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갑록 2016. 4. 10. 12:01

그리움 ......


■ 어머이


 


어머이!” “어머이!” “어머이!”


봄날 초저녁, 어설픈 잠에 갓 든 아흔다섯살 할머니는 꿈 길에서 자기 어머니를 불러대며 방문을 열어 젖힌다. 거실에서 서성이던 그의 아들 귀에도 전라도 사투리가 어우러진 그 억양 속에 애절함과 그리움이 철철 흘러 넘친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애타는 그리운 정으로 흠뻑 젖어 있다. 듣는 순간 아들 감성의 심연은 울컥증으로 벌렁대는 것만 같았다.


어찌 그러 하시냐며, 용수철에서 튀듯 쇼파에서 벌떡 일어나 몇 걸음 뛰어가, 꿈이라고 다독거려 드렸지만, 거기 어머님이 오셨는데 어디 계시냐며 두리번거리며 팔을 들어 허공을 휘젓는다. 고도 난청이 되어 버린 한 쪽 귀에 대고 귓바퀴를 잡아 끌며, 아들은 꿈이라며 소리쳐 보지만, 실눈 사이로 쏘아대는 눈 빛은 어머이!”를 찾아 멀리멀리 헤매고 있었다.


몸 놀림도 어둔 하지만, 한 쪽 눈과 귀도 멀고 남은 한 쪽도 제 구실을 못하니, 있다 없다, 기다 아니다, 따위의예쓰까 노까도 파악하는 데까지는 시간과 실랑이를 한참씩 벌려야만 의사전달이 가능한 실정이 되어버렸다. 마음 속에 한 번 자리 잡은 생각을 되돌리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들어야만 된다. 이제 불신의 장벽은 딸 아들도 넘기가 힘들다. 자신만이 남은 것이 할머니가 처한 현실이다. 잘 듣지 못하면 세상과 소통이 어려워져서 우울증이 쉽게 찾아 온다고 이비인후과 의사가 경고했던 일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아들이 여러 번을 목청을 다하여 소리쳐 보지만, 휘젓는 팔과 번득이는 눈빛은 그칠 줄 모른다.


노인성 치매환자가 겪어야만 되는 정신질환인가 보다. 뇌경색 흔적과 뇌혈관 수축이 여러 곳 있다며, 이제는 치매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던, 인근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MRI판독 결과를 받은 때가 금년 129일 이다. 소화불량과 식욕부진 때문에 처방해 준 아리셉트를 제 때 드리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그 후 4, 5일 사이에 이상한 행동들이 부쩍 더 늘어났다. 먹고 입고 말하며 이부자리 손질하는 따위의 사소한 일들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48() 하루 동안은 이상행동이 더욱 심했다.


새벽 2시반부터 이부자리를 개서 한편에 놓고, 전기코드도 모두 뽑아 놓았다. 소화제며 안약 안경도 모두 쓰레기 통에 쳐 넣어 버렸다. 새벽 내내 방과 거실을 10여 차례 드나들며 부산하시다. 누군가가 잡으러 온다며, 쌀을 감춰야 한다며, 세수를 해야 한다며, 새벽에 배고프니 밥 달라며 …… 아침 8시까지 계속되었다. 다시 아침 드시고도 방안에서 혼자 무엇인지 부산했다. 이야기 소리도 나고 웃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한다.


아들은 보았다. 왜 이러 하시냐며 나무라는 못마땅한 아들을 쏘아 보는 무섭도록 차갑고 날카롭고 번뜩이던 그 눈 빛! 눈이라는 창문을 통하여 마음에서 마음으로 연결되는 섬뜩한 순간을 느낀다. 비수처럼 날아 온 한 줄기 그 날카로운 무엇이, 뇌리에서 쉽사리 떠날 줄 모른다. 차라리 무서웠다.


자기의 어머니를 어딘가 몇 일 째 감춰 놓고 굶겨서 모두가 큰 죄를 지었으니 다 잡아갈 것이란다. 이 나이에 감옥 가게 되었다는 탄식도 한다. 그러니 그 자식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는가? 아들은 몇 일이 지난 뒤에야 그리도 무섭게 느껴지던 당시 할머니의 눈빛이 알 듯 해 졌다. 원망 미움 두려움 공포가 뒤 섞인 눈 빛이었던 게다.


점심 식사 후부터는 감춰 놓은 어머이를 보여달라고 졸라댄다. 조르고 또 조르고 …… 3시경부터 시작하여 자정 넘어서까지 거의 10시간을 보채다가 지쳐서 아들이 억지로 누일 때까지 계속된다.


소리도 쳐 보고, 울기도 하고, 식구들을 달래기도 하고, 장롱에 감췄다고 안방으로 달려 와 장롱 문도 열어 보고, 거실로 나와 신세 타령도 하다가 …… 방으로 모시면 이내 다시 나와서 조르거나 을러대신다. 


늦은 밤이 되어 강제로 자리에 눕혀 드리고 소등을 하고 나왔다. 조금 후에 다시 보니 어머이오시면 누여드릴 생각으로 베개도 한 개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덮개도 한 개 더 장만하여 놓았다. 그리고 아들을 달래고 으르기를 지속한다. 양손 주먹을 불끈 쥐고 휘두르며 때려도 보고 꼬집어도 보고 욕설도 퍼 붓는다.


"야 이놈들아 장롱 속에 감춰 놓고 몇 일을 굶겼단 말이냐?" 그러면 안 된다고, 죽는다고, 벌써 형편없이 되어 버렸을 거라고 …… 그러다간 살짝 귀띔하며 묻는다. 쓰레기 통에다 버렸느냐? ……

한 살 박이 어린아이가 모유를 뗄 때, 젖 달라고 몸부림치던 첫째 날 밤의 애절한 모습과도 비슷했다.


어머이를 그리는 애 타는 마음을 행동으로 하루 종일 보여주고 계셨었다. 타계 하신지 수십년이 되어도 마음 한 편 깊이깊이 묻혀있던 자기 어머님에 대한 사랑의 단지가 터져버린 것만 같았다. 아흔 다섯 연세, 몸도 마음도 이제는 다 소진되고, 마지막 나머지가 지금 몸부림치며 애타게 찾아 헤매는 그 사랑의 단지가 어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번 일을 두고서 우리들은 치매라고, 정신질환이라고 말들 하겠지만, 묻혀 있던 어머이사랑의 단지가 쇠잔한 기력을 터트리고 밖으로 흘러 나온 것이라는, 인체의 극히 자연적 현상으로 받아 들여도 잘못이 없지 않을까?


그 분이 그렇게도 그리워하는 어머이를 나는 바로 앞에서 모시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줄 모르고, 어려워만 하고 있는 것일까?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품은 것을 느끼고 보고 알 줄 알아야 하는데, 그도 쉽지는 않은가 보다.


일련의 사건에 관하여, 주말, 토요일 아침에 주간 보고서를 작성하여 카톡으로 형제들에게 알려 주었다. 30여년 전 타계하신 자기어머이빨리 보여 달라고 고함치며 졸라대는 할머니의 40초짜리 동영상도 촬영해서 첨부했다. 받아 든 형제들의 생각은 제각각 이었겠지만, 그 각자의 생각도 모두 다 옳은 것들이리라고 여기고 싶다. 자기의 어머이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왜 혼자서만 힘들이느냐고?

왜 외부의 전문병원 위탁을 안 하느냐고?

왜 잘 먹여 몸만 불려 놓아 힘이 넘치게 했느냐고?

왜 혈압당뇨 따위 약까지 아직도 챙기느냐고? 정신과 약이나 드리지 ……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 간다는 개념을 기본으로 한다면, 반 인위적인 수명연장은 자연현상을 거스르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감당 못하는 정신력을 무시한 채, 무조건 육신의 건강만 챙긴다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신에 걸맞는 건강이 유지되도록 환자를 보살펴서, 균형 이루는 정신과 육체도 자연의 조화에 해당함을 잊고 지냈는지 모르겠다. 무조건 약 수발과 먹거리 조달만 잘하는 것이 잘하는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여하튼, 돌이켜 보면 못했던 일, 스스로가 부끄러운 일이 너무나 많았다.


정신 없는 가운데에서도 하염없이 내뱉어져 쏟아져 나오는 환자의 푸념 속에는 모시는 가운데 모자랐던 나 자신의 잘못들이 그대로 함축되어 있었다. 부족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나의 가족들에게까지 나의 사랑을 강요할 수 없었던 것이 나의 변명이 될 수도 있다. 나와 처가 바라보는 어머이는 그 핏줄이 서로 다르고, 손녀가 바라보는 할머니 또한 아들 보다는 한 다리 건너서의 촌수가 된다. 딸이나 처가 대하는 자세가 다른 것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일 뿐임을 잘 이해 하기에, “어머이를 대하는 마음 깊은 곳의 자세까지 나처럼 하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분한 바람임을 알기에 …… 환자 푸념 속에서 읽어 내는 서운한 속내는 옳은 것도 있었다. 아흔다섯 살의 눈치 백 단까지 사랑의 크기를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없는 사랑을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넓은 아량으로 …… 베푸는 사랑을 좀 더 키워 달라고, 요구 하기는 아주 어렵다. 나 스스로도 지 에미에게 그리 하기가 힘겨운 것을 알고 있는 바에 말이다. 항상 사랑의 주제는 어렵다. 남녀간의 사랑도 어렵고, 처자식 가족간의 사랑도 어렵다. 늙고 병들어 몸과 마음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시는 자기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모자라는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자신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한 다리 건너의 가족간에는 그 사랑이 부족함이 얼마나 많았었겠는가?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온 세상을 구하려는 큰 사람, 위인들의 모습들이 더욱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아들에 대한 원망, 손녀와 며느리에 대한 원망, 멀리 사는 딸 아들에 대한 애처로움, 오래 전 명을 달리 하신 자기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 …… 쏟아지는 푸념들은 지어서 만든 것들은 아니었다. 느끼고 품었던, 가슴 속에 홀로 묻어 두었던 여러 가지의 자기 감정들 이었다. 모두 옳고 당연한 것들 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단지, 그 줄거리 속에서도 인간의 한 없는 욕심을 읽을 수는 있었다. 욕심에 닿지 못하여, 까치발을 딛고 애써도 손 끝에 닿지 못하던 어린 때 선반 위 맛난 군것질 거리처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의 연속이기도 하다. 만족 할 줄 모르는 인간의 본성이려니 한다.


우리는 정신적인 노인성 질병이라고 통칭 하지만, 그러한 본성으로 인한 욕망의 감정을 머릿속 이나 감정 속 저장고에 담아두지 못하고 힘에 부쳐 자기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본다. 생체의 당연한 노화 과정이지만, 옆에서 잘 참아주고 이해하여 주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의 병폐라고 도 생각하여 본다. 물리적인 체력처럼 정신적인 능력 또한 개개인이 한계가 다르려니 한다면, 누구의 잘잘못을 탓하기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어설픈 나의 사랑이 부끄럽기만하다.


2016 4 10 ()

오갑록