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갑록 2021. 12. 15. 22:52

얼굴과 표정

 

우리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서로가 어린 아이처럼 티없이 밝은 모습으로 대하기를 바란다.

 

젊음이 넘치는 활기 발랄함도 좋겠지만, 때로는 나이 들고 야위어 볼 품 없어 보이는 모습도 대하게 된다. 그들이 지친 기색이나 어렵고 고달픈 듯 보일 때도 있다. 삶의 관록을 얼굴 구석구석 치장이라도 하듯 한, 깊은 골이 패인 주름진 선량한 모습의 노인을 마주 할 때도 있다.

 

이러한 모습을 대하면, 힘든 역경을 이겨 내며 보냈을 그들의 노고에 모르는 사이 내가 부끄러워지고 형언하기 어려운 저릿한 감회에 젖어 들고는 한다. 그들이 밝은 표정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을 떠 올려 보게도 된다.

 

극이나 영화 속에서 내면의 연기를 제 아무리 잘 한다손 치더라도, 삶 가운데서 엮어 가며 자연스레 전달되는 순진, 순수함처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기껏해야, 잘 난 얼굴에 한껏 치장한 배우들 외모에 마음 쓰기 바쁘다. 스스로의 모습은 제쳐 두고 배우들 모습 감상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너나 나의 "외모"란 있는 모습 그 자체겠지만, 극 중의 "연기"란 가상의 거짓 모습, "......을 하는 체" 하는 것이다. 그것이 거짓임을 인정하면서도 관객은 보는 순간 잠시 속아 주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는, 거짓을 표현하는 것이 ""이라는 야릇한 면이 있는 직업이 배우들이다. 연극이나 영상매체를 통한 감상은 그 연기와 어울리는 외모를 감상하는 것이 아닐까?

 

두 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어울려야 시청자의 공감대를 높여 줄 것이다. 정의, 악역, 순정 등을 다루는 연기도 그렇지만 뉴스나 날씨 안내 따위도 조화로운 장면 연출은 필수적 요소일 것이다. 결국 외모란 무슨 역할을 기대하며 보는가에 따라 그 평가가 엇갈린다는 특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잘 그렸다고 하는 촌로의 모습이나, 이름 날리던 여배우의 모습도 무슨 주제를 생각 하면서 보는가에 따라 그 가치는 달리 보일 것이다.

 

노인 모습을 그림으로 잘 표현하는 중국의 관웨이싱 그림과, 고운 외모로 세상을 즐겁게 하여 주었던,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명성 높던 여배우(해외) 사진을 모아 본다.

 

그리고 그림과 사진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 본다.

 

태어나면서 가지는 외모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 외모에서 운명을 읽으려고 하는 관상가는 무슨 의미를 시사하는 것일까? 남 보다는 잘나서 남들 앞에 나섰던 그 들, 배우들 삶의 형태도 상상하여 본다. 그들 보다 못났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절망했던 관객은 얼마나 되었을까?, 그 관객들 삶의 질은 배우들과는 어떤 비교의 가치가 있을 지도 생각해 본다.

 

시대와 장소, 처지를 초월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한 자리에 앉아서 아주 짧은 시간에 보고 느끼며 감상 할 수 있다는 것이 극과 영화의 좋은 점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거짓으로 사랑하고, 거짓으로 웃고, 거짓으로 슬피 우는 배우들, 그 거짓의 연기를, 부끄럽게 여기기 보다는 자랑스러워 하고, 그들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현상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하는 의문도 남겨 본다.

 

2011.1.8.

오갑록

 

깊은 주름에 녹아 든 세월

 

조각상

사랑, 평온, 안식이 느껴 진다.

 

장미 한송이一輪

 

지난 세기의 유명했던 배우들의 모습과

이즈음 화면을 장식하는 인물들이 주는 인상은 어떤 차이를 느낄 수 있을까?

행여, 향기라도 묻어날까 하는 마음에 눈여겨는 보지만 ......

 

음악인 중에서

Recital pamphlet 인용 (소프라노 & 기악)

 

고운 목소리를 자랑하는 성악가들의 외모에서 우리는 공통점을 읽을 수 있을까?

자신감에 찬 눈초리와 건강미, 그리고 ......?

 

세기의 여배우 (해외)

 

지난 세기 동안 멋을 자랑하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전성기 모습들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새겨본다.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백세 가까운 노인도 있지만, 흑백사진 속의 곱던 예전 모습들은 여전하다.

머릿결에 실린, 그 때의 실바람도 여전히 숨 쉬는 듯 ~~~

 

~ ), Bette Davis (1908 ~ 1989), Brooke Sheilds (1965 ~ ), Catherine Zeta-Jones (1964 ~ ), Dame Elizabeth Taylor ( 1932~2011.3. ), Deborah Kerr (1921~2007), Drew Barrymore (1975 ~ ), Evan Rachel Wood (1987 ~ ), Grace Patricia Kelly (1929 ~ 1982), Greta Garbo (1905 ~ 1990), Hedy Lamarr (1913~2000), Ingrid Bergman (1915 ~ 1982), Jennifer connelly (1970 ~ ), Joan Crawford (1904 ~ 1977), Joan Crawford (1904~1977), Judy Garland (1922 ~ 1969), Julie Andrews (1935 ~ ), Kate Elizabeth Winslet (1975 ~ ), Katharine Hepburn (1907 ~ 2003), Kirsten Dunst (1982 ~ ), Lana Turner (1921~1995), Lauren Bacall (1924 ~ ), Marilyn Monroe (1926 ~ 1962), Marlene Dietrich (1901 ~1992), Mary Pickford (1892~1979), Monica Bellucci (1964 ~ ), Naomi Watts (1968 ~ ), Nicole Kidman (1967~ ), Norma Shearer (1902~1983), Rita Hayworth (1918~1987), Sienna Miller ( 1981~ ), Sophie Marceau (1966 ~ ), Tallulah Bankhead (1902~1968), Veronica Lake (1919~1973), Vivien Leigh (1913~ 1967), 공리 (鞏俐, Li Gong) (1965 ~ ), 임심녀 (林心如, lin xin ru) (1976 ~ ), 장만옥 (曼玉, Maggie Cheung) (1964 ~ ), 장쯔이 (章子怡, Zhang Ziyi) (1979 ~ )

 

창 넘어

 

창 넘어로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곳을 통하여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마음의 창

 

맑은 눈망울 속에, 또 다른 맑은 창을 넘어 보이는 아름다운 많은 것들이 있다. 눈의 수정체라고 하는 창을 넘어 보이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아름다운 돌, 아름다운 보석, 아름다운 들풀, 아름다운 강과 산, 아름다운 여인과 그 얼굴 ……

 

그러나 그들은 아름다운 것이 보이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한 개의 창을 통 할 때만 그러하다. 마치 카메라 렌즈 앞에 목적에 따라서 다양하게 붙여지는 UV필터, Red필터, Blue필터 따위의 필터들처럼 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의 창이다. 고운 마음, 좋은 마음, 고요한 마음일 때만 우리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의 눈이 필터로서 덧대어 질 때만 우리는 다양한 아름다운 모습들을 감상 할 수 있는 것이다.

 

맑은 눈, 고운 눈, 수정체의 기능만 좋다고 아름다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배고프고 허기진 마음, 식욕에 찬 마음에서 보이는 것은 먹거리 뿐일 터이고, 육욕, 성욕에 찬 마음으로 보이는 것은 지극히 한정된 구렁텅이에만 관심이 쏠릴 것이다. 돈벌이, ()를 쫓는 마음으로 보이는 것은 돈 될만한 것들에만 눈이 뜨일 것이며, 성공, 승리, 명예를 향한 욕망에 찬 마음으로 보이는 것은 채울만한 욕심거리 일 뿐이다.

 

경계 좋은 심산유곡을 찾는 구도자들을 볼 수 있다. 새로운 눈의 창을 덧대고픈 목적일 수 있다. 깊은 산속의 사찰이며 승려들을 떠 올려 보자. 마음의 창을 흐리게 하는 갖가지 욕심들을 멀리하고 떨쳐내기 위해서 일 것이다. 주색잡기에 흔들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새로운 마음의 눈, 그들이 쫓으며 찾는 것은 진리라고 하는 득도의 길인 셈이다. 그 길을 볼 수 있는 필터가 과연 그러한 장소, 과정, 방법으로 작동 될 수 있을까?

 

바라 소리, 목탁 소리, 풍경 소리, 바람, , 새 소리가 들리는 장소, 고요한 장소, 풍광이 수려한 장소에서만 마음의 문이 진리를 보이게 하는 필터로서 작동한단 의미일까? 성스러움을 자아내게 하는 중세 풍의 우람한 성당, 은은하고 깊은 맛의 파이프 오르간이며, 잘 다듬어진 성가대의 미제레레(Allegri, Miserere mei)와 같은 고운 선율 아래서만 마음의 필터가 잘 작동되는 것일까?

 

덜덜 대는 버스 안에서, 왁자지껄한 재래시장 통의 한 편에서, 군중집회의 한 구석에서, 마음 죄며 갓 받아 든 중간고사 시험지를 접하면서, 짜릿했던 꿈 속이나, 심지어 오르가즘 순간에서라도 …… 득도의 필터는 작동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번득이며 스쳐 지나가는 형언치 못할 색다른 느낌을 그러한 와중에서 느낀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삶의 의미며 진리가 그 속에서 스쳐 지나치고 있음을 자각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 하는 감탄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고 스스로의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러했던 순간들을 놓치거나 망각했을 따름일 뿐이다. 의미 없고, 가치 없고, 부질없는 일 이리라고 하찮게 여기며 흘려버렸기 십상이다.

 

진리며, 참된 가치란, 멋지고, 우아한 곳에만 깃 드는 한정된 것만은 아니리라. 유명하고 고아한 분에게만 찾아 드는 것도 아니리라. 못난 사람, 찌든 곳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아닌 온 세상의 생명체며 모든 사물에게까지도 똑 같은 무게로, 똑 같은 질감으로 우리들에게 다가 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른 것일까?

 

찬송가로 목줄에 핏대 서는 기독교의 신도들이나, 이른 새벽 목탁 치며 염불 외는 승려, 벽면을 앞에 둔 채, 면벽의 상태로 눈 감고 보고자 하는 구도자들이 원하는 것이 그러한 마음의 필터를 원하는 것이리라. 다만 그러한 모습을 타인에게, 대중에게 보이고 과시하려는 또 다른 엉큼한 목적에서, 더러는 그러한 상태를 길게 하고, 정례적으로 하고, 일정한 장소에서 하도록 관행화 하고 있을지는 모른다. 허구성을 의심하는 눈초리에 불과하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아름다움을 찾아서, 우리는 발 품을 사기도 한다. 명소를 찾아 유람을 나서는 경우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려고 우리는 투자하기를 기꺼이 하기도 한다. 보석 귀중품을 챙기는 경우이다. 아름다움을 차지 하려고 우리는 실랑이를 하거나 마음 졸이기도 한다. 향기로운 미녀를 두고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아름답게 보이려고 자신을 치장하기도 한다. 분에 넘는 고가 브랜드의 화장품을 아낌없이 집어 든다거나, 멀쩡한 얼굴에 성형수술까지도 일상화 된 세상이 되었다.

 

마음의 창이 과연 무엇일지 생각하여 보고,

그 새로운 마음의 창을 열어 보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대로

세상은 아름답고, 참되고, 진실된 것이라 믿어보자.

 

찬송가며 면백의 철야기도 없이도,

진리는 항상 우리 옆에 있으며,

고요하고, 고상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진리는 항상 여기에도 있으리라고 ……

 

삭막하고 텁텁한 동네라고 할지라도,

아름다움은 항상 나의 주변에 있으며,

볼품없이 구르다 우연히 발에 채인 주먹돌 한 개지만,

나름대로 그곳에는 그의 아름다움이 있노라고 ……

 

살살 녹아 드는 비프스테익에 부드러운 와인 한 잔은 아니더라도,

해묵은 지 빨아내어 옅은 된장 국물에 푹푹 끓인

시금털털하고 구리텁텁한 찌개 한 사발과 흰 쌀밥 한 그릇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맛, 아름다움이 깃 들어 있으려니 하자.

 

허름한 노리갯감 하나 치장은 못하며 지내더라도,

얼굴이 손예진 같은 탤런트만 못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만족하자.

 

다들 힘들고 짧다고 들 푸념하던 인생살이라 할지라도,

나름대로 만족을 느낀다면 행복 되고 길다고 여길 것이며,

세상사람 들이 거짓이라고, 허상이라고, 나쁘다고 비웃어도,

그래야만 할 이유와 우리가 몰랐던 나름의 진실이 따로 있으리라고 믿어주자.

 

마음의 창이 과연 무엇일지 생각하여 보고,

그 새로운 마음의 창을 열어 보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대로

세상은 아름답고, 참되고, 진실된 것이라 믿어보자.

 

2012.9.8.()

오갑록

 

유리 창 넘어 보이는 것,

눈의 수정체를 통해 보이는 것, 내가 인식하는 그 실체는 같은 것일까?

 

먼 산의 능선도 아름답지만 ......

 

그 능선 아래, 숲 속의 이름 모를 들풀에서도 눈 여겨 볼만한 아름다움은 있다.

귀 밑 머리 한 올 한 올에도, 때로는 얼굴의 이목구비만큼이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운빈화안 (雲鬢花顔), 운빈화용 (雲鬢花容), 운빈홍안 (雲鬢紅顔), 녹빈홍안 (綠鬢紅顔)

여인의 구름 같은 귀밑머리 아름다움을 미녀의 모습에 비유하는 말들이다.

1940년에 불렀다는 백년설의 "번지없는 주막" 가사 후렴구를 돌려본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 ♪

……

아주까리 초롱 밑에 마주 앉아서 ~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애절구려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는 길어도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 ~

 

소립자물리학 표준모형의 “야릇한”

 

. 소립자물리학 표준모형 원자구성 입자인, 페르미온은 쿼크와 렙톤으로 구성되는데,

쿼크는; (Up), 아래(Down), 맵시(Charm), 야릇한(Strange), 꼭대기(Top), 바닥(Bottom)으로

2개 또는 3개가 짝을 이루며 존재하는데, 전하와 색전하로 구성되고,

강한상호작용으로 합쳐진 상태로만 관측된다.

렙톤(Lepton); 전자, 뮤온, 타우온, 중성미자로서

전자기력, 약력, 중력에만 관여 하는 질량이나 전하가 없는 경입자(輕粒子)이다.

 

 

. +2/3의 전하를 갖는 업 쿼크 두 개와 -1/3의 전하를 갖는 다운 쿼크 하나면 양성자가 되고,

“업 쿼크” 하나와 “다운 쿼크” 두 개면 중성자가 되며, 여기에 렙톤인 전자가 결합하면 원자가 된다.

. 물질은 이처럼 스핀이 1/2의 홀수 배인 쿼크와 렙톤, 그리고 이들을 매개하는

스핀이 1/2의 짝수 배인 보존이라는 입자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야릇한 (Strange)

 

소립자 물리학의 쿼크명칭 중 “야릇한(Strange) 쿼크”는 더욱 생소하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우리는 야릇하다고 표현 하는가? 일상적이거나 상식적인 범주를 벗어나는 현상들을 두고 하는 표현이다. 자연 환경이나 주변상황, 또는 상대방의 말, 표정, 행동, 등등에서 자주 경험하곤 한다. 특히 얼굴 표정으로부터 야릇한 느낌을 자주 읽게 되는데, 그것은 상대와의 격에 차이가 커서 궁금증을 쉽사리 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격의 차이란 지위, 빈부 등의 신분이나 남녀, 노소, 미추(美醜), 성격 따위에서 느끼는 격차를 생각할 수 있다. 상대방이 무엇인지 모를 짐작하기 어려운 생각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쉽게 묻고 확인하지 못해서 야릇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상대의 표정만 보고서 나를 좋아하는지 미워하는지, 높이 보는지 얕보는지 …… 그의 감정을 짐작하지 못할 때를 두고 하는 표현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소를 보며, 우리는 야릇하다고 한다. 웃는 듯 마는 듯, 호오(好惡)를 가늠하기 어려운 표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단어의 뜻들을 검색해 보고, 유사한 낱말들을 나열해 보자.

() 표현하기 어렵게 묘하고 이상하다

() odd, queer, strange

() おかしい, 不思議だ,

() 奇妙, 奇怪,

 

. 미묘하다; 딱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게 야릇하다.

. 낌새;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야릇하고 묘한 분위기.

. 해괴하다; 매우 놀랄 정도로 괴상하고 야릇하다.

. 괴괴하다; 쓸쓸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매우 고요하다, 이상하고도 야릇하다.

. 는실난실; 성적 충동을 받아 야릇하고 추잡스럽게 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예문)

. 그 종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야릇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 아영이는 연주에 앞서 야릇한 흥분과 감개에 젖어 잠시 청중들을 바라보았다.

. 그녀와 단둘이 방에 앉아 있으니 기분이 야릇하다.

. 그녀는 나에게 야릇한 웃음을 던지며 다가왔다.

. 커다란 얼굴 가운데서 두 눈만이 야릇하게 기름기가 이드르르 돌아 이상스레 생기가 넘쳐

그 어스레한 방안에서 날카로운 빛을 발하고 있다.

 

 

야릇한 표정

 

 

조선말기 한의학자 이제마(李濟馬)는 음양을 원리로 한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주창하며, 인체를 소우주에 비유 한 바 있다. 어느 한 개인도 물리적 정신적 다양한 현상들이 소우주에 버금가게 다양하고 방대할 것이지만, 얼굴 표정 하나로만 알아 내려고 하니 야릇함을 자주 경험하는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얼굴 표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는 지, 눈 여겨 보기로 하자.

기왕이면 해 맑고 예쁘고 좋은 모습들을 읽으며 감상해 보자.

무표정한 듯한 노인의 깊은 골 주름에 감춰진 것은 무엇일지도 생각하여 보자.

어떻게 일생을 살아왔을지, 그리고, 그들의 미래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되새겨 본다.

 

깊은 밤, 소등한 후에나 있을 듯한 이성의 야릇한 표정에서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소우주에 감춰 진 내역이라도 들추는 듯 점점이 상상해 보자.

그 야릇함은 나에게 어떤 감정이 유발될 지도 생각해 보기로 하자.

 

Juicy

 

촉촉함이 느껴 지는 과실 속 알알이의 과즙처럼,

 

삶의 여정에서 우리들이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 , 가녀린 정감 (情感) 들은

언제 어디에서 경험 될까?

 

우리는 일상에서

그들을 무심하게 지나치지는 않았을까?

 

들풀, 들꽃,

풀잎에 맺힌 이슬,

아지랑이, 봄 햇살,

반짝이는 은빛 물결,

 

, , 하늘, 초원,

뭉게구름, 새털구름,

달무리를 흐르는 조각구름,

불그레 물드는 저녁노을,

 

풀꽃 내음, 봄 향기,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깔깔대는 어린애 웃음소리,

 

정감이론

 

. 감각이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정보를 자극이라 하고,

우리의 뇌는 이러한 자극을 빛·소리·온도·냄새·맛 등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자극을 감지하는 생물체의 능력을 감각이라 하며,

사람의 감각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의 오감으로 구분된다.

 

심리학자나 생리학자들은 감각이

유기체의 분별반응과 물리적 자극의 성질들 사이의

의존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 정감(情感)

 

정감은 우리에게 정조와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느낌들이다.

선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흥을 돋우는 좋은 것들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맛나고, 때깔이나 소리가 곱고,

자태가 좋게 느껴지는 것들을 두고도 정감이 간다고 한다.

 

부드럽게 농익은 과실 속의 과립을 보면서

우리가 느껴 지는 정감(情感)은 과연 어떤 것일까?

때깔 곱고,

부드러워 보이는 속살은,

새콤 달콤한 향기로운 맛이 구미를 돋운다.

더위의 갈증도 풀고,

피로를 가시게 하며,

몸의 건강에 이로울 듯한 영양소가 듬뿍할 것 같다.

그래서 농익은 과립에서도 정감이 가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의 몸에 이로울 듯 하다는 것이

정감이 든다는 말이기도 하다.

의식주와 관련된 물건도 그러하지만,

자연경관이나, 동식물, 사람 들로부터도 정감을 갖게 된다.

 

아름답게 느낀다거나, 정감을 갖게 된다는 것은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조직에 선()함을 줄 수 있다는 징표를

오감 중 어느 한 가지 이상의 감각으로서 느낀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자기나, 자기가족, 자기조직에 유리할 수 있음을 느낀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정감이 가는 이성”의 의미는 자기가 취하여 자손을 번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며,

색이나 빛도 자신에게 편안함을 주는 “느낌”들에 정감이 가곤 한다.

 

결국 따지고 본다면, 자신에게 의식주를 풍성하게 하여 줄 수 있는

() 한 것을 두고, 우리는 정감 있다고 말 한다.

 

아름다운 별, 아름다운 바다, 아름다운 태양, 아름다운 갯바위 ……

이러한 것들에서 느끼는 정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그렇지만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모두가 정감 가는 것들만은 아니다.

때로는, 쓰고, 맵고, 뜨겁고, 어둡고, 아프고, 괴롭고, 무섭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선()하지 못한 것들이기도 하다.

 

작열하는 사막에서 태양이 정감 있을 리 없고,

잡아 먹힐 듯 파 거센 바다가 정감 갈 리 없다.

 

 

생각할 수 있는 정감의 주체들

 

. 색과 정감

. 빛과 정감

. 소리와 정감

 

. 질감과 정감

. 문양과 정감

. 맛과 정감

. 향과 정감

 

. 자연과 정감 (. , . 동식물, , 바위 ……)

. 사람과 정감 (가족, , 동료, 이웃, 이성 ……)

 

음악의 정감이론

     사전에서 부분발췌

 

정감이론 (doctrine of the affections)은 바로크 말기 음악이론가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던 음악적 미에 관한 이론이다.

 

음악은 듣는 자에게 다양한 특정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제로, 적절한 표준적 음악 절차나 방식을 사용하면 듣는 이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서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내용이다.

 

17, 18세기 이론가들은 이러한 음악적 방식과 그 방식들에 상응하는 정서 유형들을 엄격하게 대응시켜 이론화했는데 마테존(1739)의 경우, 기쁨은 커다란 음정에 의해, 슬픔은 작은 음정에 의해 불러일으켜지며 거친 화성과 빠른 선율이 결합하면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독립적 선율을 대위적으로 결합시키면 고집스런 감정을 일으킨다는 정감이론을 주장했다.

 

 

 

감동은 철학이 아니다.

 

헤겔 "정신현상학"

감동은 철학이 아니다.

 

정신은 지금 너무도 가난해서,

마치 사막을 헤매는 사람이 단 한 그릇의 물을 갈망하듯이,

신에 대한 남루한 느낌만이라도 타는 목마름을 수그리기 위해 열망하는 것 같다.

 

정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그것,

바로 그것을 보면 정신이 얼마나 궁핍한 상태에 있는지 측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주는 데는 인색한 모습은

그러나 학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오직 감동만을 찾는 사람,

지상에서 자신이 다양하게 정해진 모습과 자신의 생각을 안개 속에 감추고

불분명한 신과 불분명한 만끽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마 잘 알 것이다,

 

어디에서 그런 것들을 찾을 수 있는지

 

그는 혼자서 무언가 열렬히 상상하면서

흠뻑 쏟아져버리기 위해 쓸 도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감동되고 싶은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글이 주는 감동

: 수필의 문학성과 철학성 (김태길), 일부 발췌

 

“어떤 문장이 미적 감동을 크게 주느냐?” 하는 문제는 “어떤 음악이 감동적이냐?” 하는 물음 못지않게 어려운 문제이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문장론 전문가에게서 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간결하고 함축성이 풍부한 문장에서 미적 감동을 느낀다. 군더더기는 글의 맛을 깎는다. 나타내고자 하는 생각이나 가정을 실감나고 선명하게 나타내는 문장에서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산문의 경우에는 의사의 전달이 어려운 문장은 일반적으로 좋은 문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해학적이어서 웃음을 자아내는 문장이나 속담 또는 고금의 명언을 적절히 섞은 문장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경우도 있다. 장단(長短)과 억양이 음악적이어서 읽기에 편한 문장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낀다.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적절한 단어를 올바른 곳에 배치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정확해야 한다.

 

미적 감동은 문장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피사체(被寫體)가 아름다우면 화가의 솜씨나 사진작가의 기술이 좀 떨어져도 그 그림 또는 사진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듯이, 글쓴이의 마음씨가 아름다우면 그것을 나타낸 글솜씨가 좀 미숙하더라도 독자에게 미적 감동을 줄 수 있다.

 

소년 가장이나 가난한 어머니가 역경 속에서도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 온 이야기를 기록한 것을 읽었을 때, 비록 그 문장이 서툴어도 우리는 감동을 느낀다. 수기를 쓴 사람의 심정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감동이다. 일반적으로 미담(美談)을 읽었을 때 느끼는 감동은 그 문장에서 오기보다도 주인공의 미덕(美德)에서 온다.

 

 

수족에서 느끼는 정감

 

 

세계인구 71억명(2013 1월 추계) 중에서 우리나라 인구는 5천만명에 불과하다. 중국 13 4천만명, 일본 1 3천만명으로 15억명(2010년말)이나 되지만, 그 인구 규모에 비해 그들의 외모에 대하여는 폄하하거나 그릇된 편견으로서 그다지 좋은 인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단순하게 "쪽발이니 뙤년"같은 험한 표현처럼, 그들의 미모에 대하여 도매금으로 비하된 개념이 상식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얼굴들을 관심 있게 골라보며, 과연 올바른 선입관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남겨 본다.

 

우리 눈의 수정체, 그 창 넘어 보이는 것들을 우리는 "사실"이라고 부른다.

"사실"과 진실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몸과 손발, 그리고 그 동작도 얼굴표정처럼 모습을 달리한다.

그러나, 때와 장소, 생각에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한다.

다른 동물들의 몸놀림과 크게는 다를 바 없을 듯도 하련만,

덧댄 창문의 피사체는 때때로 엉뚱한 곳으로 우리 마음을 이끌곤 한다.

 

우리는 실제로 발생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사실"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짓이 없이 바르고 참된 것을 "진실"이라고 말한다.

 

눈으로 보는 "사실"들은

모두가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자.

 

사랑한다,

사랑하자.

좋아한다.

좋아하자.

 

의심하지 말자.

미워하지 말자.

화내지 말자.

두려워 말자.

무서워 말자.

 

아프다고, 슬프다고, 괴로워하지 말자.

 

감각으로 느끼는 육근(六根)의 육진(六塵),

(, , , , , )

감정으로 느끼는 좋고 그름이,

(. . 平等, . . )

흐르는 세월의 삼생(三生)과 어우러져,

(과거. 현재. 미래)

백팔 가지 번뇌에 이른다고 하던가? (6*6*3=108)

 

번뇌(煩惱)란 마음의 시달림과 괴로움을 뜻하는

몸과 마음을 괴롭게 하는 잡된 생각들이다.

 

지금, 이 순간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것들,

오직 좋은 감정만을 가지며 보내기로 하자.

 

보고 듣고 맛보며 느끼는 모든 것들

좋음과 기쁨으로 채우자.

 

감각에서 오는 그르거나 나쁜 뭇 감정일랑 떨쳐 버리자.

지금 이 순간도, 지난 일도, 그리고 앞으로 닥칠 일도

그러한 감정일랑 과감하게 놓아 버리자.

밉다, 나쁘다, 아프다, 괴롭다, 서럽다, 슬프다, 두렵다 ……

 

지금

보고 듣고 먹고 느끼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좋아한다, 기뻐한다!

 

지난 날도 그러했고,

훗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청순(淸純) 정감(情感)

 

청순(淸純),

맑고 순수하다는 의미는 무엇이고,

도대체, 우리는 왜 청순함이 좋다고 인식되는 것인가?

 

희고 투명하며 맑은 색감과 부드러운 질감,

자극이 적고 순하여 부드러운 내음과 감칠 맛이 흐르며,

그리고 험하고 사납지 아니하여 순하다는 인상을 갖게 하는 ……

우리 일상의 주변에 그 대상들이 있다.

 

새벽녘 맑은 이슬, 살랑대는 봄바람, 봄 들판의 연초록 들풀 ……

어린이의 해맑은 웃음, 소녀의 환한 미소 ……

 

“나”에게 형성된 진선미(眞善美)라는 가치관과 덕목에 부합하며,

“나”와 이해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 ……

 

청순(淸純)함이란, “나”에게 선()한 것이라는 인식을 조건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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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맑은 이슬 잔뜩 머금은 채,

음주운전 소동에 떠들썩하던 미모의 여인이라 해도

청순(淸純)함의 인식은 “나”의 몫일 뿐일까?

 

각기 지닌 자신의 가치관과 덕목, 그리고 그 인식 가운데,

청순(淸純), 순진(純眞), 순수(純粹), 정감(情感) 따위가 머물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