쉬울 때만 찾아와서 자기 풀 것을 다 풀고는 훌쩍 가버리곤 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5시. 담배가 그토록 아쉬울 수 없었다.

돈도 아쉽고 해서 문간방을 세를 주면서 엄마는 오빠 때문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저는 지금 돈이 아쉽기 때문에 이것을 당신이 사 주었으면 합니다.

놈이 태어나자 그렇게 빡빡하기만 하던 살림에 쌀가마니도 들어오고 며칠간은 아쉽지 않게 쓸 가용돈도 생겼었다.

 

□   미련이 남아 서운하다.

 

아쉬운 이별

아쉬운 표정

아쉽고 허전한 마음

나는 지금 그가 없는 것이 아쉽다.

그는 이 작별이 못내 아쉬워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물려받은 땅을 남에게 팔기가 너무 아쉽다.

 

나는 그를 오랜만에 만났지만 금방 헤어져서 아쉬웠다.

신혼여행지에서 준호와 영진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쉬운 마음을 접으면서 서울로 향한다.

산성 사람들은, 장성한 아들들이 부모 곁을 떠나 버리는 것이 못내 아쉬운지 혀를 끌끌 찼다.

우리는 일주일 한번의 만남을 아쉬워하곤 했다.

 

나는 기운 세고 마음 착한 상필이와 헤어지기가 싫었다. 상필이도 나와 헤어지기가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와 작별하기가 아쉬웠던 만큼 다시 그를 만나는 기쁨을 형언할 수가 없었다.

군사들은 한창 이기는 싸움을 관두고 물러서는 것이 아쉬웠지만 가을 산길에 먼지를 날리며 퇴각했다.

황제는 왠지 오 년 전에 아쉽게 헤어진 김광국이 떠오르며 눈시울이 화끈해졌다.

어릴 적에 훈장 앞에서 상반신을 흔들며 글 읽던 일이 생각났고 통감 권이나 읽다 만 일이 아쉽기도 했던 것이다.

 

 

□   아쉽다의 사투리 ; 구셥다(함북), 이밥다(함경), 이법다(함남)

 

 

 

□    아쉬움과 “서운함, 섭섭함, 안타까움”의 감정 비교

(한국어용법핸드북)

‘아쉽다’는 무엇이 필요한데 그것이 없거나 부족할 때에 느끼는 감정이다. ‘돈이 아쉽다’, ‘그가 없어서 퍽 아쉽다’, ‘그는 아쉬운 것이 없이 자랐다.’ 같은 용법으로 쓰이는 것이 보통인데 언제나 ‘없음’이나 ‘부족함’에 대한 느낌이라는 특징이 있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은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 ‘아쉬운 소리를 하다’는 말은 무엇을 빌려 달라거나 거저 달라고 사정하는 경우에 쓰인다.

 

  없거나 부족한 것을 대신하여 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아쉬움이 줄어들 것이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는데, 닭으로 꿩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것이나마 있어서 조금은 위안이 되는 대용품이 될 것이므로 ‘아쉬운 대로’ 닭으로 꿩을 대신하게 된다. ‘아쉬운 대로’는 이처럼 ‘부족하나마 그냥’의 의미를 가진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법이다. 즉, 아쉬우면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에 아무 방법이나 쓰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실패하기 십상이다. 이렇게 보면 ‘아쉬움’은 정상적인 생활에서는 썩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라고 보아 틀리지 않다. 어떤 대상에 미련이 남아서 헤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보내기 싫어하는 감정을 나타낼 때에도 ‘아쉽다’를 쓴다. ‘작별을 아쉬워하다’는 작별을 하기 싫어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서운하다’는 무엇을 할 수 없거나 무엇을 얻지 못해서 마음이 차지 않을 때에 느끼는 감정이다. ‘이대로 헤어지기 서운하다’는 다른 무엇으로 아쉬운 감정을 달래야겠다는 생각이 배어 있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것은 언제나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 만족할 만한 사랑의 표시를 했거나 선물을 듬뿍 주었다면 서운한 감정은 사라질 수 있다. 모처럼 딸의 집을 찾은 엄마가 딸이 바쁘다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바람에 변변히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면 엄마는 딸에게 퍽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 서운한 감정은 밖에 드러내기 곤란한 정도의 불만이다. 그래서 이런 감정은 어느 시기에 지나가는 말로 “나 그때 좀 서운하더라.”라고 말하면 끝날 일이다. 그러나 상대에게서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갔다가 그것을 받지 못하였다면 서운한 감정에서 더 나아가 섭섭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섭섭하다’는 아쉽고 서운함이 복합된 감정이다. 자기의 진정을 몰라주면 섭섭한 느낌이 든다. 며칠 묵을 것으로 알았던 부모가 하루도 묵지 않고 금방 떠난다면 자식은 무척 섭섭하게 여길 것이다(요즘은 금방 가는 부모가 최고라던가?). 손님을 섭섭하지 않게 하려면 잘 대접해야 한다. 대접이 자신의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면 섭섭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불평을 하게 된다. 사람을 대접할 때에는 섭섭지 않게 대접해야 뒤탈이 없다. 서운함은 가슴에 묻어 두지만 섭섭함은 입으로 옮겨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유념할 일이다.

 

‘안타깝다’는 무엇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 답답할 때에 쓰는 말이다. 조금 걱정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축구 경기에서 우리 편이 아직 뒤지고 있는데 시간이 빠르게 흐르면 ‘시간이 안타깝게 흘러간다.’라고 표현한다. 공부를 해야 할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오락 게임에 빠져 있으면 부모의 마음은 안타까움 바로 그 자체일 것이다. ‘안타깝다’는 불쌍하거나 딱하게 보이는 행위에서도 느끼게 된다. 어린 것들이 거동을 못 하는 부모를 모시면서 돈도 벌고 공부도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 안타까움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면서 공부하면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지 딱하거나 불쌍한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은 아니다. 즉, 안타까움은 언제나 아쉬움과 걱정에서 나타나는 감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