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심
관심 (關心, interest)이란 주의력이나 흥미가 특정한 사물로 향하고 있을 때의 심적 태도나 감정이라고 한다.
인간의 의식이란 언제나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다. 따라서 관심은 의식의 본질, 즉 그 지향성(志向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의식은 무관심을 배경으로 하는 관심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관심은 일반적으로 영어의 'interest'처럼 의식이 향하는 대상을 뜻 하지만,
철학적인 의미로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의미하는 “괘념”의 뜻이라 한다.
독일 철학자 M.하이데거는 인간은 '세계―내(內)―존재'로서, 환경세계에 대하여는 항상 배려하고(besorgen), 타인에게 대해서는 항상 신경을 쓰고(f?rsorgen),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항상 마음을 쓰면서(sorgen) 사는 존재라고 했는데, 이 3가지가 한마디로 해서 '괘념(掛念: Sorge)'이며, 관심은 “괘념”의 뜻으로 사용된다.
관심을 의식이 향하는 방향이라는 의미로 볼 때, “어느 한 대상으로만 보느냐,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향해서 보느냐” 로 나눌 수 있다.
즉, 예술.정치와 같은 데의 관심이란 그 대상에 관련을 가진 마음의 주관적 상태를 의미하며, 이러한 심적 상태는 감정적·비합리적인 요소를 포함하지만, 자극이 주어지면 어떤 특징적인 방식으로 행동을 일으킬 경향이 있다.
또 하나는 권력이나 경제적 재물을 얻으려고 생각할 때처럼 사적 이익을 대상으로 하는 관심이다. 권력이나 재물의 획득을 위한 관심은 목적을 가급적이면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수단의 선택이 필요하게 된다. 선택은 목적달성을 위한 계산이기 때문에 이 관심은 계산적이고 목적 달성을 위한 합리적인 관심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인 관심과 별도로, 사회적 측면에서의 “사회적 관심”이 있고, 종교.문화.경제.지역.혈연.학연.연령…… 등 특정 계층에서 복수(複數)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공유하고, 그 목적을 하나의 전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목적 추구의 관심을 “공동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아닌 남 또는 제3의 개체를 중심으로 한 “관심”을 관찰하면 더욱 재미있는 부문이 많지 않을까?
동식물도 인간과 비슷한 듯하다. 먹거리 찾아 낚시터 입감에 입질 해 대는 물고기 모습도 물고기가 가지는 관심의 한 장면을 보여 주는 것이고, 내쇼날지오그라피 다큐멘터리 등에 자주 방영되는 주린 배 채우기 위해 물소 떼 주변을 배회하는 사자 무리의 장면도 마찬가지로 사자의 머릿 속에 그리는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영상화 한 것 같다. 빛 따라, 물 따라 굽혀지는 식물의 굴향성도 식물의 관심을 외부에서 읽을 수 있는 현상이고, 벌.모기.파리… 곤충의 먹이를 찾고, 짝짓기 하는 생활과정의 여러 가지 본능들에 관한 특이한 모습들도 각 곤충이 가진 관심을 나름대로 보여 주는 것은 아닐까 한다.
우리들 일상에서도 관심과 연계한 재미있는 행동은 한둘이 아니다.
예술과 학문, 기술과 과학, 사회와 경제, 군사와 정치, 생명과 우주, 인생과 철학…… 등의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회적 관심이나 공동관심은 별도로 생각한다면, 그 외의 상당히 많은 관심의 부문이 개인적 욕심이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목적을 가진 관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하나를 뜯어 생각하면 관심과 욕심은 서로 함수관계에 있는 듯도 하다.
“마켓 서베이, 시장조사” 처럼 남의 주머니 속사정이나 남의 사업 속, 잇속에 대한 관심,
모습, 행동, 생각 등에 대한 이성간 상호 관심,
전쟁터에서 적의 동태에 관한 관심,
어둠 속, 땅 속, 물 속에 대한 관심,
……
욕심이 앞서서, 도를 벗어난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어떤가?
영감이 도를 넘어 색을 밝히면 “주책없다” 하고
권력가나.세도가 앞에 도를 넘는 관심을 보이면 “아부(阿附) 한다”고 한다.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린다는 의미의 "아부(阿附)"는 다른 말도 많다.
아첨(阿諂).미열(媚悅)·미첨(媚諂)·아미(阿媚)·아유(阿諛)·아종(阿從)·첨(諂)·첨유(諂諛)……
아랫사람에게 정당한 관심을 제 때에 아니 보이면 무시나 멸시한다고 푸념을 당한다.
내가 갖는 관심의 정도가 남의 눈 높이에 맞춰지지 못하면 주책없이 되거나 아첨꾼 또는 남을 무시하는 것으로 몰리기 쉽상이니, 내가 갖는 관심을 남이 눈치채지 않게 잘 간수하는 것도 우리생활의 지혜임이 분명하다.
불교 의식을 언뜻 보면, 나 스스로를 위한 “관심”을 잘 챙기기도 어렵다.
불교에서 말하는 관심(觀心)은 스스로의 마음에 대하여 대상으로 삼는 듯 하다. 마음 속을 헤아린다는 뜻의 불교 용어로서 “자기 마음의 본성을 살펴 관조(觀照)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천태종에서는 '관념(觀念)'이라는 용어를 써서, 자기 일념의 마음을 공(空)·가(假)·중(中)으로 보는 이른바 일심삼관(一心三觀)의 수행방식을 제시하며, 관심(觀心)은 곧 관법(觀法)인데, 그 관법의 대상으로는 불(佛)과 심(心)과 중생의 삼자가 상정(想定)되고,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은 일체 사물의 근본으로 중시되어, 관심(觀心)의 수행이 강조된다 한다.
관심(觀心)의 수행법 중에 삼매(三昧)란 말이 나오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원어명(Sam?dhi)의 음역인 삼마지(三昧地 三摩地)에서 나온 말로서, 불교 수행의 한 방법으로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정신력 또는 정신통일을 뜻하며, 일체의 자아(自我)나 사물이 공(空)임을 깨닫는 공삼매(空三昧)는 공이기 때문에 차별의 특징이 없음을 관찰하는 것, 즉 무상삼매(無相三昧), 무상이기 때문에 원해서 구할 것이 없음을 관찰하는 무원삼매(無願三昧)의 삼매가 있다고 한다.
(용어 : Fm 네이버 백과사전 인용)
2007.3.12. 오갑록
■ 삶이란 느낌이다
달무리 진 밤 하늘을 본다.
너울대는 구름이
달무리를 지우다 그리기를 반복하며
부지런히 흐른다.
구름도 흐르고, 달도 흐르고
달무리 그림자도 흐른다.
발걸음 재촉하며 보는 이
마음도 뒤따르고
어둠 속 눈동자도 바쁘다.
쳐 든 머리가 어릿어릿 하기 일쑤이다.
무엇이 가는지는 흐릿하나
어느 한 쪽인가는 흐르고 있다.
중심에 박힌 듯
자리잡은 달은
제자리에 의연할 것 같으나
언제고 중천에 머무르지 못한 채 서쪽으로 흐른다는 것
내가 아는 한의 이치다.
나 스스로 지니는 많은 것들
그 가운데에는
느낌이 있고
마음이 있다.
느낌은 달에
마음은 달무리에
빗대어 생각하여 본다.
마음은 느낌보다 한 치쯤
앞서거니 뒤 서거니 하며 잇따른다.
순간이니 세월이니 하는
짧고 긴 시차를 두고서 따르기도 한다.
바쁘고
때로는 힘들고 고달픈
몸의 주변 어디엔가 꼭 붙어서
숨이 다 할 때까지 함께 가야 하는 것
그것은 느낌이다.
그리고 한 치 떨어져서 가는
마음이 있다.
느낌에 더하여
바라거나 희망하는 바를 품는 것이 마음이고
아니면, 느낌에 반하여
뉘우치고 반성하는 바를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며
또는, 느낌에 대하여
미워하거나 서럽다거나 수치스러운 바를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다.
느낌으로 얻은 마음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 또한 마음이니
순환함수처럼
마음이라는 함수가 되어 맴 돌기도 한다.
삶이란 느낌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생각하는 바를
느낌에 거리와 시차를 두고
무엇인가를 더하거니 빼거니 하며
내키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생각하는 것
품에 넣은 이런저런 마음은
지난 어느 날 경험한 느낌들을
시간 거리 그리고 욕망을 함께 버무려 놓은
쑥개떡과 닮은 꼴이다.
느낌은 무엇인가?
피부로 온기와 추위 아픔을 느낀다.
혀로 달고 쓴 맛을 느낀다.
눈으로 꽃과 잎의 속삭임을 느낀다.
귀로 고운 선율을 느낀다.
깊은 밤 은밀한 곳 순간의 짜릿함도 느낀다.
배 속에서는 배고픔과 포만감을 느낀다.
많고 적고 크고 작고 길고 짧음을 재면서
길고 크고 많음을 마음에 담는다.
색과 선과 음을 보고 읽고 들어 가며
나에게 선함을 느끼며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는다.
즐거움, 그리고 희망과 사랑으로 물든 이웃의 마음을 읽어 가며
뜨거운 열정으로 행복을 마음에 담는다.
작고 아쉽다는 모자람과 허기짐을 딛고
풍족함과 포만감을 느낀다.
쓴 것, 악취 나는 것, 추운 때를 알아야
달콤하고 향기롭고 따스함을 느낀다.
아픔과 어둡고 두려움 굴욕과 절망을 딛고
밝은 날 작은 성공에 만족함을 느낀다.
미움과 증오 그리고 혐오감을 거쳐서
평상심의 안온함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삶이란 느낌이다.
느낌으로 받아서 마음에 담으며
파동과 굴곡의 마루와 골을 헤아려 가는 것이 삶이다.
그 삶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굴곡이 있을 뿐, 크지도 않고, 많지도 않다.
부 명예 건강이 그러하고
사랑도, 성공도, 행복도, 생명도 그러하다.
삶이란 느낌이다.
그렇기에 열심히 하되, 긍정적인 마음이어야 한다.
크게 보고, 많게 느끼며, 곱게 보고
배부른 줄 알고, 따스한 줄 아는 만족함이 있어야 한다.
남의 눈에야 허튼 쓰레기로 뵐지언정
선함과 즐거움 향기로움과 사랑 그리고 희망이 깃들 수 있는
그러한 여유들을 모아서 담을 수 있는
마음의 봉지, 작더라도 한 개쯤
남 모르게 감출 수 있어야 한다.
삶이란 느낌이다.
2008.4.3.
오갑록
□
데카르트는 “나란 정확히 말해 다름 아니라 생각하는 것(rescogitans)”이며, ‘생각하는 것’이란 곧 ‘정신’․‘영혼’․‘지성’․‘이성’이라고 풀이하고, ‘나(자아) = 생각(의식)하는 것 = 정신(마음)’이라고 규정하는 한편, 이것과는 다른 ‘물질적인 것’ 또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생각하는 것으로서 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그것은 곧, 의심하고, 통찰하고, 긍정하고, 부정하고, 의욕하고, 의욕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상상하고, 감각하는 것이다.”고 대답한다. 정신 실체로서 ‘나’의 적어도 한 가지 활동은 ‘감각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란 신체에 대해 독립적인 것이고, 공간상의 장소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 했다. 대체 이때 신체 없는 내가 ‘감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
사람의 의식 활동은 인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도 한다. ‘실천’(praxis)이란 존재자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인식과는 달리, 의지적으로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함은 존재에 변화를 일으키고 생성 소멸케 함을 뜻한다. ...
칸트는 ‘초월적 의식’ 개념을 세워 대상 인식 현상을 해명하고, ‘인격’ 개념을 세워 인간의 도덕적 행위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거기에 실체로서 ‘정신’은 없었다. 이에 반해 헤겔(G. W. F. Hegel, 1770~1831)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유일한 것으로서 ‘정신’을 세계 생성과 운동의 중심에 놓는다. 헤겔은 정신이란 자기 정립적이며 자기 활동적인 것이고, 그래서 자유이자 주체이므로 본래 무엇에 관하여 상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은 절대자다. ...
20세기 물리주의는 이성의 옷을 입은 니체 주의인 것이다. 이성적인 논증과 과학적인 사실 입증을 ‘토대로’ 정신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고 천명함으로써 사실상 신의 존재와 인간이 정신적 존재임을 부정하고 나면, 선의 관념 자체가 원천을 잃게 되는 것이고, 결국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자연 물리적 사물들의 관계이거나 아니면 감성적 욕구의 교환, 곧 이해(利害) 관계로 환원될 따름이다. 신도 이성도 없는 곳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 곧 ‘정도(正道)’를 거론할 때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상호 역학 관계를 맺고 있는 운동체들인 사람들 사이의 힘의 균형밖에는 없다. 이 판국에서 ‘정도’를 제시하는 것은 하느님도 아니고, 이성을 대변하는 탁월한 현자(賢者)도 아니고, 오직 힘있는 ‘다수’일 따름이다. ...
“철학의 주요개념” (서울대,백종현 외) 중에서 인용
■ 팔정도와 삼법인
(불교용어) (다음백과에서 인용)
□ 8정도(八正道, Atthangika-magga, 불교용어)
. 인도 바라나시 근처의 녹야원(鹿野苑)에서 석가가 최초의 설법에서 가르친 교리
. 사성제(四聖諦)의 4번째 진리에 해당하며, 불교의 가르침 전체를 총괄함
. 유물론자들의 감각적 쾌락과 고행주의자들의 고행이라는 양 극단을 떠난 길을 제시하므로
중도(中道)라고도 함
. 이 팔정도의 길을 따르는 사람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부분인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궁극적으
로는 열반, 즉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고 함
. 팔정도의 내용
. 정견(正見):존재의 본질에 대하여 사성제로 설해지는 불교적 진리관을 확신하는 것 . 정사유(正思惟):정견에 따라 철저히 실천하겠다는 각오 . 정어(正語):거짓말, 중상하는 말, 모욕하는 말 따위를 삼가 하는 것 . 정업(正業):생명을 해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부정한 성행위를 하지 않는 것 . 정명(正命):불교의 가르침에 부응하지 않는 직업은 택하지 않는 것 . 정정진(正精進):나쁜 마음가짐을 피하고 바른 마음가짐을 계발하는 것 . 정념(正念):신체와 감정과 사고의 움직임에 대하여 깨어 있는 것 . 정정(正定):바르게 집중하여 명상하는 것
□ 삼법인 (三法印, 불교용어)
. 불교에서 말하는 존재의 3가지 특성, 무상(無常).무아(無我).고(苦)를 총칭하는 말
. 삼법인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팔정도(八正道)의 처음인 정견(正見)임
. 무상(無常)
.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말함
.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고 늙고 죽을 때까지 경험하게 되는 육체적.정신적 변화이며
.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비교적 긴 시간 단위의 생성과 소멸이 아니라 순간순간 이루어지는
생성과 소멸의 반복으로 규정한 찰라멸론(刹那滅論)도 있음
. 무상(無常)은 상주하는 것이 없음, 즉 덧없음을 말함. 여기서 “덧”은 퍽 짧은 시간을 의미
. 늙음, 병듦, 죽음은 본래 매우 고통스런 것이지만, 고통의 소재는 그 중점이 떠남,
즉 무상에 있다고도 봄 (중국, 양수명)
. 젊음을 떠나는 늙음이고 . 건강함을 떠나는 병듦이며 . 삶을 떠나는 죽음이라는 것
. 무아(無我)
. 영원히 존재하면서 개체의 정체성(正體性)을 보장해주는 실체가 없음을 말함
. 석가모니는
. 현상의 근거를 형이상학적 본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 모든 존재는 변화하는 존재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라고 했음
. 인간은, 인식 요소가 결코 동일하지 않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고 함
. 따라서 인간은 단지 육체(色).감각작용(受).감각경험(想).성향(行).의식(識)이라고 하는 끊임
없이 변화하는 5가지 존재요소(5온, 五蘊)로 이루어졌을 뿐 영원한 자아는 없다고 했음
. 5온 (五蘊, panca-skandha, 산스크리트로 skandhā는 '무더기'라는 뜻)
. 불교사상에서 말하는 인간 개개인의 모든 정신적.육체적 존재를 구성하는 5가지 요소
. 자아나 영혼은 이 요소들의 어느 하나와 동일하지도 않으며, 그것들의 총합도 아니라 함
. 색(色) : 신체 구성 물질로서 흙.물.불.공기 4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드러난 형체 . 수(受) : 감각 혹은 느낌 . 상(想) : 감각대상에 대한 지각 . 행(行) : 마음속의 구성물 . 식(識) : 다른 수.상.행, 즉 다른 온의 3가지에 대한 앎 또는 인식
. 고(苦)
. 고에는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적 고통뿐만 아니라 불만족이나 불충분함도 포함됨
. 그렇기 때문에 항상 변화하여 영원한 자아가 없는 존재 그 자체가 고통이라고 하는 것임
. 석가는 깨달음을 얻은 뒤 처음으로 행한 설법에서
4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설파함 : 고, 고의 원인(集), 고의 소멸(滅) 그리고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
. 8고(八苦)
. 태어나고(生), 늙고(老), 병들고(病), 죽는(死) 4가지 괴로움(四苦)
.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괴로움(愛別離苦)
. 싫어하는 이와 만나는 괴로움(怨憎會苦)
.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
. 이러한 모든 괴로움을 담고 있는 이 몸이 성하게 존재하고 있는 괴로움(五陰盛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