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믿음 ......
창조론을 바탕으로 인류탄생을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인류는 유기물의 진화론을 토대로 현존한다"고 말 한다면 믿음 없는 불쌍한 이라고 비난 받기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 동안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밝혀진 진화의 단계들은 토막 난 일부분에 지나지 아니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 할 만큼 객관성이 제시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도대체, "나와, 내가 속한 이 사회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답을 겸해서 “나”를 중심으로 한 자료들을 모아 정리하여 본다. 거창하게 고고학. 인류학과 같은 전문자료는 아니다. 일반 공개된 자료로서 근거도 충분하지 못하며, 깊이도 없는 일반상식 수준의 자료 임을 전제로 한다.
7만년 전의 인류 총 인구는 약 2천 여 명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내용이 얼마 전 보도된 바 있다, 그 후의 기간 동안 씨를 불려 현재 세계인구가 66억 명에 이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오씨 시조로부터 29 대 째가 된다. 한 세대(世代, One generation)는 대략 20~30년으로 환산할 수 있다. 기록상 우리나라 시조라고 하는 조상들은 대다수가 기껏해야 600 ~1,000년 사이의 이전 사람들에 불과하다. 오씨의 경우는 고려조 말 중국에서 한반도로 내려와 벼슬자리 하다가 씨를 불린 오씨의 족속이라고 전해 진다. 그 시조의 이전 세대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삼국지에 나오는 오 나라 사람들이지만 약 2천년 동안 띄엄띄엄 역사의 한 구석에 등장하곤 한다. 기록상으로 선대의 이야기를 기껏 거슬러 올라 가본다고 해야 2500년, 약 100 대까지 밖에 올라가지 못한다. 결국 “내”가 어떻고 하는 2천년 근방의 이야기는 지구의 역사 45억년이나, 초기인류라고 하는 호모 사피언스가 출현된 20~50만년에 비하면 아주 최근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1983년 우리나라 청원에서 발견된 후기구석기 시대의 4만년 전 유골(일명, 흥수아이)은 대략 1,600 대(代, Generation - 한 세대를 약 25년간으로 환산) 이전쯤의 우리나라 어느 씨족의 조상이 된다. (중국에서의 기록까지 포함한 나의 시조가 100대 정도에 불과함에 비하면 까마득하니 아주 먼 조상임) 그 아이가 이씨네 집안인지, 박씨네 혹은 김씨네 집안의 선조인지는 모른다. 그 아이도 결국은 7만 여 년 전 아프리카를 거쳐 바이칼호와 아시아로 넘어 온 씨족일 것이라는 추정들이다. 약 3,000 대(代) 정도만 위로 거슬러 올라가서 조상이 같아진다고 한다면 그리 길지 않은 기간 같다는 느낌이 든다. 지구 나이 45억년이 너무 허황되리만큼 긴 기간이기에 그러할까?
■ 인간의 아프리카 기원설
□ 화석 자료
. 현대 인류는 처음 아프리카에서 발생해서, 이후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갔음.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화석 가운데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석은 16만년 전의 것. 중동아시아에서 발견된 화석은 9만년전의 것. 오스트레일이아에서 발견된 화석은 6만년전의 것. 유럽에서는 4만~3만년전의 화석이 발견되었음
. 네안데르탈인과 현대 인류가 공존한 시기가 있음. 현대 인류의 화석 연대가 4만년이 이른 10만년 이전이라는 점 . 유럽에서 새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이 3만년 전의 현대 인류 화석에 비해
이후인 2만 8천년 전의 것이라는 점
. 유전자적 공통성이 많은 현생인류 . 최초의 호모에렉투스, 아프리카에서 탄생: 약 190만년 전 . 다른 지역으로의 방산(제1차 아프리카 방산): 약 180만년 전으로 추정 이는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호모 에렉투스 화석을 K, Ar 연대측정으로 계산한 결과임. 호모 사피엔스, 아프리카에서 출현: 16만년 전
□ 아프리카 기원설의 약점
. 현생인류의 네안데르탈인 대체 과정 . 근소한 경쟁적 우위로 인한 한 집단의 다른 집단 파멸(에즈라 주브로) . 해부학적인 측면의 진화 후 행동학적인 측면의 발달. 기후의 변화에 따른 남북 이동
□ 최초의 현대인은 과연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는가?
. 최초의 현대인은 아프리카에서 나타나야 함. Australasia(Indonesia, New Guinea, Australia)이 지역에서의 종족 형성 때부터의 연속적 진화. 중국. Zhoukoudian의 두개골 화석: 아프리카 특성의 유입과 같은 증거는 찾아볼 수 없고,
연속적인 형태만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대의 중국인종은 동아시아로 이전되어 감
. 유강인 연대 측정결과: 7만~13만년 전 사이 혹은 그 이전에 생활했던 인류라는 것
■ 7만년 전 인류
(신문기사 모음)
□ 인류가 7만 년 전 기후변화로 멸종 직전에 처했었다.
2008.04.26.
인류가 7만 년 전 기후변화로 멸종 직전에 처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의 분석 결과 7만 년 전쯤 인류는 극심한 가뭄으로 2000명 정도만 살아남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AP통신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팀이 아프리카 두 부족의 미토콘드리아 내 DNA를 분석해 도출한 결론이다.
연구팀은 2005년부터 DNA 분석을 통해 인류의 발자취를 뒤쫓는 ‘제노그래픽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 프로젝트는 미 국립지리학회, IBM 및 여러 재단의 후원 아래 이뤄지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분석 결과를 ‘미국 유전학 저널’ 최신호에 게재했다. 이전의 연구에 따르면 모든 인류는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미토콘드리아 이브’로 불리는 한 여인의 후손들이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은 초기 석기시대인 6만 년 전쯤이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번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초기 인류는 꾸준히 늘어가다 13만5000~9만 년 전 아프리카에 가뭄이 닥치면서 위기를 맞게 됐다. 이 무렵 인류는 두 무리로 나뉘어 아프리카 남부와 동부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뭄이 심해지면서 더욱 작은 그룹으로 분산돼 독립된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가뭄이 끝나갈 시점에 다시 합쳐졌다는 것이다.
현 아프리카인은 이들 두 그룹이 합쳐져 형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초기 인류의 주류는 아프리카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했던 것으로 짐작됐다. 연구팀은 “극심한 기후변화로 갈라졌던 초기 인류가 위기 후 다시 합쳐 온 세상으로 나아갔다는 서사 드라마가 DNA에 새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한때 2000명까지 줄었다는 인류는 7만 년이 지난 지금 66억 명으로 불어났다. 일부 과학자는 연구팀이 내놓은 미토콘드리아 분석자료를 토대로 다른 추정도 할 수 있다는 이견을 내놓고 있다.
■ 아초기 인류 바다 건너 전세계 퍼져
BioToday (2005.05.17.), NYT, 英 글래스고大
현생 인류는 동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분자생물학자들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초기 인류를 추적한 결과, 약 20만년 전 출현한 ‘아담과 이브’들은 배를 타고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이동한 뒤 이란을 거쳐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대학 빈센트 매컬리 교수가 이끄는 분자생물학 연구팀이 말레이시아 오랑아슬리족의 유전자를 분석, 초기 인류의 이동경로를 새롭게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오랑아슬리는 6만3000~4만2000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말레이로 넘어온 첫 이주민의 후예들. 이들은 거친 환경에 적응, 첫 이주지에 정착해 수만년 간 살아왔기 때문에 초기인류의 ‘이주 샘플’로 여겨져 왔다.
학자들이 ‘아프리카 엑소더스’라 이름 붙인 초기 인류의 대이동은 약 6만5000년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5만년전에는 인도와 동남아를 거쳐 오스트랄라시아(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일대)에 진출했고, 5000년 뒤에는 이란을 지나 레반트(중·근동)에 이르렀다.
유럽 등지에 인류가 정착한 것은 4만년전 이후. 지금까지는 인류가 아프리카를 거슬러 올라 이집트와 시나이반도를 거쳐 흩어진 걸로 추정됐지만 이번 연구결과는 훨씬 남쪽에서 바다를 통해 이주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인류의 이주는 빙하기 끝무렵에 이뤄졌기 때문에 북쪽으로의 확산이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초기 인류 연구는 주로 고고학 유적지들을 통해 이뤄졌었지만 지금은 현재의 인간분포에서 시간을 거슬러 역추적하는 유전자분석 방식이 더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 출발이 된 것은 미토콘드리아 디옥시리보 핵산(DNA) 분석. 20억년 전 생물 발생 초기 박테리아가 세포에 들어와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미토콘드리아는 부모의 것이 섞이지 않고 모계로만 유전된다. 80년대 중후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학자들은 인류가 동아프리카에서 태어난 ‘7명의 이브’의 후손들이라는 추측을 내놨었다. 최근에는 Y염색체를 추적해 ‘아담’을 찾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이번 연구 결과 20만년 전 동아프리카에는 약 550명의 ‘이브 후보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주 행렬에 끼었던 유전자의 소유주는 그보다 적었으며, ‘유전자 표류(genetic drift)’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 단 하나의 DNA 계열만이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이는 전세계 인류가 하나의 가계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계와 유럽계의 유전적 분화가 이뤄진 시기와 이주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이견이 남아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사이언스’ 13일자에 실린다.
□ 인류의 기원
. 1990년대 중반 - 아프리카 기원설 가설수준에서 제기. 2002년 - '진짜 이브(The Real Eve)'란 대중적인 과학다큐멘터리를 발표(디스커버리). 2005.5. -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재확인하는 논문 결과를 발표(사이언스)
연합뉴스 (2005.5.13.)
.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13일자에서 초기 인류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남쪽 경로인 아라비아반도 해안을 따라 인도와 인도네시아, 호주로 이주했음을 시사하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고 밝힘
. 이번에 제시된 초기 인류의 새 이동 경로는 이들 지역에 사는 다양한 인종 주민들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연구논문 2편을 토대로 한 것. 기존 학설: 초기인류가 이집트 지역과 시나이 반도를 통과해 중동으로 이동했다고 추정
. (논문 1 ) .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 빈센트 머콜리 박사팀 . 말레이시아 토착원주민 오랑 아슬리족과 인도, 호주 등 다른 지역 주민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결과를 토대로 아프리카에서 해안선을 따라 인도, 호주로 이동한 경로를 제시했음
. (논문 2 ) . 인도 하이데라바드 세포ㆍ분자생물학센터의 쿠마라사미 탕가라지 박사팀 . 안다만과 니코바르 제도의 토착주민을 조사한 결과 안다만 제도 2개 부족이 아프리카 탈출 후 비교적 일찍 유전적으로 고립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힘
□ 阿초기 인류 바다 건너 전세계 퍼져
문화일보(2005.5.13). 현생 인류는 동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음
분자생물학자들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초기 인류를 추적한 결과, 약 20만년 전 출현한 ‘아담과 이브’
들은 배를 타고 인도와 동남아시아로 이동한 뒤 이란을 거쳐 유라시아 전역에 퍼 져나간 것으로 보임
.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대학 빈센 트 매컬리 교수의 분자생물학 연구 팀이 말레이시아 오랑 아슬리족의 유전자를 분석, 초기 인류의 이동경로를 새롭게 확인 했다고 보도함.
. 오랑아슬리는 6만3000~4만2000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말레이로 넘어온 첫 이주민의 후예들. 이들은 거친 환경에 적응, 첫 이주지에 정착해 수 만년 간 살아왔기 때문에 초기인류의 ‘이주 샘플’로 여겨져 왔음
. ‘아프리카 엑소더스’라 이름 붙인 초기 인류의 대이동은 약 6만5000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됨. 5만년 전에는 인도와 동남아를 거쳐 오스트랄라시아(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일대) 에 진출했고, 5000년뒤에는 이란을 지나 레반트(중·근동)에 이르렀음
. 유럽 등지에 인류가 정착한 것은 4만년 전 이후. 지금까지는 인류가 아프리카를 거슬러 올라 이집트와 시나이 반도를 거쳐 흩어진 것으로 추정됐지만 이번 연구결과는 훨씬 남쪽에서 바다를 통해 이주가 이뤄졌음을 보여줌. 인류의 이주는 빙하기 끝 무렵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북쪽으로의 확산이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설명했음
. 초기인류에 관한 연구방법의 변화 . 10 여년 전에는 주로 고고학 유적지들을 통해서 연구를 수행했지만, . 현재는 미토콘드리아 디옥시리보 핵산(DNA) 분석으로 연구함
. 생물 발생초기(20억년 전) 박테리아가 세포에 들어와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미토콘드리아는 부모의 것이 섞이지 않고 모계로만 유전됨. 80년대 중후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학자들은 인류가 동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7명의 이브’의 후손들이라는 추측을 내 놓았었음, 최근에는 Y염색체를 추적해 ‘아담’을 찾는 연구도 진행중임
. 이번 연구 결과 20만년 전 동아프리카에는 약 550명의 ‘이브 후보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그러나 실제로 이주 행렬에 끼었던 유전자의 소유주는 그보다 적었으며, ‘유전자 표류(genetic drift)’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 단 하나의 DNA 계열만이 살아남은 것으로 보임. 연구팀은 “이는 전세계 인류가 하나의 가계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라는 설명. 아시아계와 유럽계의 유전적 분화시기, 이주시기 등은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음(‘사이언스’ 13일자)
□ 동아일보 (2005.5.12)
. 중국의 한 연구결과, 중국인 조상은 아프리카 동부에서 왔다고 함
중국 일간지 신징(新京)보는 12일 중국을 포함한 국제합동연구팀이 작성한 ‘인류 이주유전 지도’에
따르면 중국인의 조상은 아프리카 동부에서 기원해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와 점차 한족과
소수민족들로 분화돼 나갔다고 보도
. 이 유전지도는 지난 5년간 세계 여러 인종의 유전자(DNA) 샘플 10만 건을 분석해 완성됨 지금까지는 오늘날의 중국인이 40만년 전 베이징원인에서 진화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었음
이번 연구는 이러한 학설을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 특히 각지에 존재했던 원인들 가운데 아프리카
동부의 원인만이 유일하게 현대인으로 진화했다고 제시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음
연구진은 약 15만년 전 아프리카 동부에 백인, 황인, 흑인 등 여러 인종의 부락들이 생겨났고 그 가운데
일부가 10만년 전 아프리카를 떠났으며 그 중 황인종은 동남아를 거쳐 중국에 안착했다고 주장
또 이들이 3만년 전부터 분화되기 시작해 한족, 티베트족, 이족 등 여러 종족으로 나뉜 것으로 추정함
이 내용들은 이미 2002년 무렵 '진짜 이브(The Real Eve)'란 연구를 통해 소개된 것과 유사함
. "Real Eve"학설은 아프리카지역 밖에 생존하고 있는 현생인류의 유전적 특성은 아프리카의 한 여성에서 비롯돼 전세계에 퍼졌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함
. 이 연구는 어머니에서 딸에게로만 연결되는 미토콘드리아 DNA분석으로 시작됨. 연구진은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 여성군과 백인 여성군의 유전자를 분석함. 흑인 여성군의 유전자는 모두 달랐고, 백인 여성군의 유전자는 모두 같았음
결과적으로 흑인 여성군의 어머니 조상은 모두 다르지만, 백인 여성군은 하나의 어머니로부터
유전형질을 내려 받았다는 결론이 나옴
. 이를 통해, 첫째, 현생인류의 시작은 아프리카며
둘째, 현재의 흑인들은 최초 현생인류의 후손이면서 수많은 어머니들의 혈통을 이어받고 있음
셋째, 백인 황인종 등 타 지역 후손들은 아프리카를 떠난 소수의 후손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짐
. 연구진은 목숨을 걸고 아프리카 밖으로 진출한 현생인류는 극소수에 불과 했다고 추정15만년 전 탄생한 현생인류는 8만년쯤 바다를 건너 중동으로 이주하고. 이곳에 진출한 현생인류는 소수였기에 어머니 혈통이 단일화되는 과정을 밟게 됨. 오랜 동안 대를 이어오면서 자식이 없는 어머니, 아들만 출산하는 어머니들이 나올 수 밖에 없어 결국 수 백 명 안팎의 종족사회는 단일계통의 어머니 유전자로 수렴하게 되기 때문이란 설명
. 중동지역에서 모계혈통상 유전적 단일성을 확고하게 다진 인류는 서쪽으로 이동해 유럽토착 유원인들을 물리치고 백인으로 번성하게 되고. 동쪽으로 이주한 인류는 현재의 아시아인, 호주원주민, 인디언 등으로 진화함
. 피부색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유전요소가 아니라는 것이 연구진의 의견. 햇빛의 양에 대해 생존을 위한 적응과정이 피부색으로 나타나며 흑인에서 백인으로 피부가 적응하는데 2만년이면 충분하다고 과학자들은 주장함. 현생인류의 역사 15만년 가운데 피부색의 분화는 최근 5만년 사이에 진행된 적응의 역사에 불과함. 백인중심의 역사가 진행된 지난 수 백 년 간 아담과 이브는 백인이란 고정관념
흑인이 시조라는데 대하여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 백인들의 노여움과 조롱이 있음
□ 현생인류의 언어 사용
. 유전적 돌연변이였다는 학설. 인간의 언어사용은 인간과 유인원 모두 보유하고 있는 는 FOXP2란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 인간과 유인원이 동일한 FOXP2 유전자를 갖고 있었으나 . 18만년 전쯤 인간에게만 돌연변이가 일어나 언어구사력이 가능하게 됐다고 하는 것. 이 유전자 돌연변이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안면근육 등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함. 돌연변이가 비로서 현생인류를 유인원에서 분리시키는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주장. 그 근거로 언어장애가 있는 요즘 사람들의 FOXP2 유전자가 정상인들과 다르다는 점을 제시
. 결국 인간의 진화에서 최대의 도약은 언어사용의 시작이었다는 주장. 언어사용으로 정보축적 나눔 대물림이 나타나 인류의 집단적 생존능력이 수백 배로 강해졌고 . 구두언어(말)을 사용하면서 사냥을 위한 전략도 예전보다 훨씬 정교해졌을 것임
■ 유전자로 보는 인류의 기원과 이동
최초의 남자 스펜서 웰스 지음, 황수연 역
.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mt DNA)와 Y염색체 DNA를 통해서 인류가 어디서 발생하여 어떻게 전세계로 퍼졌는가를 설명하고 있음
. 유인원 종류는 2300만 년 전에 지구에 출현했고. 200만년 쯤 전에 호모 속에 속하는 생물체가 발생했으며 이들이 세계로 퍼져 나감. . 북경 주구점에서 발견된 구석기 전기의 문명 주인공이 바로 이 호모 에렉투스, 유럽은 네안데르탈인. 이들은 인류의 조상이 아니며, 오늘날 그 유전자를 우리에게 물려주지도 않았음. 네안데르탈인의 경우 그 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왔는데,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것이 스펜서 웰스의 주장
. 인류는 대략 15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한 여성을 공통의 어머니로 하는 한 핏줄이라고 함. 이 사실은 어머니로부터 자식에게 전해지는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를 통해서 알게 된 것,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도 대를 물려가면서 조금씩 변화하게 되는데, 그 변화가 일어난 지점을 추적해서 공통의 조상을 추적해 나가는 것임. 그 결과가 인류는 15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여성의 후손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며, 이 여성을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부름. 물론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살던 시대에 많은 다른 여성들이 있었지만 그 여성들의 후손은 중간에 딸을 낳지 못한 것임. 그러니 15만년 전에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고, 유전자로 밝혀낼 수 있는 한계치가 거기까지인 것일 뿐임
□ 남자의 유전자 특징에 의한 경로추적
. 남자에게만 물려지는 Y염색체를 통해서 인류의 아버지를 추적함. 그 결과 인류는 6만년 전에 아프리카에 살던 한 남자의 후손이라는 것이 밝혀짐. 인류 중 가장 오래된 종족은 부시맨으로 알려진 산족이라고 함. 이들이 몽골로이드의 특징 중 하나인 몽골주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 원 인류가 가지고 있던 특징인 것이며, 다른 종족들이 몽골 주름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 유전자 추적의 결과 발자국이 끊어진 시점이 6만년 전인 것
. 남자 유전자 특징 (M과 숫자로 이루어진 명칭은 유전표식). 비 아프리카인들은 모두 M168의 후손, 유럽인은 M168, M89, M9, 동아시아인은 M168, M89, M175
. 인류는 몇 가지 이유로 6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는데,. 인류 이동 때 먼저 그 지역을 점유하고 있던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을 전멸시킨 것 같음. 이들 초기 인류는 구석기를 만들어서 사용했으며,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후기 구석기 문화라고 부름. 5-6만년 전에 지구를 휩쓴 후기 구석기 문명이 있는 곳에 현생 인류가 있었던 것
. 가장 먼저 아프리카를 떠난 그룹은 해안을 따라 이동하여 오스트레일리아에 도달(유전자 명칭 M130). 이가 일부는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는데 그것은 매우 훗날의 일. 이들 중 일부는 한반도에도 흔적을 남겨서 몽골과 시베리아 지방에도 이 표지가 나타남
. M130이 떠난 직후 또 한 그룹의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 지방에 들어감(이곳의 인류는 M89). 아직 농사를 짓는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류의 이동은 먹을 것을 따라 이루어짐. Y염색체는 한반도로 온 인류의 경로, 아프리카 → 중동 → 중앙아시아 → 동아시아로 이동
. 유라시아의 M9 표지 형에서 갈라져 나온 M175 변이형은 한국인의 30%에서 발견되며, 절대 연대 측정법에 의하면 그 나이가 3만 5천년 정도라고 함. 바로 한국과 일본에 처음으로 후기 구석기인들이 나타난 시기와 일치하는 연대. M175에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변이형으로 M122가 있는데, 이 두 표지형은 전체 극동 지방 주민들에게 발견되는 Y염색체 변이형의 60~90%를 차지. M175는 힌두쿠시와 히말라야 두 산맥의 동쪽에 사는 모든 동양인들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음을 보여주고 있음
. 앞서 가장 먼저 아프리카를 떠났던 그룹을 나타내는 M130 변이형도 동아시아인에게 흔하게 발견됨. 변이형은 몽골인의 50%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동북부 전체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남. 지금으로부터 약 3만 5천년 전 남쪽 해안에서 올라온 집단은 중동 쪽에서 온 유라시아 인들과 중국 땅에서 만났을 것임. 이 증거 또한 유전자 상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바로 동양인에게서 유라시아형 가계와 오스트레일리아형 가계에 속하는 변이형들이 모두 발견되기 때문
. M130 집단은 5만년 전에 중국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남부 중국인과 북부 중국인은 유전적으로 차이를 보이는데, 당연히 남부 중국인들이 M130의 표지를 더 많이 가지고 있음
□ 아메리카 인디언
. 아메리카 대륙의 대표적인 표지는 M3, 이 M3는 아시아에는 없는 표지. 이들에게서는 M45 표지도 발견되었는데, 이 표지는 중앙아시아 표지, 또한 이들은 시베리아 표지인 M242도 가지고 있었음. 즉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중동 - 시베리아를 거쳐 아메리카로 이주했던 것. 따라서 이들은 2만년 전에 아메리카로 진입한 것으로 밝혀졌음. 이들은 그 후 천 년에 걸쳐 남북 아메리카를 모두 장악했음. 이 과정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매머드와 말을 모두 잡아먹어 버렸으며, 지금 아메리카 대륙의 말은 신세계 발견 이후 유럽인들이 가져온 것
. 아메리카 대륙에는 해안을 따라 이동한 M130 표지도 발견됨.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아메린드 어족과 다른 나 데네 어족으로 구분 (M3 그룹은 2만년 전에, M130 그룹은 1만년 전에 이동한 것으로 판명됨)
. 아메리카에서 동북 아시아를 대표하는 M175 표지형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음. 인디언과 우리가 비슷하게 느끼는 점은 이 M130이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뿐. 우리가 복잡한 종족이라는 것은 M130의 영향이 적기 때문일지도 모름
. M175 표지는 벼농사를 지은 집단임. 이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한 대략 1만년 전부터 급속히 팽창했고, 그 팽창의 흔적을 M122라는 유전표지로 남겼음. M175는 3만 5천년 전에 분화되었고, 거기서 다시 갈라진 M122는 1만년 전
■ 네안데르탈 인
이창묵, 플로리다 대 분자생물 연구센터 연구원
. 1993년 벨기에의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의 이빨 근조직에 남아있는 미토콘드리아에서 분리한 DNA 염기서열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정보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
. 최초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1856년 독일 ‘네안데르 계곡’(Neander Valley)에서 발견. 독일어로 계곡은 ‘탈’(Thal), 이 화석을 대표하는 유인원의 이름을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부름
. 네안데르탈인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20만년 전에 이주한 지금 유럽인의 선조로 유럽 땅에 약 4만년 전에 정착했으나. 몇 천 년이 지난 뒤에 유럽에서 갑자기 사라졌음. 이 현상은 흥미로운 의문을 남김, 누구였으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 19세기 인류학자들이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을 발견하기 시작했을 당시에 이들이 해부학적으로 현대인과 닮았으나 아둔하면서 크고 구부정한 짐승 정도로만 인식.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새롭게 발견되는 화석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종합해 현대 인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됨
. 네안데르탈인은 이전의 원인과 많은 차이 . 완전 직립보행 . 두뇌 크기도 현대인과 거의 동일 . 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석기시대를 열었고 . 불을 생활에 이용하기 시작 .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매장 풍습 정착 . 확실히 구분되는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 . 상당한 근육질 체격에 어깨가 넓었고
가슴은 큼직했고 다리의 힘은 무척 강했을 것으로 보임
. 사라진 이유 추정 . 네안데르탈인과 동시대에 살았던 크로마뇽인과의 관계를 원인으로 추정 . 현재 인간과 해부학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가진 크로마뇽인은 1만년 전에 유럽에 존재 . 네안데르탈인의 DNA 분석 결과를 포함해 고고학적인 자료에 의하면 두 종족간에 근친교배가 일어난 것으로 보임. . 이것은 네안데르탈인의 신체적인 특징이 크로마뇽인의 특징으로 교체됐음을 의미
. 이런 근친교배로 네안데르탈인은 현재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아종(sub- species, Homo sapiens neanderthalensis 라고 불림)으로 변해 정치와 경제의 지배세력에서 밀려나게 된 것으로 보임 . 따라서 현재 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아종으로 변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음
. 이와 달리, 전쟁에 의해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주장도 있음 .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은 어느 정도 종족간 전쟁을 했던 것으로 기록에 나타남 . 이 경쟁관계가 실제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을 가져온 것인지는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음
.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들은 3만년 전에 역사에서 사라짐
□ 빨간머리 유럽인은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일까?
. 옥스퍼드의 존 래드클리프 분자의학연구소 연구원 . 10만년 전 안데르탈의 유전적 유산으로 추정
빨간 머리, 창백한 피부, 주근깨 유전
. 그들은 4만년 전 유럽에 도착한 현생 인류 이전에 20만년 전 유럽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 . 이 유전자는 5만년보다 오래된 것이 확실하고 아마도 10만년 되었을 것
. 스코틀랜드인의 10%가 빨간 머리를 가지고 있고, 추가로 40%가 빨간 머리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 네안데르탈은 현생 인류보다 키 크고 단단한 체격을 가졌지만 사지가 짧고
얼굴과 코가 크며 물러나는 턱과 낮은 앞이마를 가짐
. 네안데르탈이 2만8천년 전 멸종하기 전에 현생 인류와 공존하면서 이종교배하여 빨간머리 유전자를 남겼을 것. 네안데르탈인은 유럽과 근동에서만 살았던 흔적이 있고 호모사피엔스에게 흡수되거나 밀려났던 것으로 추정됨.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빨간 머리의 비율이 가장 높은데 아프리카에서 온 호모사피엔스에게 밀려난 결과 . 가장 외진 지역인 브리튼섬 북부와 아일랜드에서 가장 많이 살아남았고 . 마지막 남은 그들이 호모사피엔스와 이종교배하면서 빨간 머리 유전자가 퍼진 것이 아닐까?. 또한 빨간머리 유럽인은 보통 fiery-tempered 불 같은 성미로 인식되고 있는데
역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이 아닐까?
. 현재 인류의 유전자중 5%가 네안데르탈의 것이라는 주장도 있음
■ 인종의 우월성
□ 생명과학과 인종 - 인종은 과학적 사실인가?
“과학자들은 모든 인간들은 같은 종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 속한다며, 인류(mankind)가 하나라는 일반적인 동의에 도달했다. ......, 현재 우리가 이용 가능한 과학적 증거들은 유전적 차이들이 다른 집단 간 문화나 문화적 성취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주된 요소라는 결론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현재 지식에 따르면, 지능이든 기질이든 간에 인류 내 각 집단 사이의 내적인 정신적 특성이 다르다는 증거는 없다. 과학적 증거는 모든 종족 집단들의 정신적 능력이 동일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인종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성명(Statement by Experts on Race Problems)” UNESCO(1950년 7월, 프랑스 파리)
현대 생명과학은 '인종' 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제 2차 세계 대전 시기 나치 독일에서 우생학이나 골상학과 같은 과학적 인종주의(scientific racism)를 근거로 수 백 만 명이 넘는 유대인과 집시를 대량학살하는 홀로코스트(Holocaust)가 벌어진 이후, 과학자들은 모든 인간은 동일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 이며, 인종이라는 개념이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신화(social myth)에 가까운 것이라고 선언했다. 위에서 인용한 1950년 인종에 대한 유네스코(UNESCO) 성명은 바로 이런 정신을 담고 있다.
. 과학은 정말 인종을 거부하는가?
2000년 6월,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클린턴(Bill Clinton)은 인간유전체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의 결과로 인간 염기서열이 대부분 해독된 상황을 기념하면서, 연설을 통해 "인간 염기서열 해독 결과, 우리의 DNA는 99.9%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인종적으로 동일합니다."라고 말했다. 과학이 인종에 대한 생각을 종결시켰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다시 그 0.1%의 차이가 낳는 수 많은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 차이에 '인종적 차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신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한국인 염기서열지도’, ‘광우병에 취약한 한국인 유전자’, ‘한국인을 위한 맞춤약물 개발’이란 단어와 개념들은 현대 생명과학, 특히 인간유전체프로젝트 이후 새로이 열린 후기유전체학(post-genomics) 영역에서 인종이 개인들의 유전학적 차이를 포착할 핵심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 생명과학은 인종을 거부하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본다면, 생물학 분과가 잉태되던 시기부터 현대 후기유전체학에 이르기까지 생명과학은 단 한번도 인종이라는 개념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아직도 진행중인 인종에 관한 과학적 논의의 변천사를 살펴보자.
. 18세기~20세기 중반, “유형론적 인종개념”
인종적 차이에 대한 생각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인종에 대한 학술적 차원의 논의는 18세기에 만개했다. 생명과학이 하나의 근대 과학 분과로 제도화되기 이전인 18세기 유럽에서는 블루멘바흐(J.F. Blumenbach)와 같은 자연학자(naturalist) 들을 중심으로 인종을 학문적으로 분류하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저명한 의사이자 해부학자이기도 했던 블루멘바흐는 우리가 지금까지 흔히 사용하는 백인(Caucasian), 흑인(Negro), 황인(Mongolian)과 같은 방식으로 인종을 분류했다. 이 흐름을 이어 받아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인종이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피부색, 두개골 크기 등을 포함한 다양한 표현형(phenotype)의 차이를 인종 별로 분류 가능하도록 측정 및 기록하여 비교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들은 각 인종 간의 육체적, 지적, 문화적 수준의 차이가 있고, 이 위계적 차이의 증거가 과학적 측정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고 믿었다.
. 블루멘바흐의 다섯 개 인종 분류.
과학사학자 쉬빈저(Londa Schebinger)의 연구가 이 과정을 잘 보여주는데, 그녀는 19세기 초 인종과학 연구자들이 백인 남성의 우수성을 기준으로 하여 성적 차이와 인종적 차이를 위계화하였다고 주장했다. 당대 유럽의 해부학자와 두개학자들은 백인 남성을 인간 가운데 가장 최상위 계층에 위치시키고, 두개골과 골반 크기에 따라 이 성과 인종에 순위를 매겨 획일적인 인종-성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그들은 그에 따라 백인 남성이 제일 우수하며, 그 다음으로는 흑인 남성 또는 백인 여성이, 그리고 그 아래에는 흑인 여성이 위치한다고 보고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인종의 열등함과 성별의 열등함을 서로 조응하는 관계로 다뤘다.
. 우생학에서 강조했던 ‘과학적’ 측정. 하단의 그림은 우생학자들이 백인(Caucasian)과 흑인(Negro)의 얼굴형을 비교한 그림. 진한 두 선이 이루는 각도가 90도에 가까울수록 우월하고, 90도에서 멀어질수록 덜 진화한 종족이다.
이러한 인종적 차이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19세기말~20세기에 들어 부상한 우생학(eugenics)과 연결되었다.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이란 용어로 대변되는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사회진화론적 관점이 확산되면서, 세계는 우수한 인종들만 살아남기 위한 끊임없는 인종 투쟁이 벌어지는 장소라는 생각이 유럽 전체에 퍼졌고, 유럽인들 사이에서 일부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종족을 다스릴 수 있다는 배타적이고 위계적인 관념이 싹트게 되었다. 이와 함께 다윈(Charles Darwin)의 사촌이자 영국의 저명한 생물학자였던 골턴(Francis Galton)을 비롯한 우생학의 연구자들은 1880년대 이후로 인종 투쟁 개념을 가져와 자신들이 우수한 인종의 인간들을 재생산하여 인종을 개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미국, 일본 등은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를 수행할 때,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을 규제할 때 과학적인 근거로 인종과학을 이용하였다.
. 20세기 중반~, “확률론적 인종개념”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생명과학에서 인종은 유형론적(typological)으로 분류되었다. 이는 흑인, 백인, 황인 각 인종이 명백히 '자연적으로 서로 다른 종류'라는 생각에 기초한다. 예를 들어 나치 독일 제국에서 아리아인과 타 인종과의 결혼을 금지한 것은 아리아인은 유대인, 집시를 포함한 다른 인종들과 구별되는 강인한 체격, 지적 탁월성을 비롯한 다양한 우수한 특질을 갖고 있는데, 다른 인종과 '이종교배'가 이뤄질 경우 아리아인이 이와 같은 순수한 특질을 잃게 된다는 주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관점에서는, 키가 작고, 코가 휘었으며, 기회주의적인 기질을 가진 유대인과 신체적, 지적 탁월성과 명징성을 겸비한 아리아인은 각기 다른 특질을 가진 다른 유형의 종이였다. 그러나 1950년 유네스코 성명이나 2003년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염기서열의 최종 분석 결과 등은 유형학적으로 인종을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인간은 모두 같은 호모사피엔스 종이며, 99.9% 동일한 염기서열을 공유하고 있다. 비록 피부색은 다르지만, 그들이 서로 다른 유형이라고 말할 근거는 모두 부정된 것이다.
비록 인종에 대한 절대적인 유형론적 분류가 포기되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인종을 과학적으로 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었다. "전립선암이 발병할 확률이나 유전적 빈도는 아시아인이나 백인보다 흑인에게서 훨씬 높다"는 과학적 서술이 보여주듯이, 인종은 건강 문제를 포함한 여타 문제들에 관해 상대적인 차이를 보여줄 수 있는, 확률론적(statistical) 개념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유네스코 선언 이래 과학적 인종주의를 뒷받침하고 있던 유형론적 인종 개념의 논의는 등장할 때마다 지탄 받았지만,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 보다 상대적으로 특정 질병에 유전학적으로 취약하다" 와 같은 인종 차에 대한 확률론적 차이에 관한 연구들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인간유전체프로젝트는 과학자들에게는 확률론적 인종 개념이 유의미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실 클린턴 미 전 대통령이 유형론적 인종 개념의 종말을 알린 것으로 선언한 인간유전체프로젝트는 과학자들에게는 확률론적 인종 개념이 유의미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인간유전체프로젝트는 인간의 유전정보 전체인 유전체(genome)를 규명하는 프로젝트로, 인간 DNA 전체의 A(아데닌), T(티민), G(구아닌), C(시토신) 염기 개수와 순서를 결정하기 위한 연구였다. 1990년부터 2003년에 이르는 장기간의 프로젝트 결과, 연구자들은 인간의 염기 쌍이 약 30억개 가량이며, 약 25,000개의 DNA를 갖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프로젝트는 모든 인간이 99.9%의 동일한 염기서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0.1%, 약 300만개의 염기가 사람마다 다르고, 이것에 의해 질병에 걸리기 쉬운 정도나 피부색 등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을 밝힌 작업이기도 했다. 이 0.1%의 변이를 단일염기다형성(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SNP) 라고 하는데, 각 인종마다 서로 다른 단일염기다형성을 갖고 있어 질병에 대해 다르게 반응한다는 확률론적 인종 개념이 논의될 장이 열린 것이다. 한국인 맞춤치료나 맞춤약물을 개발하기 위해 이뤄지는 연구들은 모두 이런 확률론적 인종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확률론적 인종 개념은 인종 사이의 육체적, 정신적 우수함이나 열등함을 위계적으로 구분하기 보다는, 각 인종이 특정 질환에 대해 어떠한 차이를 갖는지를 묻는다는 데서 종래 유형론적 인종 개념과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종에 대한 확률론적 접근이 전통적인 유형론적 사고를, 나아가 그에 기초한 사회정치적인 관념들을 원칙적으로 배제하지는 못하는데, 후기유전체학 시대에 이뤄지는 과학 연구 속에서도 인종에 대한 연구자들의 사회역사적인 관념과 심지어 편견이 계속해서 투영되기 때문이다. 실제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연구 대상들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러한 실험 결과를 근거로 삼는 제품들의 시판 과정에서 과학자들과 약품 관계자들의 인종에 대한 관념과 편견이 '인종 차이에 대한 과학적 결과'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 확률론적 인종개념의 한계
의료 인류학자 몬토야(Michael Montoya)는1998-2000년 사이에 미국의 한 약물유전학(pharmacogenetics) 관련 실험실에서 제 2형 당뇨병의 유전적 변인을 탐구하는 과학자들이 연구 집단을 선정하고 각 표본들을 개별 집단으로 분류하는 과정을 관찰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피험자의 인종에 대해 연구자가 갖고 있는 사회역사적 가정에 기초해 인종을 분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관찰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장면을 고려해 보자.
장면 1. 연구 계획 수립 회의에서 한 연구원이 멕시코계 미국인과 푸에토리코인 모두 혼혈인의 비율이 높은 남미인들이므로 비교 연구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다른 연구원이 푸에토리코에서 원주민 대학살이 일어났던 일을 지적하면서 모든 원주민들이 학살 당했기 때문에 비교 연구가 적절하지 않다고 거부했다.
장면 2. 제 2 형 당뇨병 연구와 관련한 학술대회의 한 발표에서, 강연자는 아이티인들이 대부분 과거 노예무역으로 아프리카에서 아이티로 강제이주당한 인종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보다 유전학적으로 더 순수한 집단이기 때문에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비교하기 좋은 인종이라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은 인종이란 개념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연구자 자신의 사회문화적 가정이 빈번히 개입되고, 이것이 과학 연구 바깥에서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인지해왔다. <출처: gettyimages>
장면 1과 장면 2에서 푸에토리코인, 아이티인과 같은 인종이 연구 대상으로 선호되거나 거부되는 이유는 사회적,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과학자들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지 어떠한 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얻어낸 결론이 아니었다. 이렇게 과학자들은 연구 설계 과정에서 빈번히 특정 인종에 대한 자신의 역사적, 사회적 이해를 바탕으로 연구 대상이 되는 집단들의 인종을 분류하는데, 광고나 뉴스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분류에 기초한 인종 차이에 관한 연구가 어떠한 사회문화적 요인도 개입하지 않은 명백한 과학적 사실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혈당을 낮추는 한 약품의 광고는 인종 차이에 대한 당뇨병 관련연구를 인용하며 해당 약품이 멕시코계 미국인 같은 특정 인종에게 특히 효과적이라고 홍보했다. 연구는 "특정 유전형의 다형성이 결손일 경우 제 2형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 피험자 집단 가운데 이 유전형이 결손인 사람 가운데 멕시코인의 비율이 높다"는 현상을 기술한 데 반해, 광고는 이를 "멕시코인은 당뇨병에 잘 걸린다"는 인과적인 설명으로 바꾸어 놓았다. 과학자들은 남미 지역의 사회와 문화, 역사에 대한 개인의 생각에 바탕해 연구 대상을 선별하고 분류한 후 각 집단 간의 당뇨병 발병률의 차이를 보고했을 뿐이지만, 약품 광고는 이를 인용하며 "멕시코인 유전자"가 당뇨병을 유발한다고 서술했다. 약품 광고 속에서 과학자의 인종 분류는 순수한 생물학적 사실로 변화한 것이다.
. 인종의 개념, 생명과학 연구에 적절한가?
과학자들은 인종이란 개념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연구자 자신의 사회문화적 가정이 빈번히 개입되고, 이것이 과학 연구 바깥에서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인지해왔다. 그렇기에 생명과학 연구에서 이 개념을 사용하는 일이 적절한가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다. 2004년 네이처 유전학회지 [Nature Genetics]에 인간유전체 프로젝트 결과 인종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논하는 연구들이 "인간 유전체의 차이와 인종(Human genome Variation and Race)"란 주제로 게재되었는데, 여기서 연구자들은 각기 다른 입장을 표명했다. 어떠한 연구자들은 비록 조상(ancestry)이나 지리적 기원(geographic origin)에 따라 각 집단 간의 차이가 있지만, 인종이란 범주가 이러한 차이를 포착하기에는 부정확하고 불완전하다고 문제 삼았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비록 문제가 있지만, 인종이 인간들 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드러내는 데 매우 유용한 개념이라고 결론지었다.
인종에 관한 논쟁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어떤 연구자들은 집단 사이의 유전적 차이를 논의할 정당한 기초를 제거해 버리는 문제를 낳는다며 유전적 다양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종 범주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연구자들은 인종이라는 개념이 현재 과학 연구에서 연구자에 따라 자의적으로 사용되는 등 과학적으로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오용될 여지를 낳을 수도 있다며 인종 개념을 과학 연구에서 퇴출시키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들을 살펴 보았을 때, 과학자들은 역사적으로 인종 개념이 완전한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생명과학은 단 한번도 인종이라는 개념을 포기한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이 개념은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은 인종은 과학적으로 틀린 개념이라는 잘못된 단언 대신, 현대 생명과학이 말하는 인종은 무엇인지를 되묻고 생명과학이 인종을 다루는 과정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일일 것이다. (인터넷 글 인용)
□ 인종 우월성 비교의 사례 (자기 중심적, 우월주의의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