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믿음 그리고 의심의 본성
신뢰와 믿음 ......
■ 신뢰 믿음 그리고 의심의 본성
"타자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이는 정말 묘연한 꿈 같은 인간의 바램일 듯 하다. 삶,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숨을 다하는 순간까지도 믿을 수 있는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의심의 고리는 그 한이 없음을 최근의 경험으로 어렴풋이 인식하게 된다.
알츠하이머 증상은 뇌용량이 차츰 줄어드는 병증이라고 한다. 치매 노인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이고, 그를 돌보는 가족들도 함께 겪게되는 아픔이다. 기억 상실은 대체로 타인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다. 타자가 자기 것을 탐하거나, 자기에게 해가 된다고 의심하게 되는 병증인 듯 하다.
사회생활이란 서로의 믿음과 신뢰로 육신 위에 쌓아 올려진 허물어지기 쉬운 탑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육체는 각각 별도의 생명력을 갖는 생체 세포 조직의 집합체일 수도 있다. 세포 각각은 복잡한 도심의 교통신호 체계처럼 서로 간에 인터록 시스템이 잘 가동되어 각각의 생명력을 극대화 하는 동시에 그 집합체인 육체를 잘 지탱하게 되는 한 개의 구조물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구조물 위에 살아가는 동안, 개개인의 정신과 의지로서 쌓아 올린 것이 믿음과 신뢰라고 하는 구조물이고 그 구조물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것이 불신 의심 미움 따위의 부정요소가 드리워져 있는 형국이라고 그려본다.
일생동안 경험에 의해 열심으로 쌓았던 육신 위의 신뢰와 믿음이라는 정신세계는 파도 치는 바닷가 조그만 모래둔덕 위에 세워 놓은 모래성처럼 물결에 휩쓸리면 이내 사그러들 운명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 위에 떠 있는 종이배를 타고 가는 애벌레 한마리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한 순간의 상황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는 인간들의 순박한 믿음 또한 허망하기가 물거품과 마찬가지라는 의구심도 품어본다.
우리의 생명력은 분명한 한계가 있고, 늙고 병들어서 그 한계에 이르면, 일생동안 쌓아 올린 신뢰와 믿음의 탑도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다. 불신과 의심의 그림자도 함께 너울지게 될 것이다. 이 때, "나"의 구심점은 차츰 좁아지게 마련이다. 친인척, 가족, 직계 존비속, 그리고 자신에게 까지 점점 좁혀질 것이다.
자기자신을 인식할 때 까지는, 정신과 그에 대한 의지가 자신을 지배하겠지만, 정신과 의지가 지배하는 단계를 벗어나게 되면, 육신을 지탱하는 각각의 장기와 세포 구성 요소가 자신을 지탱하는지도 모른다. 세포 구성요소 중 하나인, 미토콘드리아도 각기의 유전인자를 갖는 한 생명요소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다면. 한 개인의 생명과 정신, 그 의지는 세포를 구성하는 요소가 그 개인의 종합체이며, 한 개인의 의지란 그 생명의 그럴듯한 포장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 한다면, 아니라고 누가 장담 하겠는가?
이것이 자기 자신을 자기 마음대로 굴리지 못하는 이유가 될까? 자신이 죽고 싶다고 죽고, 살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어찌보면 삶, 생명은 자기의지를 넘어 별개로 존재한다고 생각들게 한다. 정신적 의지만으로는 지탱하기 힘든 개인이 처한 극한 상황에서도, 본능은 살기 위해 안간 힘을 쓰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병실 중환자들이 무의식 중에도 자신을 챙기는 것을 보노라면, 섭생의 본능은 살기 위한 방향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흐르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신뢰나 믿음, 의심도 삶이 꺼져가는 궁극의 싯점에서는 개인의 정신과 의지를 넘어 본능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생각하여 보자. 생명체의 본능은 생명 유지에 촛점을 둔다면, 의심은 자기 유지 보호에 부합되고, 반대로 신뢰나 믿음은 그러한 본능을 거스르는 자세가 될 수 있는것이 아닌가? 노인들의 의심 미움 노여움 따위의 부정적인 정신자세는 생체 본능을 따르는 생명체의 자연스런 생명활동이라는 생각을 하여 본다
2016.11.12. (토)
오갑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