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善/16.망설임 (躕)

망설임과 선택

오갑록 2010. 7. 13. 12:55

연약한 ...... 

 

■  망설임과 선택

 

 

□  주저와 망설임

 

       우리는 눈으로 어림 짐작하여 앞에 보이는 사물들의 크기를 잰다. 좀 더 정확한 크기를 알려고 할 때라면 (, Scale)를 들고 나선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옹스트롱(10^-10 m)이니, 나노 미터(10^-9 m)라고 하는 더 미세한 단위의 크기까지도 알아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재는 행위는 다른 사물과의 상대적인 크기를 어림하여 비교하여 보거나 자르기 접기 혹은 금을 긋기 이전에 취하는 행동으로서, 크기의 비교나 자르기 등을 실행하기에 적당한지의 여부를 미리 판단하여 보기 위한 것이다. 때문에 잰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주저와 망설임"의 한 가지 행태라고 볼 수 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둔 경우에도 길이를 재는 것처럼 그 크기를 비교하거나, 실행 가능성 여부를 재는 경우를 경험하곤 한다. 투자를 앞 둔 경우 "사업타당성검토(Feasibility study)", 새 제품을 개발 할 목적으로 하는 "연구개발(Research & Development)", 영업망 확충을 목적으로 하는 "시장조사(Marketing survey)", 전쟁 중 적진 공격을 앞에 둔 "전략회의"…… 시행을 앞두고 주저하고 망설이는 "행태"들 이라고 생각해 본다.  물론 결혼을 전제로 하는 맞선이나, 입학이나 입사를 위한 면접시험도 사람의 됨됨이를 재어 보는 행위이다. 배우자나, 사원, 학생의 선택 여부를 정하기 위한 행위들이니 또 다른 형태의 망설임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일도 눈여겨 본다면 이와 같은 망설임들로 이어지고 있다.  끝없는 망설임 속에서 우리는 생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스스로가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일이라면 주저와 망설임이 상존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다.

 

일상의 예를 들어서 생각하여 보자, 식탁 위에 식사 모습이나 야구 경기 등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떠 올려 볼 수 있다. 김치 가닥을 집으러 갈까 아니면 콩나물을 집으러 갈까 하고 입 안에 넣은 밥알을 굴리며 생각도 함께 굴린다. 김치 중발 앞으로 젓가락이 다가 가면서도 이곳 저곳 김치 위를 몇 번인가 쿡쿡 쑤셔보고 나서야 마음 닿는 곳을 집곤 한다. 젓가락에 집힌 김치가닥을 치켜 올리며 순간적이지만 털거나 흔들거나 하는 동작도 한다. 이렇듯 한동안 주저하고 망설이는 가운데 결정된 김치 한 젓갈이 입 안으로 초대 받게 되는 것이다.

 

관중석이 떠들석한 야구장의 한 장면을 올려 놓고 생각하여 보자. 타석에 들어서서 오는 공을 기다리는 타자의 모습, 궁둥이 뒤로 쭉 빼고 잔뜩 웅크린 후굴자세로 타석에 선 타자의 모습이다. 날아 올 투구를 기다리며 응시하는 눈과 그리고 빙빙 도는 듯한 가느다란 흔들림의 방망이 끝 모습에서, 이 번에 날라 오는 공을 받아 칠지 말지를 고심하며 타자 머릿속에서 바삐 굴리고 있을 선택의 순간을 위해 흔들리고 망설이는 모양을 눈으로 읽을 수 있다.

 

붓글씨를 쓰고 있는 순간, 서예의 대가가 힘을 준 붓 끝자락에서도 망설임은 예외가 될 수 없다. 얼만한 힘으로 누를지, 휘 갈기는 속도는 어느 정도로 할 지, 붓 끝 방향은 어느 쪽으로 틀지…… 서예 작품이란 결국 가느다란 붓 끝에서 끝없는 망설임 속에 떨며 지나간 흔적들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이란 결국 크고 작은 망설임으로 이어지는 "연장선"이라고 생각하여 본다. 

 

지금 나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서 있기까지의 탄생과 진화 과정도 같은 맥락에서 벗어 날 수 없으리라는 생각도 하여 본다. 숫자적으로만 본다면 출생하기 전 단계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주저와 망설임을 통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무기물, 무생물에서 식물 동물 같은 유기물로, 유기물에서 인간에 다다를 것이라는 허황된 진화과정은 뚝 잘라버리고 생각하더라도, 초기인류에서 우리 종족에 이르기까지의 장구한 역사의 흐름, 그리고 우리민족과 나의 씨족에서 지금의 내가 있기 까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지나간 세월을 뒤로 되돌려 가며 짚어 본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뭇 망설임의 연장선" 그 자체가 우리 인류의 탄생과 진화의 전부일 것이라는 생각도 하여 본다.  

 

부모가 서로를 만나기까지 단계를 생각 해도 까마득하다. 유구한 역사를 통해 인간이 이 지역으로 흘러 온 인간사를 생각한다면 더 없이 길게만 여겨진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기록된 역사란 기껏해야 최근의 천 년 내외에 불과 하지만, 아프리카 발원의 인간이 중동과 아시아를 거쳐 한반도에 다다르기 까지 20만년 가까이를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이 자리에 온 것임을 되새겨 보고, 이 시대, 이 사회, 이 지역에서 서로의 만남이 이루어 진다는 것 또한 고르거나 재거나 망설임의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며,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위해 그날 그 자리 그 순간을 갖기 까지도 순간포착이 되기까지에는, 재며 공들이는 일이 이어 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적절한 예가 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건강한 남성의 정액 검사 정상 값(reference of the semen analysis) 1회 당 양: 2~5ml, 정자 수: 2~4천만/mL 이상, 운동성: 60% 이상 전진(forward migration), 형태: 60% 이상 정상 등이라고 한다. 한 회 사정에 2억 개 수준의 정자가 나오는데 건강한 놈이 60% 라면 약 1억 개 정도의 똘똘한 놈이 난자 한 개를 놓고서 “전진 앞으로!” 하는 형국이 된다. 난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느 놈으로 고를지 다시 말해 주저와 망설임을 통해 마음에 닿는 한 마리가 수 억 마리 중에서 임자로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생체 내에서 세포나 세포간의 신호전달이나 영양 공급, 배설의 메커니즘도 이러한 주저와 망설임을 통해서 이루어 질것이며 그 가운데 생물의 진화도 진행될 것이다. 그렇기에 카우프만은 ”생물학적 진화는 질서와 혼돈 사이의 칼끝 위의 시소와 같은 자생적인 시스템이며, 구조와 놀람 사이의 큰 타협이다.”고 말했고, 미국의 한 과학 칼럼 기자는 “진화하고 있는 시스템은 본질적인 불안정성으로부터 오는 자연스러운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  선택 된 것과, 선택 한 것

 

우리가 경험하는 현재의 실재 상황이란 결국 2가지 방법에 의하여 주어진 결과물들이다. 하나는 “선택 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선택 한 것”들이다. 내가 경험하는 다수의 물리적인 현상들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나에게 주어진 것, 즉 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선택 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땅과 하늘, 물과 바람, 그리고 육신을 구성하는 “나”의 본질과 천년 후나 만년 전이 아닌 꼭 지금 이 시점에서의 “나” 등이,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선택 된 것”들이다.

 

그에 비해 상당히 한정적인 의미이기는 하지만, 나의 의지로서 “선택 한 것”들도 많다. 내가 취한 학문이나 직업 업종, 손톱 머리와 같은 외모의 모양새나 육체의 관리, 세상을 보는 시각이나 가치관 따위가 나의 의지로서 “선택 한 것”들이다.     

 

여름철 블록 깔린 인도를 걷다 보면 블록 틈새를 뚫고 머리 내민 초록빛도 여리기만 한 잡초를 보곤 한다. 연약하긴 하지만 그 곳에서도 나름대로 꽃 망울을 품기도 하고, 망울을 피우기도 한다. 때로는 바삐 걷던 아낙네 뾰족구두 뒷굽에 여지없이 채이거나 짓밟히기도 한다. 양지 녘 개울가 둔덕의 영양 많고 촉촉한 거름 진 땅에서 하늘대는 진초록 잡초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그들 스스로가 “선택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때와 장소는 “선택 된 것”들이다.

 

인간의 모습도 유사한 면은 많다. 대동아 전쟁이며 625 전쟁 통을 헐벗고 굶주리며 성장해야 했던 우리 할머니 세대가 있었는가 하면, 허리 졸라 매며 굶주림을 사서하는 다이어트며 엄동설한에 찬바람 매서운 스키장을 찾아 나서는 배부르고 속 따뜻한 요즈음의 젊은 세대가 있다. 이렇듯 좋은 시절을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소속된 개인 한 명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선대에서 일구어 놓은 양지녘 옥토에 뿌리 내리고 좋은 시절을 즐기고 있다. 할머니들 세대가 걸어야 했던 고달프고 험한 삶, 보도블록에 끼여서 연명하는 풀 한 포기처럼 배고프고 어려운 시대에 끼여 살며 고생했던 그 세대와는 비할 바가 안 되는 딴 세상이다.

 

붉게 잘 익은 먹음직한 한 알의 사과를 두고 생각한다. 같은 사과이지만 두 갈래로 생각 할 수가 있다. 토양, 자양분, , 바람, 공기, 빛…… 모두 인간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는 것들 임을 생각한다면, 이 한 알의 사과는 나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서 하늘이 선물하신 “선택 된 것”일 수 있다. 또 다른 한 면으로는 “선택 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봄 되면 가지 쳐 주고, 거름 주고, 북을 돋아 주고, 병충해 예방을 위해 때 맞춰 농약도 치며, 간간이 솎아 줘야 씨알도 굵어 지고, 가을 되면 건강한 사과를 수확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나무도 가을에 수확할 그 때를 위해 우리가 가꾸지 않았다면 쓸모 없는 잡목일 뿐이다.

 

우리의 육신도 같은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로또의 행운, 사고나 질병 같은 피치 못할 액운, 또는 시대적 사회적 흥망성쇠의 시류는 개인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다. 비록 나의 의지에 따라 주어진 육신은 아니지만, 다듬고 기르고 가꾸지 아니했다면 지금의 내가 어떻게 존재 할 것이며, 앞으로도 그리 하지 않는다면 건강한 나의 모습이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건강한 육체, 건강한 정신은 스스로 선택하여 가꾸어야 만 형성 된다. 전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 쪽 부분 정도는 스스로가 “선택 하는 것”이다.

 

        2008. 12.

        오갑록 (K L Oh)

 

 

  . 선택(選擇)

 

선택의 문제는 선택을 하는 그 인간의 가능성까지를 포함하여 자유의지와의 연관에서 파악될 수 있으나, 그런 경우에는 자유선택과 어떤 필연적 법칙성과의 대립관계가 문제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행위의 목표가 전제로 되는 경우에 행위자에 허용된 수단 선택이 문제된다. 근대에 와서 그리스도교적인 섭리의 신과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관계에 있어 윤리적인 자유선택의 가능성이 문제되고, 그에 대해서 가령 칸트는 실천이성에 기초를 둔 정언적 명법(定言的命法)에 자유의지를 인정하였고, S.A.키르케고르는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선택을 실존의 한 카테고리라 생각하였으며, H.베르그송도 실존의 양상을 자유선택에서 구하였으나, 그는 한계상황에 있는 실존으로서의 개인이 그의 전인격과 전 생명을 걸고 하는 선택을 창조적 선택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현대의 실존주의에서도 선택은 실존의 규정계기(規定契機)로서 중심적 문제가 된다.  

   . 선택(選擇, choice); 일반적으로 가장 적당한 것을 골라내는 것     취사선택(取捨選擇); 여럿 가운데서 쓸 것은 쓰고 버릴 것은 버림                                

 

 

■ 자유 의지

                                                                                                                              (위키백과)

자유 의지(free will)는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이 자유 의지를 전적으로 가지는지, 부분적으로 가지는지, 전혀 가지지 못하는지에 대해 논의가 있어 왔다. 자유 의지에 관한 문제는 인과 관계에서 인간 자유와 자연 법칙의 비중을 얼마로 볼 것인가와 관련돼 있다.

 

서양 철학은 자유 의지와 관련해 크게 양립가능론(compatibilism), 양립불가론(incompatibilism)으로 나뉜다. 양립가능론은 기본적으로 자유 의지와 결정론이 동시에 성립될 수 있다는 입장이고, 양립불가론은 자유 의지와 결정론 중에 어느 한 가지만이 성립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양립불가론은 다시 결정론(determinism), 비결정론(indeterminism)으로 나뉜다. 양립불가론적 결정론자는 이 세계는 애초에 모든 것이 결정됐고, 인간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자유 의지에 관한 문제는 종교적, 윤리적, 과학적 함의를 품는다. 예를 들면, 종교 영역에서 자유 의지를 주장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신조차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윤리 영역에서 자유 의지는 행위에 책임을 지우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과학 영역에서 자유 의지를 인정하는 것은 물리적 인과 관계가 인간의 행위와 정신을 전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  서양 철학에서의 자유의지

 

□  결정론

 

. 인과적 결정론(causal determinism)은 미래가 현재까지의 사건들과 자연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입장이다.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불리는 사고실험이 이것에 해당한다. 라플라스는 현재까지의 모든 사건과 자연 법칙에 대해 알고 있는 존재를 상상했다. 이것이 라플라스의 악마이다. 이 악마는 미래를 정확히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논리적 결정론(logical determinism)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명제는 결국 참, 거짓으로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미래에 벌어질 행위의 참과 거짓은 현재에 결정된다고 가정할 때, 어떤 행위를 할지 선택하는 것은 자유로울 수 없다.

 

. 신학적 결정론은 신이 인간의 행위를 결정한다는 주장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행위, 신념, 욕구가 유전자로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 이 외에도 문화적 결정론, 심리학적 결정론 등이 있다. 결정론은 서로 결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유전자과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결정론 등이 있다.

 

 

□  양립가능론

     양립가능론은 결정론과 자유 의지가 함께 성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고전적 양립가능론

토마스 홉스와 같은 고전적 양립가능론자가 주로 사용한 논증 방법은 인간의 의지와 자유로운 행위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기본 주장은 인간이 의지가 있을 때에만 자유롭게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홉스는 자유의 원인을 추상적 관념인 의지에서가 아니라 인간 자체에서 찾았다. 그는 "자유는 의지, 욕구에서 추론해 낼 수 없다. 자유는 자신이 바라는 행위를 끊임없이 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했다. 홉스의 이 말에 대해 데이비드 흄은 "이러한 자유는 죄수와 같은 사람을 제외하고 누구든지 누릴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양립가능론자가 주로 드는 사례는 범죄의 피해자의 경우이다. 살인, 강간, 절도 등 범죄의 피해자는 자유 의지를 박탈당한다. 양립가능론에 따르면, 이것은 이미 미래가 그렇게 되도록 결정됐기 때문이 아니라, 가해자의 의지가 피해자의 의지를 짓밟았기 때문이다. , 자유 의지가 억압받는 경우는 다른 사람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양립가능론자에게 결정론의 인정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는 개인의 선택이 본인의 의지에 의한 것인지, 타인의 의지에 의한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시각은 특이하다. 그는 윤리적으로 자유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유 의지를 지지하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비결정론이나 자유 의지가 어떤 행위의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전제 조건이 아니다. 그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칙이 사회적 보상과 처벌의 근거가 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그가 결정론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비결정론이 '구원의 독트린'으로서 중요하다고 보았다. 비결정론에 의하면, 세상이 아무리 암울하더라도 개인의 행위를 통해 세상을 개선시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결정론이 사회개량론(meliorism)의 토대를 침식시킨다고 주장했다.

 

. 현대적 양립가능론

해리 프랑크푸르트와 다니엘 데네트 같은 양립가능론자들은 억압된 사람도 여전히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피억압자의 의도와 욕구가 억압과 동시에 존재하는 점을 들었다.

 

프랑크푸르트는 계층적 그물 이론을 주장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개인은 모순되는 일차적 욕구를 가지고, 일차적 욕구들에 대한 이차적 욕구를 가진다. 모순된 일차적 욕구들 중에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은 이차적 욕구에 의해 선택된다. 의지는 곧 행동으로 옮긴 일차적 욕구이다.

 

예를 들면, '아무 생각 없는 약물중독자 집단', '본의 아닌 약물중독자 집단', '자발적 약물중독자 집단'은 모두 약물을 사용하려는 일차적 욕구와 사용하지 않으려는 일차적 욕구를 갖는다. 첫번째 집단은 약물을 중단하거나 계속하고자 하는 이차적 욕구가 없다. 두번째 집단은 약물을 끊으려는 이차적 욕구를 가진다. 세번째 집단은 약물을 사용하려는 이차적 욕구를 가진다. 프랑크푸르트에 의하면, 첫번째 집단은 의지를 상실했으므로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두번째 집단은 약물을 중단하려는 이차적 욕구를 가지므로 약물 중단 의지가 있지만, 중독증이 의지를 압도할 수 있다. 세번째 집단은 약물중독증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기 의지로 약물을 사용한다.

 

계층적 그물 이론에서 삼차적 욕구, 사차적 욕구 등, 욕구의 수준은 다양하게 정할 수 있다. 비평가들은 일차적 수준과 같은 앞선 수준에서 모순된 욕구들이 있다고 판단할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앞의 예를 비판했다. 어떤 이들은 프랑크푸르트가 다양한 수준의 욕구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적절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데네트에 따르면, 모든 것이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해도, 인간이 신이나 라플라스의 악마 같은 존재가 아닌 이상, 자연계의 혼돈 현상과 인간 지식의 한계로 인해, 인간 같은 유한한 존재는 미래가 결정돼 있는지 판단할 수도 없고, 미래가 결정돼 있다고 해도 미래를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상하는 것뿐이다. 어떤 행위를 하기로 했지만, 예상되는 결과가 부정적이라면, 다르게 행위 하게 되는 것처럼, 예상은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의 전제가 된다.

 

여기에서 데네트는 개인은 타인의 예상과 다르게 행동할 능력을 가지므로, 자유 의지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양립불가론적 결정론자들은 인간은 단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주위 환경의 자극에 반응하는 오토마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데네트를 비판한다.

 

 

□  양립불가론적 결정론

 

. 직관에 의한 논증

양립불가론적 결정론자가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증명 방법은 '직관 펌프'(intuition pump; 직관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사고 실험)에 기반을 둔다.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인간의 행동과 꼭두각시의 행동이 비슷해 보일 것이다. 꼭두각시는 자유 의지가 없다. 따라서 인간도 자유 의지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니엘 데네트와 같은 양립가능론자에게 다음과 같이 비판 받았다. 인간과 꼭두각시가 외부에서 보기에 공통점을 갖는다고 해도, 둘이 모든 면에서 같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 자기 원인을 이용한 논증

양립불가론적 결정론의 다른 증명 방법으로 '인과 사슬'(causal chain)이 있다. 여기에서 양립불가론적 결정론자들은 자유 의지를 어떤 행동의 최초 원인으로 정의한다. 자유 의지를 가졌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 원인이 되는 존재(causa sui)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은 어느 행동을 할 때, 다른 사건이나 사실에 이유를 둔다. 사람은 자기 행동의 궁극적 원인(causa sui)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은 자유 의지가 없다. 이 증명 방법도 양립가능론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 결과 논증

칼 지넷(Carl Ginet) 1960년대에 '결과 논증'(consequence argument)이라는 증명 방법을 발표했다. 이것은 문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지금까지 있어온 사건들을 통제할 수 없고, 자연 법칙을 지배할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바로 현재까지의 사건과 자연 법칙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 의지가 없다.

 

 

□  양립불가론적 자유의지론

 

양립불가론적 자유의지론(libertarian incompatibilism)은 주어진 환경 아래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이 하나 이상이라는 점을 들어 자유 의지의 존재를 인정한다. 결정론은 가능한 미래를 단 하나로 설정하기 때문에, 자유 의지와 양립할 수 없다. 이 주장에 따르면 결정론은 부정된다. 자유의지론의 설명 방식에는 초자연적 설명과 자연주의적 설명이 있다.

 

. 초자연적 설명

자유의지론의 초자연적 설명 방식은 비물질적인 마음이나 정신이 물질적인 인과 관계에 우선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근거로 신체 운동을 일으키는 뇌의 물질적 작용이 자연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든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신체와 정신을 각각 다른 것으로 보는 이원론과 연결된다.

 

. 자연주의적 설명

자유의지론의 자연주의적 설명 방식 중에는 범심론(panpsychism)을 이용한 것이 있다. 범심론은 만물에 마음이 있다는 주장인데, 범심론에 따라서 인간도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다.

 

자연주의적 설명 방식 중에는 자유 의지가 우주의 근원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자유의지론의 전제인 '엘보우 룸'(elbow room, 자유로운 활동 범위)은 일상 생활에서 발견되는 우연성만으로 확보된다.

 

 

□  책임과의 관계

 

일반적으로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요구 받는다.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로 흔히 자유 의지가 거론된다. 따라서 자유 의지 논쟁은 곧 책임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가의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유 의지를 완전히 부정하는 양립불가론적 결정론은 대체로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견해이다. 양립불가론적 결정론에 따르면 모든 행위는 개인의 의사를 떠나 이미 처음부터 결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한 변호사인 클래런스 대로우(Clarence Darrow)는 레오폴드(Leopold)와 뢰브(Loeb) 사건(대학생 두 명이 14세 소년을 살해한 사건)의 재판에서 피고의 변호사로서 양립불가론적 결정론 등을 원용하며 피고가 사형 대신 종신형을 받도록 한 적이 있다.

 

자유 의지 존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개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니엘 데네트는 개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지의 여부를 논하는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책임에 대한 결정론의 입장은 순전히 형이상학적 열망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사람들이 결정론 뒤에 숨어서 책임을 면하려 한다고 다음처럼 주장했다. "자유에 부담을 느낄 때, 또는 변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항상 결정론으로 대피할 준비를 갖춘다."

 

 

■ 선택의 부류

 

□  어디까지가 "선택된 것들"인가?

 

. "나"란 정자와 난자와 같은 생물학적 선택만의 결과물인가?. 인류의 진화나 씨족의 이동경로는 나의 존재를 전제로 한 선택의 길이었을까?. 제국의 흥망, 세계대전 같은 커다란 역사의 흐름은 누구의 선택이었을까? 

 

□  우리는 어떤 선택을 위해 망설이고 있는가?

 

. 도덕과 윤리 그리고 사회 정의를 위한 선택도 망설이게 된다.. 믿음과 신앙, 마음의 양식을 찾아 미지의 어둠 속을 서성거린다.   . 시대관, 사회관, 가치관, 종교관, 정의와 신념   . 긍정과 부정의 틈새와, 희망과 절망의 사이   . 사랑, 두려움과 그리움, 기쁨과 슬픔, 분노와 증오, 존경과 멸시의 사이

 

. 생물학적 진화도 질서와 혼돈 사이를 오가는 망설임이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선택을 위한 망설임이 기다리곤 한다.   . ; 식탁 위에서의 선택은 젓가락 향하는 방향이 좌우하는가?   . 쓰지만 먹어야 하는 약, 달고 고소함 대신 시고 매움을 고르기도 하며    . 색과 빛, 소리, 향이나 악취 냄새도 때로는 우리를 망설이게 한다.

 

. 사업이나 배움의 길에서의 망설임

 

   . 흰 눈 덮인 산에서 산토끼가 쫓기면 눈길 위 스스로 냈던 발자국을 따라 도망가는 습성이 있다. 사람들은 산토끼가 어떤 길을 선택할 지 예상하고, 도망갈 길목에 목 매를 놓아 토끼몰이를 한다. 일단 목에 올가미가 들어가면 앞으로만 온 힘을 다하여 뛸 뿐 뒷걸음 칠 줄을 모른다. 이 때 토끼는 두 차례의 망설임이 부족한 것이다. 퇴로의 길을 망설임 없이 한 가지 방법만 택함이요, 목에 걸린 올가미를 빼기 위해 망설임 없이 앞의 한쪽 방향으로만 질주하는 습성을 가짐이다. 

 

. 사업경영을 함에도 주저하고 망설이는 단계들은 이어지곤 한다.    . 사업기본정책과 전략수립, 신제품 개발, 신규사업 진출, 증설투자, 타인자본 차입금이 유리한지      자본증자가 유리한지 하는 자본조달 방안, 채용과 승진 같은 인재등용, 거래선 관리, 광고, 마켓팅, 채권     관리 등의 영업활동, 회계 및 세무전략, 원료 자재 설비 기계 등의 선정......

 

. 학생이 학교나 전공을 고르며 망설이는 과정도 호락호락 쉬운 일은 아니다.

 

   . 홀랜드의 6가지 직업선택이론에서 본 진로 유형별 성격 특성

 

   . 실재형;     논리적, 분석적이며 탐구심이 있고 합리적이며 정확하고 호기심이 많고 소극적이며 내성적이고 학문적        . 자연대학, 의과대학, 화학과, 생물학과, 수학과, 천문학과, 사회학과, 심리학과 유전공학과, 과학자,          의사, 생물학자, 화학자, 수학자, 저술가, 지질학자, 편집자   . 예술형;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강하며 개방적이고 직관적이며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강하며 비협동적임       . 예술대학, 음악, 미술, 도자기 공예과, 연극영화과, 국문학과, 영문학과, 무용과, 예술가, 시인, 소설가,          디자이너, 극작가, 연극인, 미술가, 음악평론가, 만화가    . 사회형;       친절하며 이해심 많고 남을 도와주며 관대하며 우호적이고, 협동적이며 감정적이고 외향적임          . 사회복지학과, 사범대학, 교육학과, 심리학과, 가정학과, 간호학과,재활학과, 레크레이션학과, 교사,           임상치료사, 사회복지사, 양호교사, 간호사, 청소년지도자, 유아원, 종교지도자, 상담가, 사회사업가    . 기업형;      지도력 있고, 설득력 있으며, 경쟁적이고, 열성적이며, 야심적이고 외향적이며, 모험심 있고 낙관적        . 경영학과, 경제학과, 정치외교학과, 법학과, 무역학과, 사관학교, 정보학과, 보험관리과, 정치가,           기업경영인, 광고인, 영업사원, 보험사원, 판사, 관리자, 공장장, 판매관리사, 매니저    . 관습형;       정확하며, 빈틈없고, 조심성 있고 변화를 싫어하며 계획성 있고 사무적이며 완고하고, 책임감이 강함          . 회계학과, 무역학과, 행정학과, 도서관학과, 컴퓨터학과, 세무대학, 정보처리학과, 법학과, 회계사,            세무사, 경리사원, 은행원 법무사, 컴퓨터 프로그램머    . 실재형;       솔직하며 성실하고 검소하며 말이 적고 직선적이며 단순함           .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농과대학, 축산대학, 컴퓨터공학, 기술자, 엔지니어,            기계기사, 정비사, 전기기사, 운동선수, 건축가, 도시계획가

 

. 일상생활 속에서의 다양한 망설임 들   . 도로 위에서 행선지 고르기, 일반국도로 갈지 아니면 고속도로를 탈지 하는 잠깐의 망설임   . 지도자의 선택, 정치적인 선택, 대통령, 의원 선거   . 이념전쟁 이념의 선택,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 배우자며 사랑의 선택   . 자유의 선택, 생활 환경의 선택   . 택지의 선택, 장지,묘지의 선택

 

. 운명이 엇갈리는 참사 현장에서의 짧은 순간의 선택   . 성수대교 참사, 버마 랑군 참사, 비행기 참사   . 말기 암환자나 식물인간의 죽음 선택   . 독배의 선택

 

. 동물들의 망설임과 선택은 어떠한가?   . 기러기 제비 철새들의 이동   . 바다거북의 이동   . 연어의 이동, 개미 떼 이동의 선택   . 짝꿍 배우자의 선택, 여왕벌의 선택

 

 

□  “선택”   스펜서 존슨 작

 

. 올바른 선택을 위한 결정의 원칙을 알려 줌

 

 

작가 스펜서 존슨은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현재에 충실한 것만으로는 세칭하는 것처럼 2% 부족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물론 삶은 궁극적으로 현재 속에 있는 것이지만 문제는 그 실체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리의 삶은 오늘을 사는 내가 선택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즉 순간순간 우리가 내린 결정이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좋은 씨앗이 좋은 열매를 맺듯이 좋은 결정, 더 나은 선택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우리는 선택의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이런 선택의 원칙을 한 젊은이의 산행기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이 원칙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이성과 직관, 즉 마음과 머리를 이용한 몇 가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고 그 답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스펜서 존슨은 이 몇 가지 질문들을 체계적인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리했고 그것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노력해왔다. 이 책 《선택》에서는 저자 자신이 투영된 인물인 길잡이가 한 젊은이와 산길을 걸으며 그 원칙을 소개한다. 주말의 산행을 통해 젊은이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파악하고 어떤 상황에서나 취사선택할 수 있는 나름의 원칙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간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시간을 갖고 미리 충분히 생각하지 않을까요?” “결정이 일시적인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우리의 삶은 우리가 순간순간 내리는 결정으로 이루어집니다. 결정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도미노 같다는 걸 알아야 해요. 하나의 결정이 다음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그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영향을 미치죠. 당신의 결정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스스로 ‘나는 정말로 미리 충분히 생각했는가?’ 질문해 보세요. 물론 때로는 그 질문을 떠안고 잠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말아요. 다음날 아침에는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 수 있으니까요.

 

"당신을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아마 그들은 당신의 착각이 무엇인지 알려줄 거예요. 대개의 경우 자기 자신의 착각이나 잘못은 다른 사람이 더 잘 알 수 있어요.

 

 

□  공공선택 이론 (행정학)

 

행정학에서 공공선택이론의 기본적인 가정은 "인간이란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어떠한 선택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경제적으로 합리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될만한 것을 택한다는 것이다.

 

공공 선택, 즉 정치나 행정의 영역인 공공 영역에서 선택을 하는 때에 공직자나 정치인이 흔히 알려져 있는 바대로 '공익'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것을 택한다는 내용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공공 선택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 공익을 고려하여 정부 예산의 지출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당선되기 위하여 선거 주기에 맞추어 정부 지출을 늘린다거나   . 공익을 실현하는 데 가장 합당한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도록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인원을 늘려 조직을 비대화하거나     예산을 극대화한다거나 하는 행태를 말한다.

 

공공선택이론은 흔히 '시장실패'라는 개념에 대비되는 '정부 실패'의 이론적 근거로 많이 쓰인다. , 시장이 실패하는 영역에 대하여 정부가 나서서 공익을 창출하고자 하지만 합리적 개인(정치가, 공직자)은 공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공공선택이론과 공익이 함께 나온 것은 위와 같은 의미, 즉 정부나 정치 영역에 있는 개인은 공익이 아닌 사익을 추구한다고 보는 공공선택이론의 에센스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도 본다.

 

 

□  선택과 운명의 사이 길

 

. 성경 구절 중에서

     어느 길로 갈 것인가? (Which Way?)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 7:13, 14)

 

   Enter ye in at the strait gate:

   for wide is the gate, and broad is the way, that leadeth to destruction,

   and many there be which go in thereat:

   because strait is the gate, and narrow is the way,

   which leadeth unto life, and few there be that find it.  (Matt. 7:13, 14)

 

 

 

 

우리사회에서의 지난 일들을 돌아 보며

          우리에게 “선택 된 일” 이었는지, 아니면 우리들이 “선택 한 일”이었는지?

 

□  근래 국내의 대형참사에서 돌아볼 수 있는 선택의 의미

 

. 한국전쟁 (1950.6.25.); 새벽을 기해 북한 공산군이 남북 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기습 남침

 

. 태풍 사라호 (1959.9.17.); 많은 강우량과 30 m/s 이상의 강풍 동반. 여객선 한일호 침몰사고 (1967.1.14.); 경남 창원군 가덕도 부근에서 해군 구축함 충남호와 부산-여수간   정기여객선 한일호가 충돌,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등 100여명이 사망

 

. 와우 아파트 붕괴사건 (1970.4.8.); 마포구 창천동의 와우 아파트 붕괴사건, 서울시가 주관해서 지은    아파트의 갑작스러운 붕괴, 33명의 사망자와 39명의 부상자를 냄

 

. 대연각 호텔 화재사건 (1971.12.25.); 10시 17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 사망자 163, 부상자 63명 인명피해

 

. 이리역 폭발사고 (1977.11.22.); 화약을 운반중인 열차가 수송원의 실수로 폭발한 사건

 

. 울산열차 추돌 참사 (1981.5.14.); 경북 경산군 경부선 상행선 건널목에서 부산발 서울행 특급 열차가   건널목을 건너던 오토바이를 친후 급정거, 사고현장을 확인하던 중 뒤따라오던 동대구 행 보통열차가 추돌,   이 사고로 54명 사망하는 등 300여명의 사상자 발생

 

. 대한항공기 피격사건 (1983.9.1.); 새벽 3 26분 사할린 근처 해역에서 소련 전투기의 공대공(空對空)   미사일 발사로 대한항공(KAL) 소속 007 점보 여객기가 격추된 사건

 

.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1987.11.29.); KAL 858편 보잉 707기가 북한의 비밀지령에 의한 간첩 김현희에 의해  공중 폭발한 사건. 11 28일 밤 11 27(현지시간)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   는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인 아부다비에 기착한 뒤 방콕을 향해 기수를 돌렸다. 이 비행기는 방콕을    향해 비행하던 중 28일 오후 2 1분경 미얀마의 벵골만 상공인 어디스에서 방콕 공항에 "45분 후 방콕에    도착하겠다. 비행 중 이상 없다"는 보고의 마지막 무선 후 사라짐

 

 

. 구포역 열차 전복사고 (1993.3.28.); 오후 5 30분께 부산시 북구 덕천동 빅토리아 호텔 뒤 덕천천 교량 2   여 미터 앞 경부선(구포역기점 서울방향 2.5km) 철로 지반이 침하돼 이곳을 지나던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   호 열차 8량 가운데 기관차와 발전차, 객차 2량이 탈선해 깊이 5m,너비 15m의 무너진 구덩이에 쳐 박힘    73명이 숨지고 17명이 중경상을 입음

 

. 서해 훼리오 침몰사건 (1993.10.10.); 서해훼리호의 침몰로 292명 사망.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5.6.29.); 오후 6시경에 붕괴된 사고. 사망 501, 실종 6, 부상 937, 지상 5,   지하 4, 그리고 옥상의 부대시설로 이루어진 삼풍백화점은 1989년 말에 완공하였으나 설계 .시공 .유지  관리의 잘못에 기인된 참사

 

. 대구 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사고 (1995.4.28.); 대구광역시 상인동(上仁洞) 지하철 1호선 제1~2구간 공사장  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사건, 220명의 사상자 등 600여 억원의 피해

 

. 성수대교 붕괴 (1994.10.21.); 길이 1,161m. 너비 19.4m(4차선). 한강의 11번째 다리, 1979 10월 준공,   10.21. 오전 7:40분께, 서울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 5, 6번 교각 사이 상판 48m가 붕괴돼  버스 등 차량 6대가 한강으로 추락, 출근, 등교길 승객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 1996 3월 기존교량을   헐고 새로운 성수대교를 건설, 1998년에 완공

 

. KAL 괌 공항 인근 산악지역에 추락 (1997.8.6.); 새벽 230 KAL 747 여객기 괌 추락사고,   승객 254명 중 229명이 사망, 25명 부상

 

. 대구 지하철 화재 (2003.2.18.), 120여명이 사망한 사건

 

 

□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

             (1.5Km 늦게 도착한 전두환 대통령과, 폭발 직전 대여섯 걸음 밖으로 옮겼던 기자의 삶)

 

운명의 1983년 10월 9 일요일 아침 랭군에는 간간이 비가 뿌리고 있었다. 우기가 끝나고 건기로 막 넘어가려는 계절의 고비, 무더위랄 것도 없는 섭씨 2526도의 습기 찬 날씨였다. 비는 아침이 지나면서 멎고 파아란 하늘이 보일 정도로 날씨는 청명하게 트이기 시작했다. 비 뒤의 창공은 더욱 산뜻하게 느껴졌다.

 

오전10 (한국시간 낮1230) 조금 지나 전두환 대통령 서남아 순방 사절단의 서석준부총리 등 공식 수행원 일부가 숙소인 인야레이크 호텔을 출발했다. 중앙일보 송진혁기자 등 수행 기자단의 대부분도 행동했다. 기자단의 다른 일부는 이순자여사를 초대, 교민 부인들이 다과회를 열기로 되어 있는 영빈관으로 향했다. 호텔을 떠난 일행은 승용차나 버스편으로 아웅산 국립 묘소로 갔다. 10분 남짓 걸렸다. 일행을 태운 자동차는 묘소 경내 출입구를 지나 묘소 건물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버마의 문공 장관이 5분쯤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서부총리와 김동휘상공부장관, 이기백합참의장 등이 먼저 차에서 내려 나중에 도착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악수를 나누었다. 아웅산 묘소는 길다란 일()자 한옥기와집 모양이었다. 다만 기둥만 빙 둘러서서 지붕을 바치고 사방 벽이 바깥으로 터진 건물이었다. 높이 약5m의 천장은 목재타일로 되어 있었다. 바닥은 대리석, 그 주위를 따라 목책이 둘러져 있었다. 목책을 따라 원호를 그리듯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다.

 

MBC 텔리비전의 보도국 카메라 취재부 임채헌, 이재은 두 기자는 『곧 대통령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묘소 바깥으로 대여섯 걸음을 옮겼을 때 등 뒤에서 「꽝」하는 폭발음을 들었다. 『돌아다보니 먼지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엉겁결에 몇 걸음 뛰어 갔다가 다시 돌아보니 천장이 완전히 내려앉았고 수행원들이 그 밑에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모든 것이 찰나 속에서 빚어졌다. 진혼나팔 소리조차 듣지 못한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폭음도 기억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저 번쩍하는 섬광만 본 사람도 많았다. 송 기자는 두 묘소 경호원이 팔짱을 끼고 일으킬 때 겨우 정신을 차렸다. 구멍 뚫린 지붕, 깨어져 나가 바닥에 흩어진 대리석 장식물들, 시커멓게 타고 있는 서까래더미가 시야에 들어 왔다. 윗몸을 무너진 천장 더미 속에 파묻힌 채 엎어져 있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찢어진 런닝셔츠 차림으로 밖에서 대기 중이던 승용차로 달려가 오르는 사람도 있었다. 최규철 기자는 정신이 들자 묘소 바깥의 버마인 경호원들에게 『헬프 미!』라고 소리쳤다. 경호원들은 경계 자세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 대신 우리 경호원들이 민첩하게 움직여 죽거나 다친 사람들을 승용차에 싣기 시작했다.

 

한편 전두환 대통령은 묘소로부터 약4.8㎞ 떨어진 영빈관에서 예정보다 늦게 출발했다. 안내를 맡은 버마 외상이 늦게 도착한 때문이었다. 아웅산 국립묘소는 랭군시 번화가와 주택 지역 사이 구릉지대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을 향해 대통령 일행을 태운 차량 행렬이 다가가고 있을 때 폭발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 때 대통령 차량 행렬은 묘소에서 약1.5㎞ 떨어져 있었다. 1.5㎞는 바로 생과사의 간격이었고 버마 외상의 안내 지각이 만든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이다.

 

대사 부인 이희익 여사가 제2 육군 병원에 도착해 보니 사망자들은 심한 화상을 입었거나 너무나 피격 정도가 지독하여 대부분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양복 호주머니에 새겨진 이름이나 지갑 속의 명함을 보고 신원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여사는 다른 부상자들을 돌보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사고 후 4시간쯤이 지나서야 대통령 비서관에게 『대사가 어디 있느냐』고 물을 여유가 생겼다. 선뜻 대답을 못하는 것을 보고 이 여사가 다그치자 『좀 다쳤다』는 것이었다. 부상자들 중에서는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든 이 여사는 시체 안치실로 뛰어갔다. 그러나 신원 확인이 쉽사리 되지가 않았다. 양말과 구두까지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딸 혜영 양에 찾아보라고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오후 4가 되자 누군가가 『대사가 죽었다』고 알려 주었다. 다시 시체 안치실로 들어가려는데 버마 헌병이 가로막았다. 아무리 사정해도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마침 그 때 전두환 대통령이 산유 미얀마 대통령과 함께 병원에 도착, 부상자들을 위로하게 되었다. 전대통령은 이 여사에게 『음료수라도 들라』면서 마음을 우선 가라앉히도록 권했다. 이 여사는 얼마 뒤 시체 안치실 바깥에서 창문을 통해 시트로 덮인 시체 중 「이계철」이라고 쓰인 이름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여사는 끝내 남편 얼굴을 보지 못하고 말았는데 뒤에 이렇게 울먹였다. 『남편 얼굴을 차마 보여 주기 어려울 만큼 크게 다치셨던가 봐요. 관계자들의 말로 미루어 보면 대사는 병원으로 옮겨 진 후 4시간 정도는 운명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살아계신 모습을 몇 시간이나마 실컷 볼 수 있었다면…』

 

……

의료단은 부상 상태가 심하지 않은 것으로 믿고 곧바로 기내로 옮길 작정이었고 그래서 수술 도구도 기내에 두고 왔었다. 이 차관의 호흡은 약해지며 갑자기 위급한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병원엔 인공호흡기도, 혈액 검사 기재도 없었다. 2시간 동안 수배를 한 끝에 겨우 낡은 인공호흡기를 하나 가져왔다. 이 차관은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병세가 약간 호전 되었으나 병원기가 아닌 KAL 특별기로는 후송이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미군측이 C9A 병원기를 내 이 차관과 이기백 대장을 필리핀 클라크 미 공군 기지로 후송함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 차관은 1013일 새벽 클라크 기지 병원에서 부인과 친지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하고 말았다. 이로써 순직자는 모두 17명으로 늘어난 것이었다. 부상자 11명을 태운 특별기는 10일 밤 915분에 김포로 돌아왔다. 1011일 하오 5엔 KAL 특별기가 16위의 순직자 유해를 싣고 랭군에서 김포로 말없이 귀환, 서울대병원에 안치되었다가 부슬비 내리는 13일 합동 국민장으로 국립묘지에 묻혔다.

 

 

□  삼풍백화점 사고와 관련한 아이들의 이야기 모음

           (사소한 이유로 사고현장을 피했다는, 아이들 다운 꿈 같은 이야기들)

 

. 사고 당시 엄마랑 아이가 백화점에 갔는데, 아이가 계속 나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집으로 왔는데, 뉴스를 보니 백화점 붕괴 소식이 나왔어요.

 

. 한 아주머니는 지하 제과점에서 빵을 사려고 빵을 고르고 계산대에서 지갑을 여니 분명히 있어야 할 돈과 카드가 없어,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집으로 가는데 저 멀리 뒤에서 “꽝” 하는 소리가 났지…… 놀라서 다시 지갑을 열어 보니 돈과 카드가 있던걸!

 

. 계산대에서 일하는 한 나이 어린 여직원은 어느 날 하루는 꿈에 외할아버지나 나타나 일을 그만 두라고 했답니다. 그 꿈을 무심코 지나쳤으나, 그 일이 있은 후 몇 일이 지나, 한 할아버지가 계산을 치르지 않고 물건만 가지고 나가는 바람에 계산하시라는 소리를 지르며 쫓아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고, 할아버지는 이내 온 데 간 데가 없었대요.

 

. 결혼기념일을 앞 두고 기념품을 사러 백화점으로 향하던 중 브레이크 고장으로 앞차와 추돌하는 바람에 기분이 나빠 집으로 왔는데, 뉴스에 그 백화점이 붕괴 됐다는 소식이 나왔어요.

 

. 백화점 부근 가든 아파트에 살았는데, 모녀간에 백화점 가려고 나서는데 아버지가 퇴근하여 배고프니 밥부터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쇼핑은 다음날로 미루고 식사를 하고 나서, TV를 켜니 백화점 붕괴 소식이 나왔어요.

 

. 사흘 전에 가족끼리 백화점 앞을 지나다가 아빠가 “저 백화점 왠지 부실하다? 무너질 것 같아!” 라고 했는데 엄마가 “에이 설마……”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  영화 “선택 (2003.10. 개봉)

        (유엔군 포로의 전향 거부와 늦게 찾은 자유를 그린 영화)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씨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한 남자가 지켜낸 45년간의 의지에 관한 휴먼 드라마. 홍기선 감독의 이 영화는 51년 유엔군 포로가 돼 수감된 뒤 전향서 쓰기를 거부하다 95 45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의 일생을 그렸다. 이념의 대립과 상처의 역사, 그리고 한 인간의 신념을 다루고 있는 2003년 ‘좋은 한국영화’.

 

0.75평안의 자유 나는 살고 싶다...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45년의 세월도 꺾지 못한 신념의 최장기수 '김선명'의 감동 실화!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탄압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 볼테르

 

 스물다섯 살의 순박한 청년, 김선명. 해방이 되던 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매료되어 북한을 선택. 그러나 1951 UN군에게 생포되고 만다. 15년 형에서, 사형, 다시 무기징역으로 형량이 바뀌고 서울구치소에서 마포형무소, 대구에서 대전으로 이감되면서 김선명은 새로운 감방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언제 올 지 기약도 없는 통일에만 희망을 걸고 살아가고 있는 대전교도소 좌익수들

 

 어느 날, 대전교도소에 새로 부임한 좌익수 전담반장 오태식은 무자비한 폭력과 협박 등 갖은 방법들을 동원해 사상을 포기하고, 전향서를 쓰도록 강요한다. 그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하나, 둘씩 전향을 하고... 뜻을 굽히지 않은 사람들을 목숨을 잃거나, 미쳐 버리고 만다. 김선명 또한 전향서 한 장에 인생이 바뀔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배고픔을 견뎌내며 마지막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저항하는데.

 

 <1951 10월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시작한 김선명은 1995년 8월 15 형집행 정지로 석방되었다. 수감생활 43 10개월 중 39년을 불취업으로 방 안에만 갇혀 지냈고, 그 중 21년을 독방에서 지냈다. 석방된 뒤 선명을 본 90의 어머니는 2개월 뒤 돌아가셨고, 그 후에도 동생들은 선명을 만나주지 않았다. 2000년 6월 15,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9 2, 치과 기공일을 하던 선명은 다른 62명의 비전향 장기수들과 함께 북송 되었다.>

 

 

□   만남과 이별

     

남북 분단으로 본의 아니게 수절의 긴 세월을 홀로 지내야만 했던 한 할머니

이산가족 상봉장소에서의 짧았던 만남과 긴 이별 ......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이 기구한 삶의 모습은 과연 누가 선택한 것이었을까?

 

 '금강산의 이산(離散) 시인'

52년 수절 끝에 북쪽 남편 임한언 할아버지(74)

만난 정귀업 할머니(75)는 이번 방북 기간에 이렇게 불렸다.

정 할머니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선

()보다도 절절한 이산가족의 한과 정서가 묻어났기 때문이다.

 

"지금도 못 만났으면, 넋새가 되어 울고 다닐 것이다"

 

반세기 동안의 이산과 상봉의 한을 정 할머니는 이렇게 표현했다.

남편 손을 잡고 금강산 구룡연을 찾은 정 할머니는

 

"하늘과 땅을 합친 것만큼 좋다"고 기뻐하더니 헤어 지면서는 "시곗 바늘이 한 점도 쉬어주질 않아요.

가다 보면 아주 가는 날 있겠지..그 때는 후회 없이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작별상봉 때는 남편에게 연인처럼 다짐을 놓았다.

 

"사진 보며 내 생각해요. 나도 보고 싶으면 사진 볼 거야."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이 다가오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52년 동안 혼자 살았는데 어떻게 또 혼자 가요.

나 집에 안 갈 거야. 이제 어떡하라고요......"

 

정 할머니는 남편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랫동안 도리질을 했다.

                                                                               동아  2003.5.1. A29 금강산 취재단                                                                               "이산의 시인(詩人) 정귀업 할머니"

 

 

□  

100세 김유중 할머니, 이혜경씨와 58년만에 해후

     “2009년9월,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장

 

남북 이산가족 상봉 2차 행사가 시작된 29일 금강산면회소 ......  이번 상봉행사 참가자 중 최고령인 김유중 씨(100·여)는 꿈에 그리던 북측의 셋째딸 이혜경 씨(75)를 만났다. 경기여고 1학년이던 앳된 딸은 6·25전쟁 중 실종된 지 58년 만에 반백의 할머니가 돼 나타났지만 김 씨는 단번에 딸의 얼굴을 알아봤다. 김 씨는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했지만 동행한 4남매가 벌떡 일어섰다. 상봉 전부터 울어 눈이 벌겋게 충혈된 넷째딸 희경 씨(72)가 “언니, 언니!”라고 외치자 혜경 씨는 “희경아, 나 언니야!”라며 달려왔다.

 

혜경 씨는 상봉 테이블에 도착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어머니 김 씨 품에 안겼고 자매들과 부둥켜안은 채 한참동안 울었다. 혜경 씨가 “엄마, 건강하세요? 내 말 들려요?”라고 했지만 김 씨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혜경 씨가 “엄마, 울지 마세요”라며 분홍색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줬다. 가까스로 울음을 그친 김 씨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 오래 사니 딸도 만나고…”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남측의 아내 장정교 씨(82)와 북측의 남편 노준현 씨(81)는 유일한 부부 상봉자로 59년 만에 재회했다. 16세 꽃다운 나이에 시집왔던, 하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된 아내를 만난 남편은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는 듯 아내의 손만 쓰다듬었다. 장 씨는 “오늘 오나 내일 오나 기다리다가 내가 시부모님을 다 모셨어요. 잘 모셨다고 상장까지 받았어요” 하며 원망어린 눈빛으로 남편을 쳐다봤다. 노 씨는 “부모님까지 다 모셔주고, 내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 씨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북한에서 결혼해 2 5녀를 뒀다는 소식을 전했다. 경북 예천군에서 농사를 짓던 노 씨는 1950년 북한군에 끌려갔다. 딸 선자 씨(64)는 아버지 앞에 주저앉아 “모시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동아 2009.09.30

 

□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던 70대 실향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실향민은 10년 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으나 그동안 17차례 열린 상봉행사에 포함되지 못했다. ……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최근 TV를 통해 금강산에서 열리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지켜보며 크게 안타까워했다. 이 씨는 6·25전쟁 때 고향인 강원 금화군에서 혼자 피란을 나왔다. 2000 8월 사상 첫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그는 북에 두고 온 부모와 누나, 여동생 등 9명의 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이후 2007년까지 15차례의 상봉행사가 더 열렸지만 이 씨는 번번이 상봉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2년 만에 성사된 이번 추석 상봉자 100명에도 끝내 포함되지 못했다. 이 씨의 아들(45)은 경찰 조사에서 “지난해부터 아버지가 뇌중풍을 앓았고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도 선정되지 않아 상심이 컸다”고 말했다.                                                                                                                         동아 2009.09.30

 

 

□  태안 기름유출 사건

 

2007.12.7. 07:15경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예인선 삼성중공업 소속 예인 부선 T-5 (11800t급 바지선) 12 6 19:18경부터 정박 중이던 페르시아를 출발하여 대산항으로 가던 홍콩 국적 유조선(146000t급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과 충돌하여 유조선 화물창이 파공 되어 유류유출 사고가 발생

 

바지선은 인천대교 공사를 마친 뒤 예인선 두 척에 이끌려 경남 거제로 향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바지선을 끌고 가던 292t 예인선 2척 가운데 한 척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와이어에 연결된 바지선이 중심을 잃고 유조선과 충돌한 것임

 

이 유조선은 이날 오후 2시 서산시 대산항에 입항할 예정이었음

 

서로 쌍방간 통신 연락체제를 무시하고 9차례나 부딪혔다고 함

유조선이 태안반도 앞바다에 정박 중이였고,

삼성중공업 크레인선이 이동 중 날씨가 좋지 않아 경로를 이탈하면서 부딪히게 되었음

두 배 모두 교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방관했음

 

5 2천 드럼통 분량의 기름을 바다에 쏟아낸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

 

허베이 스피리트호는 모두 17개의 원유탱크를 갖고 있는데, 이날 바지선에 부딪힌 탱크는 좌측에 있던 1, 3, 5번 탱크임

1번 탱크에는 오만산 원유 18215,3번 탱크에는 카타르산 원유 25019,5번 탱크에는 아랍에미리트산 원유 18873㎘가 실려 있었음3개 탱크를 모두 합치면 62000여 ㎘에 달함

 

그나마 다행이라면 탱크 상위 부분 기름이 유출되는 데 그쳤다는 점인데, 이는 당시 선장이 배를 오른쪽으로 5도쯤 기울여 무게중심을 잡는 가운데 빈 탱크에 원유를 흘려 보내 유출속도를 줄였기 때문이라고 해양경찰청(해경)은 설명했음

 

그러나 초기대응을 잘못해 원유 유출량이 많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음

5번 탱크는 사건 발생 직후인 127일 오전 730분에 파공 부위를 봉쇄했고3번 탱크도 4시간 후인 11시15 봉쇄했으며

그러나 1번 탱크는 다음날인 128일 저녁 818분에 최종 봉쇄했음

왜 이렇게 늦어졌을까? 이곳에서는 기름과 함께 증기(유증기)가 계속 뿜어져 나왔는데,

이것이 금속과 부딪칠 경우 스파크가 일면서 유조선이 폭발할 우려가 있어 압력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함

 

원유 유출량은 최종적으로 12547㎘로 판정 났는데, 원 적재량에서 하역량을 뺀 수치임

이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선박 유류사고의 유출량을 합친 것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음

쏟아진 기름은 처음에는 남쪽으로 20km쯤 내려가다가 밤늦게 방향을 틀어 만리포 등 태안 지역을 덮쳤음

 

태안 원유유출사고 후 많이 얘기되는 곳이 일본 후쿠이(福井)현 미쿠니(三國) 마을입니다.

태안처럼 어처구니없이 한 방 먹었으나 3개월 만에 30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가는 기적으로 원상을 회복했다는 곳임

 

 

□  씨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건

 

   시프린스호 해양 오염 사고는 1995년 7월 23 전남 여천군 소리도에서 발생하였는데요. 당시 오염원인 유조선 시프린스호는 144,567톤급으로서 원유 86,886, B-C 1,495, B-A 100톤을 적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큰 배. 이 배에서 유출된 량은 총 5,035톤으로 원유 4,155, B-C 780, B-A 100톤이었음

 

사고 발생은 광양항 호남정유 부두에 접안 원유하역 작업 중 태풍 경보통보를 받고 하역작업 중단상태이었는데. 태풍 피항차 출항하여 피항지 물색 중 삼산면 소리고 동방 4.7마일 해상 작도에 선미 좌현 기관실 부위가 충돌, 기관정지 및 기관실 화재 발생하여 통신두절 상태에서 상기일시 장소에 좌초되었던 것.

 

이 오염사고로 연인원 166,905명의 방재인력이 동원되었고, 방제 장비로 선박 8,295, 항공기 45, 기름 회수기 126, 오일펜스 14km, 기름 흡착제 240, 기름 처리제 718톤이 소요되었다고 함. 이 사건으로 방제비용 224억원, 어민 등 피해 736억원 총 960억 원의 예산이 들었음.

 

 

■  죽음의 선택

 

 

 

  존엄한 죽음

 

       예1. 그 어른은 잘 살았다. 조상으로부터 적잖은 토지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 재산만 잘 관리해도 되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한 평생을 살았다. 한학을 좋아한 그는 한학 서적을 읽는 것이 큰 낙이었다. 중국 여행이 자유화되면서는 수시로 중국을 찾아 고전의 고향들을 둘러보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자손들에게 선언했다. "이제부터 내 방에 밥을 들이지 말라." 청천벽력 같은 선언에 당황한 자손들은 그 영()을 거두어주시기를 간청했다. 그러나 요지부동이었다. 곡기를 끊은 지 한 달 만에 그 어른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왜 그렇게 세상을 하직했을까? 그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었다고 한다.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고통의 연장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치료를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의지로 마감했던 것이다. ……

 

 사람의 일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이다. 그 가장 중요한 단계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1의 경우 그 어르신은 치료를 포기했다. 자신의 죽음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다. 그래서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처럼 병원의 치료에 순응했던 예2의 경우(중략), 그가 겪어야 했던 것은 무서운 고통이었다. 병원의 권유에 의해 수술을 받았지만 그 수술이 오히려 사망을 재촉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그는 죽음이라는 대책 없는 절망을 향해 고통을 견디고 견디다 울부짖으며 무너져 갔던 것이다.

 

 그 누구도 죽음을 비켜가지 못한다. 죽음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자신의 문제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한 것처럼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중요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죽음을 가능한 한 자신의 의지대로 맞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죽음을 맞을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해서 건강할 때 유서를 작성해두는 것이 좋다. ……

법조계는 법적인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소생 가능한 환자의 치료 포기나 불필요한 의료 쟁송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제 사회가, 국가가,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마련할 때가 됐다    

                P.일보 (유자효, 2008.12.6.) 사설 중 발췌

 

 

  의료계가 느끼는 존엄사                    

       . 환자 자기결정권 높여줄 기반 성숙이 '관건'

       . 소생 가능성 없는 환자 치료 중단 가족 합의 등 모호한 상황 많아

                                                   

말기 암 환자 등의 존엄사는 죽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주는 문화적 여건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

 

. 안락사와는 다른 존엄사

의료계는 존엄사를 요구하는 환자 가족들과 법적인 명문화가 되어 있지 않는 현실 사이에 끼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의료계에서는 일단 존엄사는 주로 말기 암 환자 등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해 의학적으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치료의 중단, '무의미한 연명 치료의 중단'을 의미한다.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하기 위한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부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집과 병원에서의 죽음의 차이

의료계에서는 존엄사와 관련해 임종 장소에 따른 차이를 많이 거론한다. 말기 암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가정으로 귀가한 뒤 임종을 맞으면 자연사로서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

반면 임종이 임박해 병원 응급실을 찾았을 경우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연명 치료를 하지 않으면 '진료 거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는 보호자들의 간절한 요구까지 있다면 더욱 복잡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보통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말기 암 환자가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는 등 급박한 상황에 처하면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후 이를 떼어내는 것은 훨씬 복잡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급하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했지만 이후 다시 소생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는 장기간의 시간이 흐르더라도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것은 명시적인 환자의 의사표시 여부, 가족 간의 합의 등 여러 복잡한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 환자에 대한 불치병 통보 등 문화적 성숙 관건

말기 암 환자의 남아 있는 생명 기간은 대체로 수개월 미만이라고 한다. 생명 연장 장치를 사용하면 수주 또는 수개월 이상 법적인 의미의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다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품위 있는 죽음을 추구한다는 '웰다잉(웰엔딩)'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인위적인 연명보다는 환자가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가치관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불치병 등 질환 정보를 환자에게 정확하고 충분하게 통보해 환자 본인이 자기 신체에 관한 의학적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화적 여건이 성숙돼야 한다.

                                                                                               P.일보 (2008.12.11.) 사설 중 발췌

 

 

  존엄사 핵심은 ‘소극적 안락사’

                                               

존엄사의 핵심쟁점인 생명권의 본질 및 존엄사의 개념에 대한 논의는 소홀하다는 인상이다……

생명권이 우리 헌법에서 최고의 가치규범이라는 점은 학설과 판례상 다툼이 없다. 사람의 생명이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면 자유와 재산에 대한 법적인 보호는 무의미하다. 그런데 헌법으로 보호되는 인간생명은 자연현상으로서의 생명이 아니라 법적 개념으로서의 생명이다. 법적 개념으로서의 생명은 자연과학적 개념으로서의 생명이나 의학적 개념으로서의 생명과 달라서 하나의 결정(decision)이지 인식(cognition)이 아니다.

 

자연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자연과학적 또는 의학적 인식은 법적 결정의 기초가 될 수는 있어도 인식 그 자체가 그대로 법적 개념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권의 대상인 인간생명도 자연현상으로서의 생명을 바탕으로 법적인 관점에서 내용이 정해지는 법적 개념이다. 그래서 나라마다 인간 생명에 대한 법적 규율이 다르다. 생명의 시기(始期)와 종기(終期), 사형제도, 낙태문제, 태아의 법적 지위, 안락사에 관해 나라마다 다르게 다룬다.

 

법적 개념으로서의 생명과 생명권의 본질적 요소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인간의 생명과 유리된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할 수 없다. 인간존엄성의 활력적인 기초인 생명이 부인되는 경우에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도 끝이 난다. 한 인간의 존엄성을 이유로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이 함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는 종교관이나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하물며 무의미한 생명, 인공생명, 무의미한 생명연장이라는 논리로 인간생명의 가치를 상대화한다든지, 인간생명과 삶의 질을 비교하려는 태도는 강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인간의 존엄성은 결코 인간생명을 희생시키는 정당화 사유가 될 수 없다. 존엄사라는 개념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법원이 존엄사를 허용하면서 인간의 존엄성 보장에 관한 헌법조문을 근거로 제시한 점도 잘못이다. ……

                                                                                  D.일보 (허영, 2008.12.4.) 사설 중 발췌

 

 

 품위 있게 죽을 권리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한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누리는 권리(천부인권. 天賦人權)는 어느 누구도 박탈할 수 없다. 그만큼 인간은 존엄한 존재다. 그러나 근자에 만연한 생명에 대한 훼절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황폐화시킨다. ……

회자정리(會者定離). 늙고 병들면 이승을 떠나기 마련이지만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생명은 그만큼 연장된다. 하지만 불치의 병으로 야기되는 고통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한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임박하면서 생명을 연장하려는 노력도 필사적이다. 반면에 환자의 고통은 배가된다. 언제 어떻게 어떠한 조건에서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지가 현대사회에 던져진 과제다.

 

넓은 의미의 안락사란 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불치 상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죽는 시기를 앞당기는 의학적인 조치를 말한다. 고통을 완화시키는 약물 투여가 생명 단축이라는 부수효과를 가져오는 간접적 안락사는 특별히 문제되지 않는다. 이것을 문제 삼는다면 치료행위 자체가 자칫 죄악시될 수 있다.

 

반면에 회생 가능성이 없는 질병으로 인해 빈사상태에 빠진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적극적 안락사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엄격한 요건이 충족될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을 뿐이다. ……

 

일반적으로 존엄사(尊嚴死)로 지칭되는 소극적 안락사란 환자를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게 하기 위해 생명 연장의 적극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음을 말한다. 예컨대 수혈 인공호흡장치 생명연장주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가족의 요구에 따라 의사가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한 후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의사의 살인방조죄를 적용했다. 그만큼 생명 연장을 중시한 판결이다. 이번에 비록 1심 법원이지만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한 판결은 새로운 진전이다. 그 동안 안락사에 대해 법적인 판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판결이라 새삼 세상의 주목을 끈다. 법원은 ‘행복하게 살 권리’만큼 ‘품위 있게 죽을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한다. ……

 

이미 한국 사회도 부모자식이 동거하지 않는 가구가 절대다수다. 갈수록 전통적인 가() 중심의 공동체는 해체되고 개인주의와 물신주의가 팽배한다. 이런 각박한 세태에 존엄사의 허용이 자칫 가족의 생명을 방기하는 패륜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                  

              D.일보 (성낙인, 2008.12.2) 사설 중 발췌

 

 

 

 

□  병원 측 상고 결정

 

지난달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온 '존엄사' 인정 판결에 병원 측이 비약상고를 하기로 했다. 2심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에 다시 판단을 구하겠다는 것이다.

 

병원 측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1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오늘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적 합의나 법적 기준이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1심 판단만으로 생명에 대한 문제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2심을 거치지 않고 대법원에서 판결을 받는 비약상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비약상고는 1심 판결에 대해 2심인 항소심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하는 제도로 양측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병원 측은 절차를 최소화해서 환자나 가족의 고통을 줄이려고 비약상고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을 거쳐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지만 환자의 기대 수명이 34개월밖에 안되기 때문에 2심까지 거치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에서이다. 병원 측은 조만간 비약상고에 대해 원고 측에 동의를 요청하기로 했다.                                                                                                          YTN 2008.12.17.

 

 

■ 한 성직자의 삶과 선택

 

조부 김보현은 1868년 무진박해 때 충남 연산에서 체포돼 서울에서 순교했다. 조모도 함께 체포됐으나 임신 중이어서 석방됐는데 감옥에서 풀려나 낳은 아기가 김수환 추기경의 부친 김영석이다. .....

                                                                                                     “김수환 추기경의 삶중에서

자신 스스로의 선택으로 성직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가 택한 믿음과 여러 가지 선행의 길들 또한 선택 되어 진 필연의 선택은 아니었을까? 

 

 

□ 삶과 선택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 유언

 "나는 그 동안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면서 사세요."

 

천주교 김수환(金壽煥·87·사진) 추기경이 16일 오후 612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했다. 지난해 7월 노환으로 입원한 김 추기경은 10월 초 한때 호흡곤란으로 위독했다가 의식을 회복했지만 가슴에 꽂은 링거주사로 영양을 공급받아 왔다. 의료진에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으니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김 추기경은 전날 갑자기 폐렴 증세를 보였고 이날 오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그는 선종 2~3일 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로 고맙다"고 말했다.

 

"주여,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당신과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당신과 함께 영원을 향하여 걷고 싶습니다. /형제들을 위한 봉사 속에 /형제들을 위한 가난 속에/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을 나누면서 /사랑으로 몸과 마음 다 바치고 싶습니다." ('나의 기도'·1979)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은 그가 엄혹했던 유신정권 말기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지은 자작시 그대로였다. 종교인 김수환은 남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추기경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하느님과의 만남과 합일(合一)을 갈구한 소박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2001년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돌아보면 하느님께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가 사제가 될 때 택한 성경 구절이 시편 51편의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였는데, 지금 심정이 똑같습니다."라고 했다. 하느님과 만나기 위해 집무를 중단하고 피정(避靜·성당이나 수도원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일)을 떠났는데 하느님을 잘 만날 수 없어서 얼굴이 까맣게 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이 단순한 종교지도자를 넘어 온 국민이 존경하는 인물이 된 것은 천주교 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형제'로 삼아 그들을 사랑하고 봉사하고 나누는데 몸과 마음을 바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격동이 몰아쳤던 지난 40년간 그는 우리 사회가 중심을 잡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70~1980년대 민주주의와 인권이 억압받던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대변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우리 사회에 반미친북(反美親北) 경향이 강해지는 점을 우려하고 북한의 인권 개선과 체제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파와 이념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혼돈을 겪던 국민은 언제나 김 추기경을 바라보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해 6, 86회 생일을 맞아 "빨리 사라져야 하는데 아직도 사라지지 못하고 하느님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차분하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입원 후에는 문병 온 사람들과 매일 병실에서 미사를 올리며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선종하시던 날은 말씀이 거의 없으셨고, 특별히 남긴 유언은 없다" "선종 10분 전까지 의식이 뚜렷했고 고통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전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 장기기증을 약속했으며, 선종 직후인 이날 오후 720분 강남성모병원에서 안구 적출 수술을 마쳤다. 김 추기경이 남긴 눈은 두 사람에게 시술할 예정이다. 김 추기경의 유해는 이날 밤 명동성당으로 옮겨져 본당에 마련된 유리관 안에 안치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조문객을 위해 명동성당을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개방할 예정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20일 오전 10시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 주재로 장례미사가 열리며 장지는 용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직자 묘역이다.

           조선일보(2009.02.17), 이선민

 

 

□ 망설임과 선택

 

. 순교자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다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은 1922 음력 윤5월 8 대구 남산동 독실한 구교우 집안에서 5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부 김보현(金甫鉉) 요한은 1868년 무진박해 때 충남 연산에서 체포돼 서울에서 순교했다. 조모(강말손)도 함께 체포됐으나 임신 중이어서 석방됐는데 감옥에서 풀려나 낳은 아기가 김수환 추기경의 부친 김영석(金永錫) 요셉이다. 천주교로 인해 몰락한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아버지는 옹기장수로 전전하면서 가난하게 살았다. 어머니 서중하(徐仲夏) 마르티나 역시 배우자의 믿음만 보고 가난한 집으로 시집 와서 거의 평생토록 옹기와 포목 행상으로 살림을 꾸렸다.

 

마음씨 착한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이었던 아버지는 소년 수환이 아직 어린 나이인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종하셨다. 성품이 곧고 거짓이나 불의와는 일체 타협할 줄 모르는 분이었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밖에 나가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며 더 엄하게 자식들을 키웠다.

 

3살 차이가 나는 형 김동한(金東漢) 신부와 어머니는 유년 시절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형이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초등부 5, 6학년 과정)에 갈 때까지 서로 떨어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형제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두 형제가 군위 보통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어머니는 “너희 둘은 이다음에 커서 신부가 되거라”는 말씀을 꺼냈다.

 

 “형과 내가 군위 보통학교에 다닐 때 한번은 어머니가 당신 친정이 있는 대구에 다녀오셨다. 짐작컨대 어머니는 거기 계시는 동안 성당에서 사제 서품의 장엄한 예식을 보고 오신 것 같다. 그때 어머니는 감명을 깊이 받으신 모양으로, 돌아오자마자 우리 둘에게 ‘너희는 이 다음에 신부가 되라’고 이르셨다.

 

형은 그 이듬해 대구에 있는 신학교 예비과로 옮겼고, 2년 후 나도 가게 되었는데 형은 기쁘게 갔으나 나는 그렇지를 않았다. 어머니의 명을 따라 갔을 뿐이다”(「샘이 깊은 물」1984).

 

동성학교 시절 민족혼을 일깨우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때면 울분이 치솟았다. 그래서 ‘황국 신민으로서 그 소감을 쓰라’는 시험 문제에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님. 따라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썼다가 교장실에 불려가 크게 야단을 맞았다. 이 일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줄 알았는데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오라는 대구대교구장의 명령을 받게 된다. 동성상업학교 졸업 후 1941 4월 도쿄 조치(上智)대학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중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했던 학업을 1947 9월 혜화동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복학해 마치고 1951 9 15일 대구 계산동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됐다.

 

. 사제로 다시 태어나다

 

“과연 한평생을 착한 목자로 살 수 있을까?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내가 오히려 하느님 앞에 죄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성찰하고 고백해야 할 것은 ‘하느님 저는 죄인이오니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결국 시편 51편에서 찾아낸 ‘하느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구절을 상본에 써넣었다.

 

13살 나이에 어머니한테 등 떠밀려 소신학교에 들어가 30살에 사제가 되었다. 18년 동안 하느님의 부르심에 회의를 여러 번 느꼈고, 신학교를 떠나고 싶은 마음에 꾀병을 내어 한 학기 건너뛰기도 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조금도 변함없이 나를 한 길로 이끄셨다. 그 큰 섭리와 은혜에 엎드려 감사드렸다. 특히 어머니의 기도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해 69세이셨던 어머니는 ‘자식이 신부가 되는 게 소원’이었던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가슴 벅찬 순간을 맨 앞자리 마룻바닥에 꿇어앉은 채 지켜보고 계셨다. 그날 막내아들이 신부가 된 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에서 기도와 눈물로 얼룩진 인고의 세월을 읽을 수 있었다.(평화방송 평화신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사제 수품 후 곧바로 안동성당(지금의 안동교구 목성동 주교좌성당) 주임신부, 1953 4월 대구대교구장 비서, 1955 6월 김천성당(지금의 대구대교구 황금동성당)주임 겸 성의중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일선 본당신부 생활은 안동성당과 김천성당을 합쳐 3년이 채 안되지만 김 추기경은 이때를 ‘꿈처럼 아름다웠던 시절’로 회상하곤 했다.

 

. 교회의 새로운 바람, 2차 바티칸 공의회

 

1956년에는 독일 뮌스터대학 유학길에 올라 은사이신 요셉 회프너 추기경을 만나게 된다. 김 추기경은 회프너 추기경에게 ‘그리스도 사회학’을 배웠는데, 그리스도 사상에 기초한 인간관과 국가관 등을 정립하는 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무렵 광부와 간호사로 일자리를 찾아 독일에 건너온 한국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한편 유학시절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소식을 접하면서, 가톨릭교회가 문을 활짝 열어 새바람을 맞아들이고 쇄신을 통해 시대 변화에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공의회를 통해 자성하고 변화하는 교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교회가 사회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체험은 그의 사상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훗날 주교와 추기경으로 소임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귀국 후 1964 6월 가톨릭시보사(지금의 가톨릭신문) 사장으로 취임했다. 당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한창 무르익던 시기로, 그는 다른 어떤 사제보다 먼저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공의회 관련 외신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려면 종교 매체도 세상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던 그는 사회적 사건과 흐름을 신앙적 눈으로 조망하는 주제의 사설(社說)을 지면에 자주 실었다. 이 무렵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근본정신인 ‘변화와 쇄신’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한국 교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고 무엇을 쇄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초대 마산교구장으로 임명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창세기 12 1-4).

 

성무일도(聖務日禱)를 드리며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부분을 묵상하던 1966 3월 초순 어느 날이었다. 김수환 신부는 부산교구에서 분리, 새 교구로 설립된 마산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44세의 젊은 나이였다.

 

주교 서품식과 교구장 착좌식(着座式) 1966년 5월 31 완월동 성지여중고 교정에 열렸다. 김수환 주교가 사목표어로 택한 말씀은 ‘여러분과 또한 많은 이들을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였다. 이 문구를 훗날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할 때도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라고 해석을 조금 고쳐서 그대로 사용했다.

 

 “예수님은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신앙인의 삶이란 게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처럼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나 자신을 온전히 내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어떤 사람을 하찮은 존재로 무시할 때 ‘저 사람은 우리 밥이야!’라는 표현을 쓴다. 주님은 그 정도로 당신을 낮추고 비우면서까지 우리 밥이 되어 주셨다. 나 역시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바쳐서 모든 이에게 밥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정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표어대로 살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평화방송·평화신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초대 마산교구장으로 교구의 기초를 닦으면서 한시도 떠나지 않은 생각은 ‘어떻게 하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대로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 한국 교회 최초의 시국 담화문 발표

 

김수환 주교는 1968년 2월 9 한국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대 사회적 발언을 한다. 노동자들의 인간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나선 것이다. 가톨릭노동청년회(JOC; Jeunesse Ouvrière Chrètienne)의 총재주교였던 그는 합법적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노동자를 불법 해고한 ‘강화 심도직물 사건’에 맞서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주교단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 발표 이후 정부가 사태 수습에 나서 6일 후 해고자들이 전원 복직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이후로도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김 추기경은 그들을 큰 품으로 끌어안았다.

 

김 추기경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파생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인간의 기본권과 사회 정의가 지켜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 서울대교구장 임명과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

 

1968 4월 어느 날, 김수환 주교는 그의 표현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는다. 대주교로 승품되어 서울대교구장직을 맡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은퇴한 노기남 대주교에 이어 제12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것이다.

 

마산교구의 초대교구장으로 주교직에 오른 지 2년밖에 안 된, 주교단에서도 제일 막내였기에 그의 머릿속에 맴돈 말은 ‘왜 하필 내가?’라는 반문뿐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서울대교구는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상황이었다.

 

1968 5 29 명동대성당에서 엄숙히 거행된 교구장 착좌식에서 김수환 대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착좌하는 짐이 얼마나 무거우며 또한 그것이 우리 교회를 위해 어떤 뜻이 있는가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저의 힘만으로는 이 자리에 앉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착좌할 수 있는 것은 저를 이 자리로 불러주신 하느님의 인도를 믿는 신앙심과 신자 여러분의 기도와 협력 때문입니다. … 또한 제가 모든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때에 교회가 하느님의 장막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생활로써 증거해달라’는 우리사회의 요구를 명심합시다”(명동대성당, 교구장 착좌식 1968. 5. 29).

 

그리고 이듬해인 1969 3월 교황 바오로 6세가 발표한 새 추기경 명단에 김수환 대주교의 이름이 올랐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탄생한 것이다.

 

추기경 서임식은 1969년 4월 28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렸다. 당시 김 추기경의 나이는 47세로, 전 세계 추기경 134명 가운데 최연소였다. 교황을 보필하고 교황 선거권과 피선출권을 갖는 고위 성직자라는, 자리의 높고 낮음을 떠나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다는 반증이었기에 한국 천주교회 2세기만의 큰 경사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후 30년 동안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역임했고, 주교회의 산하 여러 분과 위원장과 전국 단체들의 총재를 맡았으며, 1975년 6월 1부터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했다.

 

 

1970년에는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67년 이후에는 한국 대표로서 여섯 차례에 걸쳐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1998년 5월 29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직을 사임한다.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지 30, 목자 생활 47년 만이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일했다. 다른 사람들이 점수를 매긴다면 겨우 낙제점을 면할 정도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십자가를 지고 걷는 심정으로 살아왔다. 힘들고 지쳐서 그 십자가를 내려놓고 싶을 때도 많았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 사회 격동기의 한가운데 있을 때, 그로 인해 교회 안에서조차 압력과 비난이 쏟아질 때는 한 사제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 어떠했는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럴 때마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의 기도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를 벗어 던지지 않고 끌고라도 갈 수 있었던 힘은 많은 이들의 기도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평화방송·평화신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 양떼를 사랑한 목자

 

김수환 추기경이 교구장 생활을 한 30년 동안 교회는 발전을 거듭했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착좌할 당시인 1968년 말 서울대교구의 규모는 본당 48, 공소 63, 신자 14만 명이었다. 30년 후인 1998년 말에는 본당 203, 공소 6, 신자 125만 명으로 크게 성장했다.

 

아울러 김수환 추기경은 선교사 없이 신앙이 전파된 한국 천주교회의 형성과 발전이 세계 천주교회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1984년 5월 6에는 한국을 처음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모시고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과 103위 시성식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했다. 순교의 피로 전해져 내려온 한국 교회의 신앙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에도 한 번 더 방한해 제44차 세계 성체대회를 주례했다. 세계 성체대회를 계기로 1988년에 시작한한마음한몸운동’은 성체성사의 깊은 뜻을 삶으로 실천하자는 운동으로 지금까지 많은 결실을 맺었다. 현재 국내외 원조사업과 백혈병 어린이돕기, 골수제대혈기증, 장기기증, 국내입양운동 등의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 북녘 땅을 위한 기도

 

김 추기경은 북한 교회와 동포를 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서울대교구의 관할 구역이 휴전선을 넘어서 황해도까지 이어진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었다. 미사 마침예식에서 주교는 오른손으로 세 번 십자표시를 하면서 신자들에게 강복하는데 김 추기경은 언제나 그 마지막 세 번째 십자표시를 마음에 품고 있는 북녘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그었다고 한다.

 

통일에 대비하고 앞으로의 북한 선교를 위한 실질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995년 ‘민족화해위원회’를 설립하게 된다. 같은 해 3 7일 명동대성당에서 시작된 ‘민족화해미사’는 지금도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에 봉헌되고 있다.

 

. 소외된 이들의 벗

 

“이 세상 누구도 존중 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주목한 이유입니다. 그들을 위한 ‘우선적 사랑’에서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랑’으로 가야 합니다.

 

그 믿음 때문에 추기경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시간을 베풀었다.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추기경이 우선순위를 둔 이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는 믿음에서였다. 서울대교구장의 바쁜 일정 가운데도 해마다 성탄 전야에는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성탄 미사를 함께 드리기도 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편에 선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기까지 한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8년 동일방직노조 사건 등 김 추기경은 성탄사순 메시지나 강연, 시국담화문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짚어내는 일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70-80년대를 지나는 동안 김 추기경은 우리사회 민주화 운동의 버팀목이자 잣대였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그것은 인간을 위하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다운 삶이 유린되는 사회와 개인을 구원하여 사랑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사랑하기 위한 싸움에서 미움만이 남아있는 경우가 없지 않은지 우리는 반성해야 합니다. 때문에 불의를 보고 분노하며 자신의 개인적 안락과 미래까지도 포기하면서 정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싸우는 이들도 이 민족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이 민족 사회가 결코 미움과 대립의 사회가 되지 않고 사랑의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분들도 먼저 하느님과 화해해야 합니다”(정의와 평화를 구하는 9일 기도 메시지, 1986. 3. 9)

 

교회의 지도자이자, 사회의 큰 어른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고독한 일이였다. 정부 압력은 물론 교회 안에서 쏟아지는 비판까지도 홀로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 격동기를 헤쳐 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두고 한 일은 더더욱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했을 따름이다. 그것이 가난하고 병들고 죄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시다가 마침내 목숨까지 십자가 제단에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라고 믿었다”(평화방송·평화신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평생을 두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각을 지배하는 큰 주제는 ‘인간’이었다. 인간을 위해 자신의 삶과 전 존재를 바치는 모범을 보여준 스승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짙은 안개 속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절대 중심을 잃지 않고, 바른 항해길을 인도하기 위해서 그가 짊어져야 했던 십자가는 너무나 막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987 6·10 민주항쟁 때도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그런 믿음 하나로 막았다.

 

“성당 안으로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우리를 다 넘어뜨리고 난 후에야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김 추기경의 관심은 장애우나환우철거민도시빈민탈북주민외국인 노동자미혼모성매매 여성재소자 등 매우 다양한 소외 계층으로까지 확산됐다.

 

김 추기경은 종교인들이 우리 사회의 인간화와 도덕성 회복, 사랑나눔을 위해 힘을 모아한다고 강조했다. 김 추기경이 1997년 길상사 개원법회에 참석해 축사를 한 인연으로 명동대성당 특강 강사로 법정(法頂)스님을 초청하기도 했고, 2005년 길상사에서 열린 석탄일 음악회의 수익금은 ‘성가정 입양원’에 전달되기도 했다. 2006년 소천(召天)한 강원용 목사와는 나이와 종교를 떠나 같은 곳을 향해 걸어온 도반(道伴)과도 같았다.

 

. 혜화동 할아버지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김 추기경은 정겨운 벗이자 착한 목자, 인자한 ‘혜화동 할아버지’로 넉넉한 웃음을 지닌 채 세상을 향한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두었다. 그는 이제 지상에서의 아름다운 여행을 마치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향기는 여전히 커다란 빛과 소금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 하느님 곁으로

 

예나 지금이나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고향 풍경과 어머니 품이 느껴진다. 어릴 때 저녁이 가까워 오면 신작로에서 서성거리며 행상 나간 어머니를 기다렸다. 내 나이도 이제 하느님 곁으로 한발짝 한발짝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하늘나라에 가면 보고 싶은 어머니도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어 본다.

 

요즘 병세가 위독한 선후배 신부님들 병문안을 가면 귀에 바싹 대고 이런 말을 되풀이한다. “하느님한테 맡기세요. 하느님한테 모든 걸 다 맡기세요.” 이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평화방송 평화신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생각해보면 나는 죄인이다. 허물이 많은 사람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고개도 들 수 없는 대죄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오히려 이런 죄와 허물을 통해서-사도 바오로가 죄 많은 곳에 은총도 충만히 내리셨다(로마 5,20)고 하신대로- 당신의 사랑, 당신의 자비, 당신의 그 풍성한 용서의 은총을 깨닫게 하여 주셨다.

...

, 펠릭스 꿀빠!(Oh, Felix Culpa! , 복된 탓이여!)

 

이제 나는 나를 이렇게까지 큰 은총으로 축복하여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 또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생이 얼마일지 알 수 없으나 이제는 진실로 하느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의 주교표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대로 성체성사의 주님처럼 생명의 빵이 되는 삶, 모든 이의 ''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하느님 아버지,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 나의 모든 걸 바쳐서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주님께 영광 있으소서. 아멘.

       . 평화신문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그 후] (마지막 회) 인생을 돌아보며" 마지막 부분

    .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마영주

         

 

 

                                                                    

 

■ 선 택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중 일부 요약                                                              김남두 외   “철학사상” 별책 3-9 (2004)

□  합리적 선택

 

. 합리적 선택의 상위개념으로서의 자발성

 

덕은 겪음과 행위들에 관련된 것이며 이에 대해 칭찬과 비난이 가해진다는 일반적 사실과 행위의 자발성 여부가 칭찬과 비난이라는 평가에서 중요한 요소임을 지적한 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자발적인 행위와 그것의 한계를 규정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전체가 행복과 덕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면 품성적 덕의 구성 요소, 이 품성적 덕의 핵심은 아마도 ‘합리적 선택’일 것이다. 자발성 내지 자발적 행위들에 대한 분석은 따라서 덕 윤리학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첫 입구라고 할 수 있다.

 

. 비자발성의 유형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자발적 행위의 유형으로 크게 강제적 힘에 의한 행위와 무지에 의한 행위를 들고 있다. 이러한 유형에 정확하게 포섭되는 경우들은 대체로 용서를 받거나 심지어는 동정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이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자발적인 성격과 비자발적인 성격이 혼합된 것과 같은 행위의 유형들인데, 이것에 특히 무지에 의한 행위의 경우 어떤 조건들이 분석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 외부적 힘에 의한 비자발성(원문)

강제적이라는 것은 그 행위의 단초(arche) [자신의 내부가 아닌] 바깥에 있는 것인데, 행위자가 혹은 행위를 당하는 사람이 이 단초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예를 들면 만일 바람이나 혹은 그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이 그를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면.

 

우리가 통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비자발적 행위의 첫째 유형은 물리적인 힘이라는 강제의 경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경우 행위의 단초가 행위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있다고 지적한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한 두 걸음 밀려 나아가는 행위나 노예의 경우 지배자가 강제로 데려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데, 한 두 걸음 밀려 나가다가 이웃이 아끼는 개를 밟는 행위와 같은 것은 온전히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경우로 보인다.

 

 

□  무지에 의한 비자발성

 

무지에 의한 비자발성의 단적인 예는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모든 무지가 비자발적인 행위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며 더군다나 용서를 구할 만하거나 동정을 받을 무지인 것은 아니다. 무지에 의한 비자발성으로 평가 받기 위해서 그 무지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 것처럼 분석되는데 그 조건들은 아래와 같다.

 

. 후회를 동반하는 무지(원문)

무지 때문에 행해진 모든 것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지만(ouk hekousion), 비자발적인 것(akousion)은 또한 고통과 후회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무지 때문에 어떤 일을 행하고, 그 행한 것에 의하여 조금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은, 적어도 그가 행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행위 한 것이 아니고, 적어도 전혀 고통을 느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행위 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무지 때문에 어떤 행위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후회하는 사람은 비자발적으로(akon) 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후회 하지 않는 사람은 전자와 다른 경우이기에 ‘자발적으로 하지 않은’(ouk hekon) 경우라고 하자. 이것은 다른 경우이기 때문에 그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가지는 것이 더 낫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구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논리적으로는 자발적인 것의 부정, 즉 자발적이지 않음이 곧 비자발성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발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곧 비자발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모든 무지 때문에 행해진 것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고 규정하면서, 그는 자발적이지 않는 것의 외연을 더 넓게 잡지만 윤리학의 전문용어로서의 ‘비자발성’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무지 때문에 행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무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그 무지에 대한 후회를 동반 해야 한다는 것이다.

 

. 행위의 원인으로서의 무지(원문)

무지 때문에 행하는 것은 모르면서 행하는 것과는 다른 것처럼 보인다. 술에 취한 사람이나 혹은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은 무지 때문에 행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얘기한 것 때문에 행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는 알면서 그렇게 행한 것이 아니라 무지한 채로 그렇게 행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악한 사람은 무엇을 행해야 하며 또 무엇을 피해야만 하는지를 알지 못하며 이러한 종류의 잘못을 저지름으로써(dia toiauten hamartian) 사람들은 옳지 못한 사람이 되며 일반적으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떤 행위가 무지에 의한 비자발적 행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무지가 그 행위와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 불충분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 행위의 원인으로서의 무지와 부대 상황으로서의 무지를 구별하고 있다. 즉 몰랐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한 것과 모르면서 그런 행위를 한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 개별적인 것에 대한 무지(원문)

그러나 만일 행위자가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알지 못한다면, 비자발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합리적으로 선택한 무지는 비자발적인 행위의 원인(aitia)이 아니고, 오히려 사악의 원인이며, 또한 그것[비자발적인 행위의 원인]은 보편적인 것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왜냐하면 적어도 이런 무지 때문에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개별적인 것들에 대한 무지, 즉 행위를 구성하는 것들과 행위에 관련된 것들에 대한 무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것들에 있어서 연민과 용서가 허용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개별적인 것들의 어느 하나라도 모르고 있는 사람은 비자발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비자발성을 담보할 무지의 대상과 관련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가지 분석을 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무지의 대상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어서는 비자발적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가 문학상 원고 모집에 작품을 출품했고 언제쯤 우편으로 결과가 알려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우편함에 나가 보지 않아서 1등 상을 놓쳤다면 우리는 그가 무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고 그를 동정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분석은 비자발성을 담보할 무지는 개별적인 것에 관한 것이지 보편적인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편적인 것을 몰랐다는 것은 용서의 이유가 아니라 비난의 이유이다. 예를 들어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얘기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무지이며 비난을 받아 마땅할 무지이다. 비자발적인 행위의 원인이 되는 무지, 용서나 연민이 가능한 무지는 하나의 구체적인 행위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사안들에 대한 무지, 알았다면 그렇게 행하지 않았을 사안들에 대한 무지이다.

 

 

□  자발적 행위

 

. 개별적인 것에 대한 앎(원문)

비자발적인 것이란 강제로 혹은 무지 때문에 행해진 것이므로 자발적인 것이란 행위자가 그 행위를 개별적인 것들을 알면서 그 단초(arche)가 행위자 자신 속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겠다.

 

비자발적 행위가 강제 혹은 무지 때문에 행해진 것이며, 그때의 무지가 행위의 원인이면서 후회를 동반하고 개별적인 것에 대한 무지였다면, 자발적인 행위는 그 단초가 행위자 자신 속에 있으면서 개별적인 것들을 알면서 하는 행위일 것이다.

 

. 비이성적 욕구에 따른 행위(원문)

왜냐하면 아마도 격정(thymos)이나 욕구(epithymia) 때문에 하게 된 행위를 비자발적인 행위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가 마땅히 욕구해야만 하는 것들을 비자발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조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마땅히 분노해야만 하고, 또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가령 건강이나 배움에 대해서는 마땅히 욕구해야만 한다.

 

격정이라고 번역한 희랍어 튀모스(thymos)는 기개로도 번역 될 수 있는데 주로 분노와 관련된 영혼의 부분으로 이해된다. 동양 문화권에서 ‘격문’(檄文)이 자극하는 영혼의 부분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배가 고팠기 때문에 혹은 화가 났기 때문에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어떤 행동을 했다는 얘기를 한다. 이런 식의 얘기는 격정이나 욕구 때문에 하게 된 행위는 비자발적인 행위이며 그런 한 온전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명하게 그러한 견해를 거부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드는 여러 가지 거부의 이유 중에서 핵심적인 것은 그런 식의 견해가 일종의 개념적 비일관성을 범한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하는 것처럼 마땅히 욕구해야 할 건강이나 배움에 있어서는 자발성을 얘기하다가 부끄러운 욕구 때문에 생겨난 행위에 있어서는 그 책임이 바깥에 있는 것처럼 얘기 하는 것은 우습다는 것이다. 격정이나 욕구에서부터 나오는 행위 들도 이성적인 따짐에서 나오는 행위에 못지 않게 인간임에 고유한 특징들이니 그 행위의 단초가 바깥에 있는 비자발적인 것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자발성과 비자발성이 혼합된 경우

 

. 협박에 의한 강제(원문)

그러나 더욱 큰 악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혹은 어떤 고귀한 것 때문에 행해진 그런 행위들에 관한 한,― 예를 들어, 만일 어떤 참주가 어떤 사람의 부모나 아이들을 지배하고 그 사람에게 어떤 부끄러운 것을 하도록 명령한다면, 그래서 그 사람이 그 행위를 하면 그의 부모와 아이들이 살 것이고, 그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죽게 될 것이라고 해보자― 이런 행위들이 비자발적인지 아니면 자발적인지에 관한 논란이 벌어진다.

 

행위의 자발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는 첫 번째 경우는 협박에 의한 강제의 경우이다. 물리적 힘이라는 강제의 경우 아무도 그렇게 강제된 사람이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하지 않겠지만, 협박에 의한 강제의 경우 협박을 수용해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행위자를 전제하기에 책임의 한계가 그렇게 쉽게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 강제되지 않았지만 단적으로 자발적이지는 않은 행위(원문)

또한 이와 비슷한 일이 폭풍우 속에서 짐을 배 밖으로 던지는 경우에서도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단적으로 (haplos) 자발적으로 짐을 배 밖으로 내버리지는 않으나,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라면 지각 있는 사람은 모두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성과 비자발성의 논란이 있는 두 번째 경우는 협박과 같은 인위적 강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고 얘기 할 수 있는, 전적으로 자발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경우이다.

 

. 혼합된 행위의 분석(원문)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종류의 행위들은 혼합되어(miktai) 있기는 하나 아무래도 자발적인 행위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는 그것이 행해진 바로 그때에는 선택될 만한 것이고 또 그 행위의 목적은 그 상황에 따른(kata ton kairon) 것이기 때문이다. [] 사실상 그는 그 행위를 자발적으로 행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들에 있어서 [행위의] 도구들인 신체의 부분들을 움직이는 단초(arche)는 그 자신 안에 있으며, 행위의 원리가 자신 안에 있으면 행 하는 것과 행하지 않는 것은 또한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류의 행위들은 자발적이지만, 아마도 단적으로(haplos)는 비자발적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그러한 행위들을 그 자체로(kath hauto)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유형의 행위들이 자발적인 측면과 비자발적인 측면을 혼합해서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혼합된 유형의 행위들이 전체적으로 보면 자발적이라고 분석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러한 분석의 근거로 지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행위의 원리들이 행위자 안에 있기 때문이다. 협박을 수용할 수도 있고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행위의 단초가 행위자 안에 있었다는 분석이 허용되며, 마찬가지로 짐을 배 밖으로 던지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행위자 안에 있었음에도 짐을 던졌기에 역시 행위의 단초는 행위자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되었다고(anankasthenai) 얘기되는 이유는 아무도 그런 행위를 그 자체로 선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한 이런 행위는 단적으로는, 즉 다른 조건이 없을 경우 그 자체로 선택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본다면, 비자발적인 행위이다.

 

 

□  합리적 선택의 정의

 

. 자발성과 합리적 선택(원문)

이제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을 규정했으므로, 다음으로 합리적 선택(prohairesis)에 관하여 논의할 차례 이다. 왜냐하면 합리적 선택은 덕에 가장 고유한 것으로 여겨지고, 행위를 보고 그 사람의 성품(ethos)을 판단할 때 보다 더 잘 성품을 판단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리적 선택은 명백히 자발적인 것이지만, 자발적인 것과 꼭 같은 것은 아니다. 자발적인 것이 더 널리 적용된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다른 동물들도 자발적인 것에는 참여하지만, 합리적 선택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우리는 별안간 하게 된 행위들을 자발적 이라고 말하지만, 합리적 선택에 따라 행위 된 것으로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합리적 선택이 자신의 덕론 혹은 덕의 윤리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명시적인 언급을 보여주고 있다. 즉 합리적 선택은 덕에 가장 고유한 것이며 어떤 합리적 선택을 하는가를 보는 것이 행위를 보고 판단할 때 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려 준다는 것이다. 행위의 결과는 많은 우연적인 요소 때문에 애초에 그 사람이 의중에 두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려 주지 못하지만 어떤 사람이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더 정확하게 알려 준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다.

 

. 자발적이지만 합리적 선택은 아닌 것들

합리적 선택의 유개념이 자발성에 의한 것임을 지적했다면 남은 것은 자발성 중에서 합리적 선택이 아닌 것들을 갈라내는 일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定義論)에 따라 정의를 유개념과 종차로 구성된다고 할 경우 이제부터 분석되는 일은 자발적인 행위의 영역에서 합리적 선택은 아닌 것들을 갈라내면서 왜 그것이 합리적 선택이 아닌지를 지적하는 일이다. 자발성에서 합리적 선택과 합리적 선택이 아닌 것을 갈라내는 일은 결국 합리적 선택의 종차를 구하는 일이다.

 

 

. 욕구와 격정(원문)

합리적 선택을 욕구 혹은 격정 혹은 바람(所願) 혹은 어떤 종류의 의견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올바르게 말한 것 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합리적 선택은 이성이 없는 것들과는 공유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욕구나 격정은 그것들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욕구는 합리적 선택에 반대되지만, 욕구가 욕구에 대하여 반대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욕구는 즐거운 것과 괴로운 것에 관계하지만, 합리적 선택은 괴로운 것과 즐거운 것 어느 것에도 관계하지 않는다. 즉 즐거움과 괴로움은 욕구의 대상이지만, 합리적 선택의 대상은 아니다. 격정(thymos) [욕구보다도] 한층 더 합리적 선택과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격정 때문에 행해진 행위들은 가장 합리적 선택에 따르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합리적 선택을 갖는 주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직 이성을 가진 것만 이 합리적 선택을 가질 수 있다. 욕구와 격정은 동물들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니 같을 수 없고, 합리적 선택이 관계하는 대상은 욕구의 대상인 즐거움이나 괴로움이 아니기에 둘, 즉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것은 욕구나 격정에 따른 것과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욕구나 격정을 합리적 선택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갈라내는 중요한 이유는 이성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 때문으로 보인다.

 

.  바람 (소원)(원문)

또 그것은 바람(boulesis)과 가까워 보이기는 하지만 바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는 합리적 선택이 없으며, 만일 누군가가 합리적으로 선택했다고 주장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들 대해서 조차도 바람은 있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불사에 대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바람은 결코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 가령, 어떤 배우나 운동 선수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같은 것들― 에 대해서도 또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러한 일들을 합리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으며, 다만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만을 우리는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게다가, 바람은 한층 더 목적에 대해서 관계하지만, 합리적 선택은 그 목적을 위한[그 목적에 이바지하는] (to pros to telos) 들에 관계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건강해지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들을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며, 또 그렇게 주장하지만, [행복하게 되기를] 합리적으로 선택한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합리적 선택은 우리 자신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들(ta ephi hemin)에 관계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바람의 대상과 합리적 선택의 대상이 어떻게 차이 나는 지를 밝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불가능한 것이나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바랄 수는 있지만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람은 불사를 바라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상을 받기를 바라지만 이런 것들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바람이 주로 목적과 관련되는 데 반해 합리적 선택은 목적에 이르는 수단에 주로 관계한다. 건강해지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주로 합리적인 고려를 통해 선택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건강해지는 가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비교를 통해서 끌어내는 합리적 선택의 특징은 합리적 선택의 대상은 우리 자신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들이며 주로 수단적인 성격을 갖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 믿음(doxa)(원문)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믿음(doxa)일 수도 없다. 왜냐하면 믿음은 모든 것들에 관계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며, 또 우리 자신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들에 관해서 보다, 영원한 것들과 불가능한 것들에 관해서도 못지않게 관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믿음들은 참과 거짓에 따라서 구분되어, 나쁨과 좋음에 따라서 구분되지 않지만, 그러나 합리적 선택은 [참과 거짓으로보다는] 오히려 나쁨과 좋음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합리적 선택이 믿음과 일반적으로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 어떤 종류의 믿음과도 같지 않다. 왜냐하면 좋은 것[행위]이나 혹은 나쁜 것[행위]을 합리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특정한 도덕적 성질을 갖는 사람이 되지만, 어떤 믿음을 가짐으로써 그렇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상 차원의 비교, 즉 합리적 선택의 대상은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믿음 혹은 견해는 영원한 것들이나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도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은 앞서 보아 왔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큰 차이는 믿음들이 참과 거짓을 기준으로 나눠지는데 반해 합리적 선택의 경우 좋음과 나쁨을 기준으로 나눠진다는 것, 또 어떤 합리적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는 어떤 믿음 혹은 견해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와는 달리 한 인간의 도덕적 성질에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다는 것이다. 믿음은 주로 진리가 문제되는 영역이라면 합리적 선택은 좋고 나쁨과 같은 윤리적 영역에 속한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 합리적 선택의 일차적 정의(원문)

합리적 선택이란 것이 앞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혹은 어떤 종류의 것인가? 그것은 명백히 자발적인 것이지만 자발적인 모든 것이 합리적 선택의 대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면 합리적 선택은 미리 숙고했던 것인가? 왜냐하면 합리적 선택은 이성과 사유(logos kai dianoia)를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이름(prohairesis) 자체도 다른 것들에 앞서(pro) 택해진 것(haireton)임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발적인 것이라는 유개념에서부터 출발해서 숙고라는 계기를 집어내면서 합리적 선택은 이성과 사유를 수반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지적한다. 이러한 일차적인 정의는 헬라스어의 ‘합리적 선택’(prohairesis)의 어원 분석으로부터도 뒷받침을 받는다고 주장하는데 사정이 이러하다면 합리적 선택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길은 합리적 선택을 다른 자발성으로부터 구별 지어 주는 숙고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갖는 것인지를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  합리적 선택의 대상

 

. 숙고의 대상(원문)

우리는 모든 것에 관하여 숙고하는가? 또 모든 것이 ‘숙고의 대상’(bouleuton)인가? 혹은 어떤 것들에 관해서는 숙고가 없는 것인가? 아마도 우리는 숙고의 대상에 의하여 어떤 바보나 미친 사람이 아니라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그것에 관하여 숙고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해야만 한다.

 

합리적 선택을 자발성의 영역에서 주로 숙고의 대상과 관련한 것으로 규정하고, 무엇이 숙고의 대상인지를 탐구하려 한다. 모든 것이 숙고의 대상이지는 않으며 아무나 숙고하는 것이 숙고도 아니라는 지적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탐구의 한 출발점을 마련한다. 바보나 미친 사람이 하는 숙고까지 모두 숙고의 대상으로 잡을 수는 없고 정신이 온전한 사람, 보다 충실하게 번역하자면 ‘누우스(nous)를 가진 사람’이 숙고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원문)

영원한 것들에 관해서는 아무도 숙고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우주에 관하여 혹은 정사각형의 대각선은 변과 통약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관해서. 또 운동하고 있지만, 필연으로부터 혹은 자연에 의하여 혹은 다른 어떤 원인에 의하여 ‘늘’ 같은 방식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들에 관해서도 아무도 숙고하지 않는다. [] 또 어떤 때에는 이렇게 또 다른 때에는 저렇게 일어나는 것들, 예를 들면 가뭄이나 비 내림에 관해서도 아무도 숙고하지 않는다. [] 우리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 즉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숙고한다. 위의 얘기에서 빠져 있는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왜냐하면 자연, 필연과 운이 원인으로 여겨지지만, 더 나아가 지성(nous)과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것도 원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각각은 그들 자신이 스스로 행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숙고하는 것이다.

 

숙고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들에 관계한다. 영원한 것들이나 늘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들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대상 수준에서의 차이를 ‘그것들의 원리가 다르게 있을 수 없는 대상’들과 ‘그것들의 원리가 다르게 있을 수 있는 대상들’ 사이의 차이로 정식화한다. 수학적 대상을 다루는 학문이나 형이상학의 경우, 혹은 자연학의 경우가 전자에 포섭되며 윤리학, 정치학, 시학 등의 대상을 포괄하는 후자의 대상으로부터 나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자연이나 필연, 경우에 따라서는 운 혹은 우연이원인으로 등장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지성(nous)이나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원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탈옥하지 않고 감옥에 앉아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원인을 뼈와 관절의 운동으로 설명하지 않고 그렇게 머무르는 것을 최선의 것으로 판단한 지성을 원인으로 들었다. 지금 아리스토텔레스가 원인의 예로 지성을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설명 방식을 따르는 것이며 윤리적 행위의 고유한 원인으로서의 지성 내지 인간의 힘을 들고 있는 것이다. 윤리적 행위의 원인이라고 할 지성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중 최선의 것이라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동원하는 지적 능력이 숙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숙고는 자연적인 것, 필연적인 것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것에 관계한다.

 

. 비결정적인 것(원문)

엄밀하고 자족적인 학문적 지식에 대해서는 숙고가 있지 않다. 예를 들면 철자에 관하여 철자를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미심쩍어 할 일이 없을 테니까. 오히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지지만 늘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것들에 관해 우리는 숙고한다. 예를 들면 의술 혹은 돈을 버는 기술에 따르는 것들에 관해서 숙고하는 것이다. [] 따라서 숙고함은 대체로 그런 것(hos epi to poly)에 관계하면서 막상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분명하지 않은 것들, 즉 비결정적인 것들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들에 관계한다. 중대한 문제들을 숙고할 때에는 우리가 충분하게 잘 판단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능력을 신뢰할 수가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숙고는 대체로 그런 것 혹은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만 막상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분명하지 않은 것에 관련한다. 우리가 행할 수 있으면서 비결정적인 것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숙고하는 것이다.

 

.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원문)

우리는 목적들에 관해서 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들에 이바지하는 것들에 관해서 숙고한다. 왜냐하면 의사는 병을 치료할 지에 관해서 숙고하지 않으며, 또 웅변가는 자신이 청중을 설득시킬지에 관해서 숙고하지 않으며, 또 정치가는 좋은 질서를 세울지에 관해서 숙고하지 않으며, 또 이 밖의 어떤 다른 사람도 자신의 학문이 목표로 하는 그 목적에 관하여 숙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목적을 설정해 놓고, 그런 다음 [그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어떻게[방법]와 수단들’을 검토한다. 만일 여러 가능한 수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그 중의 어떤 것을 통해서 그것에 가장 쉽게 또 가장 훌륭하게 도달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숙고의 대상은 인간이 행할 수 있으며 일종의 비결정성을 내포 하는 것이라는 규정에서 더 나아가 목적 자체가 아니라 목적에 이바지 하는 것들을 우리가 숙고한다고 한다.

 

. 숙고의 대상에 분석에 의한 합리적 선택의 정의(원문)

그리하여 합리적 선택의 대상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에 대한 숙고적 욕구의 대상이므로, 합리적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들에 대한 숙고적 욕구(bouleutike orexis)일 것이다. 왜냐하면 숙고한 결과로부터 판단하면서 우리는 숙고에 따라서 그것을 욕구하기 때문이다.

 

합리적 선택이 갖는 이성적 따짐의 측면은 숙고의 계기에서 잘 드러나고 있지만 ‘욕구’의 계기는 어디서 왔는가? 아마도 이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건강이라는 목적에 이르기 위해서 수단을 강구한다고 했을 때 이미 목적에 대한 욕구를 전제한다는 것 쪽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는 치료를 통해 건강한 상태에 도달 하기를 목적으로 욕구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숙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건강을 위한 수단의 강구는 건강이라는 목표가 당연하게도 욕구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이 계기, 즉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면서 수단을 강구하게 하는 목표 자체에 대한 욕구의 계기가 합리적 선택을 숙고적 욕구로 정의하는 이유로 보인다.

 

 

□  합리적 선택과 품성 : 책임의 문제

 

아리스토텔레스는 합리적 선택을 자발성의 영역으로부터 숙고의 계기를 가지고 정의했었다. 즉 합리적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에 대한 숙고적 욕구라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을 덕에 가장 고유한 것으로 지적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러한 논의가 갖는 함축은 풍부할 뿐 아니라 덕론 일반에 아리스토텔레스다운 특징을 부여한다. 그것은 합리적 선택이 윤리적 책임의 핵심에 서 있으며 이 중핵으로부터 칭찬과 비난, 동정과 연민과 같은 자발성과 비자발성의 한계에 관한 문제, 책임의 한계에 관한 문제들이 대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수준에서든 면책의 사유가 될 비자발성을 들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합리적 선택이 각 개인의 책임 하에 있듯이 그로부터 연원 하는 개개인의 덕과 악덕 역시 개인의 책임 하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아리스토텔레스가 검토하는 것들은 단계 단계마다 면책의 사유로 들어오는 비자발성의 계기를 정확히 분석해서 책임의 소재 및 한계를 규정해 주는 일이다.

 

.  합리적 선택과 품성(원문)

바람(boulesis)의 대상은 목적이고, 그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들에 관해서 우리는 숙고하고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므로,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들에 관한 행위들은 합리적 선택에 따르는 것이고 또 자발적으로 행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덕의 활동(energeia)은 이런 것들에 관계한다. 그러므로 덕 또한 우리에게 달려 있으며 악덕도 역시 마찬가지다.

 

행위를 보고 그 사람의 성품(ethos)을 판단할 때 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가를 보는 것이 더 잘 성품을 판단하게 한다는 언급이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제 합리적 선택의 대상들이 바로 덕의 활동들이 관계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두 번째 연결을 지적한다. 합리적 선택이 그 정의상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에 관련하듯이 덕과 악덕 역시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 자발성과 책임의 문제

 

. 덕과 악덕의 책임에 관한 첫 번째 논변 : 원칙(원문)

‘그 누구도 자발적으로 악하거나(hekon poneros) 마지못해 행복하지(akon makairos) 않다’고 말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거짓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참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마지못해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악덕은 자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방금 앞에서 말한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논쟁해야만 하고 우리는 인간 이 행위의 원리이고 인간이 아이들을 낳는 것처럼 그 행위들을 낳는다는 것을 또한 부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명백하다고 하면, 또 우리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을 넘어서 어떤 다른 원리들로 이끌려 갈 수 없다면, 그 원리들이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들은 그 자체 또한 우리에게 달려 있으며 자발적인 것들이다.

 

덕과 악덕은 자발적인 것이며 그런 한 인간의 책임 영역하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 누구도 자발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으며 악을 행했다면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 것인지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는 주장은 이미 소크라테스에서 읽을 수 있었다. 과연 인간의 악덕의 책임은 무지인가? 그 무지는 비자발성을 담보하기에 인간은 악인을 불쌍히 여길 수는 있어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명하게 악덕은 자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만약 악덕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 뿐 아니라 인간이 아이를 낳는 것처럼 행위들을 낳는다는, 인간이 행위의 원인이라는 원칙적인 입장까지 부정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합리적 선택의 대상이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또 무엇을 사려 깊게 선택하는지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우리가 악덕을 가졌다는 것은 악한 것을 습관적으로 사려 깊게 선택했다는 것으로 환원될 것이며 그런 한 우리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 안에 머물러 있다. 그 영역 안에 있음을 인정하는 한 자발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적 지적이다.

 

. 덕과 악덕의 책임에 관한 두 번째 논변 : 보상과 징벌(원문)

입법가들은 만일 행위자가 그 무지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면, 무지 자체에 대해서도 징벌을 가한다. 예를 들어 술 주정꾼에게는 두 배의 형벌이 가해진다. 왜냐하면 그 원리가 자신에게 있어서, 술에 취하지 않는 것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었고 또 그가 술에 취한 것도 그의 무지의 탓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마땅히 알아야 하고 또 아는 것이 어렵지 않은 법률의 어떤 규정들을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징벌을 가한다. 그들은 행위자의 부주의로 해서 모른다고 여겨지는 다른 경우들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징벌을 부여한다. 무지하게 되지 않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이유로 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자신이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악덕이 자발적이며 따라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하는 두 번째 논변은 입법의 현실이다. 입법을 통해서 읽을 수 있는 보상과 징벌의 현실은 덕과 악이 우리에게 달려있음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술 주정꾼이 저지른 잘못은 술에 취해서 모르고 한 행위라고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배의 형벌이 가해진다. 술에 취하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그래서 무지의 원인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결과로서의 무지를 낳았으니 이것에 대한 형벌이 필요하며, 다른 한편 그러한 무지 상태에서의 잘못 역시 형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 아는 것이 어렵지 않은 규정들을 모르는 것 역시 징벌이 대상이 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설명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결국 결과로 나온 무지의 관점이 행위를 용서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지를 스스로 만들어 낸 점이 책임의 원인으로 평가되는 법 현실에 비추어 이러한 무지가 변명의 구실이 아니라, 오히려 처벌의 대상임을, 따라서 그것의 전제로서 자발성의 영역에 있음을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 덕과 악덕의 책임에 관한 세번째 논변 : 용서받을 수 없는 무지(원문)

나쁜 짓을 해왔기 때문에 부정의 한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서 혹은 술에 취한 채 그리고 그러한 일거리에 빠져서 지내 왔기 때문에 방탕한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그 자신에게 탓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일에 관련된 활동들이 그에 상응하는 그러한 사람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 그런데 각각의 일에 관련된 활동으로부터 거기에 상응하는 품성 상태(hexis)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몰지각한 사람이다.

 

각각의 행위 차원을 넘어 본격적인 의미의 품성 상태에 관해 제시된다. 즉 덕과 악덕에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 수준에서 제기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행위인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야단을 치지만 어느 시점을 넘으면 아예 어떤 부분에 대해 주의를 할 수 없는 그런 인간이 되는데 그런 인간이 되고 난 이후의 부주의를 어떻게 비난할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답은 그런 인간이 된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한 이런 변명은 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반복적으로 또 습관적으로 한다면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된다는 것, 그런 활동에 상응하는 품성 상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너무도 뻔한 일인데 이것을 몰라서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변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덕과 악덕의 책임에 관한 네 번째 논변 : 돌이킬 수 없는 상태(원문)

게다가 부정의를 행하면서 불의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거나 혹은 방탕한 행위를 하면서 방탕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 그가 바라기만 한다고 해서 부정의 하게 되는 것을 그치고 정의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병든 사람 역시 단지 바람으로써 건강하게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의 병이 그가 자제력 없이 살고 의사들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써 생긴 것이라면 그는 자발적으로 병에 걸린 것이다. 그 전에는 물론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허용되어 있었지만, 일단 그것을 버린 다음에는 더 이상 그렇지 않은 것이다. 마치 돌을 손안에 지니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가능한 일이지만 일단 돌을 던진 후에는 더 이상 그것을 돌이킬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이와 마찬가지로 불의한 사람이나 방탕한 사람에게도 애초에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허용되어 있었기에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렇게 되었다면, 더 이상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품성 상태에 관한 보다 본격적인 이 논변을 통해 덕과 악덕이 인간의 책임 하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논점은 일단 품성 상태의 어느 단계 이상으로 들어가게 되면 단순한 바람(boulesis)만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누구도 병에 일부러 걸리고 싶어하지 않지만 만약 그의 병이 자제력 없이 살아온 탓에, 또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아 생긴 것이라면 자발적으로 병에 걸린 것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한다. 마약 중독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마약 중독의 상태에 일단 들어가게 되면 마약 중독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는 행위들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마약 중독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그 앞에 존재했던 한, 자신이 만든 마약중독의 강제 때문에 한 행위까지도 그의 책임이다. 이러한 예가 제시하는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일련의 행위들을 거쳐 악덕에 도달하고 일단 악덕에 도달하고 나면 차단되는 가능성들이 있긴 하지만 애초에 그러한 상황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었던 가능성이 그에게 허용되는 한 그 악덕 자체는 그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